1. 04:28 6월 23일 1/3의 군 장병이 휴가를 갔다는 6.25 10대 미스테리는 현재 학술적으로 논파된 상황입니다. 당시 해방한국은 몇달에 걸쳐 비상경계령으로 군 장병들의 피로도와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이르렀고, 딱 그 당시 농번기였던 관계로 휴가를 보내 다 떨어져가는 군량미 손실 보전 + 군장병 스트레스 완화 + 농촌 일손 활성화를 꾀해보려던 것이었습니다. 하필 북한이 이 농번기를 잡고 내려온거고요. 2. 05:00 당시 미합참에서 인천상륙작전을 반대할만큼 어려웠던 이유는, 인천이 지리적 특성상 상륙작전에 부적합했기 때문입니다.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 밀물때 상륙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차량으로도 이동 못하는 수백미터의 갯벌에서 군 장병들이 개죽음을 당하기 쉽습니다. 동시에 당시 남한은 낙동강 까지 밀려난 상황에서 이 상륙작전에 실패 시 낙동강 전선에도 이상이 생길 수 밖에 없었으며, 여차하면 일본까지도 직접적으로 위험에 노출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인천에 상륙하더라도 해안가에 도시가 형성되어있어 인민군이 그라드를 펼칠 시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었고, 앞서 말한 밀물과 썰물의 시기를 생각하면 최초의 상륙부대는 성공하더라도 10~12시간은 어떠한 보급도 없이 방어선을 지켜내야만 하는 악독한 상황에 처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아더가 원하는대로 인천으로 결정된 이유는 인민군의 허리를 완벽히 끊을 수 있는 지리적 특성상 최적의 위치이며 동시에 일단 인천을 확보하는데 성공하기만 하면 방어 병력 자체는 크게 필요하지 않다는게 미 해군부와 합참에 먹혔습니다. 3. 05:16 1.4후퇴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벌어진 비극적 사태입니다. 당시 한국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하여 이미 초산과 혜산을 비롯해 중국과 국경을 닿은 지역이 있을 만큼 북진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은 광활한 만주평야만 넘으면 바로 베이징까지 위협에 처할 만큼 안보상 심각한 위협에 시달렸습니다. 당시 수준의 차량으로도 이미 신의주 지역에서 베이징까진 일일생활권에 포함될만큼 가까운 위치였고, 그런 가까운 위치에 핵무기를 비롯한 온갖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마오쩌둥은 이전의 소극적 지원에서 적극적 지원으로 노선을 전환하여 게릴라전으로 살짝 간본 뒤 대대적으로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또한 당시 대만으로 도피한 국민당과 장제스를 물리치기엔 타이완해협을 미국이 봉쇄한 상황이었으며, 대만섬에 상륙하더라도 밀집된 국부군을 상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만을 포기하자니 정치적으로 자살하겠다는 의미인 상황에서, 대만대신 북한을 살려 본토를 지키겠다는 명목 하에 마오쩌둥 본인의 정치적 위기도 피해 넘기게 됩니다. 영상 잘 봤습니다. 다만 개그를 뺀 영상의 경우 가급적 음모론은 빼주시는게 맞을거 같아요. 비전문가로서 내용에 공백이 있거나 스킵되는건 어쩔수없지만, 음모론은 조금만 찾아봐도 걸러낼 수 있습니다.
진짜 강의 콘텐츠 따로 만드심이. 이거 인강급인데... 설명을 너무 잘해. 내 뇌피셜로 가르치는 강사가 가르친다라에 고립되어 대상과 차별을 두길 원하고, 대상의 세대에 공감대가 없으면 수면제고 교육적인 가르친다에서 쉽게 알려줄께, 나는 너희 세대랑 공감대가 형성되어있어. 가 되면 이해가 쉬운듯. 설명에 사용된 묘사나 어휘는 세대에 따라 이해가 다르니까. 여튼 넋놓고 봤네. ㅋㅋㅋㅋ
문쌤 영상에서 생략된 전 장병 1/3의 휴가의 경우, 당시 한국군은 군량미가 거의 바닥난 상태였고 계속해서 줄어드는 군량미를 절약하고 동시에 농번기의 일손을 장병들로 돕게 하기 위해서 외출/외박을 실시했다고 한다. 당시 남한은 제대로 된 2차, 3차 산업이 없던 가난한 농업국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틀린 결정도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추가) 6.25전쟁 미스테리 몇 가지, 1.6.25발발 직전인 4월~5월 8사단 등의 부대에서 대규모 남침 징후가 보인다는 보고가 잇따랐음에도 육군본부는 이에 무대응함. 2.사단장급 주요 지휘관의 대대적 인사이동이 6월10일 단행됨. 3.육군본부는 6월 23일 전 장병의 1/3을 모내기철이라는 이유로 주말 휴가를 내보냄 4.북한에 대한 비상경계령이 6월 24일에 갑자기 해제됨. 5.육군 장교 클럽 댄스 파티가 6월24일 밤에서 새벽까지 진행됨. 술과 댄스 2차까지 가는 일부 장교들도 있었다고 함
나는 문쌤이 누군지 몰랐고, 이 영상이 알고리즘에 떴고, 625 얘기가 궁금해서 들어왔고, 진지하고 재밌게 듣고 있었고, 진짜 너무 길어질까봐 넘겼다고 생각했었지.....근데 삼터뷰에 이 사람이 나오길래 얼마나 인기있는 강사길래 여기에 나오나 싶었고, 진실을 알게 됐어.
좀 지적하고 싶은게 있는데 해방직후에 미국은 미군정을하고 싶지 않았는데 전후에 모든 시스템이 개박살난 상태라 대한민국 지도자들이 맡아달라고 요청해서 해준 거임. 당장 가장 최소한의 국가인 경찰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없는 상태였고 북한이 탱크 전투기 보유한 상태에서 안보유지도 못하는 상태.
4:32 다른 강사님 (누군진 기억 안남) 말론, 저 휴가가 모내기 휴가 라고 했음. 지금의 대민지원 성격으로, 집에서 농사하고 있는 장병을 대거 휴가로 돌려, 농사지원 한 것이라고 함. 1/3만 남긴 이유도 최소 경계 병력 수준이고, 저 당시엔 자유롭게 남북한 왕래가 가능했다고 할 만큼 병사가 있을 이유가 없긴 했음. 주요 지역은 미군이 방어 하고 있으니…
48년에 각자 정부가 수립된 이후 남한내 빨치산들의 활동과 38선쪽에서 국지전이 수없이 많이 일어났고 소련에게 지원받은 무기와 중국내 국공내전에서 경험을 쌓은 이들이 주력이 되어 미국이 개입하기전에 끝낸다는 생각으로 몰아붙혔지만 미국이 예상보다 빠르게 개입하면서 대한민국은 살아남았죠
이거보면 설x석이 생각남. 그 사람두 생각해보면 연영과 출신이라 그런 지 전달력이 진짜 뛰어나긴했음. 문제는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나보니 한계가 드러나버린거지. 무튼 문쌤 올해 저희랑 같이 한능검 프로젝트 해주세요 ㅋㅋㅋ 알짜배기 강의 전달하기 + 같이 공부하기로 고고!
재밌어서 가볍게 보는데 덤으로 매우매우 유익해서 너무 좋은것같아요 이런게 오히려 집중 잘되고 지식 잘 쌓임... 고딩이라 그런가 공부하는거 재미없는데 재미로 보려고 왔다가 진짜 공부하고 가네요 알고있는 내용이라도 복습을 했숩니다..! 사실 초딩때부터 한 생각인데 일본이 왜곡된 역사를 교육받는다고 했잖아요 우리도 그런게 아닐까? 속고있는게 아닐까? 싶었는데 베트남에는 한국을 혐오하는 의미가 담긴 비석이 세워져있대요 베트남참전 군인들도 잘못이있었던거죠 그런건 왜 안 가르치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