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 이거 군대가면 다 배우는데;; 미필이신가 625 전쟁이 "자 시~작~" 하고 일어난 게 아니라 그 전에도 북한이 포쏘고 총 쏘고 몇 번 도발 있었음 한 가지 일화를 들면 북한 최전선에서 어떤 북한노인네가 남쪽에 자기 아들 있다고 아들보러가야 된다고 하길래 북한병사가 비웃으며 킬킬대고 아무조건없이 보내줬는데 그 노인네가 가다가 지뢰를 밟고 사망한 사건이 있었음 근데 그 북한병사는 그냥 보내준 게 아니라 남한이 지뢰를 설치했나 안 했나 확인하려고 보낸 거였음 이게 625전쟁 발발하기 3일 전임 그래서 최전선에 지뢰를 파악했다는 이야기도 있음
문쌤 한국사 1타강사 였나요? 한국지리1타강사신줄알았는데.. 요약본이지만 6.25전쟁 전에 있던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분들이 모르실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분들이 보셨으면좋겠어요 매년 태극기희날리며를 보는데 새로운 사실을 알고 보면 진짜 영화장면속 디테일이 엄청나다고 느낍니다
@@user-rl3qc3xi3m 그거 날조고 선동당한거에요… 그렇게 해서 6월 26일 맥아더로부터 F-51과 기타 무기 공수가 결정되어 이뤄졌고 이승만은 대전에서 27일 라디오 방송을 하게 된다. 이 방송을 일본의 미군 감청기관이 잡아 기록을 남겼는데 그 기록을 보면 이승만은 ‘안심하라’든지, ‘이기고 있다’, ‘서울에 있다’ 와 같은 말을 한 기록이 없다. 대신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이 참전을 결정했다’, ‘물리칠 것이다’와 같은 내용이 전부다. 그러면 왜 이승만이 ‘이기고 있다’라든지, ‘의정부에서 승리했다’, ‘안심하라. 나는 서울에 있다’와 같은 하지 않은 말들이 지금도 전해지는가? 이유는 그러한 내용은 당시 국방부가 당일 오후 4시 선무 공작 차원에서 이승만에 앞서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국방군이 현 전선(서울)을 고수할 것’이라는 특별 발표로 방송한 내용들이 이승만의 대전 정부 이전과 혼합되어 와전되었기 때문이다.
아 역시 ㅠ 영상 내용에 길이에 업로드 시간에,, 이걸 다 알아봐주는 빠둥이들까지 완벽하다 ㅠ 만든 사람들도 꽤나 뿌듯할거 같음. 빠더너스에서 뭐 하나 허투루게 하지 않고 공들여서 '컨텐츠'를 만든다는게 느껴져서 좋구요 난 문당훈 까만색 옷 챙겨입은 디테일까지 좋다 (우연이었으면 넘어가여 ㅎ) 쨌든 진심으로 멋진 빠더너스 오래오래 함께해 🫶
와 아니 근데 진짜 미스테리하네...6개월전에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무엇때문에 미리 준비는커녕 전반적인 교체와 휴가까지?... 어디서 들어봤던 내용인것 같긴한데..이렇게 다시 알려줘서 너무 감사하네요. 6.25 희생하신, 희생당하신 우리 선조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미스테리는 아니고, 6월 이전에도 군 당국에 1월 남침설, 2월 남침설, 3월, 4월, 5월 남침설이 계속 보고가 올라왔고, 남침설이 계속 대두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국군은 이러한 북한의 남침 움직임에 대응하기위해 전 군이 경계태세를 강화하면서 휴가, 외출 통제와 더불어 인사이동, 심지어는 물자 보급마저 적체된 상황이었고,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비전투 손실이 발생할 것이 뻔했기에 어쩔 수 없이 경계령을 해제할 수밖에 없던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국군이 낙동강 이남으로 밀리는데 큰 요소로 작용한 것입니다.
01:14 당시에 국군도 '연말적정보고서'를 작성한 만큼, 국군도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미군 쪽도 마찬가지였음. 그렇기에 전 장병 휴가, 외출 통제 등을 시행했고, 심지어는 상급 지휘관의 T.O까지 적체될 정도였음. 그러나 1월 남침설, 2월 남침설, 3월, 4월, 5월 남침설이 계속 반복되면서 적체된 인사이동, 물자보급, 더불어 장병들의 피로가 누적되면서 국군 측에서는 비전투 손실을 우려해 어쩔 수 없이 경계령을 해제하고 휴가, 외출 등과 인사발령을 시작했던 거임. 하지만 이는 북한의 전략적인 판단이었고 우리는 이런 북의 전략적 판단에 말려들어간 것일 뿐임.
군 윗대가리들이 단체로 빨갱이가 아닌이상 우연,불운이 겹친게 맞겠죠... 다른 부대이동.행사 등등은 언제였어도 해야할것이였다고 할때 우리가 6월24.25일 그 주말에 가장 약할시기다 라는 정보가 넘어갔다는건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듯 단 한명의 고위급 군인만 간첩이였어도 가능했던일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