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sion-j3s책략도 지력이고 행정도 지력이긴한데 나관중이 연의에서 실제 법정과 방통이 내놓은 책략을 제갈량이 했다고 구라로 소설을 써서 제갈량을 신으로 만들어버림 그렇다고 제갈량이 능력이 없다는게 아님 행정과 정치는 왕좌지재인 순욱보다 제갈량이 더 높다는게 제 개인적인 생각임
인구와 영토 크기가 국력의 전부였던 저 시기에 이릉 전투로 역량 전부를 날려먹은 촉나라를 단 10년만에 위나라랑 맞짱뜰 정도로 강력하게 만들어놓았고, 법률과 행정 집행이 굉장히 엄격한 나라였는데도 어느 누구도 불만을 가지기는커녕 공명한테 날라간 사람조차도 공명이 죽었을 때 자길 써줄 사람은 다신 없다고 울부짖을 정도로 법의 집행이 공명정대했고, 사실상 촉에서 모든걸 다 할 수 있는 위치였는데도 자기를 위해 권력을 한번도 쓴적이 없었고, 인격적 결함이 컸던 양의나 위연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공을 세우게 해줄 정도로 조직 인사 관리도 출중한 정치가이자 행정가였음. 이미 이것만으로도 실제 제갈량은 마법 부리는 연의의 간달프 제갈량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임. 그냥 나라를 위해 자기 몸을 다 갈아버린 사람임.
@@steintandogos4739 그 당시 양자강은 백제가 차지함. 대륙의 해안선 영토는 고구려, 신라, 백제, 왜의 영토임. ☆삼국사기 열전 제 46 최치원전 [원문] 高句麗百濟全盛之時强兵百萬南侵北撓幽燕齊魯爲中國巨蠹 고구려백제전성지시강병백만남침오월북요유연제노위중국거두 [해설] 고구려, 백제가 강성하였을때 강한 군대 백만을 보유하고 남으로 오월을 침범하고 북으로 유연제노를 흔들어 중국의 큰 두통거리가 되었다. [488년] 동성왕 10년 (동성왕 재위) 10년(488) 위(魏)나라가 병사를 보내 쳐들어왔으나 우리에게 패하였다. 十年 魏遣兵來伐 爲我所敗 《삼국사기》 -동성왕- 위나라가 군사를 보내 백제를 공격했는데 백제에게 패하였다. 魏遣兵擊百濟 爲百濟所敗. 《자치통감》 권136 2 -세조 무황제 상지하- 영명 6년(488) 12월조 이해(490) 위로가 또 기병 수십만 명을 내어 백제를 공격하여 국경에 들어왔다. 이에 모대는 장수 사법명, 찬수류, 해예곤, 목간나를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위로 군사를 기습하여 크게 깨뜨렸다. 是歲, 魏虜又發騎數十萬攻百濟, 入其界, 牟大遣將沙法名·贊首流·解禮昆·木干那率衆襲擊虜軍, 大破之. 《남제서》 58권 -백제
@@steintandogos4739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촉이 다스렸던 성도 쪽이 생각보다 꿀땅입니다 평야지대도 있고 산림자원도 풍부해서 지금도 살기 좋은 곳임 게다가 지형도 험준해서 수비하기도 용이한 지역이었죠 위나라가 촉을 멸한 뒤에 촉나라의 국고를 살폈는데 재물이 상당했다는 기록도 있구요 물론 그럼에도 위나라가 압도적이었고 촉이 자력으로 통일을 보는 건 힘들었겠지만 진이 통일하고 일어난 팔왕의난 이민족들의 난립으로 인한 5호 16국 시대의 혼란기를 생각해 보면 촉이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하북이 혼란할때 다시 기회를 볼수도 있었을텐데 아쉽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제갈공명이 천문학에 능통했다는 말은 육임, 기문 등에 뛰어나 병법에 활용했으며, 훗날 명나라 책사 유백온과 제갈량의 일화를 보면 제갈량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의 천재였으며, 인류의 미래까지 시로 남길정도로 그의 역학세계는 신의 경지수준이다 . 전쟁에서 병법에 활용한 것은 그의 재능중 극히 일부분 사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화살 이야기는 웃기는 이야기일 뿐이당.잘 안보이면 당연히 불화살을 쏘았을것임. 조조군에 수많은 인재가 있었는데, 불화살 쏠 생각을 할 정도 수준의 인물이 없었을까? 연환계도 마찬가지이고... 제갈량은 오만 계책과 힘을 다 하였지만, 사마중달에게 못 이겼음 북벌은 중달 땜에 막혔음.
아이구! 고대의 큰그림의 정책과 재정 인사 외교 군사권을 가지고 있는 승상이란 직업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임무가 부여된 현장에서 활동하는 장수들은 현장에서 임기응변이 탁월해야 하지만.., 승상이란 직책은 왕을 옹뮈하고 천하를 아우르는 직책입니다. 조조도 승상일때 크게 활약하죠... 조자룡 칼 쓰는 직책이 아닙니다! 고대의 원사라는 딕업... 특히 춘추전국시대 원사는 오자서(오자) 같은 사람으로 외고 군사 내무 재정 교육등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직책 입니다....!!! 단순한 장군이나 책사가 아닙니다....!!!!!☝️☝️☝️ 또 대표적인 전설의 강태공도 80이 넘어서 주나라 무왕에 채용되어 주나라를 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특별한 군사 행정 인사권을 쥐신 분 이었습니다!
사실 제갈량이 야전에서 직접 큰 실력을 보인 것은 없다. 적벽대전도 손권의 군대가 주력이고 주유의 작전과 지휘로 이루어진다. 유비와 제갈량은 조공 정도의 역할만 한다. 제갈량의 역량은 적벽 이후 나오는 것 같다. 형주의 중남부를 손권으로 부터 빌려 이를 기반으로 파촉과 한중을 차지함으로 유비가 비로소 영역을 갖춘 군주가 된 것은 제갈량의 공이 제일 큰것 같다. 손권의 투자를 이끌어 손꼽히는 대기업으로 성장시킴? 이후 투자금 반환과정에서 관우로 인해 주 거래처인 손권세력과 갈등이 생겨 어려움을 겪게됨?
연의때문에 엄청 저평가된 사람이 유비하고 장비입니다. 정사를 아는 사람들은 유비를 대단한 인물로 보고있구요. 박망성전투때 유비가 계책을 써서 하후돈의 군대를 이겼었고 제갈량,방통,법정,관우,장비,마초, 조운,황충,황권등등이 유비에게 충성을 다할수있도록 만들어줬거든요. 그리고 제갈량의 역량은 사실 유비 사후에 있었던 위나라 1차 북벌부터 나온것이라고 봐야할듯합니다
@@tarve4824 ??? 적벽대전때 형주군을 유비가 가지고있었다고? 아무래도 강하를 말하고있는것같은데...그때 강하는 유기가 다스리고있었음. 그리고 적벽대전때의 유비군은 실제로 8000~20000명 정도라서 공을 세우기가 쉽지않았던 상황이었고 연의에서와는 달리 실제로는 아주 싱겁게 끝나버렸었던 전투였음.정사 조조전을 보면 적벽대전때 조조군에 역병이 들어서 조조가 스스로 배를 묶고 배를 불지른 다음에 후퇴했었다고 나와있음. 그때 유비가 후퇴하고있었던 조조군의 뒤를 쳤었고(유비가 보유하고있었던 군대는 실제로는 유기에게 빌렸던 군대임)
음..깊이가 과연 있으신분인지.하나 근거 자료 좀 올리면서 강의하셨으면..아주 작은 지식이지만 제갈량이 강의내용처럼 실제로는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던거의 자료도 있고..제갈량은 나과중이라는 권력욕에 몸부림친..마치 군주론을 지엇던 것처럼.. 아싑다는 생각이 너무 드네요..한마디로 강의가 깊지않은듯 하네요
애초에 전쟁은 인사, 물류, 행정이 곧 전략이자 묘수의 기준이아. 중2병이나 현실을 모르는 병신들이나 신묘한 작전이 전쟁을 이끄는줄 알지. 앞의 3가지 요소앞에서 작전은 그저 실행수단 중 하나를 고를 뿐이야. 이걸 이해못하는 놈들이 장사를 하든 뭘 하든 왜 망하는지를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