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H_A 사람을 죽인거 자체는 잘못된걸 순 있지만.. 우리나라 체제가 아닌 그것도 북한체제에서 법을 어기고 넘어가는게... 그 사건 하나로 아예 북한과의 금강산 교류는 깨졌죠 그리고 저거 하나로 실향민들은 다 고향으로 못가게 됐죠 자신 하나의 행동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모르고...
@@louisamolang7408 동서독 격차 때문에 그건 진짜 옛날 말임. 반쪽짜리 나라로도 세계 경제 대국 반열에 올라와 있는게 한국임. 그래도 한국 경제나 주가가 불안정한 이유가 휴전국이라 그런데 통일 한국이 되면 해외 투자 물 밀듯이 들어 올 테고 인구 문제, 농촌 문제, 북한 개발로 인한 새로운 일자리 등등 득이 훨씬 많음. 북한이 자멸해서 흡수되던 전쟁이 나서 무력으로 되던 통일은 무조건 되어야 함.
@@LILlLlLILlLl 통일비용 옛날말 ㅇㅈㄹ, 전쟁으로 무력 통일이 되던 통일은 무조건 되어야함 ㅇㅈㄹ.. 전쟁으로 무력 통일이 되면 나라 개판된다. 원화가치, 경제 다 개판된다. 전쟁과 그 후 회복이 너랑 옆집 민식이가 맞짱뜨는 수준인줄아나ㅋㅋ 그리고 통일 한국 되면 해외 투자가 물 밀듯 들어온다는건 니 행복회로지 일어난 일이 아님; 팩트나 최소 기정사실마냥 얘기하네 누가 통일 한국 되면 투자 ㅈ나게 하겠다고 계약서라도 써놨음? 그때 가봐야 아는거임
저도 고딩때 수학여행으로 금강산 갔었는데 제 생전에 그렇게 보존이 잘되어 있고 깨끗한 산을 본적이 없어요... 산 안에 있던 호수가.. 물이 너무 맑아서 충격받았는데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레알 에메랄드빛이 따로 없었음.. 그때 당시에는 다른 학교들은 제주도 일본으로 수학여행가는데 무슨 놈의 금강산이냐고 엄청 욕했는데ㅋㅋㅋㅋ좋은 추억으로 남았네요 다시 또 가보고싶어요 ㅜㅜ
사회주의여서 그런지 관광객에 의한 자연훼손은 확실히 적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도 인적이 드문 곳은 그만큼 혹은 그보다도 맑은 곳이 있구요. 저희는 낮에 텐트로 된 숙소까지 한참을 걸어서 갔고 밤에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나와야 했는데 주민들이 불꺼진 창가에 모여서 쳐다보는 실루엣이 보이더군요. 그리고 처소주변을 군인들이 돌고 있었죠. 그리고 금강산은 한국의 산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산책로는 꽤 잘되 있었습니다. 가을걷이 할때였는데 밭은 민둥밭에 들판도 민둥산으로 풀한포기 없더군요. 훈련병들은 키가 상당히 작고 나이가 어린 소년병으로 보였는데 영양실조로 보일 정도로 말랐고 성인들도 까만 얼굴에 비슷했습니다. 다만, 여성들은 풍만하고 오래전 한국의 미인상이 달덩이같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성형한지 얼마 안되 붉은 흔적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 북한에도 성형수술을 하는구나 하고 친구들끼리 이야기한기도 하였음. 설악산의 경우 악산이라 올라가기 힘들었지만 금강산은 그 정도는 아니고 버스타고 가서 그나마 쉽게 갔던 생각이 나네요. 식사는 현대아산이 지은 건물에서 해서 그렇게 불만이 없었지만 제가 갔던 시기는 호텔이 하나밖에 없었고 거의 텐트에서 숙박해서 수도까지 가는데 사람들이 항상 밀려있어 어르신들은 그돈이면 중국의 황산이나 장가계를 가는게 낫다고 불평하시더군요. 그 당시는 한국도 IMF를 겪어 전체적으로 물가가 낮은 편이었고 중국도 지금처럼 개발되지 앓아 물가가 낮은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의 다른 산에 이미 가봤고 중국의 산도 가 본 적이 있기에 그다지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특히 한국은 자연보호법이 강조되서 풀이나 꽃을 함부로 꺾지 못해 꽃들이 아름다웠지요. 하지만 금강산은 아기자기한 꽃보다는 웅장한 자연과 독특한 암석, 그리고 금강송이 기장 기억에 남는데 명소마다 주체사상탑에 종교처럼 인사해야 하며 아름답기로 유명한 암석에는 거대한 빨간 글씨로 훼손이 심했습니다. 산은 한국의 산과 비슷해서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었고 웅장함은 중국보다는 못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서커스는 볼만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중국보다 낫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북한이 세계 4위라고 하더군요. 중국은 아주 어린아이가 해서 차마 볼 수가 없었는데 성인이라서 괜찮았고 공중 루프에서 도는 동작이 훌륭하더군요. 다만 잊을만하면 반갑습니다와 천하제일 금강산이라고 방송해서. 사람들은 키가 상당히 작았고 대부분은 친절했는데, 웃음이 없었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없어 웃고 일하는 사람들은 전부 한국인이었음. 우선 한국인들, 대부분 현대아산의 직원들이었는데 힘들게 땅을 파며 건물을 짓는지 일하고 계셨음. 그리고 식당에서는 한복을 입은 미인들의 사진이 있었는데 그도 알고보니 한국인이었음. 식당에는 매점이 같이 있었는데 주로 술을 팔고 인삼주, 장내삼주가 대표상품이었고 구렁이술도 있었는데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좋았지만 형체가 남아있어 가장 잊혀지지 않음. 에메랄드 빛의 폭포는 스위스나 한국에서도 흔히 보았고, 지금은 오염됬지만 중국이나 다른 나라도 많아 그리 특이하지는 않았어요. 진짜로 놀란 것은 것은 자연환경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거리였음. 우리끼리 노는데도 뒤에서 단체로 서 있고 공연에도 어두운 뒤에서 박수치는 사람들, 어디를 기나 보이지 않는 시선, 사진기를 보며 사진 많이 찍으라고 하지만 산외에는 찍지 못하고 산에서도 주체사상탑이나 빨갛게 훼손된 지역은 찍지 못하고. 휴전선을 넘으면서 북한은 다른 나라이니 조심하라는 말이 직접 와닿았달까. 그럼에도 휴전선을 넘어 같은 말을 쓰는 동포를 만났을때의 감동은 이루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같은 사람들이라고 느껐다해야 할까, 통일에 대한 희망이 샘솟았다해야하나. 물론, 그건 거리를 걸어보고 많이 깨졌지만. 당시 한국에서도 국토대장정같은게 유행이라 꽤 걸어서 갔는데 건물이 단열재도 없이 무너져가고 빨간 벌판밖에 없는 논밭길이 안타까웠음. 주민들은 키도 작고 마른데다 까맣고. 그와 대조되게 산은 길이 잘 정비되어 버스타고 기는데 화장실을 종류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고 안내원이 설명하는데 유럽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음. 그리고 관광비용이 초기라서 그런지 꽤 비싸서 어르신들은 당시 동남아나 중국, 그리고 한국의 명산이라는 명산은 대부분 갔다오셔서 그 돈이면 중국가는게 낫다고 대우도 훨씬 낫다고 가지 말라하셨어요. 특히 텐트에서 자는 것은 난방은 그래도 괜찮은데 어르신들에게는 무리였는지 주변에서 말이 많았음.
참고로 북한군 총에 맞은 박왕자씨사건 고의적일수도 있다는거임 쟤네는 철저하게 개인적,우발적 이런 행동을 못합니다. 당에서 지시가 내려지면 합니다. 당시 핵실험 거의 완성해갈 무렵이었으니 남북 관계 긴장모드로 다시 돌려놓을 명분도 필요했고 이명박정부도 북한에 대해 쌀주지 말고 옥수수 주라고 했을정도니깐 사이도 안좋았고 참고로 남북은 이제 점점 통일의 당위성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산가족도 전부 죽었고 이제 남,북에 가족도 거의 없음(탈북민정도?) 저는 그냥 갈라지고 서로 국가로 인정하고 대사관 세우고 다른 나라처럼 여권,비자발급해서 왕래하고 2국가 체제론으로 가는게 맞다고 봄 그렇게 100년 200년 살다보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
초등학교 6학년때 금강산으로 수학여행 갔던 기억이.. 겨울이었는데 물이 깨끗해서 고드름 따서 바로 먹고 고여있는 얼음깨서 물떠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온정각 오락실 아져씨는 무서웠고 금강산 산행중 만난 북한 젊은 부부가 어디서 왔냐고 물었던 기억도 나고 참 친절했던 생각이.. 또 하나 기억에 남는건 바위에 김정일 김일성 찬양하는 글들이 새겨져있는데 절대 손가락질 하면 안되고 공손하게 손을 모아서 가르켜야 한다고 가이드가 신신 당부했던 것이 생각나네요..
00년도 중반 당시 초딩이였는데 금강산은 못 가보고 개성은 가봤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네요.. 개성공단 지나자마자 버스타고 보이는 풍경은 갈아엎어진 밭들이랑 회색건물 한두개가 전부였고 사람들도 칙칙한 옷만 입고있었던 모습이랑 좀 가다가 들어온 개성시내는 마치 야인시대 세트장같았고 붉은색의 선전포스터가 가득하고..도로에는 차 한대도 없어서 점심때 뒷문으로 식당에서 몰래 나와서 저 멀리 있는 김부자 동상을 등지고 경사진 도로 한가운데에 앉아서 저 멀리 자전거로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의 모습들 구경하던거...선죽교라길래 가봤더니 주변으로 풀이 무성했던 모습..박연폭포 진입로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울퉁불퉁한 비석에 붉은글씨로 써있던 선전문구들...그리고 그당시 옥수수 수염차 캔이랑 라벨이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같이 누드화가 있었는데 이게 선정적이라 보위부(?)에서 조사를 받을수도 있으니 미리 내놓으라는 가이드분의 말씀... 방문증 검사하던 북한 여군의 눈빛..정말이지 내가 북한에 와있다는게 느껴져서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조심했었죠..혹시라도 잡아갈까봐..
맞아요. 가는 곳마다 감시에 주민들도 서로 감시. 농사철인데도 일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군사훈련에다가 밤에도 불꺼놓고 감시. 그리고 산은 민둥산에 밭도 민둥밭. 금강산외에는 초록색이 없고 집은 단열도 안되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안타까움에 깡마른 사람들. 여행에도 텐트에서 자야하고 화장실도 돈내야하고 금강산에서는 주체사상탑에 절해야하고 바위는 빨강색으로 파여 있고. 산은 설악산과 비슷했는데 훼손이 심해서 그다지. 다만, 산책로와 금강송은 멋있더군요. 가격은 비싸서 그 정도면 한국이 낫다고 어르신들은 다시는 안간다고 하셨음.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다녀왔는데 비무장인 고등학생들인데도 입국심사소 같은 곳에 군인들이 양쪽으로 쭉~ 서서 맞이했던.. 기억이 있네요. 열댓명이 그러고 있는 게 아니라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데 계속 보일 정도로 많았음. 절대 영상 속 분위기처럼 반겨주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아니었고, 삼엄하고 경고하는 분위기 물씬 풍겼음. 아니나 다를까 관광지에도 북한 군인들이 계속 감시하고 잠은 한국으로 넘어와 잤어요. 금강산 관광 말미라 그런가 제가 느낀 분위기는 이랬네요.
저도 초등학교때 수학여행으로 갔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단 암벽을 깎고 파서 빨간색 글씨로 그쪽 찬양글(?) 새겼던데 그건 좀 그랬어요 참; 아 그리고 달라로만 받아서 아이스크림 하나에 1달라씩 받고 그래서 비쌌어요.. 500원이면 사먹을거를 그때 당시 환율이 1200원이었던가 그랬는데..
@참티즈는말지않긔 물리적으로는 그냥 말뚝 하나인데, 사회적으로 체제적으로 구분지어놓은 경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삶을 살게 되지. 그 괴리감에서 오는 감상 아니겠니? 누가 시스템적으로 불가침 영역인 걸 모르겠니...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못 넘은 건 물리적으로 웅장한 알프스를 보면 체험적으로 이해가 가잖아. 근데 태평양도 건너는 시대에 땅에다가 말뚝 하나 박아 놓고, '이 선 넘으면 죽음' 땅땅땅 정해놓으니 고향도 잃고, 가족도 잃은 사람들이 생겨나는 게 얼마나 아이러니하니.
나도 금강산 갔다왔는데 기억나는거 딱 2개있음 거의 6-8살쯤에 엄마가 당시 금강산버스 안내원 이여서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갔던게 기억남 그때 닭꼬치 존나게 맛있어서 대량구매해서 먹은게 첫번째 기억이고 두번째는 우리 가족이 이제 집갈려고 아침에 버스를 탔는데 갑자기 수근수근거리더라 할머니한테 물어보니깐 사람이 죽었단다 라고했는데 그게 아마도 북한군이 관광객 총살시킨거 같음
2005년인가 2006년인가 초5때 학교 컵스카웃에서 갔는데 공항처럼 짐 검사 다 하고 인민복 입은 사람한테 입국심사받은 거 신박했음.. 버스타고 또 한참 들어가는데 철로위에 북한군인 일정간격 유지하고 쌍안경으로 우리 보다가 뭐 좀만 수상해보이거나 하면 빨간깃발 들어서 버스 세우고 따로 짐검사했음ㅋㅋ 컨테이너박스 수백개 놓인 곳에서 자고 (패밀리마트 편의점도 있었음) 다음날 금강산 가고 그 옆에 서커스장에서 서커스 본 거 기억남ㅋㅋ달러만 받음.. 우유사탕 코코아사탕(그냥 표지 이름 자체가 이거ㅋㅋㅋ) 사오고.. 금강산 올라갈 때 큰 바위에 김정일만세였나 암튼 빨간글씨 많이 써있고 구룡폭포 지나서 산정상에 올라갔는데 북한가이드가 초딩들한테 부모님 선물 사드리라고 뱀술 인삼술 초딩들한테 강매하기도 했음ㅋㅋ 공기와 산이 맑고 깨끗했지만 가장 신기하다고 느꼈던 건.. 높은 곳에서 주위를 둘러봤을 때 수백 수천개의 산봉우리의 끝이 없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음.. 가장 높은 곳에서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저 끝 지평선까지 모두 산뿐이었음
전 대우그룹이 부도난 것이 외환위기의 가장 큰 손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김우중 회장의 분식회계와 내수 외면은 명백한 과오지만, 김대중 정권이 범현대가의 한라건설(2013년 한라그룹의 로고 변경 이후, 지금은 한라입니다)의 선례대로 대우차도 화의를 받아줬다면 남북관계도 엄청나게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크라이나라는 악재가 있더라도........
내수외면이 아니라 국내 중소기업 살리기위해 해외에가서 외화벌이 해온겁니다 분식회계도 옵티머스 비리온상 이헌재가 수출금융 평소대로 풀어주면 문제없는건데 대우 워크아웃 넘기고 바로 수출금융 풀어주고 대우차 하게해줄테니까 나가라하고 운영도 못하게 하고.... 솔직히 현대판 이완용은 이헌재와 강봉균이고 사람들이 정치는 알아도 경제 금융은 모르니 대우부실이라고 하지.... 안타깝지만 그런나라다... 지금우리가 왜 잘사는지도 모르고...국민들이 노력해서 잘살았다는데 노력은 아프리카 커피농장 농부들도 한다....문제는 방향이다... 지도자 엘리트들의 방향과 안목...
저 당시 북한 당국에서 파견된 금강산 가이드(안내원)가실제 했던말 (수학여행 온 초딩들을 보며) "아휴~ 내 진짜 살다살다 이렇게 말 안듣고 통제가 안되는 학생들은 처음 봅네다" 이때 이후 나온 새로운 단어들 초딩, 초글링, 초딩방학, 잼민이, 급식충 이랬던 얘들이 이제 벌써 30대 초딩엄마아빠들이 되었네 ㅋㅋㅋㅋㅋㅋㅋ
9n년생인데 당시 걸스카웃트로 북한다녀왔어욬ㅋㅋㅋㅋㅋ금강산은 모르겠으나 산에 오르다가 비가 너무 와서 중간에 철수한건 기억나요 당시에 북한가는 버스에서 절대 그 사람 이름 장난으로라도 말하지말라구 말하던 가이드분 말도 기억나네요…추억…집에 아직도 기념품숍에서 산 액자있는데…ㅋㅋ
그다지. 설악산과 그리 큰 차이는 없는데 공산당이 훼손해서 한국이 더 나아요. 가는 곳마다 감시에다 김일성탑에 절해야하고 순 바가지에다 화장실도 돈내야하고 숙소도 텐트에서 자야하고. 캠핑왔다 생각하면 괜찮을테지만 어르신들은 힘듦. 일반 주민들도 집집마다 감시하고 관광지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민둥산과 민둥밭. 볼 만한 것은 바위와 금강송군락 정도.천하제일이라고 계속 선전하던데 계속 가꿔서 그런지 한국의 산이 더 나아보이더군요. 특히 설악산과 꽤 많이 비슷했어요. 금강산은 가볼 수 없고 조선시대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으로 꼽아서 그렇지 한국이 나아요.
박왕자씨 말고 전에 실수로 해변가에 통제구역 넘은 사례가 있었는데 북한군이 섯! 이라고 외치고 가만히 있으니 오토바이 타고 와서 신분 확인하고 그냥 보낸적 몇번 있었다고 합니다. 제 생각엔 박왕자씨가 북한군이 서라고 했는데 무서워서 도망가다가 피살 당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나도 초등학교때 스카우트인가 그걸로 배 타고 금강산 다녀왔는데 아직도 집에 그 허가증?이라고해야하나 여권이라고해야하나 엄마가 보관중이던데 ㅋㅋ 초딩저학년때라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어설프게 기억나는게 북한 대중목욕탕 이용햇던거랑 금강산에서 바람이 엄청 심하게 불어서 모자 날라갔던거
중학교 졸업여행으로 금강산 다녀왔던 90년생인데 정말 아름다웠던 기억이 남아있긴 한데요... 눈에 닿는 곳마다 빨간 글씨로 김일성 만세를 써놔서 맘편히 감상도 못했어욬ㅋㅋㅋㅋ 저기보라면서 손가락질같은것두 안되고 조심해야 될 게 많았죠 군인들도 계속 따라다니곸ㅋㅋ 그래도 통행증 발급받고 소지품검사하고 달러 환전하고 완전히 외국 가는것마냥 휴전선 건너왔는데 여전히 강원도고 똑같이 한국어를 쓰는 게... 어린 맘에 더 크게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ㅜㅜ
지금은 금강산 관광 재개되어도 아무도 안갈려 할거 같음. 일단 북한이 정상적이지 않은 국가인건 둘째치고 북한 입국기록 있으면 (외교관여권 제외) 미국 무비자(ESTA)를 평생 이용할수 없음. 이 제도는 2011년 3월 이후에 미국 적성국가(북한 이란 리비아 이라크 수단 시리아 소말리아 예멘 쿠바)에 입국한 기록 있으면 무비자를 평생 이용할수 없는 제도임. 금강산 관광은 1998년부터 2008년까지 했었기에 미국여행에 영향없음.
저때는 실향민들의 염원과 통일과 낭만으로 좋아보였던거지, 20년이 지난 현재는 그딴생각 가질필요없음. 부러워할필요도 없고. 해외에 더 좋은 경치 많이본 우리세대는 성에도 안참. 그리고 저쪽에 관심도 주면안됨. 생판 남의나라보다도 못한 존재들. 저 경치에 눈길 주다가는 돈만 뜯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