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인문학적 접근의 한계는 있지만[스스로의 경험] 인문학적이 관점에서는 별다섯을 드리고 싶네요! 육입과 윤회는 스스로의 수행을 통해 드러내어야하는 한계임 ㅡ논의는가능하나 논쟁은 어리석음 ㅡ 육입?이 수행을 통한 경험이라고? 이해가 아니고 보아야 하는 영역이지요! 여하튼 모처럼 만에 듣는 좋은 강의 였습니다 ㅡ감사합니다
2500년전 붓다의 위대한 가르침을 이렇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역시 양 극단에 빠지지 않고, 붓다와 그의 제자들이 2000년 넘게 가르쳐주신 것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중도의 길을 걷도록 늘 노력해야겠습니다! 좋은 강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
모든 게 변하는 데 나 혼자 영원존속하고 싶은 이 갈애를 버리고 절대적 나가 없음을 인정할 수 있는 성숙함을 기를 때까지 정진해야겠습니다. 그러한 무상함을 바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나에게 주어진 삶, 투기 된 나의 삶을 기투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시 한 번 원하는 방향대로 내던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금의 제 목표인 것 같습니다.
1,2편 모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사히 시청하였습니다. 형이상학적 물음들에 대한 서로 다른 극단적 견해를 하나를 취하게 만드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을.. 이 논리적 오류를.. 양자택일의 구조의 인간이 갇히게 되는 순간 진리를 간파할 수 없는 걸 간파하고 대답 대신 침묵한 붓다. 정말이지 " 깨달은 자 눈을 뜬 자 " 이러한 내용을 우리 사회의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어려운 내용을 최대한 쉽게 전해주는 우리 지혜의 빛 선생님 또한 " 깨달은 자 눈을 뜬 자 진리로 향해 가는 자 " 아닐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석가모니 붓다는 종교를 만들라고 한적도 없고 불교 창시자도 아닙니다. 붓다가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세상을 바르게 보는 우리가 말하는 철학적인 가르침이어요. 불교라는 종교는 붓다라는 성인을 숭배하는 자들이 만든 팬클럽이라고보면되요. 불교경전 대부분 그팬들이 초기 알려진 부처님 가르침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해설서및 소설이구요. 성경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ㅠ 부처님 가르침은 철학적 접근과 정신적인 수행이 이루어져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할수 있어요. 소원빌고 기도하는 행위는 우리 인간의 어리석고 나약함을 보여주는기복신앙일뿐 부처님이 타파하신 잘못된 신앙입니다.
@@Essihomeboy ㅉㅉㅉ 종교는 불교의 가르침을 말하는 거란다. 알고 말하자. 알지도 못하면서 입부터 터는 거 버릇된다는 걸 알아라. 첫째, '종(宗) 혹은 '교(敎)'라는 한자는 중국의 남북조 시대 말기부터 수·당대에 걸쳐 불교학자들이 경전의 내용을 명(名)·체(體)·종(宗)·용(用)·교(敎)의 5개로 분류하여 요약할 때 사용한 말로써 후에는 '종'과 '교'를 합쳐서 '종교'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고 불교를 대표하는 불교의 교(敎)의 사상을 요약하여 설하는 교리가 즉 '종교(宗敎)'였다는 설명이 있다. 둘째, 중국의 천태산 지자(天台山智者) 큰스님이 법화경(法華經)을 해석하면서는 그의 저서 에서 종(宗)과 교(敎)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면서 교리의 교상판석(敎相判釋)에서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부처님의 으뜸가는 말씀으로 결론 내리면서을 종교라고 하였다. 셋째, 중국에서 선불교가 가장 왕성하게 꽃피운 당(唐 618년 - 907년)나라 때에 형성된 불교선종(佛敎禪宗)인 오가종파(임제종,법안종,조동종,위앙종,운문종)에서 종파의 핵심적인 가르침으로 [宗의 가르침=敎][宗敎]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선불교(禪佛敎)에서는 자기의 깨달음의 세계를 어떤 종(宗)이라고 하거나 ,어떤 종지(宗旨=높은 뜻), 종풍(宗風=각 종파의 가풍)이라는 말로 많이 쓰였으며 선사(禪師)를 종사(宗師)라고 불렀으며 스승의 맥을 이었을 경우, 종맥(宗脈), 그 가르침[宗의 敎]을 따르는 무리를 종도(宗徒)라고 불렀는데 지금까지도 불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이다. 대표적으로 조사선을 완성시킨 마조도일[709~788] 이후 조사선의 선승들이 붓다의 정신을 깨닫고 각자가 자각적인 자기의 종교를 개성 있게 펼치면서 새롭게 완성된 선불교를 대변한 용어이다. 규봉종밀(圭峰宗密:780∼841)이 도서(都序)에서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宗 ⇒ 勝義 ⇒말할 수 없는 것 ⇒ 離言⇒ 智慧 ⇒ 언어를 떠난 수승한 진리 당체 곧 지혜 敎 ⇒ 言說 ⇒말할 수 있는 것 ⇒ 依言⇒ 慈悲 ⇒ 언어에 의한 가르침을 뜻한다. 眞理 ⇔ 言語 즉 종(宗)은 부처님의 교설 가운데 어떤 특정된 교설을 지목해서 말할 때 쓰였고, 교(敎)는 교의(敎義)의 대소권실(大小權實)을 밝히는 의미로 쓰여 졌다. 넷째, 19세기 말 일본 메이지 시대(明治時代)에 서양의 ‘religion’을 번역하면서 종교(宗敎)의 번역어로 쓰이게 되면서 일반화된 것이다. ‘religion’의 어원은 라틴어의 ‘religio’로서,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외경의 감정과 그것을 표현하는 의례 등의 행위를 의미한다. 고대 유럽에서는 기독교권의 성립과 함께 교의(敎義)와 의례의 체계를 갖춘 신앙집단을 가리키는 개념이 되었고, 중세에는 비세속적인 수도원 생활까지도 이 개념으로 불렸다. 그러다 보니 릴리전을 종교의 대칭어로 사용한 것이다. 다섯째,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의 명치 2년(1869년) 일본이 독일의 북부 연방과 수호통상 조약을 체결하고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릴리젼(religion)이란 말의 역어(譯語 )로 선불교의 종교(宗敎)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불교(佛敎)라는 의미보다 릴리젼(religion)이란 말의 의미로 일반화 되어 훌륭한 성인들이 교시한 가르침은 모두 종교(宗敎=religion)라는 말로 묶어서 유교, 도교, 불교, 기독교, 등 다른 유사한 모임 등에서도 확대 적용해서 현재까지 종교의 개념으로 쓰고 있다.
@@자연스럽게-p8o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ㆍ 그 자리를 무분별지를 성취하면 아무런 분별이 없는 상태의 지속입니다 다만 색ㆍ수ㆍ상ㆍ행ㆍ식 즉 오온은 작용하나 1초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지요 금강경사구게의 응당 머문바 없이 마음을 내라 가 여기에 도달하기위한 지극한 사유이고 그것을 일상속에서 실천수행하는것이 사념처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저 아라한 성자는 위빠사나수행 19년되었고 7년만에 무분별지에 도달했기때문에 어떠한 괴로움ㆍ고통ㆍ 슬픔ㆍ비탄 등의 오감의 감정이 0.1의 데미지 즉 작용만하는 마음과 인식밖에 없기때문에 모든 불만족과 괴로움을 종식시켰지요 질문있거나 의문사항 있으면 답글 달아주세요
부처의 위대함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편견없이 보려고 노력한 점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관찰하고 그것이 어떠한 원인으로 발생한 것인지를 살피는 것이 부처의 가르침이며 따라서 결정된 깨달음이란 없는 것이기에 살아있는 동안 정진하라고 말하였던거죠. 가르침은 붓다의 경험일뿐 결국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쇼펜하우어 선생님의 의지와 표상의 세계가 떠오릅니다. 연기에 의해 축적된 의지_자아가 인식하지 못하는_가 매번 감각의 세계, 즉 표상을 대할 때 충족하지 못함으로 인한 욕망이 반복되어 괴로울 때마다 무아의 개념이 과연 개체의 소멸 선택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의지의 인식 여부와 별개로 표상의 세계는 개체가 스스로 소멸을 택하는 단서가 될 수 있고, 무아의 경지 또한 결국 표상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개체일텐데요?
저 아라한은 사념처위빠사나수행19년 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믿지는 않으시겠지만 아트만과 대응 되는 개념의 신 브라흐만 신과 하루에 10시간 이상 대화하고 있습니다 안 아트만은 내가 없다 맞습니다 변하고 실체가 없어서 내가 없다가 넓리 알려진 사유이지만 인간과 동물은 범아일여 사상에 입각하여 범 즉 범천 범천 즉 브라흐만 신 과 다르지 않다가 범아일여사상의 핵심인데 ㆍㆍㆍ 실로 브라흐만 신과 개인의 본체인 아트만은 몸과마음이 교집합을 이루고 있기때문에 온전히 나라고 할수가 없어서 제법무아 입니다 좀더 자세한내용이나 질문있으면 답글달아주세요
@@user-vq8zl6583 네 ㆍ 브라흐만 신의 형상은 없고 음성만이 귓속과 마음으로 또렷이 전해집니다 현재 저 아라한은 하루에15시간 이상씩 브라흐만 신 즉 초기불교에서 얘기하는 대범천왕과 귓 속음성과 마음속 음성으로 대화를 하고 있지요 저와같이 신과 대화를 했던 존재가 바로 석가모니부처입니다 그 증거는 초기불교경전 아함경에 신은 마음으로 알고 마음으로 느껴지며 마음으로 파악되어 지는것이라고 분명히 석가모니부처가 밝혀놓았지요 눈에 안보인다고 해서 없다생각하시면 안돼죠 신은 분명히 존재하고 신은 전지전능할정도로 그 위력이 대단하나 말로 설명하기가 곤란할정도로 불분명하게 세상사를 지배하고 운용하지요
이런 영상을보면 유튜브가 붓다가 깨달은 가르침을 직통으로 전달하는 좋은 통로가 되는것 같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종교라는 허물로 접근하면 붓다가 거부한 브라만교, 자이나교,아비달마교등 붓다의 가르침을 엇나가는 방향으로 빠져버리죠. 붓다의 가면을쓴 브라만교가 불교가 되는 웃긴 상황입니다.
한자문화권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불교를 필할 수 없는데요. 깊지는 않지만, 선불교 중심으로 기본적인 공부는 했었는데, 최근에 지혜의 빛님 영상을 보고 초기불교의 핵심사상을 공부하고 싶어서 도서관에 가서 알렉산더 윙 지음, 박대용 역의 불교명상의 기원이란 책을 빌려서 읽고 있는데, 역사 서문 내용을 보면서 불교의 정체성에 더 의문이 들어서 역자 서문 일부 내용을 밑에 소개합니다. 참고하시고, 찐 불교가 무엇인지 비교 검토해서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저자 알렉산더 윙은 옥스퍼드에서 불교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불교학자더군요) “불교학의 가장 큰 문제는 붓다가 진실로 무엇을 가르쳤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에 있다. 그의 가르침을 담고 있을(빠알리어, 산스끄리뜨어, 티벳어, 한역 등의) 초기 원전의 부재 때문만은 아니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초기 텍스트에는 교리적 차이가 상당수 내포되어 있어, 붓다의 진짜 가르침이라고 추정되는 정형구조차도 사실은 확실치 않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그동안 일반인들도 쉽게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아함이나 니까야를 혼자서 탐독할 수 있는 훌륭한 번역서도 시중에 많이 나왔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이런 초기불교의 원전 자료는 불멸 후 긴 세월 동안 가감첨삭 된 온갖 부파의 산물임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것을 붓다의 원음이라고 믿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
불교의 핵심을 잘 정리해 주신 듯 합니다~^^ 나 또한 연기한 것이므로 무아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쉬울 듯 합니다. 불교 경전에서는 '나'는 '색수상행식' 다섯 가지가 연기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설명합니다만, 이것은 이론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다른 이론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핵심은 불변하는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연기하여 나타난 것이므로 공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의도를 알기!!! 이번 영상 내용 만족🙂 단멸 상주 중도 불교 그 어떤 견해 의식 사고 수행법 느낌…등에 연연하거나 집착하며 폭력 지배 차별 등 자비없는 불선함을 조장하는 것을 보살이실 때에도 고뇌하심. 모든 존재들이 변화하며 서로 인연조건하니 극단에 치우치지 않게 중도로서 자비할 수 있는 길을 여신 분이라 봄! 고정되어 있는 나는 없다는 것! 비아! 고정되어 있는 존재 상태를 찾고 집착 갈애하면 당연히 고통고뇌! 그 당시의 윤회에 대한 접근도 자비 선함을 기준으로 획기적 해석을 하신 부처님! 업의 작용력은 무시하지 말고 신구의를 의지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적극적 접근하신 걸로 봄! …
알 수 없음이라고 하면 안될까? 그것을 구지 무기라고 애매모호하게 표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알 수 없음을 인정하면 자신의 깨달음도 알 수 없음이 되니....좀 곤란하긴 하네... 상주론이든 단멸론이든 무엇인가 정답이라면.... 양극에 치우친다고 그 정답을 배제하자는 논리는 좀 아닌 것 같은데...
강의 감사합니다. 제행무상, 제법무아이니 윤회라는 법도 그 실체가 없고 집착할 것은 아닌 것일 겁니다. 하지만 윤회가 없다면 깨달음이라는 것이 과연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소위 말하는 '인생 뭐 별거 있나?'로 되는 것 아닐까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더 이상 태어나지 않기 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이 시리즈 너무 감사합니다. 불교에 관심이 많은데 접근하기 쉽지 않으며 가지고 있는 조약한 배경지식으로 스님들 이야기를 귓동냥하면 스님들마다 생각이 조금씩 다른 듯 보여 어디에 질문할 곳도 없어 혼자 생각하기 어렵곤 했는데 이렇게 직관적으로 보기 쉽고 본질적으로 해석해 주시는 것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듣고 있습니다. 최근에 윤회가 있다 없다라는 것 때문에 불교계가 살짝 시끄러워진 적이 있어서 저도 조금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보다 더 도움이 많이 되는 영상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