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프로그램 옛날kbs에서 만든거 심심할때 보는편인데 그 때 장영실 행적을 따라간거 생각나네.. 그 프로그램에 따르면 세종대왕이 즉위했을 당시 명나라가 존재했는데 중국은 옛날부터.. 중화사상때문에 중국이 중심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달력을 조선이 못만들게 하고 만들어서 준거고 하늘(천문)에 관한것은 황제만이 볼 수 있었다고 함.. 그래서 이번에 나온 장영실 영화에서 우리 입장에서는 고작 달력때문에 머그리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명이 조선을 공격할거라고 생각하고 사대부들이 화를 면하기 위해 몰래 밀서를 써서 보낸 장면이 나온듯 실제로 명나라에 천문 관련해서 일하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철저하게 감시 되었고.. 그곳에 있는 사람은 외출도 함부로 못하고 다른 곳에 가서 일못한다고 함 그만큼 철통보안이고 목숨까지 걸어야 해서 명이 허락해주었을리가 없었음 여기서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게 그때당시 배같은 수단을 타더라도 엄청 오래걸려서 까먹었을텐데 그걸 기억한게 대단하다고 하는데 장영실이 머리 좋은것도 있었겠지만 그때당시 명나라가 교역이 활발하던 시기라 유럽, 중동권에 있는 자동기계 같은걸 기록한 책들이 많이 모인 곳이 있었다고 하는데 장영실도 그곳에 있는 책을 구해서 혼자 독학 했을거란 말이 있더라 그래서 축우기 만드는 것부터 엄청 오래 걸렸을텐데 영화같은데서는 엄청 빨리 만들어서 아쉬었던 기억이 나네요..
업적으로는 솔직히 장영실하고 콜롬버스 비교불가지 스페인이 아메리카에서 얻은 이득을 해시계나 물시계 정도로는 ㅋㅋ 장영실 업적을 비방하는게 아니라 아메리가의 발견은 말그대로 유럽 백인에게 인류의 주도권을 준것이나 다름없음 그때의 유럽인들이 막대한 부는 결국 산업혁명으로이어지고 그축복의땅은 현재의 그땡에 미국을 만듬 솔직히 넘 부럽
세종이 장영실을 면천하고 등용한 게 세종5년이고 가마사건이 세종24년이니 거의 20년을 같이 일한 셈이죠. 세종실록 보면 이때 세종은 처음엔 장영실의 형을 감형해주려고 하는데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곤장80대형에 처하게 한걸로 나옵니다. 세종의 성품으로 미뤄봤을때 가마 부쉈다고 장영실을 '팽'했다기 보다는 하필 임금의 옥체와 관련된 죄라서 더 봐주지 못하고 벌을 내렸는데 마침 장영실이 노쇠하기도 해서(당시 60대 추정) 건강상 문제로 복직하지 못한걸로 역사학계는 추정하더라고요.
@@hanjokang4811 1. 세종실록에는 장영실에게 곤장80대를 치고 벼슬에서 물러나게 했다고만 나오지 죽였다는 말은 없습니다. 2. 세종의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의 이면에는 (1) 장영실에 대한 사대부들의 질시와 시샘이 커서 어쩔 수 없었다, (2) 명나라와의 외교적 문제에서 장영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3) 세종이 노쇠하고 판단력이 흐려져 내린 결정이다 등등의 설이 있는 걸로 알고, "이용가치가 없어져 죽였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3. 정황상으로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장영실이 모반의 위험이 있는 군관계자도 아닌데 이용가치가 없다고 죽일 이유는 없지요. 세종의 성품과 장영실과의 관계를 생각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제가 놓친 게 있나 싶어 책이랑 논문을 좀 뒤져보았는데 찾지 못했습니다. 우리역사와 관련해서 잘못된 정보가 퍼질 수도 있으니 '학계의 정설'과 같은 말씀은 신중하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칠정산이 달력이라고 누가 그럽니까? 아울러 장영실은 과학자라기 보다 기술자의 개념이 더 맞습니다.설민석 강사는 조선왕조실록 읽어 보았겠지만 장대근 님께선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저와 대화가 안됩니다.아울러 설민석 강사님의 느역일수도 있지만 너무 주관적으로 자료를 발체 인용 합니다.하지만 처음의 저의 댓글에 여러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렸다면 사과 드립니다.아쉬운것은 사실을 이야기하고 그시대의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데 그것을 저런식으로 강의를 하면 지금시대의 잣대와 기준으로 판단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