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공교육에서는 왜 이런 교사들이 없는지 의문이오.역사학자들의 해석과 논의를 거친 합리적 판단 및 정설들을 우리 학생들이 더 쉽게 접하는 기회가 많았으면 합니다. 저도 훈요10조의 그 내용을 후백제의 견훤에 대한 반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새롭게 깨닫습니다. 황현필 선생님께서 쓰신 책을 좀 사봐야겠습니다.배울게 아주 많은 분이신 것은 알고 있었는데 한 방송에서 대담을 하시는 것을 보고 굉장히 높은 수준에 있으신 분이구나싶어 그 영상을 몇 번이나 봤었는데 정말 이런 분이 선생님이시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user-ob8kw9rj2s 전라도는 고려 현종 1018년에 도체제(현종때 거란에게 영토를 많이 빼았긴 걸로 추정됨)로 바뀌면서 불리기시작됐습니다. 그이전에는 절도사시절이죠. 당나라가 10개절도사, 고려가 12개절도사(고려강역의 크기를 알수 있슴)가 있었습니다. 고려시대때 나주는 지금 대륙의 상해를 나주라 했고, 전주는 절강성 어디쯤으로 추정되는데 아직까지 재야사학자들도 파악을 못하죠.한반도의 전라도는 세종이 지리지를 편찬할때 대륙의 지명을 이식한 것이고. 유튜버[책보고]가 밝힌 대륙의 전주/나주의 위치와 다소 다릅니다.이씨 조선 500년을 먹여살린 곳이 한반도 전라도입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시죠. ㅋㅋ
@@user-xh6mv1yp1w 음 제생각은 좀 다르다 입니다. 머 그때 사람이 아니니 차별이나 지역감정이 있을수 있었겠으나 ( 증오 또는 원한 등) 좀더 따져봐야할것들이 많을거라 봅니다. 먼저 그떄당시는 미디어나 매체 같은것은 잘해야 방 이나 포고 하는 방식 밖에는 없을겁니다. 티비나 라디오.인터넷등 매체가 없기에.. 그로인해 대중적으로 지역감정이나 차별등이 발생하는 요소가 적습니다. 또한, 신분제와 외세 침략이 잦았기 때문에 지역이나 이런거를 제외하고 국가존립자체를 놓고 봐야될겁니다. 왜구 / 중국 쪽에서 틈만나면 처들어왔는데 지역차별할 시간이 있었겠습니까.. 한마음으로 뭉쳐서 싸워야 할판에.. 그리고 신분제가 있어서 양놈 상놈 백정 노비등이 존재했는데 전라도든 경상도든 강원도든.. 지역이 머가 상관있습니까.. 지역이 어디든 상놈은 상놈이고 양반은 양반이지.. 사람이 사는대는 똑같다는 말씀에는 지극히 공감하는 것이지만.. 그때는 신분제가 떡하니 존재했었다는 겁니다. ( 현대에는 돈이 곧 신분제이지만..) 신분의 귀천은 뒤엎을수가 없을정도였으니.. 상놈이 양반 어디건드리기만 해도 치도곤 또는 죽습니다. 위 태백광노님 영상처럼 현대에 들어와서야 정치권이 국민들 선동하고 일명 텃밭가꾸어 표심을 일정량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분열 시킨겁니다. 그중의 일정부준을 기여한곳이 일베 라고 불리우는 극단적인 분열세력이고요.. 지금은 머 남녀로 갈라치기 하는 것들도 있고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많은 독립투사들이 마지막까지 항쟁하시다 돌아가신 지역이 전라도 쪽입니다. 이것은 이전의 광노님 영상보셨으면 아실겁니다. ( 땅도 ㅈ 만한 나라에서 지역감정과 차별을 중용하는 놈들은 매국노와 다름이 없다 라는것이 제 생각입니다. )
진짜 우리역사는, 책보고 입니다~ 내용과 지명, 위치가 교차 검증 되어야, 진짜 교육이죠. 언제까지 이병도, 신석호 등 나라 팔아먹는데 앞장선 친일파가 꾸며준, 소설 역사를 나부대며 국민들을 속일건지~ 낙타가 많았던 고려. 오리가 많았던 고구려. 물소가 많았던 신라. 한반도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광개토태왕이 왜 광개토가 이름 붙여진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전라도를 호남이라 하죠. 그럼 호북은요? 지금 한국에선 호북지역이라 하나요?????? 그런데, 중공에서 호남과 호북이 다 있죠~ 백제가 망하고 신라와, 말갈이 그 땅을 나누어 가졌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나오죠. 말갈이 어디에 있길래, 백제의 땅을 나누어 가집니까??? 백제의 의자왕 아들, 부여 융이 "인덕 2년" 신라 왕과 웅진성에서 만나 흰말을 잡아 맹세하였다. 년간에 융을 으로 삼아 귀국하게 하여 남은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곧이어 도호부를 으로 옮겨 통할하게 하였다. 그때 [신라]가 강성해지니 융이 감히 고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고구려] 에 가서 의탁하고 있다가 사망하였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입니다. 책 읽어보심 삼척동자도 알게 되는, 우리 조상의 진ㅊ자 역사. 여기서, 융이 사망하고 무덤과 비석이 있는곳은?? 인터넷 찾아보세요. 중공의 낙양. 이라고 나오니~ 진짜 한국사는 #책보고. 인정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삼국사기, 고려사, 만주원류고(청나라 역사서) 이정도만 읽어보셔도 우리역사, 황강사가 알려주는 내용이 틀리단걸 바로 눈치 채게 됩니다. 뮈하러 틀린걸 자꾸 알려주는데 듣고 있어요.... 자칭 자부심 가득한 역사 강사가 왜, 조선 이후만 제대로 가르치고 고려까진 엉터리인지...
지역감정이 아니에요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항상 신라 즉 경상도가 타지역을 모함하고 이간질 시켜온겁니다 역사에서도 현재도 미래도 그럴걸요 안바뀝니다 저 혈통은 원균 이완용등 매국노는 90%이상이 저 지역임 현대사회에서도 이명박 완전 나라를 거덜냈죠 그럼에도 경상도는2찍입니다. 안바껴요 현실에서도 보세요 경상도 사람 2이상만 모이면 야합해서 남 모함하고 마녀사냥해서 매장시키고 이득을 봅니다 근본습성이 그래요 저지역은
태백광노님 영상에서 많은 지식을 배움에 감사드립니다. 몇일전 모 유투브 댓글에서 지역감정과 차별글에 댓글 적었다가 특정좌표가 찍혔는지 몇백에 달하는 댓글을 받았었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관점에 쓰여진 것이지만 전라도 지역을 배신의역사라고 칭하며 비하하길래. 그것은 군사독재 시절에 정치권이 텃밭만들기 위한 정치공작이었고, 오히려 배척당한건 전라도이지 경상도가 아니였고, 독립투사분들이 마지막 까지 끝까지 항쟁하여 가장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지역이 전라도 였다. 라는 댓글을 적었다가 못매를 맞았지요. ( 그떄당시 금은 등의 화폐대용 물물교환이 있었으나 대부분은 그냥 쌀이었고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전라도쪽은 한 인물이 나올경우 호족들이 밀어줄수 있기때문에. 정치적으로 배척당했을 것이다. 이말에도 머 일제시대 개간해서 전라도지역이 미곡생산이 늘어난거지 그전에는 경상도보다 못했다 라는 식으로 말을 하더군요. 난중일기, 징비록 등에서도 호남은 조선의 젖줄임에 점령당하면 아니되니 꼭 방비해야된다 적혀있었것만... ) 현대에 이르러 지역,스포츠,남녀 등의 갈라치기로 나와 반대되는것은 적 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적당량의 표만 받으면 정치생명이 연장되는것을 노리는건데. 맞는말 적었다가 못매를 맞으니 답답함이..이루어 말할수가 없습니다. 이후에 광노님이 지역감정과 차별에 대한 영상을 특별편으로 편성해 주심을 부탁드립니다. (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땅도 ㅈ 만한 나라에서 지역감정과 차별을 주도하는 놈들은 매국노와 다름이 없다 라고 생각합니다.)
왜 댓글 많이 달린지 알겠는데요 지역감정은 김대중과 박정희의 'divide and rule' 이른바 갈라치기를 통해 시작된거지 어느 누구만 한게 아닙니다.😂😂 3.1 운동 시위 건수(2019 자료)도 서울 415, 평안 276, 경상 273, 충청 225, 황해 180, 함경 144, 전라 89, 강원 81순 입니다. 독립운동유공자별 데이터(건국 후- 22년까지 통계) 경상 혼자 20%를 넘는 21.96% 다음으로 전라 14.15%, 평안 13.21% 등 순이네요. 독립운동가, 친일파 수는 보훈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단, 지금 호남지방의 곡창지대라는 인식이 시대를 거스를수록 떨어지는건 맞으나 말씀하신대로 곡창지대였고 조선에 와서는 전라도의 작출량이 경상도의 두배 가까이 되는데 이 부분은 그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나봐요😰😰
저는 조금단순하게 생각해봅니다 왕건이 자신이죽은후 외척들의 세력이 커지는것을 경계한것은아닐까요 혜종이왕이되고나면 결국 외가인 전라나주지역출신호족이나 외척들이 세력이 커질게뻔하기때문에 이를 경계하기위해 그런 유언을 남겼을지도모르죠 그래서 고명대신으로 외척들인 나주출신들이나 왕족인 왕식렴을배제하고 왕규나 박술희을 선택했을지도
@@user-xh6mv1yp1w 신라는 왕족끼리 결혼했기 때문에 외척의 발호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고 이때는 고려가 생긴지 불과 몇 년 되지도 않았던 시점입니다. 조선시대 들어서도 특정 가문이 중전 간택을 독차지 하면서 외척의 발호라는 게 생기죠. 주로 민씨와 윤씨였습니다. 즉, 역사에 대해 조또 모르면서 아무 소리나 마구 지껄이면 이런 무식한 소리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경상도의습성이죠 일본이 역사외곡하는것과 똑같이 대한민국은 경상도인들이 역사외곡을 하죠 거의모든 매국노는 경상도 출신임에도 역사세탁을해서 경상도사람이 정의롭고 전라도사람은 깡패 사기꾼으로 이미지세탁을 해논거죠 실제로 역사에서도 전라도사람이 충신 맹장이많았고 일본도 전라도사람의 품성은 존중합니다. 경상도사람은 언제든 자신의개가되는 사람으로 여기죠 진실 정의 그딴거 없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옛날부터 경상도사람에 힘을 실어줘서 전라도 사람을 치게 조장을했죠 일본입장에선 최고의카드 이이제의인것이죠 역사에서부터 그렇게 경상도사람은 배신과 매국노질 외세를 끌여들여 부와권력을 얻는 짓꺼리를 해온게 그들입니다. 지금도 보세요 거짓말을 만들어 사람 마녀사냥하고 뒤에선 오갖더러운짓하며 해처먹기만하는게 누군지 바로 경상도세력이에요 지금도 한류의열풍이 김대중이 문화를 개방하고 지원하고 투자해온것들이 열매를 맺고있는건데 외국인들 상대로 대놓고 경상도와 사투리 경상도 습성을 한국이라 소개하며 한류열풍이 경상도인들의 업적인양 세탁하고있죠 그들의 피는 절대안바뀝니다.
@@jy1716 아닙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이병ㅊ은 친일파 그 자체입니다. 매국질도 많이 했을겁니다. 돈이 많다고 존경하면 바보 됩니다. 이병ㅊ이가 박정희와 일본 극우세력 사이에서 쿠데타 전에 무슨 역할을 했을까요? 왜 박정희 쿠데타 이후에 호남의 자산가들은 모조리 몰락하고 그 자산들을 흡수한 경상도 진주와 그 인근 사람들만 재벌로 성장했을까요? 공산당 전력으로 절대로 군에서도 승진이 어렵던 박정희는 무슨 방법으로 쿠데타 동지들을 규합했을까요? 바로 일본 극우의 자금 지원으로 군부에서 인맥을 만들어서 공산당 전력으로 부터 벗어나고 세력을 모은겁니다. 박정희 장인은 악랄한 친일파로 엄청난 부자였지만 쿠데타 직전까지 박정희 개무시 했습니다.
역사왜곡아님니다 현실입니다 현제 같이 생활해 보면 왜 전라도 사람을 기피하ㅡ는지 알수있습니다. 제일가장 빨리 친해짐,제일가장 눈치빠름 ,말빨이셈...시간이지나면 사기,통수 제일 심하게 잘침, 언제나 돈빌림 ,,,현실입니다 지역감정 아님니다 역사왜곡아님니다 평균 수치이지 전부라 말안함니다 대부분 그러타 이검니다 종특이죠
동학운동과 호남지역 의병학살을 위한 남한대토벌 작전등을 거치면서 일본입장에선 식민지배에 항상 골칫거리라 생각하던 지역이 호남이었으니 손안대고 코푸는 영국식 식민지배(갈라치기를 통한 내부분열)를 벤치마킹한건데 실제 19세기후반 일본과 영국은 영일동맹으로 굉장히 가까운 사이였음 일제시대 일본군 장교를 거치면서 그걸 몸으로 터득한 박정희가 정권유지를 위해 제대로 써먹은게 지역차별이죠 박정희의 지역차별과 전두환의 3s정책은 다 일본서 가져온겁니다
감사합니다~~황현필님 한국사 왜곡 바로잡기...제가 정말로 원하던것 입니다....경상도에 살다 중학교 졸업하고 듣고 보고 했었던것들이 나이 48에 알았습니다 얼마나 왜곡된 역사를 알고 있었는지...내 머리속 잘못된 역사 기억을 지우는데..한참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55년된 사람이지만 내 머리속 리셋을 하는중 입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오랬동안 해 주셨어면 합니다 한국 역사 왜곡 바로 잡기
왕건 둘째 부인이 나주출신 오씨, 왕건의 궁예밑에서 최대업적도 나주 포함 전라도 해안가 장악으로 견훤에게 양면전선을 강요했다는 점, 고려 2대 왕인 혜종은 왕건과 나주출신 오씨 사이의 적자이자 장남으로 타 지역 호족들의 반대가 적지 않았으나 왕건이 무시하고 왕위를 물려줌 심지어 혜종은 현재의 목포인 당시 나주 사저에서 출생함 왕건이 마음에둔 후계자가 태생부터 전라도였는데 전라도를 탄압하라는 유훈을 남긴다? 말도 안되는 헛소리지
오래 전 한 역사가가 훈요 10조는 경주 사람 최모라는 사람이 왕건 사후 많은 시일이 지나서 왕건이 남긴 것이라며 내세웠는데 이 훈요10조는백세 사람 박술희가 받있다는데 이에 의하면 백제사람을 차별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은 말이 안되고 국가가 보유하고 있어야 할 자료를 경주 사람이 보관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의심스럽다고 하면서 훈요 10조의 존재가 의심스럽다는말을 하신 적이 있었죠.
지금 유튜브에서 태조왕건 24시간 스트리밍으로 돌려주고 있는데 태조왕건에서도 혜종 어머니가 나주오씨(염정아 분)라고 나와요.ㅋㅋ 나주오씨 아버지가 당시 나주의 대부호였던 상인 오다린이고..그런 걸 다 떠나서 자신을 왕건이라 가정해봐도 그 유명한 공산전투에서 곡성 출신 신숭겸이 대신 죽지 않았다면 왕건이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죽었을텐데 자기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의 고향 지역 사람들을 차별하라고 훈요십조에 남겼다??일베충들은 왜 생각이라는 걸 할 줄 모르는 걸까요 ㅎㅎ그때 신숭겸과 김락이 왕건 대신 죽지 않았다면 100% 견훤이 후삼국을 통일했을 것임.후백제의 전체적인 군사력도 고려와 비등할 만큼 만만치 않았었고
혹시 어쩌면 왕건은 본인이죽은후 외척들의 세력이 커지는것을 경계한것은아닐까요 다음왕인 혜종외가가 전라도 나주이기때문에 외척이나 그지역호족들의 세력이 커지는것을 경계하라는 뜻일지도모르죠 그리고 궁금한게 훈요10조라는것이 왕건이 다음왕이될 큰아들 혜종에게만 내린 유언인지 아니면 고려왕조의 모든후손왕들에게 내린 유언이지가 궁금하군요
호남 지역은 비옥한 평야가 많아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정착한 이래 곡창 지대였고 이 사실은 산업화 시절을 지나 지금까지도 변함 없다. 임진왜란 때도 이순신 장군께서 끝까지 지켜낸 곳이 전라도였고 화폐가 통용되지 않던 시절 곡식 자체가 화폐였으니 농업국 조선의 경제와 산업 기반 시설을 지켜 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럼으로서 경제가 순환하고 국민들이 생존할 수 있었으며 그 곡식으로 무기도 만들어 일본군과 싸울 수 있었으니 말이다. 신라나 고려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텐데 왕건이 이런 경제, 산업 기반인 노른자위 지역을 포기하고 그 지역 사람들을 등용치 말라고 유언을 남겼다? 납득이 되는가? 호남 지역의 음식이 푸짐하고 종류가 많다는 것도 그런 풍요로움과 럭셔리함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이러한 호남 = 럭셔리의 등식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 박정희 정권부터였다.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전환하기 위해 대구, 구미, 부산, 마산, 울산, 창원 등 지역에 집중적으로 공단을 조성했는데 모두 경부고속도로 주변의 도시였다. 그 당시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소득은 농가 소득의 3배가 넘었으니 첫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공장 다니는 시골 처녀 하나가 부모님 모시며 집도 마련하고 동생들 학교 보내고 결혼까지 시키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이들이 다니던 공장은 고향에서 멀지 않은 지역에 있어서 출퇴근 하거나 공장 기숙사에 살다가 집에 일이 생기면 1~3시간 이내에 복귀가 가능한 거리에 있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생각 이상으로 대단히 크다. 이들은 서울로 상경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전라도는 상황이 달랐다. 공업화를 위한 투자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으니 기존에 해오던 농사만 지어야 했는데 새로운 농법이 발전되지 못해 단순 재생산이 반복 되었다. 뿐만 아니라 농지의 유상몰수 유상분배 이슈와 소작 쟁의까지 겹쳐 농지를 잃은 절대 다수의 농민들은 빈곤에 시달리다가 고향을 등지고 무작정 상경해야했다. 경상도 사람들은 고향 인근의 공단에서 상대적으로 고소득을 올리며 살았기 때문에 서울로 상경하는 경우란 서울에 더 좋은 일자리가 있거나 명문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 등 2가지 뿐이었다. 때문에 두 지역 사람들을 보는 서울 사람들의 시선은 편향적일 수 밖에 없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은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럭셔리한 사람들이거나 명문 대학을 다니는 스마트한 청년들이고 호남 사투리를 쓰는 이들은 변변한 직장도 없이 무작정 상경해서 목욕탕 때밀이, 지게꾼, 노가다 일당 잡부 등 사회의 하층민들의 다수를 구성하며 품을 팔아 연명하고 그런만큼 푼돈에도 악착같고 따라서 가까이 하기 꺼려지는 사람들. 곡창 지대에 살면서 천년 이상 선망의 대상이었던 럭셔리한 호남 사람들이 불과 공업화 수십년만에 가장 빈곤하고 가까이 하고싶지 않은 비루한 사람들 취급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고착화된 것은 불과 수십년이며 호남 사람과 영남 사람을 굳이 비교하려면 호남에 사는 호남 사람과 영남에 사는 영남 사람을 비교해야지 서울에 사는 출세한 경상도 사람과 하층민으로 살고 있는 전라도 사람을 비교하며 호남 사람들은 인성부터 원래가 저렇다는 식으로 비하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사업을 위해 혹은 어딘가에 물건을 납품하기 위해 아니면 은행에 돈을 대출받기 위해 찾아 다닐 때 사회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경상도 사람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경상도출신자들은 자랑스럽게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심지어 서울 사람도 경상도 말투를 흉내를 내는.. 반면 호남 사람들은 자신의 사투리를 숨겨야 하는 현상. 그리고 경상도도 전라도도 아닌 타지 사람들마저 전라도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며 동조해서 따돌리는 현상. 이런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런 사회의 구성원들을 제대로된 사람들이라도 볼 수 있을까? 일종의 사회적인 병리 현상 혹은 광기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런 경제적 토대 위에 특정 지역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위해 같은 고향 사람들만 출세시키고 특정 지역 사람들을 배제시켜 비난하고 조롱하며 별 이해 관계 없는 이들조차 이에 부화뇌동하는 사회. 지금은 호남 사람들도 경제적 혹은 정치적 지위의 상승으로 과거만큼 차별을 받지는 않고 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선입견이라는 차별이 존재하고 있으며 호남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옅어져 가더라도 사회 구성원들의 비이성은 탈북민이라는 새로운 희생양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 싶다. 모든 사회에는 항상 특정 집단을 비웃고 조롱하고 왕따시킴으로서 동질감과 안도감을 누리고 싶어하고 그러기 위해 희생시킬 대상 (scape goat) 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황선생님 고생 많으십니다. 피가 꺼꾸로 솟으시겠지만 최근 강제징용 배상을 국내 기업에게 대리 배상하도록 협의하는 상황을 얼마나 큰 무책임한 역사적 사건인지 적어도 이 방송을 보는 학생들과 역사에 관심과 책임 있는 시청자들 만이라도 옳바른 생각과 사상을 갖을 수 있도록 다루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강의 고맙게 잘 보고 있습니다. 현재 강화도 고려궁지 위치가 역사왜곡의 하나입니다.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하였을 때 개경의 규모로 궁궐을 만들었는데 일본의 이마니시 류와 이병도박사가 현재 고려궁지라고 찍은 곳은 전각 몇개 지을 만한 적은 땅입니다.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좋은강의 좋은 내용 늘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지역감정이 사라지는 날은 언제일까요.황현필 선생님 늘 감사드립니다.그리고 혹시라도 기회가 되신다면 13세기 고려 무신정권때 삼별초에 대해서도 한 번 다뤄주셨으면 합니다.저는 역사시간 삼별초의 '항쟁'이라고 배웠는데 요새 역사교과서에서는 삼별초의 '난'으로 나오더라구여.황현필 선생님이 꼭 한번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역감정.. 그래요.. 우린 없어요.. 집안식구 전부 경상도 전라도 짬뽕.. 전 통영.. 대충 감 ㆍ느낌들 있을겁니다.. 현실ㆍ실생활을 망치는건... 그... 정치인들.. 근본없는 정치하는것들.. 그들인데.. 또 그런 인간을 찍어주는.. 참... 40년..모세의 시간.. 우리도 필요한가도싶고..갑갑하네요... 힘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