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가 난을 일으킨후 상당수의 세가들이 주원장에게 붙었고 일부는 독립해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후 이성계는 심양에서 한반도로 남하를 시작하게 됩니다. 주원장이 제후국인 송을 정통성으로 삼은 것은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였으나, 정통성이 약했음으로 고려의 출병은 정당한 것이였습니다. 요동의 오른쪽인 황하강을 경계로 아래쪽을 인정하고 추후에 양자강 아래쪽을 찾는다는 것이 고려조정의 생각 이였습니다. 주원장의 고향은 전주 외곽의 임안이였으나, 양주가 임안으로 전략적인 비정이 이루어지면서 양주 사람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개경은 지명이 아니며 고유명사와 같습니다. 왕이 있는 곳이 곳 서울이 열리는 것입니다. 송나라 수도 개봉'임안'은 제후와 신하를 나타냄으로 고려의 위상이 무엇인지 알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