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도 부산항 3부두.. 종이 태극기를 흔들며 우린 노래를 목청껏불렀다 맹호부대 그리고,청룡부대 커다란 회색 배의 갑판엔.. 군인아저씨들이 빽빽하게 나와 손을 흔들고 있었다. 환송식이 끝날무렵,아래로 뭔가를 던지기 시작했다. 급히 쓴 부대주소와 성명.. 꽉꽉 구겨 뭉친 종이 속엔 하늘색 십원짜리 지폐 몇 장과 동전이 들어있기도 했다.'다시 쓸 일이 없을지' 도 모를... 뱃고동을 울리며 서서히 멀어져 가는 배를 보며 오랫토록 손을 흔들 었던 기억이 난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기라 우는 애들도 있었다. 돌아오는길에 보니 태극기 얇은 종이는 거의 찢어져 있었다.마음은 먹먹했고... '자유통일 위하여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 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이 영상을 보니, 그 때가 떠올라 적어봅니다. 하~~ 착찹한 심정이에요 부디 모두 돌아오셨으면...
귀한 영상 감사헙니다. 부산항을 떠날때 가슴속에서 끓어 오르던 애국심, 이 한 목숨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죽으리라 다짐하고 떠났지요. 하루빨리 월남참전 기념의날을 제정하여 영상을 홍보하고 자라나는 학생들과 후손들에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전사한 전우들과 참전 전우들의 명예를 되찾아야 합니다. 전우사회의 임원들과 지도자들이 첫번째 해야 할일이 이것입니다.
부산항 3부두. 군함에 몸을 실고 많은 학생 시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고향 산천 가족을 생각 하며 꼭 살아 오겠다는 각오를 갖으며 떠났죠. 월남땅에 도착 하자 곧바로 월남전 전투에 가장 치열 하고 제일 많은 전사자와 부상자를 낸 안케패스 전투에 투입 되었죠. 그때의 생사 고락을 같이한 전우들 만나 보고 싶어요.. 베트남 산야에서 산화한 우리 전우 영혼들은 지금도 그곳 산야에서 고향땅 부모 형제 그리며 울부 짓 겠죠.영면 하소서. 73년1월 17일 휴전으로 많은 시민 학생들 환영 받이며 귀국 제대.이젠 백발의 70대 노인. 그때를 회상 하니 눈시울이 적셔 옴니다.
많은 월남파병 영상 중 처음보는 귀하고 소중한 영상 감사합니다. 보는동안 울컥해서 눈물이 날라하네요.. 용맹한 맹호부대 장병들이 서울에서 열차를 타고 부산항 부두에서 군함을 타고 월남으로 향하는 영상이네요. 조국의 부름을 받고 월남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려 떠나는 늠름하고 자랑스런 맹호부대 용사들을 수많은 국민들과 학생들이 함께 열렬히 환송해주는 모습들도 감동적이네요. 떠나는 장병들과 보내는 국민들이 함께 태극기를 흔들면서 응원가를 부르는 총화단결의 모습들 또한 감동입니다. 저 당시가 1965년도인가요? 부산역과 주변, 그리고 부산항 뒷쪽의 모습들이 지금은 하나도 없이 발전했으니 혁명가의 영단과 국민 총화단결로 이루어진 조국근대화의 초석을 다지신 공헌에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초등시절 부산항 3부두 들어가는 길목에 기차가 오면 속도를 천천히 줄이고 월남가는 군인들이 부모님한테 적은 사제편지 봉투를 던진다 학생들은 모두 주워 선생님 드렸고 선생님은 사제편지로 군인 아저씨들의 눈물 어린 편지를 고향에 전했으리라 믿는다 초등 우리는 떠나가는 회색 군함이 저멀리 떠날 때까지 태극기를 흔들었다 배가 항구를 떠날 때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슬펐다 모두들 건강하게 살아와야 했는데...
이런 역사 가 있었다!! 개 같은 놈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이 들~ 우린 이렇게 살아돌아 올까? 라면 전쟁터 로 갔다. 결과 는 고엽제!!! 이런 전쟁 영웅들이 5,18 이나 세월호 보다 못난 애국 했다!! 말이냐? 이 개새끼 대통령 들아 아직도 전투 지금 금을 안 준다~^^ 이게 나라냐!! 너희 들 죽으면 염라대왕 이 지옥 불에 고통속에 살것이다. 수색대 님 이것 들 모조리 죽여야 됩니다
저는 백골부대출신 청년인데 월남전에대해 궁금한게 있는데 물어봐도되나요. 그당시 부대마다 틀리겠지만 주둔지에서의 식사보급은 주로 어떻게 나왓었는지요? 식량보급에대해 궁금합니다 또 전투중 옆에 전우가 전사하게되면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나요? 급박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뒷수습을 해주나요? 끝으로 나라를위해 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무거운 m1총 매고 전장으로 가는 심정ᆢ 자신만이 알지 ᆢ부모ㆍ형제 조국을 등지고 미지의 나라로 ᆢ첨 경험해보는 일주일간의 항해길 배멀리는 전주곡이였으리라 !!! 그렇게 살아돌아온 조국은 지금까지 전세겨 참전국중 가장열악하고 푸대접을 받는처지 가되어 오늘도 전장의 병마와 트라우마로 비몽사몽으로 살고있다 그저 입만살아서 ᆢ
최진사님 추억속의 영상 매우 조은데 이러한 영상을 내보내실때에 는 1965년도 파월 당시 주월미군들과 같은 수준에 봉급을 받기로하고 주월한국군을 파월 시켰읍니다, 당시 미군들이 받고있었던 봉급이 병사1인 연 16만 4천불 받고있었고 당시 서울 집30채 살수있었던 돈이었담니다. 그런데 당시 한국 정부에서는 주월 장병 1인 월 봉급을 54불을 주었고 연 648붑만 지급하였다 하는 정보도 같이 홍보하여 주시면은 빛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