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골종양에 걸리고 수술 후 항암까지 하고 있는 중1입니다 . 아프기 전보다 느끼는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도 저는 남들보다 더 생각이 깊어졌다고 생각해요. 그냥 경험 했다고 생각중이지만 제가 너무 어린 건지 아니면 너무 큰 병을 걸린건지 마음이 우울한데 이 영상을 보고 힘을 얻고 갑니다.
아이들 기다린 아버지 ㅠㅠ 저희 할머니도 임종 직전에 부모님이 저를 충격받을까봐 가지 못 하게 했는데 할머니께서 몇 일을 버티셨어요....그러다 어머니가 이건 안되겠다 하나뿐인 손주 보여드려야 겠다는 생각으로 저 병원에 데려갔는데...할머니 손잡고 울자말자 할머니 돌아 가셨어여... 사랑은 위대합니다.가족은 위대합니다.
임종 방으로 옴겨질경우 가족들은 절대로 울지마세요 그리고 환자가 급격하게 상태가 안좋아질때 말을합니다. 그때가 마지막이에요 환자분이 정신을 잃지안고 끝까지 환자말을 다할수있을때까지 말을 걸어주세요 ..그리고 정신을 잃고나면 더이상 말을걸수가없을거에여... 사랑한다 고생했다 너무너무 고마웠다라는말을 해주는게 더 좋을거에요 ㅠㅠ
저의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작년에 군복무중 비인두암 진단받고 항암방사선 치료받으며 몸무게가 30kg이 빠졌습니다. 그때 너무 힘들어서 정말 좋지 않은 생각까지 했습니다. 선생님 및 의료진분들께서 애써주신 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완전관해 판정받고 추적관찰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뵙는데 정말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얼마전에 거실에서 티비를 보는 엄마 아빠를 식탁에서 바라보는데 문뜩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니까. 이제 짧으면 20년. 길면 30년.. ? 그때 진짜 망치로 띵하고 맞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내가 살았던 날보다 부모님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적구나... 그후로 짜증도 화도 안내며 요즘은 핸드폰으로 사진찍은는거 보다, 동영상으로 남겨두는 중입니다.
어머니가 보고싶어요.. 고등학교 때 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항암치료로 치료 중 이모, 고모, 삼촌 등 아무도 몰라보고 많이 힘들고 정신이 없으신데 늦게 온 저를 보고 '아들'이라면서 안아주던 우리 엄마.... 그렇게 사랑하고 아껴주시던 그마음 잊지않고 지금은 제딸에게 아껴주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잘지켜보고 계시죠? 사랑하고 감사했습니다.
국민학교 5학년때 엄마가 병원 다니시더니 나중에는 입원하시고 병원에서 3년을 생활하시는데 퇴원 한다길래 얼마나 기뻣는지.그런데 병명이 암인걸 돌아가시고 나서 알게됨.퇴원후 하루만에 돌아가심. 집에오셔서 가시길 원한거같음.. 지금은 그당시 돌아가신 엄마보다 내가 나이가 더 많아짐..아. 슬퍼.
제가 15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암으로 가셨거든요. 그런데 아버지 임종에 아버지는 제게 마지막까지 용돈을 주고 싶어하셨어요. 아무것도 없는 허벅지를 더듬으시며 용돈이라고 제 손을 잡아주셨어요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아까 달렸다 삭제된 댓글 답변)) [얼마 받았어요?라는 댓글] 얼마 받은 것도 아니고 .. 아무것도 없었지만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용돈이라 생각하시고 주신거였어요 . 아무래도 임종직전이니까 제정신이기는 힘들었고.. 상태는 더 말이 아니었어요. 황달도 심해서.. ((아버지가 기술쪽 직업이셔서 자꾸 뭐가 돌아간다는 헛소리도 많이 하시고, 나가고 싶다고 그러시기도 하셨어요. 그럼에도 제가 누군지는 알아보시더라고요. ㅇㅇ이냐.. ㅇㅇ이냐.. 하시면서 손 잡아주시고 그러셨어요. 울고 싶어도 꾹 참으면서 응 아빠! 이러면서 그랬었는데.. )) 언제나 아무리 간암이어도 몇년간 강한 모습만 보여주시고 아프셔도 참아오시던 아버지가 맞나 싶을 정도로 꽤 심각했어요. 언제나 아프셔도 활짝 웃으시고 자식들 챙기신다고 고기 구워 먹을때 조금 탄 부분이라도 있으면 잘라서 주시고 아침마다 동생을 안아주시며 아침인사도 하시고 특별한 날이면 아닌 척 하시면서 뒤에서 챙겨주시던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네요. 저는 그래도 힘든 만큼 열심히 살고 있어요. 어른이 되면 해드리고 싶었던 효도를 더는 못하게 되었으니까. 마지막으로 할 수 있을 효도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아버지가 제게 해주신 그 짧은 15년이라는 추억들로 책을 써서 출간한다면 아버지가 기뻐해주실까 하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글 쓰기 시작했을때 작가 딸이라고 기뻐하셨었거든요. 아무튼 제가 이제 16살이고 열심히 살고 있어요.. 답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수정글) 아버지 가시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상도 싹쓸고 다니고 내신도 올리면서 대견하다는 소리도 많이 듣고 '나 잘하고 있구나' 생각하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데 버스타고 가는 길에 창밖에 보이는 한복 매장이 보이더라고요 아빠는 내가 태어나고 날 지켜보면서 나중에 내가 커서 한복입고 남편이랑 사진찍고 웨딩드레스 입고 결혼하는 모습도 상상했었겠지.. 싶더라고요...88
저희 할아버지는 3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 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임종이 다가왔다는 소식을 듣고 온가족이 요양원에 모였고 멀리 사시는 큰아빠만 아직 오시는 중이었습니다 1시간 내로 돌아가신다고 하셨는데 할아버지의 상태는 점점 다시 괜찮아지셨습니다 선생님께서임종이 미뤄질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몇 시간 뒤 큰 아빠가 오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눈물 한 방울을 주륵 흘리시더니 날숨 한 번 쉬시고 들숨을 쉬시며 돌아가셨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싶네요
12월에 저희 어머니를 코로나로 보내드렸습니다. 너무 한이 되는건 코로나시기에 코로나를 걸리셔서 중환자실에 격리가 되어 간호를 해드릴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떠나실꺼 같다는 의사 전화에 신속히 가서 어머니 손잡고 효도못해드려 죄송하고 낳아주셔서 감사하고 이세상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말하며 목놓아 울었었네요. 누구나 평생 함께 할 수 없다는걸 마음에 가지고 가족 연인 친구에게 잘해야겠습니다..
아빠곁을 지키던 엄마가 아무래도 오늘을 못 넘길것 같다는 소리를 듣고 내가 제일 먼저 도착 하고 그담으로 막내가 일이 있어 바쁜 둘째가 마지막으로 오니 숨을 거두셨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큰산 하나가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였다. 큰 산안에서 나는 많이 뛰어 놀고 무뚝뚝 하지만 투박한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는데 살아있을땐 모르던것이 가시고서야 늦게 알게 되었을까..보고싶다 울 아부지 같이 낚시도 가고 노래방도 가고싶다
저희 아버지도 상태가 갑자기 안좋아지셔서 인공호흡기끼고 계시다가 외국에 있는 언니가 급하게 귀국해서 보고 다음날 돌아가셨는데.... 외국에서 고생하고있는 언니가 맘에 걸리셨던모양이예요. 의사선생님도 당시에 혹시 더 오실 가족분 계시냐고... 기다리시는것 같다고 했는데... 아빠보고싶다...
전공의 하면서 그래도 잘했다고 생각했던 일 중 하나가, 임종기셨던 환자분 큰아드님이 해외에서 입국하고 자가격리 중이셨던가.. 바로 오실 수가 없었는데 보건소랑 병원이랑 어떻게 절차 상의하고 코로나 재검사 빨리 할 수 있게 여기저기 전화하고 부탁드리고 해서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님 뵐 수 있게 해 드린 거.. 아드님 뵙자마자 돌아가셔서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어쩔 뻔 했나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도 버티고 계셨던 것 같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군대에 있을때 할머니께서 많이 아프셔서 입원하셨다는 소식듣고 바로 휴가서 작성해서 다음달에 휴가 나가서 병원가서 손잡아드리고 했었는데 휴가 복귀하고 이틀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손자가 저밖에 없어서 많이 예뻐해 주셨는데 마지막으로 보고 가시려고 기다리신것 같이 느껴져서 더 슬펐던 기억이 납니다
개인적으로 암환자를 곁에서 보면 제일마음아펐던 때가 강인했던분의 지능이 어린아이처럼 되돌아가는거 였는데 의사가 운명하셨다고 이야기했는데 마지막 "죄송합니다편히쉬세요" 그한마디하는데 평생 눈물안흘리던 분이 눈물 한방울 흘리는데 시간이 많이흘렀지만 너무도생생하네요 보고싶습니다 아버지....
죽음은 늘 가까이 있다... 그 한마디가 짧으면서도 많을걸 느끼게 해주네요... '내 죽음으로 많은 사람이 행복해진다면 그 또한 삶의 연장선이다' 직접 뵈진 않았지만 훌룡하신 분인게 느껴지네요 장기기증이라니 정말 대단합니다 아직 15인 학생이라도 죽음은 늘 가까이 있다... 많은걸 배워갑니다 모든일이 행복하길 바래요..!
선생님, 저도 장기기증자 등록 했었어요. 저도 나로 인해 누군가가 더 행복하다면 좋을 것 같아 신청한거였습니다. 그런데 장기기증자 사망 후, 장기기증을 위한 기간 때문에 유족들에게 시신인도가 늦어질 수 있는 점. 안구 등의 기증을 신청했을 경우 내 시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로 유족들에게 전해질 수 있는 점. 이 부분들 또한 충분히 고려하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ㅠ 저는 이부분을 고려하지 못하고 독단적으로 선택한 부분이 있었어서... 선생님께서는 충분히 고려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가족이 동의했다면 괜찮지만 타인의 가족의 행복을 위해 내 가족의 행복을 희생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니까요.
저희 아버지도 제가 임종사진 찾으러간사이 어머니한테 아버지가 지금 돌아가실거 같다고 빨리오라는 전화한통을 받고 으랴부랴 눈물흐리면서 영정사진 들고 도착했을때 아버지는 숨이 힘에겨워 제가올때 까지 눈을 못감으시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본뒤 돌아가셔서 아버지 한테 미안하고 잘해드린게 없고 죄송합니다 다음생에 아버지 아들로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던게 생각 나네요 모든 아버지 사랑하시고 말씀이라도 많이 나누셨으면합니다 아버지 보고 싶고 💜 합니다
저희어머니도 엄청 건강하셨는데 갑자기 쓰러지셨는데 뇌졸중이고 얼마안남았다고 맘의 준비해라길래.. 그땐 진짜 제정신 아닌상태로 살았던것같아요 지금은 다행히 많이 호전되셨지만 ㅠㅠ 가족의 소중함,, 꼭 굳이 그렇게 갑자기 아프시지 않아도 꼭 느끼고 평소에 잘하고 서로 관심가져줍시다 ㅠㅠ 누가뭐래도 가족만 제편이니까요.... 🤍
아버지께서 현재 폐암말기십니다.. 자식으로써 자주찾아뵙고 좋은거 하나라도 입에 넣어드리려고 애쓰고 잇는데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훈련을 밀어넣는중인데 참 어려운 일이네요. 건강은 정말 식상한말이지만 행복이고 감사인거 같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이 가슴에 스며들어 슬픈 눈물이 데펴지는거 같습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
저희 할아버지께서도 췌장암 판정 받으셨어요 연세가 있는지라 항암치료 안 받는다고 하시고 일상을 보내시는 중인데 요즘은 많이 편찮으신지 진통제 주사 맞으러 가셨다는 얘기를 자주 전해 듣네요 수험생이라 수능 공부한다고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하는데 얼마나 남았을지도 모르는 소중한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가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저도 이름 모를 당신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남은 시간을 아름답게 보낼 수 있기를 바라요 훗날의 당신이 이별에 크게 무너지지 않기를
저~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이 되었지만 제가 드리는 말씀을 흘려듣지 않으시고 관심을 갖고 많은 후기평을 찾아보시고 결정하셨으면 하는바람으로 꺼내봅니다 n검색창에 "한농숯가루"라고 치시고 들어가 숯가루요법을 공부해서 아버지께 권해보세요 그런다음 유튜브에도 많은 후기들이있으니 찾아보세요 숯이 사람을 살립니다 숯만큼 강력한 해독제는 없습니다 바로 실천하시고 오직 한농숯가루만 약국에서 사서 드셔야해요 아버지가 훗날 웃으실거예요 그리고 숯파스도 있는데 환부의 폐에 그리고 등에 같이 붙이고 숯가루 계속 드시게 하세요 제 진심을 읽으셨다면 늦지마세요(_ _)
@@autumn518 광고아닙니다 한사례만을 이라고 말하시는데 k님도 숯에 대해 믿지 못하시면 어쩔 수 없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미 인정한 치료법입니다 그리고 찾아보시면 수많은 치료후기가 있고 병원에서 포기한 분들이 많이 건강해지셨다는 글도 많이 봐서 고민하다 뭐라도 더 해봐드려야 할것아닌가해서 권해드렸습니다 민간요법이 아니라 의약품으로 허가받은 제품입니다 민간요법은 인기가 많았던 개구충제같은 확실하지도 않는 그런것들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분명하게 잘 공부해서 찿아보시고 믿음이 가시면 해보시라고 말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위암환자분이 계신데 같은 병을 앓고 계셨던 분들은 이미 떠나고 없지만 본인만 드시고 6년을 더 살고 숯이 떨어져 약국에 사러 오셨다는 말을 들은 후기평을 보고 더 감사함에 용기를 내어 말씊드렸습니다 제 글을 의아하게 비판적으로만 보지마시고 확실하게 숯에 대해 공부해보시고 말해주셨으면합니다
@@user-gr9vk2og4o 저~그럼 인터넷을 왜 정보의 바다라고 불리는걸까요? 물론 가짜가 판친다해도 감사하게도 귀한 정보를 나눔해주시는 분들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직접 발품팔지 않고 쉽게 귀한정보를 알았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리고 엄마가 병원약 드시고 시키는대로해도 차도가 없고 더욱 악화만 되셔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이것저것 알아보다 미국 나사에서도 인정한 숯을 만나 너무 귀해 용기내어 말씀을 드렸는데 의사들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기적이라는것도 있잖아요!! 왱님은 본인 신념대로 하시면 됩니다!!
다들 감사합니다 ^_____^ 씩씩하게 살고 있어요. 가끔 하늘이 청량할때, 바람이 선선할때, 노을이 유독 붉게 물들때 문득문득 울컥하지만 잘 견디고 있어요. 영영 지워지지 않을 1 이라는걸 알면서도 가끔씩 카톡이라도 보내면 좀 낫더라구요 ㅋㅋㅋ 정말 신기한게 저도 청각이 마지막이라는 얘기를 어디서 들어서 이모가 올때까지 버티라고 계속 말해줬더니, 한참뒤에 이모가 도착하고 엄마가 마지막으로 감았던 눈을 뜨고 이모를 보더니 그대로 떠나셨거든요. 제일 좋아했던 언니라 꼭 보고 가고싶었나봐요. 정말 그런게 있나봐요~ 다들 행복하시고 좋은일만 있길 바랍니다 ^^
이거 보니깐 작년 말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나네요... 오랫동안 신체,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분들은 떠날때를 어느정도 직감을 하시는 걸까요.... 저희 할아버지도 심한 치매에 몸도 못가누시고 걷질 못하셔서 맨날 앉아서 주방에 오셔서 밥드시고 밥도 제대로 못먹는 날엔 부드러운 빵을 드시곤 했는데... 저희 엄마가 말씀하시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안되는 명절에 못알아보시던 며느리 손을 꼭 잡고 내 하나뿐인 소중한 며느리~ 고마워 이러셨다고 하시더라고요...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네요....
사랑하는 사람이 급성 간부전으로 인해 이식을 받아야하는 상황이였습니다 27시간 대기만에 기증자가 나타났고 수술을 잘넘겼습니다 그때 저도 “운이 좋았다” , “잘 됐다” 라고 말했는데 담당 의사분이 말씀하시더군요 그 분의 죽음으로 한 생명이 산것이니 그 분에게 감사를 표하라고 그 때 머리를 크게 맞은듯한 기분이였습니다 내 소중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누군가의 죽음이 있었는데 그걸 운이 좋았다 잘 됐다 라고 말하는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당장 나에게 중요한, 소중한 결과에만 눈이팔려 은인에 죽음을 더럽혔다는 사실에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김종호님 당신에 기증으로 한 생명이 한 가정이 살수 있습니다 평생 그 이름 잊지 않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맞아요, 우리아버지 암 합병증으로 폐렴이와서 돌아가셨는데, 임종 직전에 숨쉬질못해 가쁜숨을 헐떡이시며 힘들어하셨어요. 간호사가 딱 열번만 코로 숨쉬어보자 했는데 그걸못하셔서 결국 기도삽관하고 갖은노력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셨어요.... 아빠 보고싶어요^^ 좋은곳에서 잘지내고 계시죠?^^
대학병원 수술실 근무때 생각이 나네요 젊은 40대분이 뇌사상태가 되어서 장기기증하러 수술실로 들어오고 또 다른 뇌사자 환자는 보호자 형님이 다른 장기는 다주어도 눈은 남겨 달라시기도 하구요 들어올땐 살아서 들어왔다 나갈땐 온몸이 붕대감겨 시신으로 나갈때 맘이 아파서 잘가시라고 기도만 했죠 옆방에서는 신장 받으실분 대기하고 이식 끝나고 소변이 잘나올때 모든 의료진들이 기분 좋아했던 일들이 남아 있네요
천 상병 시인의 귀천이 생각납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렇게 살다 갈수있을까요 세속에 너무 찌든 내가 보입니다~ 삶과 죽음은 늘. 곁에서 공존하고 있다는걸 새삼 느낍니다
... 편견이 있으시네요... 이 시대에 의로운 의사분들 많아요. 의사라는 직업이 이미 의로운것도 있고요.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 몇몇의 잘못을가지고 일반화시키는건 안좋은 습관입니다. 전혀 일반적이지도 않고요... 병원가서 어떤의사를 만나셨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친절하고 본분을 다 하지 않았나요?
@@wiseyang1962 본인도 의사라는 직업과 의사들에 대해 편견이 있네요. 길게 말 안 하겠고, 2021년 대한민국에 저런 의사 분은 대다수 혹은 다수가 아니라 소수라는 건 맞죠. 대다수의 의사가 원래 저래야 하는 게 맞고요. 그리고 일면식도 없는 인터넷상에서의 댓글 하나로 타인의 습관까지 들먹이면서 안 좋은 습관이라고 판단하고 잣대들이대는 건 좀 고쳐야 할 습관이네요 본인이야말로ㅎㅎ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님이 범하고 있고요~
저도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할머니를 계속 찾아뵙지 못하고 있다가 평일에 연차쓰고 할머니 뵙고 잘 계시라고 말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 버스에서 임종소식을 들었어서...... 장례식 이후 몇년만에 이 영상 보고 오열했네여... 할머니 생각나서....늦게 가서 죄송했어요 사랑해요 할머니... 그리고 그때 버스회사에 연락해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버스 연결해주시고 휴게소 통해서 넘어갈 수 있게 해준 기사님도 다시한번 감사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도 돌아가실때 그때 손자손녀들이 다 곁에 서잇었는데 의식 잃어가는 와중에도 우리이름 절대 안잊으려고 하나하나 다 불러보고 곱씹어보고 가심... 그거때문인지 할아버지만 보면 눈물나네요 길가다가 할아버지 닮으신 분 보기만 해도 애틋하고 그러네요 우리할아버지 병실에 누워서 웃어주던 모습이 생각나요
임종방..정말 두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곳이에요. 과거에 저는 할아버지가 담당 보호자였고 정말 제가 제일 사랑하던분이었습니다.그리고 할아버지의 마지막 인사를 받은것도 저였습니다. 12년전 과거에 20살쯤이었던 저는 그날 저녁 8시쯤 할아버지 병문안을 갔다가 "할부지 나 누구야" 라고 묻고 할아버지께서 제 이름을 장난치며 불러주셨어요.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10분을 걸어 집에 고모집에 도착했지만 들어가기도 전에 고모집에 모여 계시던 모든 어른들이 나오셨죠. 그리고 병원에 달려가야했습니다. 고작 10분만에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며.. 제 이름을 불러주시며 "함!" 이라고 농담하시던 할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1인실 임종방으로 가시더라구요. 뭣도 모르고 따라간 멍청한 저는 어른들이 할아버지께 인사하라고 한 말에 나중에. 라고만 하다 그렇게 제일 사랑하던 사람을 아무말 없이 떠나보냈습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지금도 매우 후회합니다. 사랑한다고, 너무 너무 사랑한다고 말씀드리지 못해 너무 후회합니다. 감사하다고도 못했어요. 말을 하면 그게 마지막일까봐 아끼고 아낀말이 후회가 되버렸습니다. 지금도 후회 합니다. 저만을 위하셨던 할부지께 제대로 말씀드리지 못해서.. 모든 분들이 꼭 후회없는 ( ) 의 마지막을 맞이하셨으면 합니다. 당신이든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든 꼭. 그러셨으면 좋겠습니다. 매일 행복하세요. 후회없는 하루를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마지막까지 평소대로 손자 손녀를 대하고 싶은 마음에 더 장난치시고 그러셨던 것 같아요. 이별의 말을 들으면 영영 못보는 것 같으니까요. 위로가 될진 모르겠지만 이미 쓰니의 마음을 알고 계셨을거고 그랬기에 그렇게 밝은 모습으로 이별하신걸 거에요. 마지막 모습이 기억에 제일 많이 남을테니 내 걱정말고 앞으로도 잘 나아가라는...이렇게 말해도 후회의 감정은 계속 남겠지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길 바래요.
저같은 사람이 또 있었네요 ㅠㅠ 저도 그맘 이해해요 저도 초등학생 때 암으로 엄마를 떠나보냈는데 그 순간을 머리로 이해할 수가 없고 견딜 수가 없고 입을 열거나 엄마를 보면 뭔가 가슴에서 터져나올 것 같아서 가족들이 인사하라고 얘기하라고 했는데 이제까지도 혼자있을때 기도처럼 하면서 밖에 얘기를 못하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병을 앓으시던 분은 며칠 앞두던 두어달을 앞두던 느낌은 오니까 진짜 하고싶으셨던 말은 아마 하실거같아요 근데 어머니를 1월에 보내보고 나니 드는 생각은 어머니도 암환자라 돌아가시기 7주 전에 나 이제 얼마 안남았다 그러시긴 했는데요 뭔가 얘기할 기운도 없고 끝없는 고통때문에 진통제 맞고 자거나 고통에 몸부림치시는거외엔 하실 수가 없으셨어요 건강해보이실 때 좋은 말 하고 좋은 거 해드리고 대화든 활동이든 죽음이 코앞에 있을때는 일상과 같이 할 수 없다고 경험으로 말씀드리고 싶네요
최근에 외할머니를 보내드렸어요. 손녀인데, 상태가 많이 위독하셔서 중환자실에 계셨었죠, 그놈의 코로나가 뭐라고 병원에 가도 우리 할머니 안 보여줬어요. 자식들도 한 시간만 그 짧은 시간만 보여줬어요. 그렇게 두 달 가까이 병원에서 혼자 혼자서 눈을 감으셨어요 그게 너무 한이 남아서 생각하면 너무 죄송해요 계속 가슴에 남아서 대못이 막힌 것만 같아요ㅜㅜ
아빠가 알츠하이머라는 소식을 조금 전 전해듣고 마음이 심란한 가운데 추천으로 이 영상을 보게되었어요. 막상 생각해보니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가 뭔지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파서 펑펑 울었어요. 어릴땐 아빠가 차에서 틀어놓은 노래가 옛날노래라 싫다고만 했지 귀기울여 들은적 없었다는 사실도 생각나고.. 아빠랑 지금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데 코로나때문에 마음대로 왕래도 못하는 상황에 너무 보고싶고 속상합니다..
3년전 우리 아버지 의사가 혹시 모르니 마음의 준비 하고 계세요. 이 한마디만 해줬어도 이렇게 내자신을 자책하진 않았을텐데... 드실수 있을때 맛난건 사드리고 못들으시는것 같아 대화도 많이 안했는데 내가 어디에 집중해야 했는지 알았을텐데... 고관절 수술후(군산 의료원) 위급해 보인다고 해도 진찰도 안하고 힐끗 보고 가버리고 난후 담당 의사를 바꿔 버리고 다음 의사도 성격이 안좋아서 언니랑 싸우고... 큰 병원 중환자실로 이송하고 일주일후 돌아가셨는데 아무도 돌아가실줄 모르고 돌아온 우리 임종을 못지켰다는... 겁이 많으신 분 춥고 깜깜한데서 어딘지도 모르고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종교를 떠나서 가족을 위한 기도는 시간을 거스릅니다 사랑은 시공간을 넘어선다고 했어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시면 좋은기억...따듯한 추억을 떠올리면서 그 공간에 나와 가족이 있었다 상상하면 돌아가신 아버님도 그 순간으로 기억되실수 있어요 이렇게 걱정하는 가족이 있으셔서 아마 따듯하게 돌아가셨을겁니다
심리치료사 자격증 따려고 공부할때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환자에 대한 공감이 크면 감정소모가 너무 심해 이 일을 지쳐서 오래 못한다고.. 그래서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고 했던 기억납니다 속마음은 아니더라도 일부러 같이 울고웃고 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아마 그 의사선생님도 그런 경험 많이 하면서 선을 그으신게 아닌가싶어요^^;
어릴적부터 엄마랑저랑 단둘이살았어요 이젠 제가 다 커서 시집도 가고 딸아이도 하나있어요. 저는 엄마의둥지를 떠나 저의가정을 이뤘지만 울엄마는 아직도 제 방 청소하고 제가 없는 저랑 살던 그집에 혼자 남았어요... 아기가 아직어리기때문에 손이많이가서 아기키우니라 혼자계시는 엄마한테 신경도 못써드려 엄마의 얼굴볼때마다 맘아파요 요즘 자꾸 밤에 엄마생각 많이나고 엄마생각하다가 잠들고 그러는데 ,,너무 무서워요 제가 마음껏 구르고 비벼도돼는 그런 큰 언덕같은 엄마인데 나중에 엄마돌아가실거 생각하니까 눈물이나고 미칠거같아요. 나에게 너무 당연한 엄마인데,그런 엄마가 없다 생각하니 생각만해도 숨이막히고 제가 이세상에 남겨진 고아가됀거같고 유일한 내편이 없다고 생각하니 많이슬퍼지네요 시간은 멈추지않으니...저도늙고 나중에 엄마도 때가돼면 절 떠나시겠죠 그때.... ..너무 많이힘들거같아요. 방송보고 너무 슬펐어요. 지금이라도 엄마한테 있을때 잘해야겠다. 노력해야돼겠다.생각들었네요 엉엉 울다가 tmi 좀 해봤어요...
@@user-iu3qs4dd5v 사는거 넘 힘들때마다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삶인데 왜 이어나가야 하나 하는 생각 들었다가 님처럼.. 내가 기억은 못하지만 세상에서 살아보겠다고 악착같이 매달렸을지도 모를일이지 하고 생각을 바꾼적이 있었어요.. 베르베르 소설 타나타노트에서도 그런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ㅈ같다고 생각이 많이 들긴해도 .. 이제 삶의 목표는 자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