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명이 이번 주제와 만나 있어서는 안 되는 2차 폭력이 되고 있는데, 그걸 알아챈 편집자는 한명도 없었나요? 이번 화에는 클립명을 화면에서 노출시키지 않아야 되잖아요. 이 둔감한 폭력에 한숨밖에 안 나옵니다. 한국 미디어 수준이 아직 이 바닥인가요!? 늦었지만 이제라도 수정해주길, 또한 참사에 희생된 분들의 가족 친구분들이 이 컨텐츠에 노출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범죄자라던가 사기죄라던가 형량도 다 거지같이 조금밖에 안되고 살인죄랑 가난해서 빵 훔친 죄랑 비교해서 형량이 비슷한데요?ㅋ 뉴스 가끔가다 보면 형량이 개같지 않습니까? 이건 국개의원들이 일처리 제대로 안해서 범죄자들이 형벌을 그 죄의 무게만큼 받지 못하고 있는겁니다. 일처리 똑바로 안하고 맨날 뉴스나오면 지들 밥그릇 임금 인상할때는 단합력이 아주 끝내주는데, 그런 경우가 아니고 자기 당원들간의 이익을 위해 서로 싸우고 대립하는 그딴 꼬라지를 보면 소방관님들이랑 국개의원이랑 비교하는 게 얼마나 소방관님들께 무례한건지 알걸요? ㅋ 국회가 삼권분립체제의 기반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그 임금 자체가 거품이 너무 많이 낀거같습니다. 차라리 그 높은 임금을 삭감하고 일선에서 직접 뛰어다니며 일하시는 소방관분들이랑 경찰관분들께 그 임금을 더 얹어줬음 하네요.
이날 친구와 중앙로에서 약속이 있었다. 지하철 타고 가는데 친구가 갑자기 전화와서 늦잠을 잤으니 동촌역에서 내리라고 하더라. 그덕에 내려서 한참을 앉아 기다렸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오는 기차도 가는 기차도 없더라. 15분? 20분? 앉아있었는데 안내방송이 나왔다. 플랫폼에 아무도 없고, 뭐라고 되게 다급하게 말하는 거 같은데 잘 안 들렸다. 멀리보니까 역무원이 뛰어오더라.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까 중앙로에 불이 나서 지금 지하철 운행이 안되니까 중앙로까지 버스를 타던가 택시를 타라고 하는것이다. 그때까지 그렇게 심각한 일이 벌어진지 몰랐다. 아 중앙로에 있는 건물에 불이 났나보다 했지. 그래서 버스를 탔다. 타고 중앙로 가까워지는데 창밖 풍경이 난리가 난 것이다. 도로가 까맣고 연기는 당최 어디서 피어오르는지 알수가 없었다. 길이 막혀 경적소리가 엄청났고 버스는 원래 서던 곳에 진입이 안 돼서 사람들을 멀찍히 내려줬다. 신호등에서 내리니까 시내로 진입이 안 되니 영문 모를 시민들이 가득 서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인파를 뚫고 아주머니 한 분이 신호등 앞에서 엉엉 울면서 어떡하냐고 큰 소리로 울었다. 신호등 앞에 배달 오토바이가 하나 서있었는데 그 오토바이 청년에게 뛰어가서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미안해요 미안한데 우리 아들이 사고가 나서 지금 병원에 있대요, 응급실에 좀 태워줘요 라고. 오토바이 청년은 얼른 타라고 하고 아주머니를 태운채 떠났다. 그날 당연히 친구와의 약속은 무산됐는데 집은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이 안 난다. 일주일에 장례식장을 네 군대 다녀왔다. 당연히 그후로 몇 년 지하철을 못 탔다. 지하만 내려가만 매캐한 냄새가 났고 무엇보다 소리. 지하철만 들어가면 그렇게 소리가났다. 우어어엉 우어어엉 하고 낮게 울리는 소리가. 지하철을 타고 터널을 달리면 어둑한 터널속에 사람 얼굴들이 지나가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고. 그 후로 7년인가 지났나? 한 아주머니가 2호선 반월당 역에서 환승 방향을 물었다. 아줌마는 "내가 지하철 사고 이후로 지하철을 한 번도 안 탔다"고 덧붙였다. 그날 이후 대구사람중에 지하철 못 타는 사람 꽤 될거다.
저도 그날이 제 생일에다가 수능도 끝나고 곧 성인이겠다 완전 신나게 놀 생각에 친구들과 시내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친구들 중에 제가 제일 먼저 일어나서 준비한 탓에 피씨방에서 그냥 기다리고 있다가 친구가 전화와서 알았어요. 너 지금 어디냐고. 시내냐고. 괜찮냐고. 그때 집이 범물동 동백 맞은편이라 그 근처에서 있다가 택시타고 가야겠다 했는데 친구가 이상한 소리를 해서 밖에 나가보니 거짓말 안보태고 시내 방향쪽 하늘에 까만 연기가 올라와서 그쪽만 하늘색이 탁하더군요. 저도 님처럼 일단 평화시장에서 만나는걸로 방향을 돌리고 똥집골목 들어가서 낮부터 티비보면서 있는데.. 생일이고 뭐고 티비자막에 아는 사람 이름 나오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덜덜 떨었어요. 그리고 저도 님처럼 집에 어떻게 돌아갔는지 기억이 안나요. 그냥 많이 울었었고 무서웠고.. 나중에 밑에 일반인한테 개방되서 내려갈 수 있었잖아요. 잠깐 30분 있다가 올라왔는데 눈이며 코며 매케하고 따갑고.. 벽에 무수하게 남은 손자국들 같은거 하며... 그날 만났던 친구들과 같이 다녀왔는데 동성로 버거킹 화장실에서 그렇게나 손을 씻어도 그을음이 안지워지는거 보고 화장실에서 친구들과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독한 그을음을 괴롭게 마시다 돌아가셨을 분들 생각하니 얼마나 참... 참고로 저도 그때 이후로 지하철 안탔어요. 혼자는 특히 못타겠더라고요.. 그 후 처음으로 혼자 탄게 2008년이네요.. 다시는 없었으면 하는 참 가슴 아픈 기억입니다.
@@akiejh 그러게요. 대구사람들 모두 그 트라우마가 있죠. 지금도 중앙로 역에 기념관 있는데 그 앞에서 고통없는 사람 아무도 없을 겁니다. 제 친구는 친언니를 잃었습니다. 친구가 전날 마침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잠깐 입원 중이었습니다. 문제는 엄마가 언니가 죽은 걸 말을 못 한거에요. 그냥 지하철 사고로 지금 다른 병원에 입원했다고만 말했답니다. 며칠 지났나? 친구에게 갑자기 평소 친했던 언니 친구에게 전화가 왔답니다. 언니 괜찮냐구요. 친구는 그냥 언니 괜찮다, 엄마가 언니 입원한 병원에 잘 있다고 했다, 그랬는데 전화 온 언니 친구가 갑자기 엉엉 울면서 그러더랍니다. 그런데 왜 뉴스 사망자 명단에 너희 언니 이름이 나오냐고요. (친구 성씨가 특이하거든요.) 그래서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엄마가 그제서야 대성통곡을 하면서 말씀하시더랍니다. 00야, 너네 언니 죽었어라고. 이 말을 장례식장에서 듣는데 와.......... 지금도 무척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는 그날 집에서 뉴스속보로 화재 사건을 접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전화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저도 그날 이후 지하철을 타지 않습니다 제 아이가 생기고 난 다음부터는 아이 손을 잡고 지하철 계단을 내려 갈수가 없습니다...만약 타 지역에서 어쩔수 없이 지하철을 타는 일이 있으면 비상구가 어디 있는지...지하철 수동 문 열림 장치는 어디 있는지부터 살피며 불이 나면 내가 과연 여기를 탈출할수 있을까 생각합니다...예상치 못하게 생긴 외상후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깊었습니다
외할버지께서 국군 상사로 여러 전투와 백마고지에도 참전하신 분이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외상 후 스트레스를 술로 푸시고 매일 박카스를 한박스 드시지 않으면 주무시질 못했습니다 전우들이 죽어가던 모습, 하던 말들이 계속 떠오른다며 고통스러워 하시고 부상입었던 무릎의 통증을 괴로워하시다가 산에서 홀로 전우들 곁으로 가셨습니다 고등학교 대학생자녀들 5명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할머니 혼자 시장에서 장사하시며 키워내셨습니다 겉으로 장애입지 않은 군인은 아무 보상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지금 살아계신 할머니에게라도 적은 생활비라도 나올수 없을까 해서 나라에 문의했으나 지방 국립묘지에 이장해드리고 할머니도 추후에 그곳에 이장해드리는 혜택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백마고지같은 처참한 곳에 상사로 참여했던 분들에 대한 처우가 이렇습니다 다른곳은 어떻겠습까........
저희 아빠도 26년차 소방관이신데 유퀴즈 같이 보며 하시는 말씀이 시체 썩는 냄새가 아무리 씻어도 코에 남아있고 며칠을 간다고 합니다 또, 저희 아부지도 작년 강원 산불에 투입되셨었는데 유퀴즈 자료 화면에 휴게소에 소방관 아저씨들 식사하시는 장면 보고 "그럼 아빠도 저기에 있었겠네 ??" 하고 질문하니 "그럼 ~ 아빠도 저기서 밥 먹고 있었지" 하시는데 찡하더라구요 산불 진압을 마치고 내려오시는 길 도로 전광판에 ‘소방관님들 고생하셨습니다 ' 라는 문구를 보고 되게 고마웠다고 말씀하셨어요 내가 생활하는 데 쓰이는 돈이 쉽게 번 돈이 아니라는 것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고 앞으로는 아빠를 더 존경하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대해드리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아빠 사랑해 ❤️
진짜 소방관분들은 정말 대우잘해줘야됨 불나고 위급한 상황에 다 도망가는데 소방관분들은 한사람이라도 살릴려고 그 현장으로 들어가는데 죽을수도있는데...참 감사하기도 하고 또 죄송하기도 하고 또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소방차를 택시인냥 사용하고 하대하는사람들 정신차리세요 본인들 위험할때 유일하게 목숨바쳐서 살리기위해 최선을 다하는분들입니다
소방관들 대부분이 PTSD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항상 가장 위험한 곳에서 가장 먼저 사람을 구하려다보니 구하지 못한 분들의 모습을 많이 접하게 되고 그 참혹한 모습에, 죄책감에 평생 PTSD를 앓고 계신분이 많아요. 소방관을을 위한 전문 상담센터와 요양시설이 꼭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남동생이 처음 막내로 근무 시작했을때 사고현장가면 선배님들이 항상 앞서서 나서면서 막내 너는 뒤에있어라. 넌 우선 뒤에서 보면서 익히고배워라. 위험하니 우선 넌 뒤에서 서포트만 해라. 라시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이셨다해요. 대부분의 소방관 선배님들이 그러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튼 동생이 그걸 보며 나도 저런 선배가 되야겠구나 다짐했다고하니.. 선배들의 대물림되는 좋은 모습들이 사명감을 더욱더 단단하게하는 이유가 될수있겠다 생각도 드네요. ^^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안전제일입니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언제나 집중하여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빠르고 효율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저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게 하소서. 그리고 당신의 뜻에 따라 제 목숨이 다하게 되거든, 부디 은총의 손길로 제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아주소서.
어제 유퀴즈 보니 진짜 소방관분들은 마인드가 아예 다른거 같더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 진짜 너무 존경스럽고 멋있다. 그리고 너무너무 감사하다. 저분들이 계셔서 우리가 마음편히 매일을 살아갈 수 있는거다. 부디 인명사고없이 우리 곁에 영원한 슈퍼맨으로 남아주시길.
00년대생인데 세월호는 몇년이 지나서 기억이 잘 나지않고 그당시의 느낌이 흐려진 것 같아요 다만 기억나는건 그때 뉴스만 틀면 세월호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고 대통령 탄핵 이야기가 나왔었어요 그때 저는 어려서 그랬는지 매일 같은 뉴스만 떠들썩하게 들려오는 것이 지겨웠는데 철이 없었네요 지금 유튜브에 가끔 알고리즘으로 뜨는 관련 영상들을 보면 눈물만 나요 참사 당시에 제가 어려서 그랬겠지만 십년, 이십년이 지난 일들이 생생히 기억나는 분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저 그때 고등학생이었는데 그때 지나가다가 정말 그자리에서 펑펑 울고 아직도 중앙로 지하상가를 못가요. 1호철도 못타고 중앙로도 못지나가요. 그사건이 끝나고 전부 검은 연기로 전부칠해진 지하철과 지하상가의 참사를 보신 분들은.. 진짜.. 하.. 저 같은 분들이 많은 분들이 있는걸로 알고 있어요
저 중앙로역이 서울로 치면 강남역이예요. 사람 진짜 많은..저도 알바때문에 매일 이용하던 역이었고 지금도 트라우마 남아서 어디 가면 비상구, 소화기나 창문 깰 수 있는 도구 등을 봐두고 들어갑니다. 참사 후 어느정도 정리되고 지하철이 재개되었을때 시커먼 벽에 희생자분들의 손바닥이 찍혀있는 벽을 봤었는데 지금도 있어요. 통곡의 벽이라고 검색하면 나오지만 일반인 공개는 안되네요. 여러모로 끔찍하고 슬픈 사고입니다.
대구지하철참사는 정말 생각하면할수록 가슴이 아픕니다. 화재상황에 당황해서 올바른 판단을 못하고 허둥댄 지하철공사 상황실 직원, 기다리라고만 한채 키 뽑고 도망간 기관사. 그들이 소방관님처럼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졌더라면 대구지하철 참사로 수백명의 사망자가 나오지는 않았을텐데.... 불을 지른 정신이상자는 운이 좋게도(??)지병으로 금방 죽었죠. 평생 고통속에 살아도 죄를 씻지 못할텐데 너무 편하게 갔습니다.
@@user-ll5ll6hl6b 정차후 연기가 밀려들어와 문을 닫고 여러차례 출발시도 했습니다. 그러나 출발 시도중 연결막에 불이 결국 옮겨 붙어 기관실과 연결된 전선이 타기 시작하고나서 기관사는 대피결정을 내려 문을 열지만 일부칸의 문만 열렸고 기관사는 몇명에 대피를 도운뒤 다시 전동차로 돌아와 키를 뽑고 대피했습니다. 그리고 전동차는 문을 열어놔도 키를 뽑으면 자동으로 닫히게 제작되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잘 알진 못했지만 당시 학교 선배님도 이 참사로 돌아가셨던 기억이 나네요. . . 또한 저 역시 30대의 나이에 소방관이 되고자 열심히 노력하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다시 부여잡게 됩니다. 만약 제가 소방관이 된다면 저 역시 김명배 소방관님처럼 누군가 위해 바로 달려갈 수 있는, 그곳이 어디라도 달려가서 구해올 수 있는 소방관이 되겠습니다. 모든 소방관님들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소방관으로서 후회보다는 먼저 간 동료를 지키지 못해 미안함이 남는다는 김명배 소방위님께 고개가 숙여집니다. 시뻘건 화마에 머뭇거리지 않고 맞서 생명과 재산을 구하는 모든 소방관들께도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듯이 소방관들의 노고와 애환을 간과하고 살지만 잊지 않겠습니다.
녹지직 공무원 중의 한사람입니다 녹지직 공무원도 산불이나면 일선에서 산을올라 불을끄는데 그때 마다 언제나 소방공무원분들이 출동하십니다. 산불진화도 어려운 부분중 하나이지만 불을 전문으로 진화하시는 소방직공무원들께서는 불 진화의 일부를 담당하는 저희도 상상도 못할정도로 힘든 일을 하십니다 소방공무원분들이 국가직 공무원이 됨으로써 조금은 나아질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소화장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존경하고 존경합니다
나는 진짜 전국민이 세금을 좀 더 내더라도 소방관님들은 월급을 400이상 받았으면 좋겠다. 인생을 바쳐 공부해서 들어가는 대기업의 월급처럼, 인생을 바쳐 현장에 들어가는 소방관들은 최소한 그들과 같거나 더 많이 받아야 저 노력과 고생에 대한 보답이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순직하시게 된다면 나라에서 그들에 대해 대우를 충분히 해줬으면 좋겠다.. 다들 마블 히어로에 열광하는데 그런 픽션에 빠져있지 말고 저런 진짜 히어로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소방관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그 뜨거운 불길과 어두운 연기속으로 사람을 구하러 들어가신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많이 힘드실텐데도 현장으로 달려가시는 모습을 보니 감사하기도 하지만 안쓰러운 마음도 듭니다. 후유증 치료는 잘 받고 계신가요? 이런건 나라가 해줘야하는데...늘 고생하시는 소방관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오래전부터 가장 존경하는 직업군이 소방관입니다. 특별한 권위나 부가 뒤따르지 않음에도, 자기의 안위보다 다른사람의 생명이 앞서는 선택을 매순간 하시는 분들...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소방관이 되시기로한 그 시작의 마음부터 매순간순간의 삶에 존경을 표하며, 깊이 감사드립니다!!
@@user-zu2zb2vk3x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게 10 몇 년 전인데 뭔 개소리니... 문재인 대통령 님 전에도 정부에서 도와주고 있었던 거란다... 무지한 친구는 그냥 댓삭하고 꺼지렴... 뭔 개논리 씨부렁거리노 ;; 좀 닥쳐라 ㅇ ㅈㄹ하는 년이 갑자기 태세전환 씹오지네
대학 선배님 이야기입니다. 저때 저 지하철, 마주오다가 불이 옮겨붙어 모든 피해를 다 입은 철량에 불이 붙기 바로 전에 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휴대전화를 받고 내렸고, 결과적으로 아무런 피해없이 잘 사십니다. 내리던 선배님이나, 그날 그 시간에 좌석에 앉아있던 승객들 다 하루의 짐을 지고 일상을 사시던 것이었을 텐데. 어머니 아버지 동생 언니 형 오빠 누나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그곳에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진짜로 직업들중에 모든게 다 힘들지만 소방관,경찰관,군인 이렇게 3직업군들은 정말로 나라에서 존경하고 대우도 잘해줘야한다 돈받고 공무원이라서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말자 우리가 내는세금 얼마안되면서 갑질하지말자 그리고 그분들 없으면 나라 개판되는건 시간문제다 항상 고맙게생각하고 다니자 군인,경찰관,소방관에 대한 고정관념들 언젠간 고쳐져야할문제다
@@user-jb7wm2ov3f 나도 요새 사람들 너무 예민한것같다고 생각했는데 조두순 사건 피해자 아버지 인터뷰 보니 예능에서 좀만 과격하고 폭력적인 장면이 나오면 아직도 힘들어한다는 얘기듣고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본인이 피해자가 아닌 이상 함부로 판단하는건 아닌것같다
살아계신분들도 화재때 생긴 유독가스나 재들때문에 목이 안좋으시고 트라우마로 살아있어도 산게 아닌... 고통속에 살아가고 계신다고 알고있습니다...ㅠ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랍니다... 대체 정신나가신 1분 때문에 몇분이 돌아가신건지... 다시한번 고인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날은 몸이 좋지 않아서 집에만 있었는데 밖에서 마당을 정리하던 할아버지께서 다급한 목소리로 시내 쪽에 큰 불이 난거 같다고 하셨습니다.( 집이 반월당이라 화재가 상당히 진행 됐을 때 꺼먼 연기가 보였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였던 저는 작은 호기심에 곧장 마당으로 나갔는데 정말 본적 없는 연기가 시내쪽에서 올라왔고 동네 사람들도 집밖으로 나와서 수군거리고 있었습니다. 그후 저녁 식사시간에 보게 된 뉴스는 그 어린 나이에도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참담했습니다. 그리고 등교 해보니 같은 반 친구의 조부모님이 당시 사고로 돌아가셨더군요. 그 친구가 많이 슬퍼하던 모습이 훌쩍 커버린 지금도 여렴풋 기억이 납니다. 단순한 기계결함도 아닌 방화. 오가는 사람들 많던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과 희생자들. 정말 몇년 동안은 큰 피해를 보지 않은 사람들 마저 지하철을 꺼려할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영상에 나온 소방위님, 유가족분들 모두 씻어낼 수 없는 상처를 마음 한켠에 안고 살아가시겠죠. 언젠가 꼭 피어나는 봄처럼 그 상처들도 조금씩 아물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진짜 소방관들은 돈 많이 줘야돼요. 방화복도 진짜 최고 좋은거 돈 상관없이 최고 보호 잘되는거 사줘야되고 혹시 부상입으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국가에서 100프로 책임지고 케어해줘야하고 진짜 저런분들이 계셔서 대한민국이 유지되는겁니다. 국민의 한사람으러서 정말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매일 중앙로로 지하철을 타면서 다니지만 진짜 대구 지하철 참사는 잊지 못할 사건이다.. 물론 그 당시에 그 자리에 없었고 뉴스로 접했지만 많은 시민분들의 사망과 많은 소방관분들의 순직하셔서 많이 화가났던사건 중앙로역을 지나가다 보면 벽 쪽에 그 당시 화재 진압을 위해 출동하셔서 안타깝게 순직하신 소방관분들의 성함과 출생년도가 적혀있고 추모벽에도 사고로 안타깝게 돌아가신 많은 분들의 성함들이 적혀 있는데 참 볼때마다 가슴이 먹먹 해지는 기분... 앞으로 이런 일 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저도 대구사는데 지하철을 타고 중앙로역을 갈때면 절대 중앙계단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중앙계단 개찰구쪽으로 나가면 추모공간과 아크릴판으로 막아둔 검게 그을린 기둥이 보이거든요. 너무 무서워서 무조건 앞, 뒤계단으로 나가버립니다. 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무서운데 당시 그 화마를 직접 겪으셨던 분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다시한번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저날이 생생히 기억나네요... 대구쪽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 집에서 쉬는데 아침에 뉴스에서 대구 지하철 그것도 사람이 제일 많은 중앙로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보면서도 믿기지 않아 멍하게 있다가 대구에 있던 친구들은 괜찮은지 걱정되서 전화하고 문자보내고... 어쩌면 내 일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중앙로은 많이 다니는 곳이라..) 무섭기도 하면서 많은 사상자의 발생에 충격받고 지하철이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에 또 충격받고... 지하철 마스터키만 뽑지 않았더라면... 좀 더 빠른 상황 판단을 해서 중앙로역으로 지하철이 진입하지 못하게했다면... 너무 큰 아쉬움이 있는 안타까운 사건이에요. 생존자분들도 트라우마에 고통스러워한다는걸 예전에 봤는데 많은 이들에게 큰 고통을 준 일이네요...
내가 저때 28이고,두살차이나는 울친오빠가 있는데,지하철 기관사였어요...그날 울집은 전화기 폭주했었죠...전국팔방 친척들 전화로...다행히 울,오빠는 저기 두 기관차 운전 파트가 아니었어요... 제가 아침에 뉴스보면서,울면서 오빠 어디냐구,전화하니 안심역 본부에 있다고 하길레 가슴 철컥했던 순간이... 지금도 너무너무 생생하게 기억이나네요...저두 트라우마로 지하철 안타요 ㅠㅠ
당시 중학생이었습니다. 저희 집은 중앙로에서 멀고 지하철역에서도 먼 편이라, 다행히 직접적으로 아는 분 중에 다치신 분은 없었어요. 하지만 나중에 추모하러 갔을 때 그 광경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비상구 안내 판이 무슨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무너져 있고.... 그냥 다 무너져 있었어요. 전부 다 부서지고 녹아있었다는 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어요. 사고의 진원지인 지하3층까지 갔었는데, 거기서 어떤 분이 주저앉아서 엉엉 울고 계시는데(아마 유가족이시지 않았을까요...) 저도 따라서 울다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잠깐 들어갔다 나왔을 뿐인데 코가 답답하고 목도 따가웠어요. 아직 어렸던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죽음” 그 자체의 광경이었습니다...
정말 너무 힘드셨을낀데 대단하시네요 진짜.. 저도 전에는 지하철 자체를 못탔는데 6년 전부터는 타고 다닙니다. 그래도 1호선만큼은 못타겠더라고요. 탄내가 너무 많이 나가지고.. 장난친다고 눈앞에서 혼자 지하철 탔다가 그대로 먼저 가버린 친구 울음소리가 들려서 못타겠어요. 중학교 입학이 지옥이었습니다. 있어야될 친구가 없어서
04년도에 대구로 대학을 가게되서 지하철을 탔는데 그때 정말 지하철에 사람이없었어요 그리고 기다리는 곳에도 지키는 안전요원이라고 해야하나 앞뒤로 두분이 계시더라구요 저도모르게 지하철문 비상시 여는법 지하철칸 번호외우고 소화기위치와 사고났을때 전화하는번호 다 보게되었어요 가게되는 역이면 지상으로 나가는 출입구도 외웠었네요 2년은 어딜가든 그랬던거같아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이런모습들이 좀 사라져서 잊고살고있었네요 잊으면안돼는데 .... 정말 슬픈일입니다 다시는 이런일이없었으면 좋겠어요 소방관님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출퇴근 길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해보게되는데 내가 지금 타고있는 지하철이 안전한지 갑자기 화재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피해야알지.. 저는 대구 지하철 참사를 겪어본적은 없지만 그 사건이 너무 충격이라 트라우마로 그런생각을 자꾸만 하게되네요... 안전에대해서 무섭고 걱정되고 안심할수없는...
사명감으로 일하시는분들.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자기목숨을 내놓고 현장을누비는... 일하는 환경이 조금개선됐다해도 해외에 비해선 아직 열악한환경. 다른사람들은 까도 이분들은 건들이지마라. 정퇴하시면 가족들과 좋은시간 보내면서 트라우마 이겨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