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이 실제로 복싱 레슬링 주짓수 가라데 등 무술 전부 접목하고 다녔고 그 전에도 태권도 기술 몇개만으로 사람들 털고다닌 전과가 있었음. 그 기억 전부 참고해서 새로운 절권도를 만들었다고 들음. 그리고 제자들은 전부 경기에서 챔피언급 될정도로 높은 위치에 있음. 특히 훈련받을때 좋은 성과를 냈다고함. 이소룡이 강한데에는 근거가 다 있음 ㅇㅇ 종합격투를 배운게 이소룡이고, 자는 시간빼고 전부 말도안되는 철깡따구때리는 훈련하고 다니면서 1분이라도 운동 더할려고 도구 들고 다님. 프로선수들이 존경하는 이유가 이게 다임.
이소룡에 대해 사람들이 대부분 착각하는 사실이란, 이소룡이 과학적인 근력 트레이닝 없이 무술 연습만으로 저런 몸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임. 그러나 당시에 보디빌딩 대회가 이미 있었고, 이소룡은 보디빌딩용 근육만들기를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책 여러종을 동시 구독했으며, 그 당시로서는 최신이었던 여러가지 트레이닝 전문서적을 보면서 연구했음. (당시 이소룡은 미국에 이민가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시절 최신식 스포츠 문화를 이용하고 있었음. 당시 미국에는 지금 우리나라의 회원제 헬스장 같은것도 다 있었음) 이소룡의 하루 식사량은 엄청났는데, 더군다나 거기에 더해서 지금처럼 단백질 파우더 보충제를 같이 섭취했었음. 평소 보통 사람의 3-4배를 먹었다고 함. (이렇게 먹고도 지방이 전혀 없는 몸을 보면 그 훈련량을 짐작가능함) 또, 이소룡의 집에는 벤치 프레스 같은 다종의 근력훈련 기구가 있었음. 이소룡은 하루 거의 종일을 훈련에 쏟았는데, 그 중 약 4시간 정도는 웨이트 트레이닝에만 쏟은 걸로 알려져 있음.
이소룡은 스포츠 경기에는 거의 참가하지 않았지만, 어린시절부터 싸움꾼으로 유명했음. 어릴적 어린동생이 공터에서 놀다가 큰 아이들한테 맞아서 울고 집에 왔기에 이소룡이 불같이 화를 내면서 내동생 때린놈 다 쳐 죽이겠다고 공터로 쫓아가 보니 그 많던 아이들이 다 사라지고 공터가 텅텅 다 비었다고 함. 알고보니 '울고 간 그 아이가 지금 이 일대에서 그 유명한 쌈꾼 이소룡 동생'이라는 소리가 퍼지가 모두가 다 도망가 버렸다는 것임. (인터넷 잡소리가 아니고 어느 이소룡 전기 서적에 나오는 얘기임) 그외 이소룡은 철없던 시절 싸움에 유달리 집착해서 늘 여기저기서 싸움을 하고 다녔고 남에게 일부러 시비를 걸어 싸움을 하는 적도 여러번 있었다 함. 당시 이소룡의 방 옷장 등에는 여러가지 흉기가 숨겨져 있었고, 밖에 나다닐때도 호주머니 칼을 넣고 다니고 배에는 자전거 체인을 두르고 다녔다고 전해짐 (이것도 어느 이소룡 전기 서적에 나오는 얘기임). 즉 어릴때부터 싸움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스타일이었음. 무술을 배우게 된것도 어느날 무술하는 아이한테 싸워서 지고 나서 순전히 그 아이를 이기기 위해서였다고 전기 서적에 나옴.
이소룡의 훈련법 중에는 오늘날에도 전문 스포츠맨들이 사용 하는 근육전기자극기도 있었음. 근육에 전극선을 연결해서 전기를 찌릿찌릿 넣어서 자극하는 방법인데, 이소룡은 이걸로 일반 전문 운동 선수들보다 더 높은 전압과 더 긴 시간으로 근육자극을했다고 함. 당시 이소룡의 트레이닝은 의학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모든 육체 훈련법을 본 지인들이 전부 그만두라고 만류했으나 이소룡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전해짐 (이 모든 이야기는 이소룡 전기 서적에 나온 이야기임)
당시 이소룡의 집에는 여러 종류의 샌드백이 있었는데, 모래를 넣은 것, 돌을 넣은 것, 철가루를 넣은 것이 그것이었다 함. 이소룡이 운동을 하는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할 때면 이것들을 차례로 쳐보게 했는데, 모두들 세번째로 철가루 샌드백을 치고는 주먹이 아파 쩔쩔맸다고 함. 이소룡은 평소에 이것들을 때렸던 것으로 보임. (실제 사람들의 증언이 있다함) 이소룡은 복근 단련에 거의 광적으로 집착했는데, 이소룡의 복근을 손으로 만져본 사람들이 '마치 배 안에 뼈가 들어있는거 같았다' 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또 어느 영화관계자가 이소룡의 이두박근을 만져보았는데, '마치 따뜻한 돌조각상을 만지는거 같았다'고 말했다고 함. 미국 태권도의 창시자라고 하는 이준구 사범이 당시 이소룡과 서로 자주 만나 수련을 같이 했는데, 당시 이준구도 1분에 푸쉬업을 100개를 하는 걸로 유명했음. 그런데 이 준구 역시 '나는 노력해서 강한거지만 이소룡은 타고난 강골이었다. 온몸 전체가 마치 쇠덩어리 같았다' 라고 매스컴에서 얘기했음.
위에 적은 얘기 거의 전부가 전기서적에 나오거나 매스컴에 보도된 이야기임. 결론적으로, 이소룡은 무술 품이나 잡는 단순 영화배우는 아님. 실제로 글러브 없이 맨손 싸움을 해보면 만만치 않을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함. 이소룡이 했던 신체 트레이닝만해도 웬만한 전문 운동 선수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
한 40년전에 알고있던 내용입니다. 와이프인 린다의 증언에 의하면 이소룡에게 붙자고 찾아온 사람들과 몇번 붙어 모두 이겼데요, 대결은 길어야 15초 정도면 끝나는데 한번은 대결시간이 30초 정도가 걸린적이 있는데 이 이후로 이소령은 30초걸린 결투에 몹시 큰 불만과 실망을 나타내며 이때부터 근육운동을 통해 큰 힘과 파워 증강에 매우 집중했다는 린다의 증언이랍니다^^! 추가로 덧 붙이면 무술가들중 이소룡과 스파링이나 대련을 경험한 모든 사람의 증언은 한결같이 공격이 이렇게 빠른건 처음이라고 입을 모은답니다. 발차기를 경험한 사람은 차에 친 느낌이었다네요^^!
성인이 되고나서 공식적인 전적을 세운 적은 없으나 브루스 리는 학창시절 모교의 복싱부에서 6개월간 연습한 것 만으로 홍콩 학생 권투대회에서 우승한 전적이 있습니다. 이후에 얼마 되지 않아 미국으로 떠나게 되어 이 일을 아는 사람은 드물더군요...미국에서 데뷔한 후에도 스티브 맥퀸, 제임스 코번 등 당시에 이름 꽤 날린 배우들이 액션을 배우고자 자진해서 이소룡을 찾아 올 정도면 무술감독(혹은 지도자)으로서의 역량도 갖춘 인물이었겠죠. 좌우지간 그가 사상만 번지르르한 무술가는 아니었으리라 감히 장담합니다. 비록 일부 몰상식한 팬들이 상상하는 만큼 절대적인 강자는 아니었겠지만 당시로서는 충분히 혁신적인 무술철학을 지녔던, 또 그 철학수준에 걸맞을 정도의 실력은 가지고 있었을 사람임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이소룡이 실제 싸움기록이 영상이나 그런게 없어서 실제로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만이 이소룡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슈가 레이는 자기보다 잘치는 사람이 이소룡이고 했고 맥그리거도 오직 이소룡만이 날 이길수있다고 했습니다. 영상으로 접할 수 있는 이소룡의 속도와 힘을 보았을때 헤비급챔피언이랑 붙어도 이소룡이 이길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소룡을 무작정 실전최강으로 내세우는 것은 다른 격투가들에게도 실례지만, 이소룡 본인에게도 실례입니다. 이소룡은 언제나 자기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거나 보다 실전적인 무술체계를 만들수 있는 사람이 등장할수 있다고 명심해 두고 있었습니다. '실전' 을 지향했던건 맞지만 '최강'이라고 단정 지어버리는건 극도로 꺼려했습니다.
이소룡은 영화배우이기전에 실전격투가였습니다 영화촬영현장에 당시 무술고수들이 찾아와 대결을 신청해서 결투를 벌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트레이드 마크인 괴조음은 영화에서나 하는 것이고 실전에서는 맹룡과강에서 척노리스와 싸울때처럼 다리를 미끄러뜨리며 간격을 좁히면서 대결하는게 실전방식이라고 합니다
이소룡이 전적 데이터가 없는거지 다른걸 찾아보면 잘아실수있으실텐데 이소룡의 주먹과 발차기속도는 무술인 그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우세하다. 그리고 이소룡은 모든 무술은 코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코어 운동을 하다가 극상의 코어 운동법인 드래곤 플래그를 만들어 내죠. 이로서 이소룡은 높은 밸런스와 발차기와 펀치를 누구보다 빠르고 안정적이게 할수있었죠. 그리고 이소룡 아내의 인터뷰를 보면 '그는 근력운동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하루종일 훈련을 할때가 많다.'라고 하죠. 이소룡의 활배근을 보면 답이 나오죠 그의 어마어마한 훈련량이 그리고 이소룡의 샌드백은 보통 샌드백들과는 달랐습니다. 보통이 30kg정도에서 높아야 70kg인데 이소룡의 샌드백은 특별 제작된 안에 금속이 들어간 130kg짜리 샌드백이였는데 훈련할때 발차기로 130kg짜리를 천장까지 올려버리는 그런 엄청난 발차기를 할수있었죠. 이걸 가늠하면 거의 높으면 90중후반대의 무게를 가진 사람을 발차기로 공중으로 날려버릴수있는 발차기를 했다는뜻이죠. 이것만해도 싸움을 못할이유는 없죠 적어도 지금의 ufc챔피언 벨트를 땃으면 땃지 못따지는 않았을겁니다. 그리고 이소룡은 그 시대에 사람들이 싸움을 정말 많이 걸어서 길거리싸움 연습도 많이 했다고합니다. 그 연습을하다가 많은 무술들의 장점이 합쳐진 절권도가 탄생한거고요.ㅎㅎ 그리고 이소룡의 대한 영상들은 적지만 쉽게 보실수있으신데 별로 찾아보진 않으셨나보네요 ㅎㅎ; 이만 수고하세요.
최배달 원래 최배달은 자신의 제자들이 어디에서 맞고오면 실력을행사하던 분이셧는데 제자들이 이소룡에게 맞고왓을때 그냥 침묵으로일관햇습니다 그리고 단순한 액션영화배우가아닌 모든무술을 배우고 또모든무술을 연구하던 무술철학가이셧습니다 그리고 절권도는 거의모든무술이 합쳐져잇고 그라운드에 필요한 주짓수의 대한연구도 있으며 주짓수기술이나 그라운드 기술도 많습니다 최영의의 이소룡에 대한 평가는 처음에 최영의는 이소룡을 오버액션하는 액션배우로 밖에 보지않았다. 그래서 제자들이 질문했을 때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 라고 일축햇다. 그러나 한참 세월이 지난 뒤에 다시 질문을 했을 때 최영의는 이소룡을 뛰어난 파이터로 인정하고 "싸워봐야 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이소룡이 가라테를 비롯한 동양무술을 전파시키고 세계적으로 유행시키는데 이소룡이 1등 공신 이라고 평가햇다 전적은 롱비치 가라데대회에서 모든 체급 실력자 들을 이겻습니다
이게 왜 4년이 지난 지금 추천영상으로 떴는지 모르겠지만... 이소룡의 전적에 대해서 설명 좀 하겠습니다. 당시에 무술계에 체계화된 랭킹 시스템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그 한정된 무술의 '룰' 안에서 짜여진 '스포츠'의 개념이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메이웨더와 맥그리거의 복싱 경기 아시죠? 메이웨더가 훨씬 우월한 기량으로 이겼습니다. 그럼 UFC에서 MMA룰로 싸워도 메이웨더가 이길 수 있었을까요? 붙어본 적은 없지만 MMA룰이라면 10판 싸워도 10판 다 맥그리거가 이겼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길거리에서 둘이 딱 부닥쳤을 때는 누가 이길지 알 수가 없죠. 룰 안에서의 랭킹을 매겨봤자 그게 실전 싸움의 순위를 대표하지는 못 한다는 게 이소룡의 무술 사상의 전반이었습니다. 이소룡과 절권도의 의의는 '무규칙' 실전 싸움에 있습니다. 현대의 MMA는 룰이 정립된 스포츠라고는 해도 분명 실전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죠. 이소룡은 기성 무술에 대한 비판의식으로 종합무술의 개념을 만든 건데, 왜 기성 무술의 전적으로 이소룡을 평가하는지 영상 뒷부분이 이해가 잘 되지 않네요... 비슷한 신체조건이었다면 당대의 무술가들은 무규칙 싸움으로는 이소룡을 절대로 이길 수 없었을 겁니다. 단일 무술은 무규칙 실전 싸움에서 반드시 취약점이 있기 마련이고 이소룡은 그 점을 간파해서 시대를 앞서갔죠.
이소룡은 단련수련을 많이 한것으로 알고 있다 단련수련은 형식에 갖추고 무술하는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다 형식보다는 무술가로써 싸움에 기술을 만들어가는 몸을 만들었다 그것은 이소룡의 몸이 말해준다 몸을키우기보다는 따른몸을 만들었고 힘에 기술보다는 스피드의 상대를 공격하는 기술을 터득한 사람이다 최영의 보다는 상대에서 올등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그리고 무거운 몸보다는 빠르고 스피트있는 몸이 상대를 공격할때 적이 없다 그리고 복심(단전에서 만들어지는 힘)에 그의 옆차기를 맞으면 끝나는 것이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파워라고 본다 나도 옆차기를 해보지만 그가 무슨 발차기를 하는지 알지만 파워에서는 그를 따라가기는 힘들다..(그래서 이소령의 강함은 무술가로써 존경할 뿐이다 ) 난 무술의 형식보다는 자기만의 무술을 터득한 사람이 더 강한사람이라고 본다 그가 바로 이소룡이다 몸을 어떻게 만들어야 강한파워가 만들어지는지 스피드가 만들어지는지 아는 사람은 이소룡뿐이라고 본다 싸움은 도장에서 배우는 형식대로 절대 되지 않는다 극진의 형식...태권도의 품세...그런건 싸움에서 쓰레기 일뿐이다 그냥 무술을 하는 자리에서 갖추어야할 체육관의 형식과( 형)일뿐이다 좀더 꼬집어 말하지면 이소령은 무술가이기 보다는 싸움의 기술을 터득한 사람이다 몸을 봐도 알수있고...강한 옆차기 한방이면 알수있고 스피드을 봐도 알수있도....복근을 봐도 알수있고 복심의 힘.. 중심에서 만들어지는 파워를 만들어..품어내는 힘... 파워는 이소룡의 몸에서 만들어 진다 무거운 몸보다는 빠른 몸이 성대를 이기는것이다 그래서 최영의와 대적한다해도 이소령은 이길것이다 그리고 한가지더 이소룡은 형식을 만들지않는 무술가 이다 따른 스피드에서 만들어지는 파워...이소룡을 말한다 무술을 하는 사람이 ...이소령을 동경하고 따르는것은 그처럼 몸을 만들고 싶고 그처럼 파워를 가지고 싶고 ... 그처럼 스피드를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종종 이소룡씨와 요즘 격투가들( UFC 선수들?)간 가상의 싸움에 대한 의견들이 많은데.. 다들 초딩도 아니시고 ㅉㅉㅉ... 이소룡씨는 배우겸 무도인이지만 생을 바쳐 자신의 관심 분야에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전을 위해 새로움을 창조하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그분의 가치를 인정해 주어야할듯!
- 그당시 이런 액션영화에 나오는 주, 조연들 무술이나 실전에 강한 사람들이 나올까요 그냥 아무나 합만 맞춰서 나올까요 - 이소룡이 주연이였던 영화들에서 나오는 많은 조연들 실제 무술실력이 어느정도 인 사람들이었을까요 - 그럼 이전 액션영화에서 이소룡도 조연으로 나왔었는데 액션영화에서 조연이 될 어떤 조건이 있었을까요 - 무술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을 유명하게 만드는것과 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유명하게 만드는것은 어떤가요 - 액션영화에 출연한 그 많은 무술인들과 그 당시 상당한 수의 무술인이 있었는데 왜 하필 이소룡이 무술로 제일 유명해졌을까요
세상에 이소룡이 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람도 있네요. 첫째로, 한가지의 격투스타일을 새로 창안하여 정립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정점에 올라있는 무인인 겁니다. 공부해서 되는 이론이 아님. 둘째로, 저 근육을 보면 답 안나옵니까? 저건 헬스장가서 웨이트 좀 한다고 만들어지는 근육이 아님. 근신경계훈련과 근지구력훈련에다가 스트랭서들이 하는 훈련까지 곁들여서 완벽한 격투신체로 만든 인간이 약할수가 있나요. 오로지 근비대훈련만 해서 덩어리만 키운 근육과는 질적으로 넘사벽임. 셋째로, 거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무술가들이 그의 휘하에 제자로 들어가길 원했고, 그의 무술을 칭찬했고, 그를 인정했음. 70년대에는 카메라 기술이 허접했는데, 영화촬영 당시에도 이소룡의 동작이 너무 빨라서 조금만 천천히 움직여 달라고 종종 부탁받았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동작들이 나오기도 했음. 아마 니멋대로 액션해봐라 이랬다면, 그냥 휙휙 움직이는 잔상만 보다가 끝나야했을 것임.
총알속도도 카메라로 담는데 무슨 인간주먹속도를 못담음? 이소룡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훈련하니 지금 격투선수도 단순 립서비스 아닌 존경의 의미임 이소룡 영화속 액션은 영화무술이지 이소룡 무술철학을 보여주는게 아니라고 이소룡이나 부인인 린다여사가 공식적으로 인터뷰 해도 왜 이소룡이 절권도를 알리기위해 무술영화찍엇다는 70년대 말도안되는 개소리를 지금도 믿는지? 실제 액션이 느린 배우도 좀더 빠르게 영화속으로 보여지게 되는 70년대 시절에 주먹이 너무 빨라 카메라에 담지못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가 21세기에도 먹힐거라 보는지ㅡㅡ
이소룡이 공수도와 가라데는 막대기로 휘두르는 것이고, 쿵푸는 쇠공을 휘드르는 것이다. 라고 하자.. 가라데 공수도 하는 일본에서 찾아와서 떼로 덤비었죠. 결과는 이소룡의 듣도보도 못한 괴성을 듣고 모두 쫄았서 싸움을 제대로 못했답니다. 그리고 이소룡이 뒷골목 싸움을 자주 했습니다. 회고록에도 "자신만 보면 모두 싸움을 걸어 왔다**" 라고 쓸 정도 였죠.
너무 잘 봤습니다. 흥미있네요... 그럼 인터넷에 떠도는 이소룡과 가라데 고수랑 붙은이야기, 최배달의 제자를 박살낸 이야기, 중국 고수랑 붙어서 30초 만에 끝낸 이야기는...그냥 헛소문인가요? 진짜 궁금해서 그럽니다. ^^ 아참,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노래 제목이 뭔가요? 넘 좋아요.
이 동영상을 올린 분이 나름대로 이소룡의 매니아? 내가 아는 이소룡, 물론 살아생전 인터뷰하는 것도 다 봤습니다. 음, 낫살 먹은게 탄로나나? 절권도에 관한 이소룡의 저술도 사서 보면서 직접 수련도 해 봤죠. 이준구씨가 본 이소룡의 모습, 역시 인터뷰. 내가 알기론, 이준구씨의 인터뷰, 알다시피, 이준구씨는 태권도의 마스터로 미국에서 가장 알려진 사람. 기자가 묻는다. "이소룡이 만약에 살았더라면, 세계 격투기계에서 어땠을까요?" "이런 식의 싸움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체급을 나누고, 링위에서 엄격한 나름의 규칙이 있고, 이래선 이소룡은 아예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십대 초반 이소룡은 하루도 싸우지 않으면 환장하는 싸움닭같았다고. 무슨 말이냐? 누구든지 강자가 있는 곳은 싸우러 갔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난다긴다는 싸움꾼, 세계 챔피언도 있었을듯. 체급구분없이. 그 부인이 일일이 이름과 특징, 걸린 시간까지 기록. 아직도 발표 안하는걸보면, 살아있는 사람들의 명예를 생각해서 그렇지 않을까 나름대로 생각. 이소룡의 인터뷰, 당시 국내신문. 온갖 최강를 찾아 싸우러 다녔다. 짧은 시간에 승부를 다 끝냈는데, 제일 오래 끈게 중국인 무술가, 도망만 다니더라는 것. 10분걸렸는데, 그가 졌습니다. 라고 말하니. 이소룡은 중국무술가에게 엄청 실망했다고 . 이런 것은 비공식적인 싸움이니 그가 비겁했지만 나름대로 견뎌낸 셈. 공식전적, 27전 27 KO승, 30초이내 승부 25전, 나머지도 아마 50초 안에 끝낸걸로 압니다. 그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체급구분없이. 동영상이 몇편 남아 있습니다. 내가 그걸 몇개 봤는데. 공울리면, 조금 쬐려보다가 순식간에 가격, 승부 끝~~ 그 외 비공식 전적이 쉽게 말해 강자들과의 대결, 80전이 넘었다고 합니다. 전승. 진게 있다면 인터뷰 당시 이야기 했겠죠. 거기엔 주지수의 창안자로 포함. 그가 자서전에서 남긴 게 유일한 일패가 이소룡과의 대결이었다고. 물론 그는 일본유도, 공수도, 그외 레슬링, 나름대로의 격투기술을 만들어 주짓수를 창안한 걸로 압니다. 그 뿌리는 일본유도와 공수도겠죠. 스포츠 유도가 아니라 실전유도. 왜 이준구씨와 친했느냐? 중국무술은 형식에 지우친다. 실전적이 아니다. 그래서 , 복싱, 펜싱, 태권도, 특히 발기술, 레슬링, 모든 격투기 기술을 다 섭렵했다는 말. 그런 가운데, 발기술을 위해 이준구씨에게 배운 것. 같은 동양인이고 하니 더 친했겠지요. 싸움은 덩치 크다고 이기는 것도 아니고, 작다고 지는 것도 아닙니다. 적수가 나서지 않으니 대략 2년정도되는 전미국 유랑을 끝냅니다. 그전엔 누가 쌈일등이다 하면, 직접 가서 붙었죠. 그 후, 연기에 몰두, 어릴때 홍콩에서 유랑극단 비숫한 곳에 소속되어서 연기를 했다고. 지금 유명한 배우, 성룡, 홍금보, 원표, 등 다 거기 출신인 걸로. 물론 후배. 전미 공수도 대회, 거기서 유명영화배우 척크 노리스 .미들급에서 우승, 그 뒤 각체급별 챔피언끼리 무제한 시합, 결승에서 헤비급우승자, 미들급 우승자 척크노리스. 승부는 30초안에 척크 노리스가 한방에 헤비급을 케오로 제압. 그는 한국에서 미군으로 복무, 그 때 태권도를 배웠고, 제대 후 이소룡에게 무술을 배웠죠. 덩치 크면 스피드가 떨어지고, 너무 작으면 파워가 떨어집니다. 실전무술에서 급소를 정확하게 가격하면 아무리 등치 커도 쓰러집니다. 척노리스가 우승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척이 한말, 기자가, "미국내 액션스타가 많이 있는데, 누가 제일 잘 싸울까?" "당연히 내가 제일 낫지." 슈왈츠네거도 자기에겐 상대가 아니다는 말. 이건 내가 인터뷰에서 직접 읽은 것. 이소룡의 말, "절권도의 제일의 타켓은 상대의 낭심이다. 가장 손쉬운 급소다. " 내가 쓴 글이 갖가지 이야기로 떠도는 이소룡에 대한 헛소문을 바로 잡는데 도움이 되기를. 휴, 앞으로는 절대 관심을 끊자. 어릴때 나도 미쳐갖고. 지금의 격투기선수와 붙으면 어쩔까는 의문이 많겠지. 그런데, 시대가 다른데. 이소룡은 규칙도 없이, 체급구분없이 맨몸뚱이로 상대를 부수워 온 사람. 미국에서 단지 액션배우로서만이라면 이 정도 전설로 남지 않았을 것. 그 당시 미국에서 유명남자배우들은 거의 이소룡의 제자. 왜 그랬을까?
영상 올리신 민호타우르스 이분은 좀더 알아보고 올려야 할 것 같네요 주관적인 견해만 한가득인데 공식적인 기록으로만 보면 당연히 이소룡의 기록은 매니아나 콜렉터가 아니면 찾기 힘듭니다 최배달은 도장깨기 당시 일본 매스컴에서 대서특필 했었구요 이소룡은 활동무대가 타지인 미국이었으니까요 이런 기록이 별로 없는게 당연하죠 기록된 영상도 지금 돌아다니는 영상들보다 많지만 콜렉터들이 오픈을 안하고 있고 여러번 출연했던 홍콩TV의 영상도 극히 일부 공개되고있어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궁금하긴 합니다. 실제로 이소룡이 ucf에 뛴다면 어떻 모습일까?이소룡이 특이한 점은 항상 생각을 한다는 점입니다. 그냥 몸만 키우는 머리가 텅텅빈 싸움꾼이 아니라작은 동작 하나 하나도 생각을 하는 "무술철학가"라고 불러야 적당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그의 특성 때문에 ufc경기에 출전한다면 단순히 상위권을 갈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대부분 하는 무난한 경기스타일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생각하지 못했을 그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킬것 같습니다.
힘이 어느 정도로 쎈진 모르겠고, 바벨 30kg짜리 수평으로 15초간 버틸 정도였다고 함...수직이 아니고 수평........... 헤비급 선수도 그 무게 그정도로 버티긴 쉽지 않을텐데............이게 사실이면 말도 안되는 괴물인건 확실함........... 보통 사람은 덤벨15kg로 컬도 하기 힘든데..............
사람들이 대부분 착각하는 사실이 그것임. 이소룡이 과학적인 근력 트레이닝 없이 무술 연습만으로 저런 몸을 만들었다는 착각. 당시에 보디빌딩 대회가 이미 있었고, 이소룡은 보디빌딩용 근육만들기를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책 여러종을 동시 구독했으며, 여러가지 당시 최신 트레이닝 전문서적을 보면서 연구했음. (그때 이소룡은 미국에 이민가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최신식 스포츠 문화를 이용하고 있었음. 그 당시 미국에는 지금 우리나라의 헬스장 같은것이 다 있었음) 이소룡의 하루 식사량이 엄청났는데, 더군다나 거기에 더해서 지금처럼 단백질 파우더 보충제를 같이 섭취했었음. 또, 이소룡의 집에는 벤치 프레스 같은 다종의 근력훈련 기구가 있었음. 이소룡은 하루 거의 종일을 훈련에 쏟았는데, 약 4시간 정도를 웨이트 트레이닝에 쏟은 걸로 알려져 있음. 그리고, 오늘날에도 전문 스포츠맨들이 하는 근육전기자극기, 이소룡은 그것도 사용했음. 일반 운동 선수들보다 더 높은 전압과 더 긴 시간으로 자극했다고 함.
이소룡의 강함은 실제 무술가들이 인정한게 많습니다 ㅇㅇ 대회경력이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무술 단수로 이소룡보다 위에있던 무술가들이 진심으로 붙은건 아니지만 이소룡의 몇몇 동작만을 보고 이길수없다라고 판단했다는 말도 많았죠 영화촬영때만해도 이소룡의 동작이 너무나도 빨라서 슬로우모션으로 찍어야했다고 할정도니까요
제가 항상 궁금해 하는 것 중의 하나가.. 고 최영의 총재께서 미국에서 공개 격투를 벌일 때 분명 촬영을 했을 터인데 그 중에서 왜 하나도 발굴되어 공개되는 것이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그나마 이소룡은 보호구를 착용했기는 했지만, 자유 겨루기를 하는 동영상 정도는 있는데요..
나름의 주관으로 혹독하게 운동하는 것을 즐겨했던, 당시에 꽤 멋있는 액션 영화도 만들어냈고 우리같은 사람들은 해내지 못한... 영향력과 업적을 남긴 사람, 영화배우 였음에는 이견이 없다. 영상대로 게임이나 영화로도 후세에 영향을 미쳤고, 또 몇몇 격투기 선수들이 좋아하는 사람으로도 거론 되는 등... 나는 이사람을 싸움꾼이나 격투가가 아닌 자신이 바라는 것을 했으며, 하나의 업적을 남기는데에 성공한 사람으로 존경한다. 격투가로서의 실력으로 지금까지 많은 찬반의 언쟁이 무수히 일어나지만 당사자인 이소룡은 강했든 약했든 자기 주관이 뚜렷해서 그것을 관철하다가 떠난 멋있는 남자이지 않은가?
만화 그래플러 바키에 나오는 최강 토너먼트편의 모티브가 된 발리투도 경기를 보고와라 발리투도 선수들 보호장비가 마우스 피스가 전부야 더 쩌는 건 맨손으로 다이 다이 까거든 정말 무술 좋아하는 데 그거 보고 충격먹었다. 팔꿈치는 물론 박치기(박치기는 그라운드 싸움에서도 가능함 ) 그 외 수도, 손바닥 치기, 점프 스템핑, 싸커킥 등 다 허용되 객관적이건 주관적이건 개인적이건 진짜 완벽한 싸움 , 그리고 실전은 발리투도 경기 한편 보면되 그냥 발리투도 선수들에게 존경이 저절로 따라온다.
밑에 가라데 시초나 태권도 관련해서 말이 나와서 댓글써봅니다. 1990년대초에 이런 글을 쓰게되었다면, 아마 저는 한국에서 살 지 못하고 항상 태권도나 합기도인에게 폭행위협에 시달렸을지도 모르겠네요. 도올 김용옥 선생이 이런글을 논문으로 냈다가, 2년간 한국에서 살지 못하고 일본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그냥 별 얘기 아닌 역사의 흐름정도가 되어버려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1. 가라테(공수도)의 시초. (중국 남권 진원빈) 중국(명나라)의 진원빈이 무자수업중 표류하다 오키나와(당시 류쿠국)에 도착하게됩니다. 당시 오키나와는 17세기 일본의 사쓰마번에 점령당하여 대부분의 철로된 무기와 철등을 탈취당하고, 사실상 자기방어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진원빈이 전수한 중국남권은, 손기술 위주인 남권을 더 간략하게 만들어 전수하여 당수(唐手)라고 불렀습니다. 오키나와테라고도 불려왔고, 이것은 나중 가라테의 테(데 :手)의 기원이 됩니다. 20세기초에 '후나코시 기친'(근대 공수도의 아버지) 에 의해 일본 본토로 전수되고, 중일전쟁으로 인해 중국에 대한 감정이 안좋아지자 중국을 나타내는 당(唐)자를 폐기하고, 발음이 같은 손이 비어있다는 뜻으로 공수(空手)라고 바꾸게 됩니다. 2. 극진가라테 (배달 최영의) 전통적인 가라테인 쇼토칸 가라데에 의문을 나타내고, 훨신 실전적으로 무장한 최배달(본명 : 최영의)이 일본전역에 실전시합(또는 사합) 최강의 무술가로 자리잡아 유명해집니다. 3. 최홍희 장군 (태권도의 창시자 / ITF 북한 태권도 창시자) 한국 태권도의 아버지 최홍희 장군은 어렸을 적, 한국에서 시비로 인해 일본유학의 길에 오르고, 일본에서 쇼토칸가라데를 수련하게 됩니다. 후에 한국에 들어와 군 장교가 된 최홍의 장군은, 이승만 정권초에 자신이 배운 가라테를 제자들과 함께 형과 격파시험을 보여줍니다. 그 때, 이승만이 "거~ 태껸이로구만~" 이라고 아는척을 하고, 최홍희 장군은 그 다음날 발족자가 들어간 '태'와 주먹권자인 '권' 그리고 길 '도' 를 붙여 태권도라 이름 붙여 알립니다. 그리고 가라테의 형을 그대로 베껴와 현재의 품세를 만듭니다. 그때는 팔괘라는 이름이었다가 후에 한국전통무술인 수박의 품에 영향을 받아 '품세' 라고 바뀝니다. * 첨부 --------------------------------------------------------------------------------------------------------------------------------------------------------------------------------------------------------------------------------------------------------------------------------------------------- (비슷한 사례로 AIKIDO (일본 합기도) 한국 합기도와의 관계 같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대동류합기유술을 수련받은 최용술이 한국에 '유권술'이라는 이름으로 대동류를 전파합니다. 일본은 그 당시 '모리헤이 우에시바'(식지석평)가 합기도라는 이름으로 (일본발음 아이끼도-영어 AIKIDO) 먼저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던 때 였습니다. 이후, 최용술의 제자인 지한재 (한국 HAPKIDO의 창시자 - 이소룡의 사망유희에 등장함) 가 같은 이름인 합기도로 개명을 하고 한국에 전파하여 한국 합기도의 아버지가 됩니다. 무술 체계로써, AIKIDO는 대동류에서 나와 호신술 개념으로 타격이나 발차기가 없는 유술개념이고, HAPKIDO 는 유술보다는 타격+유술+체조등이 포함된 종합격투기에 더 가깝게됩니다.) 한국 무술의 기원은 수박이나 수박희 (십팔기는 별개로 하겠습니다.) 빼고 대부분 창시자나 기원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합기도는 최용술 도주가 지리산에서 도인을 만나 전수받았다고 했고, 태권도는 수박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그 기원이 모호하게 만들어 창시자들을 신격화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른바 신비주의 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 후, 다른 의견들은 전부 매국에 가깝게 생각하게 되었고 아는 사람들도 쉬쉬하는 분위기였던걸로 기억합니다. 태권도, 합기도가 일본에 기원을 두었고 일본의 무술들은 오키나와 나 중국에 기원을 두는 이런 얘기들은 2000년대가 되고나서 조금씩 풀려나온걸로 느껴집니다. ------------------------------------------------------------------------------------------------------------------------------------------------------------------------------------------------------------------------------------------------------------------------------------------------------------ 자료출처 - 도올 김용옥교수의 태권도의 이론과 철학 - ko.wikipedia.org/wiki/공수도 (위키백과사전)
3. 최홍희 (ITF) - 최초의 태권도협회 창시자. - 전통적인 태권도 협회를 WTF로 알고있지만, 실제로는 북한의 태권도연맹이 먼저 설립되었습니다. 후에 북으로 망명하여 북한의 국제태권도연맹의 창시자가 됩니다. 보다 실전적이며 전통적인 움직임을 표방하며, 직선보다 곡선의 움직임. 그리고, 연계기가 있습니다. 최용의 사후 여러계파가 분열되고, 황수일 사현등 맞서기와 기술명, 기술등을 바꿔 분열된 유파도 많이 생겨나게 됩니다. 김운용 IOC 위원장에 의해 올림픽에 채택되어지고, 대한민국의 태권도는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나 안전과 대회위주, 발차기위주, 시합시스템의 발전등으로 인하여, 실전성보다 대중화와 정치,사업등을 위해 스포츠화 됩니다.
전반적으로 우리 무술에 대해 잘 아시네요 나도 이런 사실들을 알고 가슴이 아파서 잠이 안 온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것이라고 교육받아서 태귄도 합기도 등에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에 자랑스러움과 자부심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다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그 배신감이란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인데 일본에 가서 일본 무술을 배워와서 일본과 무술 교류했다고 학부모들에게 사기의 홍보나 가정통신문을 보내는 관장도 있더군요
박준배 네. 이런 사실들이 상식이 되면서 90년대초 매체에선 다른 무술로 거듭났다고 많이 얘기들 했고 저도 당연하다여겨 큰 언급을 못했는데 추가설명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론 이왕 바뀌고 계속 발전해 나가는 상황이었다라면 주먹과 로우킥도 사용하는 스포츠로 발전시켰으면 하고 생각했으나, 역시 극진가라데와 비슷해질수밖에 없으니 방법이 없었겠다 싶은 생각이 드네요. 고견에 감사합니다.
@@코기엉덩이 근데 그렇게 맞추기 어려우면 낭심차기랑 눈찌르기를 금지를 안시켰을거 같습니다...선수들이 일반인 상대로 피하는 미션을 보면 일반인도 그래플링, 발차기 같은걸 안하는 식으로 제한을 둡니다. 무하마드 알리가 코너에서 펼친 신기에 가까운 회피도 타격만 허용되는 경기여서 가능하지 발차기와 그래플링이 허용되면 다른 양상이 되었을 겁니다.
이소룡은 현대 무술을 정립한 사람입니다. 그걸로 충분히 존경 받을 만 하지요ㅋ 하지만 지금 절권도 한다는 놈들은 70년대 버전 절권도를 흉내 내고 있음; 이소룡이 절권도를 창시 할 때는 끊임 없이 변화하는 무술을 추구했는데, 지금 절권도 흉내 내는 놈들 보면 지금 시대에 전혀 맞지도 않는 액션 영화용 무술이나 하고 있으니 한심 할 따름임. 오히려 이소룡 사후 40년이나 기술이 진보한 종합격투기가 진정한 절권도라고 할 수 있음.
현재 절권도 스타일의 무도가를 너무 질책할 필요는 없다봅니다. 그사람 역시 완성된 스타일이 아니기때문에 기본이란게 필요할테고 그 미러링이 잘아는 그런 스타일일테니까요. 기본조차 되지 않는데 난 형태가 없는 파이터야 하면서 뒷짐지고 스파링할순 없지 않겠습니까. ㅎ기본과정을 지난다해도 이미 길들여버린 그 스타일이란걸 버린다는건 일반인으로썬 꽤나 어려운일이라생각합니다.
이소룡의 절권도가 인정 받는 것은 전통을 파괴하고 진화 시키는데 있습니다. 70년대 절권도는 40년이 지난 지금 기준에서는 잘 못 된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 절권도를 한다는 놈들은 오히려 전통에 빠져서 변화 하려고 하지 않죠. 변화 하지 않고 전통에 머물러 버린 순간 더 이상 절권도라 할 수 없죠. 이 시대의 MMA야 말로 끊임 없이 진화 한 절권도라 보여집니다. MMA가 유행하던 21세기 초랑 비교해도 엄청 진화해왔어요.
20세기 이소룡이 출연한 당산대형,정무문,맹룡과강,용쟁호투,사망유희 모두 21세기인 현재에 봐도 손색없는 액션과 이소룡 특유의 카리스마를 뽐낸다. 이소룡에 대해 우리는 그가 강자인지 약자인지 논할 수 없다. 그는 전설이였다. 특히 1970년대 1980년대 대한민국 남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였다.
아뇨,이소룡은 실질적으로 강합니다. 무술이나 근육같은 신채적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보면 알수있습니다. 이소룡의 근육은 완벽한 근육이죠. 스피드는 스피드 대로 파워도 파워대로 나오는 완벽한 근육이랍니다. 그이유가 이소룡은 대근육보다 소근육을 더 많이 발전시켰죠 이소룡은 키172의 몸무게60~52?그정도의 그리 특별하지않은 아담한 채격이지만 대근육을 그리 안발달 시켰기에 채격이 아담하였죠 하지만 실질적으로 대근육은 멋을 위해 보드빌더들이 키우는 근육이라 하더군요.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 미국에 도망치듯 단신으로 갔던 이소룡을 미국사람은 그의 무엇을 보고 그의 도장에 들어갔을까... 그 당시 미국에는 가라데 도장이 많았고 동양인 차별도 심한 때였는데 미국사람들이 이소룡에 대해 어떻게 알고 그의 도장에 들어가서 배우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그땐 이소룡이 배우도 아니었고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그가 유명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자꾸 배우를 언급하는데 배우되기전 그의 행적을 알아봐야한다. 동양인 차별도 심했는데 그렇게 유명한 배우가 나오는 그린호넷에 그가 나오게 되었는지 굳이 마스크까지 해가며 왜 그를 거기에 출연시켰는지 이유를 생각해보면 된다. 그리고 싸움전적기록이 없다...는 얘기는 달리말하면 그 만큼 이소룡이 미국에서 갔을때 그는 미국인들과 미국내 무술가들에게 "듣보잡" 이었다는것. 이 듣보잡에서 유명인으로 탈바꿈하게 된 중간의 단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직접찾아보시길.
이소룡이 쌍절곤으로 탁구시합하는 장면을 못봐서 이소룡의 실제 싸움 실력을 의심한듯. 쌍절곤으로 탁구시합할 정도의 시신경 운동신경을 갖췄다면 분명 같은 체급에서는 최강의 실전 싸움 실력을 가졌다고 보아도 무방함. 그리고 반칙이 허용되는 겨루기라면 몇 체급 위의 고수도 이소룡이 이긴다에 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