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쟁이 원인 맞다고 본다. 다만 같은 당파도 사태의 심각성을 도저히 외면못하니 바른소리를 한거지 김성일도 당시 보고들은 다른사람과 같은 생각을 했다고본다. 김성일이 민심의 동요를 막기위해 임기응변으로 맘에도 없는 거짓보고를 했다는게 변명이라면 그 배경은 당파의 이익때문일 것이다.
김성일役의 故김흥기님이야 명배우씨고 선조役 故이신재님 작년에 별세하셨네요. 운영자님 故이신재님 출연한 회차 중에 "정도전VS정몽주"에서 정몽주役하셨는데 그 회차 좀 올려 주실 수 없나요. 글구 안병경님이 신돈役맡은 회차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다른 역사다큐였나? 암튼 그 회차도 올려주시면 고맙겠는데...
글쎄요~!!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김성일은 경상도 초유사에 임명됩니다 이후 김성일은 곽재우 같은 의병들을 관에게 적극 지원할수 잇도록 도와주웠고 덕분에 50명에 불과하던 곽재우의 의병이 2천명까지 불어날수 잇었음 또한 진주성에선 목사가 죽자 판관이던 김시민을 독려하여 진주성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하엿습니다 김성일은 2차 진주성 전투 직전에 병사하였는데 ,사람들은 김성일이 살아잇었으면 2차 진주성 전투도 이겼을꺼라며 안타까워했음 그리고 김성일은 곡식을 내놓지 않는 부호들을 잡아다가 볼기를 치고 곡식을 빼았아서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엇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꾸 조선이 왜침을 방비 못했다 하시는데, 통신사가 가져온 토요토미의 국서에 이미 명나라로 갈터이니 길을 열어달라고 노골적으로 침략을 언급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은 평시보다 2배 많은 수군들을 양성하기도 했죠 문제는 보통 침략하는 왜구의 2~3배 수준으로 알았던 일본군들이 17만명이나 올줄 몰랐다는 거죠 또한 조선은 이미 임진왜란 전에 조총을 구해서 실험도 해봤어요 근데 화약도 부족하고 조총의 대량생산도 불가하기에 화포 개량에만 힘쓴 겁니다 그래서 육지전투에선 조총에 많이 힘들어했지만, 대신 해전에서 조선의 화포가 큰 활약을 한것이죠 일본의 세키부네 같은 주력선들은 판옥선에 비해 선체도 약하고 화포도 거의 없엇으니까요
조선은 왜침을 대비하고 있었어요 조총도 구해서 테스트 해보았고 수군도 평시보다 2배나 증원하엿습니다 문제는 왜군이 17만명이나 올줄 몰랐던 거고 당시 일본은 100년간의 전쟁을 거치면서 병사들이 아주 숙련된 상태이기도 했죠 솔직히 조선은 명나라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일본에 정복 당했을 겁니다 명나라는 조선에 군사뿐만 아니라 화약과 무기,식량 등을 엄청 지원해 주었거든요 실록에는 왜란 초기에 군사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장계가 다수 있습니다 일본군 또한 조선에 와서보니 조선이 이렇게 못사는 나라인줄 몰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나라가 어떻게 10만 상비군을 둘수가 있을까요? 사람들은 이율곡이 10만 양병론을 주장햇다고 알고있지만,누구보다 실상을 잘아는 병조판서 출신 이율곡은 그런 말을 한적이 없습니다 그게 당시 농업국가인 조선의 한계인 것이죠
@@user-hk5vt2im6s 그래서 성리학자들이 이끈 조선 역사가 침략전쟁에 국토가 유린되고 동란으로 귀결 된건 무능과 부패 외에 뭐라하실런지 설마 일제 해방 후 대한민국이 성리학교육의 영향으로 이리 발전된거라고 주장하는건가요? 공자 맹자 찾던 청나라와 조선만 무능과 부패로 열강의 약탈에 농락을 당했는데 그당시 열강중에 성리학이나 찾던 강대국이 있었는가요?
위키백과엔, 황준길도 황희의 고손자, 황진도 고손자라 하고, 또 황준길이 황진의 5촌 당숙이라는데 촌수가 헷갈리네요^^ 영상에선, 황준길이 황진에게 반말하는 것으로 보아 황진이 조카뻘인 듯 싶은데요^^ 누구 아시는 분 댓글로 부탁드립니다 ^^ '황진 장군'을 영화로 만들고 있다는 풍문도 있어서 궁금증이 더 하네요 ^^ 황준길은 보고를 정확히 해서 임진왜란 극복 1등공신으로 책록되었다는군요. 임진란 터지자마자 병사했는데두요. 이순신 장군은, 3등 공신으로 하자 유성룡이 "너무 눈치 보인다"고 간해서 2등 공신으로 해줬다던데요. 선조 "마부"는 1등공신으로 했다더군요^^ 선조 그 양반, 개콘 대상 감이네요 ^^
학창시절 과학 기술 전기 전자 물리 화학 공학 컴퓨터 의학 음악 미술 체육 문학 등 이공 관련 공부보다 영어 등등 외국어 공부에 우선하여 시간을 할애한 결과ㅡ사회에 나와서 영어 시험 성적 상 ㅡ정도에 그치고 벙어리 까막눈에 불과 했었다 누가 나에게 자문을 구한다만 거두절미 시대에 걸맞는 이공계 관련 ㅡ적성에 맞는 과목을 하나 선택 집중 하라고 말하고 싶다 어학은 그 한계가 있다 영어 공부를 한다고 미국인처럼 영어를 잘 구사하지는 못한다 그저 시험성적 평가우선 할 정도가 보통인것이 자명하다 그시간에 컴퓨터 전산 물리 화학 생물 전기 전자 등등 실물 과학에 우선 남다른 스스로의 공부가 훨 더 나은 장래가 예나 지금이나 보장될 것이다 이같은 진로결정 상담의 학창시절 그 중요함은 이루 말할수가 없는데 대부분 소홀히 간과ㅡ인생을 망치고 허비한다 지금은 대세가 이공계이다 80년대 우린 인문학 문과가 대세 10반중 ㅡ6:4였다 문과6:이과4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요즘은 어떠한지 전혀 모르겠다 그당시 수학을 못해서 자연 문과를 택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영어단어 외우는데 시간을 다보내었으니 무엇이 남았겠는가? 아직도 수학에 대한 탐구와 미련이 남아 있다 이과와 수학은 전혀 다른 것이다 산수와 수학이 다르듯이 나의 재능은 오히려 이과의 탐구 정신에 더 우선함을 뒤늦게 알았다 영어 공부의 결과는 미미했다 스스로의 선택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와의 자문도 아주 중요하다 이러한 자문기관이 어디 있는가? 올바른 진로 상담과 인생항로 개척 실로 어렵다 지나고 뒤돌아 보기전에는 둘다 같이 병행하는 것이 어떨런지
김성일이 거짖된 보고 우리민족에 엄청난 고통과 피해의 끼유친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를 보면 임진왜란의 이전을 보는 것 같다. 더블어 민주당을 보면 우리나라 국민이 아닌 것같다. 그런데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자들에 우매함이 곧 나라에 큰 위기에 처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