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벌 넓은 들에 뭉친 용사들~ 서해 수호와 인천 및 수도권 방어를 위해 용맹함을 자랑하는 번개부대 훈련소 및 신교대 에서 최고로 가고 싶은 부대에 항상 1~2순위를 다투던 꿈의 17사 낭만과 추억을 찾아 조성현 구독자 님과 떠납니다 #17사단#꿈의17사#번개부대#고성균장군#송내역
101연대 인천 해안을 담당하던 시절 예하 대대가 5공수여단 바로 옆에 있었죠. 저는 101연댜 전투지원중대 운전병으로 저의 소대가 해안 경계 지원을 나갔습니다. 운전병이라 대대와 해안 중대를 왔다갔다 했는데 어느날 타중대 선임하사와 대대 들어가니 5공수여단장 이취임식이 있어 화환을 전달하려고 하는데 저보고 들어 가라는 청천벽력의 지시가 내려오더군요. 그러자 해당 선임하사가 항의를 하고 이에 가슴에 공수부대 마크를 단 대위와 같이 들어갔습니다. 제가 들어가다 맞을 수 있어 가기 싫다도 하니 내 동기들 많으니 걱정 말라며 안심을 시켰습니다. 들어가서 차에서 절대 내려오지 않고 나온 기억이 있네요. 1988년 일입니다.ㅎㅎㅎ
1985년 4월24일 경남출신들이 마산역에서 의정부 306보충대로 수송되어 27일에 17사단 사단훈련소로 입교하던 때가 생각나는군요. 38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17사단 사단가를 잊지 않고 있는 것은 아마도 젊은 시절의 자취가 깊이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영상을 보니 유격훈련장 가던 허허벌판, 시골역처럼 작았던 송내역 등이 굉장히 많이 변해 알아볼 수가 없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영상 잘보았습니다.
1987년 9월 2일 306 보충대로 들어가서 9월 5일 각 부대로 갈 때 내무반에서 대기하면서 본인들의 군번이 불려지면 나가서 고속 버스를 타고 부대로 갔습니다. 내무반에서 대기하면서 모두 17사단을 갈망을 했습니다. 저도 제 번호가 불리어지고 버스를 타니 버스는 우회전을 하면서 북으로가고 다시 동으로 서로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서 우리의 위치를 잃어버리게 했으나 이정표에 인천이라는 글자가 나오는 순간 모두 환호를 질렀습니다. (제 인생에 손꼽히는 기쁜 추억입니다) 지금은 사단앞 도로가 넓으나 당시는 좁고 차량도 별로 없어 경인로에서 사단 들어가는 좌회전 신호를 7초정도를 주어 운전병들 글로 적기 곤란한 별병이 붙었습니다. 신병떄 유격장 가는 길에 전선 야곡을 부르게해서 울면서 '이제부터 효도하겠다'는 공염불의 맹세를 했고, 유격장 거의 도착했을떼 조교가 뒤로 돌아 내려가라고 했을때 우리 모두 개기고 끝까지 내려 가지 않자, 조교가 우리를 꽤심히 생각하면서도 인정을 한 기억이 있습니다.(유격장 가는길 1meter가 마지막에 나온 계양산에는 지금은 편제에서 사라진 101연대 4대대가 위치했고, 4대대 일반 하사들이 101연대의 유격 조교들 했고 계양산에서 기초 유격을, 소래산에서 종합 유격을 했습니다.
와!! 제가 근무햇던 사단이네요 ㅎㅎㅎ 저는 90년대 초반에 17사단 포병대대에서 28개월 복무했습니다 ^^ 이리 보니 반갑네요 옛 생각이 새록새록 납니다. 제가 복무한 포병대대는 검단에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곳으로 부대이전을 했을겁니다. 서해의 밝은기상 한몸에 안고 경인벌 넓은들에 뭉친용사들~~!!
@@장군멍군 장군님 너무 억울합니다. 저와 제딸아이는 용서를 안했는데 판사가 법이 대신 용서해 주네요. 재판장 어디에도 피해자 자리는 없습니다. 판사님한테 너무 억울하다며 일어나 소리쳤더니 쫒아내는 세상입니다. 아이한테 앞으로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올바르게 사는거라고 이야기를 못하겠습니다. 가해자들 기소부터 1심 2심까지 수없이 쫒아다니면서 이건 수사방향이 잘못됐다. 그렇게 외치고 변호사도 선임해서 대응했는데 결과는 피해자인 저희 딸아이 몫임니다. 너무 세상을 순수하게 살아온것 같고 아이한테 해줄말이 없습니다. 세상이 원래 그런거라고 말해줄수는 없는거잖아요. 그럼 아이의꿈도 아이의 희망도 무너져 버릴까 두렵습니다.
이때까지 소개해주신 부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17사단이 큰 도시에 있다 보니, 도로도 2차선이 아닌 6차선이고, 그리고 피시방과 당구장 등 놀거리도 타부대와는 달리 그 규모가 크다고 느껴집니다. 사실 위병소를 나와 외출이나 외박을 할 때에 장점이 있는 것이지, 부대 안으로 들어가면 인천이나 홍천 그리고 양양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7사단과 같은 큰 도시에 있는 부대의 주변 모습이 참 궁금하였는데, 마침 장군님께서 영상으로 올려주시어 그 갈증이 해소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너무 잘 보고 갑니다 장군님~~^^
안녕하세요, 저는 꿈의17사단이 부러워하는 61사단 출신입니다. 바로 옆 17사단이 영상 주제로 나오는걸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비록 61사단은 없어졌지만 잠시 추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61사단이 꿀이라고 하지만 저는 155mm 견인포병이였기에 80kg대로 입대하여 60kg대로 살이 빠져 지방은 없고 가죽만 남은채 전역했었죠..ㅋㅋ
어디든 편한 곳 없듯이 어디든 중요치 않은 곳 없다 생각합니다^^도심에 있어 그만큼 책임이 막중한 곳이었네요^^ 저도 한번씩 어릴적 살던 곳이 생각나 가보곤하는데 갈때마다 어릴때 자주갔던 장소가 그대로 있으면 얼마나 감회가 새로운지 모른답니다*_*오늘 영상이 딱 그러하네요^^
꿈의 사단이라지만 교육사단이라 매일 연병장에서 목이 터저라고 교육 훈련을 했네요.대대장이 사단장한테 잘보이려고 매일 사단장 근무처까지 들리도록 악을쓰고 큰소리로 교육훈련 한다는 웃지못할 예기가 있었죠. 겨울철 눈이라도 내리면 사단 후문가는 도로를 계속 쓸던 생각..어쩌다 눈이라도 굳으면 야삽으로 끍으면서 식깡으로 물 떠다가 미신아웃하던 생각... 사단장이 곧 대통령.. 81년도엔 사단장 소장 안필준님.... 얼굴은 전혀 기억도 없고 외웠던 관등성명 기억만...ㅎㅎㅎ
04-06년도 101연대 1대대 근무한 전역자입니다 그때당시 송정역에 있는 부대안에(서울안에 있는부대지만 시설이 열악했었죠) 연대정신교육때 교육받던 일이 기억이 납니다 그 인연을 바탕으로 장군님 유튜브 구독과 많은 시청하는데 제부대가 나오니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 당시 교육때도 느꼈지만 너무나 좋은 말씀 경청하고 있습니다 올겨울 추위, 건강조심하세요 충성!!
고장군님! 17사단과 그근처 송내역 등 가셨군요 ㅎㅎㅎ 제 유소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자라난 곳인 부천~!은 지금도 제가 가끔씩 가는곳입니다 ㅎㅎ 송내역 또한 집으로 가는길에 또 무조건 들리게되는 곳이죠~ 어렸을때 검도학원 끝나고 아마도 17사단 부대 군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전차를 끌고 가는걸 한두번봤던 것이 기억납니다 ㅎㅎ 여튼저튼 제가 자주가는곳 + 인천,부천의 무대를 감상하고 오셨고 들르셨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86년당시 저희 강원도부대기준으로는 경기도 부대이면 다 꿈의 부대로 보입니다. 강원도에서도 워낙 오지인데다 신기슭이라 당시 도로사정, 교통편 도 열악하고 , 부대시설 열악하고, 서울이 집인데도 휴가신고후 집도착까지 5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파주나 경기도 쪽 친구들은 2시간도 안되 집에 도착하더군요. 거기다 험한산세와 맹추위는 보너스., 집에자가용 가진친구도 거의 없어서 연로하신 부모님들은 대중교통 갈아타고 찾아오기도 쉽지 않았죠. 30개월내내 가족이 면회 한번 안오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논산에서 나와 열차에 올라 서울에 내렸을때만 해도 서울이나 수도권근방인줄알고 좋아하다가 성북역에서 춘천가는 열차로 환승하는 순간 눈앞이 캄캄... ㅎㅎ 지나간 추억입니다.
멸공 !!! 제가 33개월 (1977. 2. 22~ 79.11. 15)복무했던 33사단(나중에 17사로 변경)이 소개되어 반가움에 얼른 들어왔습니다. 102연대 6중대에서 군자, 내륙, 월미도에서의 추억이 새롭습니다. 지금은 70이 눈 앞인 노병이지만 우리 33사(17사) 장병 여러분, 우리 국군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무사히 전역하시기 바랍니다. 그때의 경례 구호는 "멸공" 이었고 졸병때는 목이 터져라"멸콩"했는데, 고참이 될수록 "멸공"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말년에는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멸 ~~"하거나, 한쪽 발을 약간 들었다가 터는것으로 끝내고 말았던 추억이 ㅎㅎㅎ
04~06년 100연대1대대 근무했었습니다~ 당시 연대장이 이인영대령이셧던가?ㅋ 사단장은 김현석 장군이셧던거 기억나네요~ 훈련 더럽게 많이 시키던데ㅠㅠ 우리 연대장님은 행군중 비온다고 바로 원대복귀 시키던 좋은분이셧음ㅋㅋ 같은기간 옆 연대장님 이셧네요 벌써 20년이나 되어가네요~~100연대중 유난히 1대대만 사령부 영내에 있어서 네온사인 불빛보며 초소근무했습죠~ 그당시 송내에 코나도 있었던거 같은데 정말 오래되었네요~~^^
81년도3월 사단 교육대에서 6주 훈련 받고 101연대 3대대에 소속되었네요.3대대는 포단 맞은편 후문 위병소 근처에 있었는데 그땐 33사 였죠.아련한 추억입니다.저는 군생활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M16총번 가늠좌 수치 중화기 차렷포 훈련 군 생활의 암기사항등....모든거 다 지금도 기억합니다.31개월정도 근무하고 정상 전역했네요. 사단 후문 위병소 근무도 가끔 했지요.사단 사격장 근처 조림은 얼마나 잘 되었는지 궁금합니다.산에 잡목들 다 제거하고 모심듯 줄 맞춰서 나무를 심었는데 40년이라는 세월이 훨 지나서 아마 엄청 고목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전역후 한번도 가본적이 없네요. 추억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오래전 구독했는데 요즘 알고리즘이 안떠서 못봤는데 오늘 갑자기 뜨더군요..아마 서울의 봄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저도 20일전 봤습니다.
영상 잘 보았습니다. 거마산, 인천대공원, 계양산, 송내역... 벌써 거의 20년 전이네요. 옛 기억에 반가운 마음에 흔적남깁니다. 저는 2004년 7월부터 2006년 6월까지 102연대 직할 통신중대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고 중위 전역했습니다. 중대장 공석으로 인해 약 1년정도 중대장 역할도 했는데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연대 막사하고 연병장도 영상에 보이는 고가도로하고 꽤 가까웠던 거 같네요. 영상 덕분에 군생활시절 추억과 고마웠던 많은 분들이 생각나네요.
@@user-rp3li4iy2o 2대대 출신 입니다. 2대대도 제가 막 전입갔을 때 선배들이 강안경계를 했다가 빠졌다 하더라구요 고촌대대가 96년1월 동계훈련 나갔을 때 우리 소대가 5일간 고촌대대 주둔지 경계 지원을 나갔습니다. 세월 참 많이 지났네요~ 선배님께 경례!! 단결!! ㅎㅎ
영상 잘 봤습니다. "환상의 17사, 꿈의 30사"라고... 병사들이 수도권에서 가장 가고 싶어하는 양대 사단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꿈의(?) 30사단 출신입니다. 근데 꿈의 사단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군대는... 어디를 나오든 자신이 근무했던 곳이 가장 빡센 곳인 것 같습니다. 그저 최전방처럼 고립된 곳이 아닌 대도시 근처라서 사람 냄새 맡을 수 있고 휴가 나와서 집에 가기 편하다는 점 때문에 좋은거겠죠. 제대한지도 벌써 30년이 다 되어가네요.
선봉!!! 장군님 안녕하세요. 저희때도 환상의 17사단얘기가있었는데요. 사실 환상은 3군사령부 아니겠습니까? 부천이 생각보다 큰도시라서 송내역에 군인들이 많이 보이는것을 그리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17사단이 송내역에서 내려서 가는군요. 지금은 고속도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지않나요? ㅎ 저희는 유격가면 3군사령부 본부대를 포함해서 20여개가 넘는 각종 직할부대가 연합했기때문에 유격이 힘들지않았어요. 더군다나 화생방은 저희부대가 감독을해가지고 ㅎㅎㅎ 또 말이길어지네요. 참고로 저는 99년 10월군번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도 장군님 많이 좋아합니다. 저는 83년에서 85년 17사단 꿈의 연대 102연대 출신 입니다. 당시엔 송내역이 있었긴 했으나 주변이 시골스럽고 포도밭이 많았지요 송내역은 사람이 타고 내리는 일이 드물어 장병들은 주로 부평역이나 부천역을 이용했지요. 61사단은 없었고요. 아마 101연대는 안양 석수동에 있었던 걸로 기억 합니다. 지금은 서울을 거처 인천 계양구 인가요?? 그때가 진짜 꿈의 사단 17사단 이었습니다.
17사단 100연대 출신인데 진짜 훈련량은 재수 없음 많이 가고 1대대였나? 3대대는 진짜 사단직할이라서 죽어나가라 훈련 하던거 ㅇㅈ함. 근데 또 해안 소초는 또 있고...수도권인 사람은 좋은데 지방 사람은 그 1박2일? 더 붙여주는것도 없고 그래도 시골이 아니어서 면회 온 선후임동기 덕에 주말면회때 몰래 짜장도 먹고 사제담배도 피고 좋았던것도 있음.
14군번 102연 1대대 화기중대였는데 이 영상이 알고리즘에 뜨다니 참 신기하고 반갑네요 ㅎㅎ 좋은영상으로 추억 떠오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송내역 옆 해장국집이며 부대앞 구멍가게까지 아직도 여전하네요 선후임동기들이랑 휴가나가면 저기 해장국집에서 소주한잔 하고 서울역 용산역 등으로 헤어졌었죠 ㅋㅋㅋ 휴가복귀하면 저 구멍가게 앞에서 휴가복귀하는 인원들 만나서 같이 싸제담배 사서 몰래 반입했었고요 ㅋㅋㅋ 이 영상을 보시는 미필분들 17사단 내 타부대면 몰라도 102연대 1대대로 자대배치받으시면 17사중에 갈 수 있는 최악의 자대배치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ㅋㅋㅋ… 1년9개월을 정말 훈련하고 부대정비하고 훈련하고 부대정비하다가 전역했네요
환상의 17사단이라고 하는데요 그 17사단에서도 환상이라고 부르는 부대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지원부대죠 지금은 지원부대의 편제가 바뀌어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30년전쯤)에는 3군지사라고 했죠 그런데 30년전도 막 군대에서 구타가 없어지고 있었고, 저 제대할때쯤에는 부대내에 노래방까지 만들어주고, 매점에 오락기까지 들어올꺼라고 말을들음 (보진못했고) 2년후 동생 면회 갔을때 있었다는 그러니 30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편해졌을까 싶네요 군장자체가 그냥 훌러덩 메기만 하면 되고.. 그때는 위에는 모포말아묶고 아래는 판초우의 말아서 묶고 참으로.... 판쵸우의는 요즘 쓰나요 ? 그때 M-16이 K-2보다는 가볍지만 접히지가 않아서 행군을 할때 정말 버리고 싶은 물품 1순위였던 ㅎㅎ 말년때 K-2로 바뀐것 같네요 군복도 그때쯤 개구리로 바뀐것 같고 제 군생활했을때 많은 변화를 보면서 생활을 했고, 지금은 또 그만큼 변했겠죠
저는 11년 군번으로 17사단 신교대에서 근무했습니다. 여기에 나왔던 시골해장국 휴가 나갈때나 들어오기전 꼭 들리던 곳인데 마지막 휴가 출발때 동기와 소주한잔 하러 갔다가 우연히 대대 장교분들 전역일과 겹쳐서 해장국집에서 딱 마주쳤던 기억이 있네요 덕분에 그날 소주는 못먹고 밥만 대대장님께 얻어먹었습니다
장군님 반갑습니다 장군님이 101연대 근무하셨다는거 처음 알았습니다 저는 88년-91년 101연대 1대대 근무하였는데 처음 김포해안 철책 근무 후로 서울 공항동 에 있었지요 겨울 김포바닷가 매서운 바람 생각나고 공항동에서는 공지합동 .쌍용. rct .att .충정훈련등 많은 훈련 받은 기역이 생생합니다 벌써 수십년 전이네요...
저는 인천출신으로 306보충대로 갔다가 제발 17사단으로 당첨?되어라하고 했엇는데, 17사단 101연대로 전입 하였었습니다. (05~07년군번) 그때 101연대 수색중대로 전입하고, 가장먼저 외운게 직속상관 성함외우는 거였는데, 그때 고성균 대령님 성함을 열심히 외웠던게 기억에 남네요. 방송에 수색중대 아저씨? 이야기가 나와서 신기하네요.ㅋㅋ유격조교도 했었습니다. 현재 유튜브 하시는거 보고 처음엔 엄청 놀랬습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사단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