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건에서도 어떤 자는 빛을 보고 어떤 자는 어둠을 본다. 때문에 진리(객관)가 있다면 그것은 주관으로 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할 것이다. 거짓말쟁이가 있다면 그것은 모두의 마음 속에 있다.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을 반증하게 하지마라 - 소크라테스) - 소크라테스가 실제로 한 소리는 아니지만 그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결국 그렇게 생각할듯
소크라테스의 개소리와 소크라테스 외의 사람이 하는 개소리는 하나의 차이점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항상 자신의 개소리를 시전하기에 앞서, 상대방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공리(axiom)에 대한 납득을 요구했다. 그는 그렇게 반증 불가능한 논리를 만들었다. - 나는 상대방이 스스로 깨닫도록 도와줬을 뿐이라네.
극의 전개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만능 해결 장치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제목이지만, 정작 작중에 나타난 '신'은 그 칭호의 값을 다하지 못하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스 희곡에서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모든 일을 한 번에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납득할 만한 결말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아니었죠. 극의 결말을 담당하는 무대장치의 제목을 가진 작품으로 특집 마무리하시는 센스에도 감탄했습니다. 종교 특집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자신의 가치관엔 모순이 없으며, 합리적이고, 이 가치관이 절대적으로 세상에 행사된다면 세상이 더욱 좋아질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얼마 안가 깨닫게 된 것은 모순은 필연적이고, 완벽하게 일관된 가치관은 존재할 수 없다는거였죠. 애초에 계속 변화하기도 하구요.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신이든 뭐든 절대적으로, 강제적으로 행사되는 '옳은 '가치관이 있다면 세상은 좋아질 수 없다는 얘기를 하는것같습니다. 마지막에 모두를 신으로 만드는것은 모두가 각각의 가치관이 옳다고 믿으며 모순까지 포함해 뒤섞여 형성된 우리 사회를 표현하는것같아요.
'절대선, 절대적 가치관'에 '사랑'을 제거한 신의 모습이 있다면 저 웹툰의 신이겠군요. 역설적으로 아무리 절대적으로 옳은 존재가 신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다면 굳이 따를 필요가 있나 싶기도하네요. 신은 옳은가?에대한 고민만해봤지, 그런 신이 우릴 사랑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보지 않았네요. 사랑없는 정의는 폭력이고, 정의 없는 사랑은 방종이다. 라는 말이 특히나 더 생각나게 합니다.
오히려 이 불완전한 세상과 그 구성물들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시계태엽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네요 나아가 절대적인 진리를 찾기 위해 탐구하는 행동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행동일지도...... 성경 속의 바벨탑 이야기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user-hu6uo4mb1r 그분이 상당히 극단적인 사고를 가지고 계시네요.. 저또한 개신교를 믿지만 하나님 안믿는 사람이 모두 잠재적 범죄자라고 생각하기보다 악에 노출되기 쉬운 안타까운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착하게 살면 종교 안믿어도 되는거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선하다고 자부하는 그 어떤 사람도 단순히 악에 노출될 계기가 없었을 뿐 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상황 속에서 내 안의 악을 마주했을 때 나를 바로잡아줄 수 있는게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글쓴이 분께서 충격을 받고 개신교에 대해 안좋은 인식을 가지게 될까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세상에 많은 종교인이 있는만큼 그들이 종교를 받아들이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는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user-jz3hb2gj9o 저는 신앙인과 비신앙인이 잠재적 적대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기본적으로 극단화되려는 속성이 있으며, 결국 신앙인의 수가 비신앙인의 수보다 압도적으로 많아지게 되면 탄압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를 테면 중동에서 많이 보이는 종교 재판이 있고, 이와는 반대로 그것을 경계하여 나타나게된 프랑스의 라이시테(정교분리)는 헌법이 있죠. 물론 종교를 신앙과 구분해서 엄밀하게 말하면 신을 믿지 않고 교리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신앙과는 구분되지만, 인도에서 불교가 정치논리에 의해 흰두교도 신앙화/세속화된 것을 보면 마냥 그런 것 같지도 않게 보이고요. 물론 어떤 신앙이건간에 율법주의자에 대항하여 온건주의자가 존재하지만, 사우디에선 그것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더군요. 결국 신앙이나 종교엔 답이 없다고 밖에 생각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암만 생각해도 결국 선이건 신이건 인간이 창조한 개념이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네요. 각자의 가치관이 다르고 그 가치관에 맞는 신이 존재하고 몇몇 통일된 개념이 있을지언정 모두 각자의 신을 품고 사는 것이 아닌가 싶어져요. 어떤 의미로는 신조차 창조한 우리가 곧 신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상 잘 봤습니다.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었어요.
지금까지 마리갤의 영상을 보며 느낀점은 옳은 가치관이라는게 없다는거다. 다 어딘가 모순이 있고 나사가 빠져있다. 결국 우리가 가진 믿음은 틀렸을 수밖에 없다. 뭐가 맞고 뭐가 틀린지도 애매한데 우린 선택을 하면서 살아야한다. 어떤 가치관도 없이 사는건 아무것도 안하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무언가를 믿는다. 하지만 우린 틀렸다. 그럼에도 믿는다. 결국은 내 ㅈ대로 행동하는게 인간인거다. 틀렸지만 무심코 본인이 옳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나아갈 수 있는거다. 이게 위선일지도 모르지만 선을 행하고 보는거다. 그러다가 서로 상처 입히고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본인이 틀렸을지도 모르고 남에게 상처를 입힐지도 모르는데, 본인 신념대로 선을 행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만족일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은 지 ㅈ대로 행동한다. 그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초월적인 신을 상정하는게 타인의 입장에선 불쾌할 수 밖에 없음.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공평하지가 않거든. 타인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전제를 깔고 가는 거잖아. 바른 관계를 맺는데는 기본적으로 상호간 합의라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임. 자기중심적인 초월적 전제를 깔아놓고 이 전제에 맞춰달라는 요구를 하면서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이건 그냥 아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예수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같은 말을 왜 했을까? 그 어떤 선행을 했든간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선행이 아니라 자신을 대하는 태도임. 내가 신을 얼마나 잘믿는지를 강조하는 것은 같은 신앙이 있는 사람들, 즉 합의의 과정을 거친 사람들 간에서만 하는게 맞음. 예수가 이미 이런 문제에 대해 지적하지 않았던가?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인간이 신의 영역을 넘보는 건 주제넘은 짓, 인간이면 인간답게 주어진 환경안에서 최선을 다해 꽃을 피워라.'(사이코로시) 예수는 그런 뜻으로 한 말아닐까? 이걸 어떻게 받아들였길래 자신의 선함과 신을 동일시하고 타인에게까지 강요하게 되는 걸까? 나는 그저 그들이 즐겨쓰는 구절로 되받아칠뿐임.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ㅣ 쓰르라미 울 적에 례 옛날 옛적, 신이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던 시절의 이야기. 하늘에서 빵이 내려왔다. 어떤 사람은 왜 고기가 아니냐며 크게 탄식했다. 하늘에서 고기가 내려왔다. 어떤 사람은 빵이 좋았다고 크게 탄식했다. 하늘에서 신이 내려왔다. 모두가 기뻐하는 물건을 알 수 있을 때까지 당분간은 물을 내리겠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모두는 옷이 젖어서 크게 탄식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렸다. 모두는 집이 타버려 크게 탄식했다. 하늘에서 신이 내려왔다. 모두가 기뻐하는 물건을 알 수 있을 때까지 당분간은 아무것도 내리지 않겠습니다. 하늘에서 아무것도 내리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신에게 버림받았다고 크게 탄식했다. 하늘에서 이것저것이 다 내려왔다. 어떤 사람은 내릴 물건을 정하라며 크게 탄식했다. 하늘에서 큰 바위의 비가 내렸다. 이걸로 마침내 탄식하는 소리가 없어졌다.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지나가던 나그네는 고마워했다. 신이시여, 예기치 못한 날씨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제 여행길이 지루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신은 대답 없이 배웅했다. 그걸로 됐다. 신과 주사위는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괜찮다. Frederica Bernkastel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태10:34
정말 말그대로 발칙하고 말도 안되는 상상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신이라는 존재와 이 세상의 파괴적 양상을 곰곰히 관찰해봤거나 또는 그 파괴와 고통의 피해자의 입장이 돼 본 경우 정말 자연스러운 상상인 것 같고 한편으론 공감이 됩니다. 저라도 저런 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신을 믿고 있는데, 제가 믿고 아는 신은 위 작품의 신과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일단 저렇게 강림해서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요. 그리고 내가 옳으니 너의 생각은 틀렸고 너의 고통은 정당해 라고 얘기하지 않고, 침묵하면서 그 원망을 들으면서 욕받이가 되어요. 이 영상도 그 중 하나겠지요? 감히 어찌 신을 모독하는가! 라며 입을 닫게 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가치관이 옳다’고 강요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신이 존재함으로써 정말로 ‘하나의 가치관이 옳은’ 경우 모두 세상에 해롭다고 작가는 외치고 있는 것 같네요. 절대주의로부터의 해방을 원하는 것 같아요. 이런 생각도 드네요. 절대성에 기초한 인권, 도덕, 양심, 체계 등이 주는 이점은 무뎌지고 근현대에 들어 해로움이 강하게 부각되면서 그로부터의 해방이 정답이라는 극단적인 결론에 다다른 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절대성 자체가 그 해로움을 필연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그 사이에 ’인간의 교만함‘이라는 중간 원인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지는 않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는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요? 아니면 자신을 돌이켜보는 게 먼저일까요?
인간은 자신에게 만의 하나 있는 선을 보고 우리(인간)가 선하다 라고한다 인간은 자신에게 넘처나는 악을 보고, 악도 있게한 신이 악하다고 탓한다 이래저래 세상사상은 넘처나지만 결론은 '그래! 우리(인간)이 곧 신(진리)이다'라고 마무리 된다. 답을 찾다찾다 발견하지 못하니, 스스로 답 그 자체가 되어버리려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教의 도래이다. 그래서 나는 눈곱만큼도 인간을 안믿는다 적어도 인간教의 광신도가 되는 것은 거절하겠다
영상과 만화의 포인트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기독교를 비판하려는 것인가? -> 모든 사원을 부쉈다는 부분에서 기독교적 윤리 규범이 신에게는 작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주제에 어긋난다. 전지전능전선한 신인가? -> 이미 지구에 존재했던 윤리 규범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지금까지 쌓여온 인간의 도덕체계에서 이를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이 전전지전능전선을 주장한 것도 아니므로 판단 자체가 무의미하다. 개구리와 아이의 생명에 문제에 관하여 -> 이 세계관에서 신은 아메바나 인간이나 생명을 가진 존재는 동일하다고 보는 것 같다. 신의 판단에서 문제되지 않는다. 문제되는건 지금까지 쌓아온 윤리의식이 파괴된 인간의 마음이다. 신은 무조건 옳고 그 진리를 따라야 한다. -> 작품 내에서 신은 자신이 무조건 옳으며 그 진리를 따라야 한다고 한 적이 없다. 신이 무조건 옳고 그 진리를 따라야 한다는 건 신이 나타나기 전인 인간의 사고방식이 관성으로 유지하기에 나타난 마음가짐이다. 결국 영상 내에 나오는 '모든 가치관에서 충돌하는 모순'은 신이 등장하면서 의미를 잃는다. 신의 등장 이전 가치관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명확해진 신을 통해 형성되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재 나타난 신의 행동을 따르는 것도 의미가 없다. 그가 어떠한 가치관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지할 이유도 전능할 이유도 전선할 이유도 없고 세계를 만든 목적도 없을 수 있다. 신이 등장한 순간, 세계 속 인간은 가치관의 기준선을 잃는다. 그러므로 만약 이 작품에서 전지전능전선한 신의 모순을 꼽으려고 했다면 별로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이 작품 내 세계의 사람들은 백지부터 다시 자신의 가치관을 쌓아야만 하는 상태에 놓여있다. 확실해진 진실은 기존 종교에서 신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며 지금 나타난 신이 진짜 '신'인지 아니면 신인 척 하는 '악'인지 또는 밝혀지지 않은 과학법칙인지를 검증하는게 첫번째 과제가 될 것이다.
결국 다양한 가치관으로인해 시대가 달라지고 달라진걸 바탕으로 발전을 해온 인간의 가치관에서 절대선이라는걸 존재시킨다면 납득할 자신이 있는 인간이 있을련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생각은 각자의 생각과 철학이 있고 그로인해 영향력을 끼칠수 있는 사회에서 하나의 절대 선이라는걸 자신있게 괜찮다고 할수있겠습니까? 결국 인간은 존재하고 존재의 의미를 찾을겁니다. 저 같은경우 신이라는 존재가 나타나면 단순히 납득하고 안심할것같습니다. 내가 존재하는 의미를 깨닫고 그렇구나 내 역활이 있구나 하고 납득하고 저의 삶을 살아가겠죠. 문제는 저와 같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거라 생각합니다. 그게 자유사상이니깐요
뭐 별로 의미는 없는 소리지만 재미가 선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재미가 없는 것이 악인건 아니고 그저 선이 없는 상태이며 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재미의 기준은 모두가 다르니 도덕관 또한 모두가 다른겁니다. 재미란 것은 긍정적인 감정이니 그걸 느끼는 당사자에게 있어 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은 그런 인간 하나하나의 입장에서 재밌는 일들을 즐기고 있는 것 아닐까요?
쩌업 너희에게 마음을 준이유는 스스로 생각하게 함이니라 이 세상에 약육강식의 법칙을 새우고 새상에 환난과 고난 고통 공포 아픔을 만든 이유는 너희 스스로 그 비극과 슬픔을 알고 스스로 깨긋함을 깨닫게 함이니라. 스스로 생각게 함으로 말미아마 발전하고 번영하리라 그리하여 권리와 의무 책임을 깨달으니 그 인과를 앎 이라 하리라 그사이의 불평등 아픔 억울함 원한 증오 분노 내 너희에개 이미 주었던 앎이니 선과 양심을 행하며 스스로 알라 생각과 사상의 충돌로 수많은 상처가 벌어질때에 깨달음을 위한 과정임을 알라 그 모든 고통 고난 공포 아픔은 너의 생 혹 그 전의 생의 인과이니 그 고통은 원죄의 주인께 돌아옴을 알라 이 세상 모든것은 무에서 유가 되었으며 다시 무로 돌아가 순환한다는것을 자연의 법칙으로 나 이미 말하였노라 모든것은 연결되어있으며 순환하니 아래로는 존중을 잃지말고 위로는 예를 다하며 하루하루 공부를 개을리 하지말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스스로와 그 주변을 도우며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 환난을 피하며 고통과 고난을 함께할 자들을 얻으며 힘과 권세 인과를 얻을것이다 지해로운 자는 스스로 과신하지 않으며 올바르게 듣고행하는자이다 익은벼는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너의 마음으로 올바름을 알라 너의 발자국을 보며 그 책임을 알라 그 상처와 인과를 알라. 흠 기억이 안나요 ㅠㅠ
이 글이 올라갈지는 모르겠지만, 며칠 전에 깨달았어요. 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요. 성경을 보니 이게 맞는 것 같더라고요. 우리가 믿고자 하는 하나님이 곧 하나님이 되신다. 인간들은 결국 신도 자기의 가치관에서 생각하잖아요. 영상에서 나왔듯이 신이 어떤 일만 행하고, 왜 행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면 그 일 자체와 그 일에 대한 해석이 곧 신을 설명하는 거겠죠. 저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시는 명쾌한 장면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항상 명령하시고, 물으시고, 제안하시고, 행하시고. 이게 다였죠. 아 설명하시긴 해요. 예수님이 설명하십니다. 모세가 설명하고, 이사야가 설명합니다. 절대로 직접 설명하진 않으시더라고요.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응답받을 때 하나님에 대해 묻습니다.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I am Who i am": 나는 되고자 하는 나다. 이게 전지전능아니겠습니까? 신이 보여주는 일과 그 해석이 곧 신이 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입장에서는 어쩔지 모르겠지만 결국 이 우주에서 신을 판단할 수 있는 건 사람밖에 없으니 사람의 설명이 곧 신의 정의가 되는 것이죠. 아무튼 결론은 이거죠. 어쩌면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과 그 행동 더 나아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모든 행동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설명하는 것이다. 정통기독교인들은 그러죠. 자신들의 뜻대로 하나님을 해석하고는 다른 의견들은 쓰레기통에 박아버립니다. 저는 그런 오만한 생각이 너무 싫었어요. 다른 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다른 것이 존재할 이유가 없었으니 하나님의 완벽하심을 해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영상에도 나왔듯이 우리는 신조차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보여지는 사건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분이라면 절대로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설령 보여진 사건을 전부 이해하더라도요,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할지니, 이전의 것은 전부 썩어지고.. 이러시니 진짜 답도 없습니다... 인간의 오만함이 산산조각 나버립니다. 과학도 모종의 종교죠. 인간의 이성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그 묘미는 모든 것을 공식으로 만들어 인간의 예측 범위 안에 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근데 양자역학을 보세요, 전자는 모든 곳에서 확률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요? 아인슈타인도 쌍욕박았어 이 정도면. 아인슈타인도 GG치고 TOE 접었다고. 웃긴 건 종교도 설명 못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도 기존의 관념과 믿음으로 설명되잖아요. 근데 자꾸 새로운 믿음 다시 말해서 새로운 종교가 나오고 또 그게 맞으면 장사 접어야지. 못 따라간다니까요? 얘가 한 말도 종교, 쟤가 한 말도 종교면 걍 각자가 각자의 종교를 믿는 거지. 근데, 계속 나오니 그게 또 전부는 아니야.. 계속 업데이트 업데이트하면 그게 진리냐? 말 장난이죠. 우리는 과학으로든 종교로든 신에게 닿을 수가 없습니다. 그건 너무 오만한 것 같아요. 이 작품은 오히려 신을 찬양하는 것 같아요. 신이 왜 자신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인지, 악의 문제의 모순이 무엇인지 꿰뚫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제가 쓴 글도, 제 입장에서 하나님을 해석하기 위해 노력한 것도, 결국 하나님이 되시겠네요.. 아무렴요, 인간의 가치관에 맞추어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빙다리 핫바지같은 신보다 현실의 신은 더 위대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신을 하나님이라고 정의한 게 좀 불편하실 수도 있으신데요, 이건 진짜 대답할 가치가 없더라고요. 하나님이 자기를 부처님이라 부르든, 달님이라 부르든, 햇님이라 부르든 그냥 신이라 부르듯 상관이 있으시겠습니다? 이름은 상징일 뿐이죠. 기독교의 평판이 나빠질 수는 있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설명 중 가장 말이 안 나오는 설명은..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으시지 아니하신다." 입니다. 사람이 그를 욕하거나 없다고 하면 뭐 어쩔겁니까? 받지 아니하신다는데.. 진짜 좀 경이로운 것 같아요.. 자꾸 신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 우리에게 종속된 것처럼 사람들이 말하는데, 제 설명에서 말씀드렸듯이 아무리 이해해도 본질을 이해할 수 없고, 뭐 의도도 모르겠고, 말 그대로 정말 지 꼴리는 대로 하시는데, 우리가 비방한들, 믿는들 뭔상관이겠습니까.. 애초에 우리의 필요에서 존재하지 아니하신데.. 당신이 무신론이든 유신론이든 상관 없어요. 전 그냥 이 정도로 상식을 깨는 신이라면 믿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건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시니 있다고 봅니다.. 참 똑똑하신 것 같아요.. 자신의 존재에 따른 모순은 다 피하시고, 자신의 존재 자체는 증명하시는.. 진짜 범접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이든 신이든 믿는 제 입장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이것입니다. 이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자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하나님이고 동시에 수천수억개의 칭호를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의 칭호 중 하나겠죠. ... [다번역성경찬송] 개역개정 이사야 46장 3.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간단하게 설명하면 너 태어난 그 시점부터 죽을 때까지 나에게서 떠날 수 없어. 근데 죽으면 천국 가서 나랑 영원히 살 테니까, "넌 걍 선택권도 없이 날 때부터 영원히 나에게서 떠나갈 수 없어" 라는 말이 됩니다. 이게 제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이고, 동시에 하나님에게 저항할 수 없는 이유이죠... 성경은 그래요, 66권이 다 그런 거 같아요. 걍 성경은요.. 하나님 자서전 근데 자기가 쓴 게 아니니 하나님 전기라고 봐야겠죠. 모종의 이유로 내 삶도 여러분의 삶도 모두 성경인 거예요. 말했잖아요, 우리는 존재자체로 이미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거라니까요?? 절대 선, 절대 의지, 절대 권능. 진짜 한 마디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자연의 법칙을 신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 의지와 의식을 갖고 이 세상을 창조한 전지전능한 존재를 신이라고 할때, 만약 그러한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인간은 그 신의 의도를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우주의 시간은 인간이 우주에 존재한 시간에 비하면 영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긴 시간이고 앞으로도 영원의 시간이 우주에 존재할 것이다. 끝임없이 변화하는 우주와 그 영원의 시간속에서 신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일지 인간은 감히 상상조차하기 어렵다. 인간은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살기 위해 발악하는 가여운 존재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