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중학교때 시험이 끝나면 모두 극장에 갔는데 그곳에서 25시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에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마지막장면에 눈은 울고 입은 웃는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했던 기억 그후에 성인이 되어 다시 봤을때 한 힘없는 개인이 전쟁과 정치적으로 희생당하는 비극적인 내용에 동감하고 어린마음에도 마직막장에 마음이 아프게 한 이유를 어른이되어서는 눈물을 펑펑흘릴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나 아픈 영화입니다
영화는 이런 것이다 ! 그런말 하여주는 영화가 안인가 생각하여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가 개봉 당시에는 2차 세계대전 유럽의 정황을 잘모르는 시절이라, 정확한 테마를 모르고 보았지만, 그뒤 지상파 방송에서 몇 번을 방영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한번 감상할수 있는 기회가 온다고 하면, 비록 안소니 퀀은 이세상 사람이 않이라고 하여도 그들의 명 연기 등 다시 한번 더 보았으면 하는 영화가 안인가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비열한 거리의 유하 감독이 남궁민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면서 안소니 퀸 같은 그런 모습을 마지막에 보여줘야 된다고 해서 남궁민이 진짜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안소니 퀸의 마지막 장면은 진짜......... 그리고 후반부의 법정 장면에서 안소니 퀸에 무죄를 받게 된 가장 결정적인 대사가 검사는 전범으로 기소하려고 할 때 변호사가 안소니 퀸에게 '당신이 왜 여기 있는지 아시오?' 하니까 안소니 퀸이 '8년동안 영문도 모르고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했지요.' 하는 그 말 때문에 무죄를 선고받게 되었다는 것은 진짜........... 역사가 순박한 농부를 어떤 식으로 엉망으로 만드는지 보여주는 명장면이라는 생각이..........
영화보다 이 영화의 원작인 "25시"를 쓴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에 대해 훨씬 더 흥미가 있습니다. 80년대에 아무도 한국을 알아봐주지 않을때 게오르규는 한국을 사랑하고 찬양했죠 그는 직접 한국에 오기도 했는데 그때 쓴 얇은 두께의 기행문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그가 한국의 묘가 둥글게 생긴게 인상적이다라는 말을 한게 기억에 남네요.. 지금이야 한국이 경제도 발전하고 한류라는 대 문화적 성취도 얻은 상태이지만 80년대에 한국은 그야말로 아시아 변방의 그저 못사는 나라였는데 그때 이미 한국의 가치와 가능성를 알아보고 이를 사랑한 그의 안목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초의 한류1세대라고 할 수 있겠죠 ㅎ
와 정말 너무 슬프네요. 전쟁에서 싸우는 영화보단 저는 이런 전쟁으로 인한 헤어짐과 아픔을 다룬영화들이 더 가슴에 와닫고 기억에 오래남더라구요 그래서 다음영화로 625전쟁당시 임시수도인 부산에서 상영하여 많은 사람들을 울렸던, 너무 슬프서 제목까지 바꿔버린 영화, 애수(waterlobridge)부탁드립니다.
어린시절 봤을땐 뭔내용인지 잘 모르면서 대단히 슬픈 내용이구나 라고 생각 했는데.. 대단히 슬픈 내용!!은 아니구나 생각 하게됨.. 고작 10년 만에 온가족이 다시 재회한거라,, 한국의 이산가족이나 탈북민 평생 한국의 아내와 자식을 그리워한 국군 포로등.. 결론은 25시는 해피엔딩이다..
울림, 두드림 무엇이 더 부족할까? 게오르규의 25시 읽지 않았다. 하지만 관객모독 시나리오 저작에서 표류하는 자아, 탈색한 너를 보는 나를 일깨워 준게 서있는 리어카의 바퀴를 돌려 소리 들어볼, 링고스타의 미친 드럼연주를 떠올려 보라는 등 하다. 25시의 안소니 퀸의 엔딩 미소를 떠올려보라... 소름과 충격! 왜 25시인가 기자가 질문하니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 24시외의 파괴된, 점령된 잔혹도가 바로 25시라는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관객모독! 과연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는 걸까? 저 웃음 뒤에 비겁함과 나약함을 숨기기에 급급하지는 않았는지...
하면, 원작자 ....하면, ....하면, 나이트코드.....흠.... 사실 한국 외화팬들 사이에서 국민배우 해외버전이나 마찬가지인.....그의 영화는 실패한 게 전무할 정도인데, "프레데터"가 아놀드형을 위해서 탄생한 걸작인 것처럼....이것도 퀸 영감님 아니면, 할 사람이 없죠.... 멕시코 치와와 태생의 퀸이 나오는 작품마다 바뀐 국적이 수십개이듯....이집트 출신의 도 버금가는 지구인 배우입니다.
영화에서는 최후의 마지막 시간(the twenty-fifth hour is the last hour of all)이라고 언급합니다 저마다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지만... 요한의 입장에선 빼앗긴 시간, 아무도 구해줄 수 없었던 시간으로 해석해도 무난하게 보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