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조현병이 발병하셨고 아빠는 집을 나갔습니다. 엄마의 병은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엄청 심해지셔서 제 머리채를 잡고 벽에 쾅쾅 찧고, 발로 온몸을 밟고, 마늘 찧는 절구로 머리를 때리고.. 거의 기절 직전까지 심하게 때렸어요. 칼을 들고 같이 죽자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다 때리고 나면 눈물 흘리며 미안하다고 안아주셨습니다. 엄마가 환청 때문에 일 나가도 쫒겨 오자 집세를 낼 수 없어 전기,수도, 가스 다 끈 켰고,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지하 단칸방에서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으며 살았습니다. 엄마는 저와 동생을 데리고 대형마트에서 도둑질을 시켰고, 목숨은 유지하며 살았습니다. 온몸은 항상 쑤시고 아팠고, 엄마가 너무 무서웠지만 주위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친가/외가 모두 저희와 엄마를 외면했어요. 그 2년동안의 기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근데 그보다 더 심한 트라우마는 엄마가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당하셨을 때 제 눈앞에서 짐승 취급 받으며 끌려가는 모습이 가장 충격적 이였고,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슬픔을 느꼈습니다. 병세가 심하셨지만 그래도 정신이 좀 온전하신 날엔 예쁜딸, 멋진 아들이라고 해주며 저희를 누구보다 사랑해 주시는 엄마 셨습니다. 호떡 장사를 하시면서 남기는 거 없이 사람들에게 더 나눠주셔서 항상 적자를 보시는 분이셨습니다. 또한, 저희도 굶어 죽을 판인데 길거리 거지들이 보일때 마다 천원 이천원을 저에게 주면서 주고 오라고 하시던 엄마였습니다. 친할머니 말씀으론 가족모임때마다 저희 엄마 혼자 모든 궂은 일을 자처해서 하시는 천사같은 사람 이였다고 했습니다. 그런 천사같은 엄마를 병걸렸단 이유로 모두들 외면하며 손가락질 했습니다. 세상은 겉 모습만으로 괴물 취급하는 걸 보며 많은 상처를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세상이 미치도록 싫었습니다. 저를 왕따 시키고 괴롭히는 애들 때문에 학교를 안 나가는 날이 많았었고, 나가더라도 숙제 준비물이 없어 항상 벌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못사는 동네였어서 무서운 애들이 많았는데 제가 성질이 있고, 겁이 없는 성격 이였어서 싸움질 하고 다니며 제 자신을 지켰습니다. 우리를 무시하는 친척들을 보며 나중에 내가 꼭 성공해서 코를 짓밟아 주겠다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제 마음은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가득하였고, 항상 날이 서있는 채로 살았습니다. 살아 보니 착하고 나약한 약자로 살 바엔, 성질 더럽고 무서운 인간이 되는 게 낫습니다. 하고 싶은 말 못하고, 착한 엄마처럼 살면 손해만 보고ㅡ 크게 상처 받고, 병에 걸릴까 두려워 일부로 더 독하게 마음 먹고 살았습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약해 보이면 무시합니다. "나는 엄마처럼 약해 지지 말아야지" 다짐 하며 살았습니다. 연약하게 울고만 있으면 가벼운 동정은 받을지언정 못된 인간들의 먹잇감만 되기 쉽상 이라는 걸 너무 어린 나이에 깨달아 버렸습니다. 교회 목사님 도움으로 보육원에서 잠깐 살다가 친 할머니가 저와 동생을 데리러 오셔서, 제 중,고등학교 시절은 할아버지가 폐지를 주운 돈으로 4식구가 먹고 살았습니다. 초등학교를 거의 다니지 못해 중학교 땐 친구들이 이차방정식을 배울때, 저는 방과 후 까지 남아 구구단과 사칙연산을 배우며 진도를 겨우 따라 갔고, 마음이 항상 슬픔에 가득차 있고 어두웠던 저는 게임중독자 였습니다. 그럼에도 학창 시절, 몇 몇의 좋은 선생님들이 물질적인 지원과 정서적인 응원을 해주셔서 위로를 많이 받았었고, 종교에 의지 하면서 외로운 마음을 달랬으며, 고전 서적과 자기 개발 서적을 읽으며 통찰력을 길렀습니다. 21살에 조부모님으로 부터 독립을 하였고, 첫 회사에 취직을 하였습니다. 다행히 좋은 동료들을 만나서, 사람 눈도 못쳐다 보던 제가 점차 사회공포증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살아보니 사람을 잘 만나는 것이 인생에 큰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엄마와 다시 살게 되면서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엄마는 정신병원에서 살 바엔 밖에서 하루,이틀 살다 죽는 것이 낫다며 매일같이 저와 동생에게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마음 약했던 저는 엄마를 외면할 수 가 없었습니다. 퇴원을 시켜 드리면 재발 하셔서 매일 환청과 싸우시며 혼잣말 하시고 소리를 마구 질러 대셨습니다. 옆에서 보는 사람은 진짜 미쳐요. 이웃집들은 모두 이사를 갔고, 경찰도 와서 보고 도망갔습니다. 엄마는 병세가 매우 심한 편이 셨어서, 컨트롤 하기가 정말이지 너무 어려웠습니다. 또한 엄마를 보면 마음이 너무 속상하여 그 상황을 회피할 때가 많았고, 병원 입/퇴원을 10년동안 10번도 넘게 반복 시키며 매우 불안정하게 살았습니다. 엄마를 많이 사랑하였지만, 마음엔 항상 아주 큰 돌이 얹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이러다 미칠것 같고, 어느 순간 "이젠 한계다"라고 느꼈습니다. 솔직히 엄마가 없었음 좋겠다 생각할 때도 많았지만, 엄마 곁엔 저와 동생밖에 없었기에 엄마를 놓지 못하겠더라구요. 그렇게 불안정 하게 20대를 살아오다 30대 초반, 제 결혼식 3개월을 앞두고 엄마가 갑자기 하늘 나라로 가셨습니다. 죄책감으로 1년 넘게 극심한 우울증과 술을 달고 살았습니다. 남편도 이런 제 모습을 보며 힘들어 하였고, 분조장처럼 미친듯이 싸움을 거는 저로 인해 부부 싸움이 반복되자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최근에서야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제 모든 치부와 아픔을 알고도 수용해 주었고, 인내와 사랑으로 제가 치료 되기를 기다려 주었습니다. 심리 치료를 받으며 제 자신에 대해 깊게 알게 되며 제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엄마 몫까지 더 행복해야 겠다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안 좋은 생각도 수없이 들었지만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자해한 적도 없고, 강하게 마음 먹으며 이 모든 아픔을 견뎌내고, 성실히 살아온 제 자신이 대견스럽습니다. 흙수저도 아닌 마이너스 수저에서 시작하니 저에겐 앞으로 올라갈 계단만 있더라구요.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한걸음 씩 올라가는 재미로 살아왔습니다. 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살았고, 평범한 사람만큼 올라왔다는 성취감이 듭니다. 지금은 규모 있는 중소기업 6년차 사무직 대리로 사회생활도 원만히 하고 있습니다. 불안정한 저를 받아주고 기다려준 남편 덕분에 안정적인 사람으로 점차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과거에 아팠던 트라우마 이겨내며 남은 여생 행복하게 살거에요. 누가 뭐라하든 저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지 같든 어떻든 나의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겁니다. 인생이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겠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분명 좋은 날도 옵니다. 좋은 사람들과 남편을 만난 것이 제 인생에 큰 행운이기도 하지만, 그 행운을 잡기 위해 오랜 시간 인내하고 노력해 왔기에 주어진 것이라 생각하며 저는 행복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추가) 사실은, 지금도 한번씩 엄마 꿈을 꾸거나 엄마와 관련된 생각이 나면, 걷잡을 수 없는 큰 슬픔에 빠져 당장 죽고 싶을 정도로 깊은 절망감을 느낍니다. 남편과 함께하는 일상이 너무 행복하지만, 고통스러운 과거가 한번씩 저를 괴롭히고, 그 고통에 잠식되어 많이 힘들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평생 이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될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도 세상과 사람을 혐오하지만, 모두가 그렇듯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세상은 정말 불공평하고, 악한 자가 살아남기 쉬운 곳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고통이지만, 그럼에도 버티다보면 행복한 날들도 있기에 살아가게 되는것 같습니다. 아픈 트라우마 가지신 모든 분들이 더 강인해 지시길, 그리고 행복한 날들이 많아지시길 소망합니다. 오직 자신만이 자신을 구할 수 있습니다. ++ 좋은 댓글과 추천 정말 감사합니다😢❤ 따뜻한 댓글들을 읽고 감동을 받고, 용기를 많이 얻어갑니다. 따뜻한 마음만큼 더 따스하고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공감합니다 전 초등학교6학년때 7살때부터 알던 친했던 친구한테 투명인간 취급당하는 왕따당한적있는데요 30대초반인데 아직도 왕따당하는 꿈을꿔요 그 친구는 한번도 꿈에 나온적 없지만 현재도 알고지내는 친구들한테 왕따당하는 꿈이요 무시하는 패턴의..똑같이 꿈안에서 두려움과 긴장됨을 느끼고 꿈 깨서도 그 감정이 현실에서도 이어지고.. 절 왕따시켰던 친구는 저말고도 다른친구도 왕따시켰는데 그친구가 당시에 얼마나 가벼운 마음으로 행동했었는지 성인되니까 알겠더라구요 그 생각없고 가벼운 마음과 행동으로 인해 정작 당한 사람들은 무거운 트라우마를 간직한채 살아가야하는게.. 그래서 저도 진짜 왕따가해자들 악질이라고 생각해요
공감. 초등학교 3학년때 반 남자애들로부터 당했던 폭행과 놀림. 지금 30살인데 20년이 지났는데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다른사람들과 막 떠들고 지내다가 조금만 시선 싸해지는거 느껴지면 바로 위축. 내가 점점 찐따되는 느낌에 점점 주눅들고. 개인적으로 왕따 가해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살다가 죽어야한다고 생각해요.
몸은 기억한다. 상담과정에서 어린시절 겪었던 부모싸움이 재연되는 장면에서 온몸이 굳어버리고 고개조차 돌리지 못했다. 엄마는 이웃집으로 도망가고 깜깜한 어둠속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 아빠 아빠 ~유난히 아빠를 따랐던 아이. 그런 딸에게 장난치고 뽀뽀하고 종이접기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던 아빠가 왜 엄마에겐 그러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다 어린딸이 거짓말을 했다고 저수지에 던져버린 아버지. 살려고 발버둥치며 나왔는데 다시 던져졌을때 그 아이 마음이 어땠을까... 거짓말 했던게 아닌데도 너가 실수하지 말았어야지... 늘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았고 인간을 이해하고 싶어서 심리학책을 무던히도 읽었었다. 미우면서도 한 인간으로 바라보면 아버지, 어머니 또한 애잔하고 미움과 분노밑에 가라앉아있었던 다시 사랑받고 싶었던 그 마음. 스스로를 비난하며 살아온 자신을 마주한 순간 미안해서 며칠을 울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실수에 대해 관대하지 못하다. 부모에게 어리광을 부려본적도 없고 아이에게 엄마는 언제나 짠한 존재였다.(심리적으로 돌봐야하는 대상) 아무도 너를 지켜주지 않아. 너 스스로 지키고 살아야돼. 어린맘에 했던 다짐이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버리고 이성적 인간으로 살아가게 만들었다. 아직도 난 내 감정을 잘 모르겠다. 진짜 감정인지 스스로를 설득하는건지...
너무 비슷하네요. 제일 섬뜩했던 순간은 어느 하루는 아버지의 엄마를 향한 폭력에 약간의 희열감을 느끼고 있던 나를 발견 했던것. 그러다 왜 말리지 않냐던 엄마의 목소리에 그 순간에서 깨어났죠. 이제 내일 모레 오십. 손가락 제법 셀만한 인생을 살아보니 그저 지난 시간속 경험속에서 좋은것만 걸러내어 나로 만들어 가는 것. 굳이 나를 찾는것이 아닌 매일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뗄 것 떼어내고 부칠 것 부쳐 살아가려 하죠. 어떤 내가 진짜인지 굳이 생각하려 하지 않아요. 오늘 보는 내가 진짜이죠. 어차피 영원히 같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나를 지켜 낼 수 있는 힘을 길러낸것에 대견해 하고, 누군가를 돌봐 주고 싶다는 나를 기특해 하고, 조금이나마 그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지치는 날에는 내가 나를 다독거리며 또 주어진 날을 살아가요. 어느날에는 기쁘게, 어느 날에는 힘겹게 꾸역꾸역. 어차피 살아가야 하는 날들이라면 이왕 이리 된것 잘 만들어 보자… 그러다 어떤 날은 정말 외로울 때도 있어요.그런 날은 또 그런대로…
나의 최고 가해자는 부모였음… 신체학대와 언어학대… 그리고 내가 나이들어서도 나를 힘들게 함. 지들 기분 안 좋으면 자식 목조르고, 발로 밟고… 추운 겨울에 옷 벗겨서 내보내고.. 10살에는 부모 둘다 자식 버리고 도망쳐서 배고파서 구걸도 해 봄. 월세도 빼가고, 가스도 다 끊겨서 찬 바닥에 벌발 떨던 기억이 생생함. 어릴 때 기억은 “살아야 한다.”라는 기억밖에 없음. 어떻게 그렇게 작고 힘없는 8살 아이를 그렇게 학대했는지 내가 그들의 나이가 된 지금…. 정말 이해가 안감. 난 악착같이 살음. 공부도 열심히, 일도 열심히…. 늙어서 두고 보자는 생각으로 이제 늙어가는 부모. 갑자기 친한척 착한척 연약한척 하며 돈을 요구하더라. 어릴 때 이를 갈고 버텼다. 늙어서 두고보자고.. *이제 버려질 차례는 당신들이라고*
폭행은 아니었지만 신경질적으로 화내는 부모님 밑에서 컸어요....더 힘들게 살아오신 분이 많아 어디서 말도 못 꺼내지만 언어로 상처받은 트라우마라서....부모님 두 분 다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이 아니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쭉 자랐습니다.. 아직도 내 공간(집, 일터)에 부모님이 들어오는 거 병적으로 싫어하고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뛰어내릴까 내가 죽은 다음에 후회해줄까 이런 생각해요. 악지르고 싫어해도 부모님은 바뀌지 않고......한번씩 부딪히면 멘탈 산산조각 납니다... 아이들한테 정서적으로 힘이 되 주는거 정말 중요해요. 경제적으로 조금 못 받쳐주더라도 성장기에 정서 교감이 나중에 자산이 됩니다.
저와 같네요ㅋㅋ저는 조울증 모와 나르시스트 부가 언어 폭력을 꾸준히 해줘서 서른 넘은 지금에야 스트레스로 온 몸이 망가졌답니다ㅋㅋ 잘 버텼죠. 부모는 절대로 바뀌지 않아요. 안타깝게도 내가 죽거나 부모가 죽거나 하지 않는 이상 평생 벗어날 수도 없는 거고. 유일한 방법은 한 쪽이 죽는 것, 아니면 이민을 가서 평생 대면할 일 없게 만드는 것 뿐... 많이 힘드셨겠네요.. 부디 자유로워지는 날이 오기를.
저는 여기에 폭행 추가할게요. 빈번했던 건 아니지만, 어디 한 번 버릇 고쳐보겠다는 식으로 개패듯이 패는 폭행이 몇 번 있었네요. 저도 그래요. 내 공간(저 같은 경우에는 독립을 못해서 아직 방이네요) 에 들어오는 거 병적으로 싫어해요. 정서적으로 힘이 되어주지 못한 부모는 자기 힘든 일 있으면 딸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는 안중에도 없이 자기 힘듦만 쏟아내기 바쁘고.. 뭐, 그 핑계로 저는 끊임없는 무기력에 빠졌네요. 벌써 집에서 칩거한지 몇 년 되어 가는데 아무래도 못 벗어나고 죽을 거 같아서 요즘 정말 참담합니다..
부모와 연을 끊은지 15년이 넘었지만 미워하지 않아요. 나를 치유하기위해 오랜 상담으로 알게된건 우리의 부모들도 제대로된 사랑과 가르침을 못받은 트라우마를 지닌 한 인간이란거예요. 결국 대물림되는거죠. 이제 나는 성인이고 나의 잘못이 아니였다해도 극복하고 나를 구해줄 사람은 결국 나뿐인거죠. 모두들 평안해지시길..
@@bingoandtoto댓글 감사해요. 말씀에 제 마음을 찬찬히 다시 들여다볼수있는 계기가 됐네요. 용서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건 그분들은 제게 이제 부모로, 가족으로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시간이 걸렸지만 한인간으로만 바라볼수 있었고 미워하지 않는다는건 진심입니다.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건강히 잘 사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랑받고자 하는 내면아이는 당연히 여전히 존재하죠. 근데 그건 그분들에게 원하는게 아닙니다. 좋은 시댁과 남편을 만나 사랑받고 있지만 정말 제가 원하는건 내가 나를 온전히 사랑해주는것인데 아직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네요.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내 부모가 그러지 못했어도 나는 최선을 다해 좋은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식을 사랑한다는 건 그런 거겠죠. 내가 가지지 못했던 거 나에게 부족했던 걸 나 대신 채우려 하는 게 아니라 나를 끊임없이 벗겨내고 이겨내서 어떤 시련에서도 선한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보여주는 거. 그게 부모의 역할 인 것 같습니다.
@@user-up9qh3fg1w 제 말씀의 요지는 부모의 화난감정만으로 소리지르고 말 안듣는다고 어린아이를 집어던지고 하는 이런 무식한 행위들이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평생 무의식적인 무기력을 준다는 겁니다. 우울증과 공포에 시달리지만 일어설 힘도 없게 만들수도 있다는겁니다. 아이들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되고 말로 훈육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오은영박사님이 얘기하셨지요 천번을 말로해서라도 가르치는 것이 아이들이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1990년대까지 교육을 받아왔던 사람들은 정신치료 한 번씩 다 받아야 한다고 본다. 가정 폭력은 복불복이지만, 공교육을 가장한 폭력이 일상적이었거든. 시골에서 많이 당해서 도시로 가면 ''무식한 촌동네보다는 낫겠지''했는데 웬걸? 도시 선생들의 숫자만큼 고문의 방식이 다양해서 놀라웠다. 그리고 군대에서 폭력의 최정점을 경험하게 되지. 그러니까 몸이 기억하는 트라우마가 하나도 없을 수 없다는 게 당연한 추론임.
부모도 이기적이고 자기들 기분이 먼저이고 회피만해요 그래서 자식 마음이 병들어도 부모는 아무런 도움이안되요 인간은 다 이기적이예요 남보다 내가 우선인거죠 이건 부모도 똑같아요 자기들 입장 기분이 먼저더라구요 아무도 내마음 알아주는사람은없어요 나 스스로가 극복해야될 문제같아요
그 사실이 가끔 너무 외롭게 느껴지기도 해요.. 어차피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거라는게.. 내가 바뀌지 않으면 나를 이해하려던 사람들도 결국은 지쳐서 떠나갈거고 결국 모든건 내가 어떤 사람이 되냐에 달렸다는게.. 지금의 나여도 그래도 나를 꾸준히 사랑해줄 수 있는 이가 없을것 같아서
아빠에 대한 외도 의심 관련으로 1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엄마는 내가 무슨일을 하고있는지는 개의치 않고 불쑥불쑥 별거아닌 사소한걸로 심각하게 얘기하고, 전화하고, 사진보내고, 끊임없이 불안을 전가.. 그걸 받아주지 않거나 불편하다고 의사표시를 하면 자기를 만만하게 본다며 온갖 쌍욕에 연을 끊자는둥, 나가라는 둥, 너도 아빠랑 똑같다는 둥, 언어적, 육체적 폭력을 일삼았다. 최근엔 경찰서 신고 및 부부싸움 말리는 과정에서 내가 물리적 피해를 받아 가정법원사건으로까지 커지고... 아빠 이름으로 보호관찰소에서 통지서 온걸 보고 불안하고 놀라서 수강을 수감으로 읽어버리는 착각에 빠질 지경에 이르렀다.. 밖에서 일할 때는 꼼꼼하고 침착하다고 인정받는 사람인데 집에서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 격으로 심장이 쪼그라들게 된다.. 가족이 아니라 웬수들이다 자기객관화가 안된 채 짐승마냥 본능대로 살아가는 결혼할 자질이 없는 인간들은 제발 하지좀 말길.. 차라리 우리 젊은 세대들이 결혼을 함부로 안해서 오히려 이런 면에선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 불행한 가정을 재생산하지는 않으니.
첫 문단 특히 공감입니다... 제 경우는 느네 아빠가 바람핀다 라는 말을 대놓고 하는 경우였죠... "제가 뭔말을 하든 개의치 않는다"는 문장 진짜 공감입니다.. 제 말 듣는 눈, 그리고 바로 다음의 반응, 차후의 대우 등을 보면 안듣는게, 안들었었다는게 확 느껴져요. 기억조차 못하거나, 자기 좋은 쪽으로 미화되거나, 심하면 그래 내가 나쁜년이다 나가라, 나 자살해버릴거다 하면서 뻘떡펄떡대는 등... 고생 많으셨습니다
불과 며칠전 협의이혼으로 마무리됐습니다. 본 글 쓰고 한달 뒤 부친이 가정이 있는 보통의 남자라면 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보여, 자식인 저조차 답답하고 이대로는 안되겠다싶어 탐정사무소 몇군데 검색해보고, 변호사 알아보라고 엄마에게 추천드려 진행했더니 하루만에 외도하는 꼴을 보게 되더군요. 몇 달간 확보한 증거자료와 선임한 변호사의 조언을 토대로 밀어붙이니 부친도 인정하여 재산분할도 대략 65;35로 엄마에게 유리하게 정리됐습니다. 가족 모두가 진실을 다 알고 있는 입장에서 부친은 지인에게 외도에 대한 합리화랍시고 개소리를 늘어놓고, 변호사 빼고 유리하게 합의보려고 이랬다 저랬다 말을 바꾸고, 이혼도 질질 끌면서 엄마를 바보취급하고 가스라이팅을 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니 모든 원흉은 부친이었고 그 부친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피해가 고스란히 엄마에게, 그리고 자식들에게 전가되는 삶을 살면서 부친만 평생을 희희낙락, 그 외 구성원들은 정신적으로 피폐한 삶을 살아왔던거죠. 잦은 이사와 이직, 업의 변경 아빠의 즉흥적인 계획에 최우선적으로 평생동안 가족이 협조해주고 지금은 일이 안정되어 하루 2시간만 일해도 될정도로 개인시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가족과의 시간은 전무하고 1년 365일을 기상하자마자 밥먹고 바로 외출 후 연락은 거의 되지 않고 자정 전후로 복귀하는것도 존중하고 싫은소리 못하는 엄마였습니다. 남편의 외도가 들통나지않으면 의부증, 신경증. 우울증, 자살로 끝났을 수도 있는데 진실이 밝혀진 덕분에 정신과 치료, 심리상담, 취미활동, 운동으로 지금은 엄마에게 평화가 찾아왔고 저도 직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일이 잘 풀리게 됐네요. 허구한날 접하는 엄마의 우울한 하소연과 표정, 아빠의 납득안되고 제멋대로인 행동들과 그걸 조목조목 따지거나 바로잡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 그러다가 1년에 한두번 크게 터지는 부부싸움 그 꼴들을 더이상 안보게되서 너무 행복합니다.
1. 행동하기 2. 말로표현하기(사건 인정) 3. 스스로 감정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기(진정법) 4. 연극연기해보기(익숙했던 것과 다른 경험을하여, 상상력,창의성이 자극되어 가능성을 보는것) 5. EMDR치료법(트라우마 기억이 날때 안구를 좌우로 크게 움직이기) 트라우마 치유과정: 인정, 그러한 사건이 내게 있었음을 > 무력감을 되새김(당시 느낌,기분) >자기 연민 >인지(그러나 과거임. 지난 일임) 지난 일이라고 생각하는게 중요하며,신체적, 정신적으로 인정하고 나아가야한다. 강연자가 강조한 치료에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한 한가지 방법에 집착하지말고 '뇌와 정신을 다르게 생각하면 환자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처럼 의사는 항상 다른 가능성을 염두해두어야한다.
중학교때 학교에서 은따당할때 집에서 힘들어서 엄마한테 말해보려고 했을때 귀찮다고 시큰둥하던 엄마 화장실가서 엉엉 몇시간을 쓰러질때까지 울어도 관심도 없어서 그후로 남앞에서 안울게됨 어차피 위로 못받을걸 알았나봄 근데 엄마하고 떨어져서 독립하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음 나를 정말 있는 그대로 봐주고 따뜻한 위로 부족한 내 모습도 그대로 봐주는 친구들 덕분에 삶에 우울증이라는게 사라졌음 근데 귀신같이 6년만에 엄마를 보게 되니까 우울증 생김 가족이니까 봐야된다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은 완전히 버렸음
전 고딩때 엄마 바람나서 돈 다 날리고 저보고 대학 시험 포기하라고해서 울고 또 울다 폐렴 걸렸음. 의사가 치료안하면 일년 못 넘긴다고 함. 다행히 치료약은 공짜라 목숨 건짐.일년을 밤마다 울어서 한번도 물어보지도 않음. 그래도 이십년째 엄마 먹여살리는 중. 그때부터 가족애 그딴거 없어짐. 그저 은혜갚는다 하고 부양중. 생활비 보내고 얼굴은 잘 안 봄.
8년쯤 된 것 같네요. 이 분이 쓰신 를 읽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 년쯤 전에 단약을 했어요. 단약이 끝일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단약은 시작이네요. 이제야 트라우마에 휩쓸리지 않고 일상 속에서 증상을 다루어가고 있습니다. 병원은 조만간 졸업하고 이제 상담을 시작합니다. 내일 첫 상담을 가요. 저는 저를 돕고 싶습니다. 트라우마 때문에 힘드신 분들 마음속에도 자신을 돕고 싶은 자기 자신이 있다고 믿어요. 그 목소리를 따라가세요. 모두의 행운을 빕니다❤ 귀한 영상 감사드립니다.
엣 저도.... 화 못 내더라구여 심지어는 연기 수업할 때는 화를 못 내서 스스로가 되게 우스꽝스럽게 느껴졌음 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그래서 요즘엔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그냥 내 할 말만 한다...하고 생각합니다. 이건 화내는 기 아니라, 그냥 해야할 말을 하고 있는 것 뿐이야. 침착하자, 이건 그냥 해야할 일이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상관없어. 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ㅎㅎ 제겐 나름의 꿀팁이었는데 님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여!
@@maxkoo2926심봉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심청이를 찬양하는 나라니까요. 저희 아버지가 알콜중독으로 주폭을 달고 살았는데, 어릴때는 그런 아버지께 나중에 간을 당연히 기증해줘야한다고 생각하고 살았네요. 자식은 그렇게 효도해야하는거라고. 어릴때는 그게 당연한건 줄 알았고, 그렇게 교육받았죠.
트라우마 치료를 받으실 거라면 한의원이나 정신병원에 가지 마시고, 심리상담사(심리치료사)에게 가세요. 영상에 나온 박사님과 비슷한 분들이 직접 치료해주십니다. 저도 우울증,무기력,강박증 등등 병원입원 해야 할 만큼 심각했었는데, 심리치료 받고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심리치료에 약만 쓴다면 평생 약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고, 정상적인 심리치료 자격증이 없는 한의사?(한의사가 카운슬러를 한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는데 윗 댓글분 말씀이 맞다면 좀 충격적이네요.)같은 분에게 받는다면 증상이 더 악화되거나 돈만 날릴 수도 있습니다. 심리상담사를 고를 때에는 왠만해선 한시간에 8~12만원정도 하는 가장 기본적인 센터로 가시고, 상담사의 경력이 비교적 쉬운 '미술치료사' 이런 거 말고, 석박사 하신 슈퍼바이저 분을 찾아가세요. 석박사가 능사는 아니지만 심리치료는 정말 많은 공부가 필요한 분야이고, 우리나라는 공부도 별로 안 한 자격미달의 병아리 심리치료사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분들에게 받으면 오히려 위험합니다. 그러니 안전하게 가려면 석박사에 상담경험이 많은 나이 좀 있으신 분을 선택하세요. 센터는 집에서 가까운 곳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사이트 들어가보면 상담사 이름이랑 나이랑 경력 다 나와있으니 그분들 중에 고르세요. 그리고 상담 시작한 후에도, '뭔가 나랑 안 맞는데...'라는 생각이 들거나, 내 얘기를 잘 안들어준다는 느낌이 들거나, 날 비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다른 상담사로 바꾸세요. 상담사 여러 명 돌아가면서 하다가, 그 중에 괜찮다 싶은 사람 추려서 만나도 좋습니다. 치과도 여러군데 가 보는 것 처럼요. 저는 지금까지 두 명의 상담사를 만났고, 첫번째 상담사와 굉장히 안 맞았습니다. 운 좋게 두번째 상담사와는 정말 잘 맞았고, 지금까지 4년 넘게 상담받고 있어요. 이 두 번째 상담사분이 저와 상담을 하며 3번 센터를 바꾸셨고, 저도 자연스럽게 상담사분을 따라 다니며 센터를 이전했습니다. 센터별로 상담금액이 조금씩 다를 수 있고, 위치도 바뀌기 때문에 곤란할 수 있지만, 왠만해선 나와 잘 맞는 선생님을 따라다니는 것이 좋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그냥 병명을 알려주고 약을 처방해주는 사람입니다. 심리치료를 하고 싶다면, 심리치료사에게 가야해요. 돈이 있다면 무조건 하시길 바랍니다... 이 영상을 보시고 느끼셨던 도움과 위로를 당신은 앞으로 100번 넘게 느끼셔야 합니다. 그래야 치유가 가능하고, 그래야 인생이 바뀔 수 있어요. 저는 살기 위해 상담사를 찾아갔고, 지금 이렇게 목숨이 붙어 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당신에게 부디 행운이 있길...
그들은 왜 애를 낳은것일까요 이유는 각자 여러가지 겠지만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던걸까요 아님 본인들 노후의 보험 같은 것이었을까요... 제가느낀건 그냥 남들 다 하니까 반 본인들 노후 보험 반 인 느낌입니다. 자식이 살아갈 인생이 행복한지는 별로 중요하지가 않아요 그래서 그런가 낳아준것 자체가 원망스런 사람들이 많은것 같아요 낳아준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한다 가스라이팅 하지만 감사를 느끼고 말고는 자식의 몫인데 정말 아이를 낳아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또다른 내가 없도록 내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시태어난다면 다신 부모가 낳아준 사실이 원망스럽지 않길 바랄뿐입니다
사소하게 들리지만, 엄마가 나에게 했던 여러 가지 끔찍한 언행들 중에 '놀리기'가 있었다. 반에서 왕따 시키는 아이 놀리듯, 엄마는 늘 재미로 나를 놀렸다. '얘! 이빨이 누래서 너무 꼴보기 싫어.' "네 일기장에 이렇게저렇게 써놨더라?' '너는 어릴 때 머리에 이가 득실득실했어. 얼마나 지저분했는지. 머리도 안 감고 다녀가지고.' 등등. 내가 한 말과 행동을 이상한 방식으로 따라하면서 놀리고 오빠랑 깔깔대고 웃었다. '어버버거리면서, 넌 말도 제대로 못하냐?' 이런 말을 자기 망신인 줄도 모르고 남들 앞에서도 했다. 내가 중학교 들어간 후 자기 딸이 전교 1등이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하게 되기 전까지, 엄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놀리며 웃음거리로 삼았다. 그 트라우마가 평생 따라다닌다. 다른 사람이 나를 조금만 놀려도, 순간 불같은 감정이 속에서 올라온다. 분노, 슬픔, 서러움, 불안감 등등. 상대방은 가볍게 한 농담인데도 나는 짓밟힌 기분이 들어서 미치도록 분노하고 며칠동안 그 상황을 반복재생한다. 트라우마가 이렇게 오래간다. 그나마 늘 느끼던 불안전한 느낌, 불안감이나 공허감, 엄마가 집에 들어와서 날 고문하기 시작하던 시간인 저녁이 되면 느끼던 슬픔과 초조함 등 가장 중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치료해나간지 4년이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깊은 곳에 묻혀있던 트라우마는 계속 하나씩 드러난다.
저는 책을 먼저 읽었어요. 도서관에서 제목에 끌려 읽게 되었는데, 제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었어요. 왜 그렇게 사소한 일에 겁먹고 짜증이 솟구치고 무력했는지 깨닫게 되었어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치르며 우리 부모님과 윗세대는 엄청난 혼란을 겪었을거고, 자녀세대에게 그 트라우마가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한 분야에서 30년 이상 연구하고 헌신해오신 박사님께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운동 등으로 움직이며 스트레스를 풀고,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며, 말과 글로 트라우마를 표현하고, 연극 등으로 타인의 입장을 헤아려보고 표현해보고, 여러 다양한 것들에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하면서 사랑하며 누리고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아깝게 허비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트라우마가 무서운 건 사랑하기 어려워진다는 거예요"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트라우마 관련 교육에서 강조하는 키워드는 '안전감', '연결감'입니다. 안전감과 연결감을 충분히 경험하기 위해서는 교수님의 말씀처럼 몸을 움직이면서 사람들과 교류하려는 노력이 꼭 필요하겠죠.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위협을 받게 되면 세상으로부터 회피하려는 선택을 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주변에서 피해 당사자가 세상 밖으로 안전하게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결코 혼자가 아니며, 생각보다 우리를 도와줄 사람들이 많다는 걸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강의를 준비해주신 EBS 제작진과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동청소년기는 물론 심지어 성인이 된 후에도 폭력을 경험했던 사람으로써 폭력을 한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의 비율이 4분의 3이나 된다는 게 놀랍네요. 그래서 이해 받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예전에 사귀었던 사람에게 제가 겪었던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런 얘기는 무서우니까 하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내가 일상처럼 겪었던 일이 그렇게 말만 들어도 무서운 일인 줄 그때 알았습니다. 이 영상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저를 이해해줄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거의 버린 것 같아요.
@@user-ue6hb2il8k 네 맞아요 세상 쫄보 찐따들도 저한테는 화 되게 잘 내고 폭력적? 억압적인 모습 드러내요. 근데 저는 그게 그 사람들의 본성이라고 봐요.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예의바르고 잘해줘봤자 그건 본성이 아니고, 약자에게 드러내는 모습이 진짜 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부모의 불화로 소리에 대한 공포가 있었던거 같아요, 어린 제 딸이 울거나 징징거리면 저는 불안과 분노가 솟구쳐올라, 그 순간 어딘가로 사라져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하면서 아이한테 왜 그러냐고 소리를 지르곤 했어요. 늦었지만 아이만이라도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고 하고 싶은데 너무 늦은건 아닌지..정말 부모 잘 만나야 됩니다. 3대 가 아니고 두고두고 되물림하는듯요
깨닫기라도 하셨으니 다행이네요. 저는 아빠가 그러셔서 길거리에서 남성이 짜증내는 것만 봐도, 큰 소리만 들려도 불안해요. 아빠는 집에서 폭력적인 콘텐츠를 큰 소리로 보시고는 했는데 그것도 그래서 너무 싫어서 항상 방에서 이어폰 끼고 있었죠. 말해봤자 내가 번 돈으로 내 집에서 내가 영화도 못보냐고 하시니까. 뭐 틀린 말은 아니기는 해요. 아빠랑 따로 살게 된 후에는 TV를 무음으로 해놓고 보는데, 엄마는 왜 TV를 벙어리로 해놓냐고 하시네요. 설명드렸었는데 중요하다고 생각안하시니까 또 잊어버리신 거겠죠.
좋은 영상을 제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5:12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과 사는 것 - 자기 역할의 한계를 알아야 함 27:08 조지프 루두의 연구 - 몸을 움직여라 36:04 트라우마 치유과정 - 인정->무력감->자기연민->(과거의 일임을)인지 ‘깨달음’은 트라우마 치료의 핵심임 신체적, 정신적으로 인정하고 나아가야 해요. 환자들에게서 이런 납득과 발전을 이끌어 낸 걸, 저는 EMDR에서 처음으로 목격했습니다. (성인기 트라우마) 제가 의료 교육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의 방법만을 고집해서는 안된다는 거죠.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항상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해요. ‘뇌와 정신을 다르게 생각하면, 환자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처럼요.
어릴적 엄마의 심한 가정폭력 그리고 방관한 아빠 그리고 아빠가 엄마 때리는 모습 엄마의 바람 등등 그 트라우마로 남자는 언제든 여자를 때린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남친을 자극해보고 폭력성이 없는지 테스트하고 바람피는 인간은 상대 안 합니다 그 트라우마로 평생 마음속은 지옥인데 남들앞에서 웃으며 삽니다 이 세상 날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을테니까. 혼자 감당해야 하는 몫. 부모 잘못 만난 죄 세상에 제일 큰 불행. 그래서 부모 잘 만나 행복한 애들보면 너무 부러워요
@@Gloria_Aria 정상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라는게 좋죠 자식을 어떻게 잘키울지 아는 그런 부모 아이는 5살때부터 유치원 학교를 다니는데 좋은 환경이 있는 곳으로 보내야합니다. 아주 할렘가같은 그런 동네에서 지내면 아이들이 어릴때부터 굉장히 자괴감에 빠짐 난 국민학교조차 가기 싫었어요 그래서 1학년때 학교를 안갔더니 날 차에 집어처넣고 학교에 끌고 갔음
박사님이 언급하신 트라우마를 어릴때 겪었던 사람인데요. 바보짓하고 인간관계를 못해 늘 외로워하는 저자신을 비난하며 항상 저를 미워하고 자학해왔어요. 그런데 얼마전부터 지금 나의 모습은 내가 부족하고 못나서가 아니라 여러 열악한 환경이 오늘의 나를 빚어낸 거라는 자각이 생기면서 저를 가엾게 여기고 제스스로 저를 칭찬하며 '괜찮아. 다 잘될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했어!' 라고 저 자신을 격려해주려고 노력한답니다. 우울할 때마다 산책을했구요. 제가 늘 써먹는 방법에 박사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Thank you!
저도 한번의 충격적 트라우마로 자아가 강간당하는 느낌? 자아 자살 하는 느낌을 겪고 그 후로 감정을 못느끼게 되었습니다. 약 70번이 넘는 심리상담 기간을 거쳐서 조금씩 감정을 회복해가고 있는 단계입니다. 아픔과 상처가 있는 분들 모두 같이 힘내보아요 이런영상을 보는 것부터가 우리에게는 아직은 조금이라도 자생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분의 책을 읽으며, 내가 실망으로 스스로를 속이며, 회피하기에 급급했던 감정들을 만납니다. 주로 공정성, 사회적정의등으로 포장되어서 회피하기 때문에 저 자신에게 잘 들켜지지않았던 상처들입니다. 과하게 비대해지거나, 위축된 뇌기능을 이해하고 정상화 될 수 있도록 , 건강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희망을 만들고 싶습니다.
댓글보니 대부분의 트라우마가 어릴때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어른이 되어도 잊혀지지않는 기억 속 고통으로 남아있는 .. 집에서는 정서적인 학대 속에 방치되어 어른이 될때까지 입을 닫았었고.. 학교에선 폭력에 노출된 사회였고 그게 그냥 당연했던.. 학교에서 난생 처음 입학한지 얼마안된 8살 초등 1학년.. 담임인 김대식 선생님께 수업중 앞 친구랑 심한 장난이 아닌 사소한 장난이었음에도 세찬 뺨을 맞았던게 기억난다.지금 생각하면 천인공노 할일. 중학교땐 미술 준비물을 깜빡 했단 이유로 반지 낀 주먹에 오른쪽 볼이 페여 살점이 보였던..허벅지 피멍이 들도록 후려치던 여선생님..고등학교땐 뾰족한 돌로 머릴 살짝 살짝 찍어대 피가 묻어나게 하던 체육 선생님.. 이렇게 수없이 많은 수백 개의 댓글이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치를 떠는 사람들이 너무 너무 짠하다..맘이 너무 아프다..
30대인데, 많은 부분 제가 어렴풋이 생각했던 부분을 전문화된 지식으로 잘 풀어서 정리해주시니 정말 감사하네요. 어릴적에는 한국사회 정말 어딜가나 폭력과 위계 소위 말해 '나보다 낮은 사람을 찍어 눌러서 말을 듣게 한다'는 기조가 어딜가든 존재했었는데. 쓸데없이 조심하고 위축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된 것 같아서 좋습니다. 양질의 컨텐츠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이 시리즈가 여러 집단의 연구목적으로 제작된 영상인줄 알았습니다만 ebs만의 영상이었군요. 이렇게 유익한 영상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영상에서 배웠던 내용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그것이 옛날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분명 쉽지는 않겠지만 저는 노력해보려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좋은 영상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가족한테 받은 강처를 이겨냈던 과정이 인정,무력감,자기연민, 인지 였어요 그 과정이 절대 쉽지 않았고 자주 우울해 했지만 이 영상에 나온 해결법을 무의식 적으로 모두 행해왔던것 같아요. 이론적으로 정리해주니 머리가 훨씬 맑아지고 정리된것 같네요. 트라우마 해결을 위해 여러책과 강의들을 봐왔지만 최고로 도움이 된것 같습니다.
태어난지 3개월 되자마자 부모님은 이혼하고 아버지란 작자는 한번도 안찾아와서 23살먹고 처음봤는데 하는거라곤 우리 집안 탓.. 엄마가 조금 무책임한 부분도 있어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드신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정말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힘든일이 참 많았다. 4살때 엄마 보고싶다고 엄청 울었는데 욕조에 물받아서 물고문 시킨거, 할머니가 자기가 얼마나 자기 딸보고 나를 낙태하라 했던것, 엄마 말 안들으면 애비한테 버림받은거처럼 고아원에 갈것이라는둥 정서적으로 학대했고 엄마는 항상 가끔 한번 찾아올때 그런걸 알면서도 책임을 피했고 할머니는 아빠가 보내준 양육비를 주식으로 날리고 가난뱅이 기르듯 나, 그리고 삼형제를 힘들게 했다. 24살먹고 독일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고 여자친구도 있지만 아직도 꿈에 나오고 항상 사랑하려고 노력해야하는 결핍적 상태가 무의식 적으로 있는거 보면 트라우마는 정말 무서운것 같다. 트라우마를 겪으신 모든 분들에게 계속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에 존중을 표합니다.
전 아주 잘 살고 있어요 우울증도 없고 비흡연자이며 음주는 하지만 조절가능합니다. 하지만 어릴적 부모님의 끝없는 싸움, 매번 엄마에게 시비걸던 아빠, 조절 불가능한 아빠의 흡연과 음주, 나를 향한 엄마와 언니의 비난은 절대 잊을 수 없고 잊지 않을 겁니다. 아빠가 엄마에게 시비를 걸듯 몇년전 언니가 저에게 억지시비를 걸릴래 바로 절연했습니다 더이상 참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나는 날 보호해 줄 수 있으니까요
20살 도망나갈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욕하고 때렸던 엄마와 이걸 방관하고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던 아빠.. 사랑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주는 방법도 모르겠고 누가 날 좋아한다고 해도 인정 할 수가 없다.. 시린 외로움은 괜찮다.. 상처 치유하고 발전하고 살아가고 싶은데 문제는 내가 아직까지도 죽이고만 싶어 치를떠는엄마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 열등감과 피해의식 때문에 자꾸 타인의 작은 말 한마디, 시선 까지도 공격으로 느껴 방어기제가 발동돼 싸움으로 번지고..사회생활은 번번히 실패하고 고립돼서 살아가고있다.. 괴물로 살고싶지 않았는데..예쁜 생각만 하고 잘 살고 싶었는데....... 내가 어쩌다 이런 괴물이 됐나 생각해보면 그 뿌리가 어릴때 두드려 맞고 살아온 것 밖엔 없어..이웃들도, 선생님들도 친구들도 모두 좋은사람들만 만났는데 도대체 어떻게 부모가 나한테 그럴수가 있었는지..
저는 중학생때 강간미수를 당했는데 40가까이 된 지금도 연애한번도 해본적 없고 결혼조차 안했습니다. 부모님은 자꾸 절 보시면서 본인의 인생을 실패자처럼 말씀하셔서 괴롭고 짜증나요. 사건 이후로 저는 살이 찌기 시작했고 외모에는 관심이 사라져서 화장품도 잘 안바르고요. 남들은 왜 살안빼냐 연애안하냐 결혼안하냐 오지랖인데 이해를 바라지도 않고 날 인생의 패배자 취급하지말고 그냥 날 내버려뒀으면 좋겠어요. 그냥 님도 저도 아무일없이 고요하게 다들 잘살았으면 좋겠어요.....
중학교 처음 들어 갔을때 였나, 엄마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고 무시하고 너무 힘들게 해서 그 앞에서 지지 않을려고 바락바락 소리지르고 대들다가 세상에는 내 편이 하나도 없구나 절망감에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대로 쓰러져 기절했었다. 어차피 엄마는 나한테 관심이 없으니 내가 기절한지도 알지 못했다. 항상 그랬다 나는 방치되어 지고 관심 받지 못했다
작년에 큰 일을 겪고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로 손끝에 마비가 오고, 불안장애로 가슴 통증이 심했는데요. 그래도 극복하려고 혼자서 심리상담도 찾아 다니고 약도 먹으면서 고생했던 게 헛된 일이 아니네요. 반 년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정말 운동, 심리상담, 정신과 방문 이 세 가지만 반복했는데... 우연히 보게 된 이 영상이 너무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때 만나뵙던 상담선생님과 비슷한 맥락이에요. 요새 다시금 그 일이 떠오르고 힘들어서 매일 우는데 또 다시 한 번 저에게 인지시켜 주고 위로하는 시간을 자주 가져 보아야겠습니다.
대단하시네요 힘드셨을텐데 버티고 살아가 주어서 고맙습니다 당신이 살아가는 이 세상이 험난 하게 느껴지겠지만 버텨주어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도 희망을 느끼고 위로가 되네요 :) 부디 그런 노력들이 헛되지 않길 바라며 이젠 울지말고 꼭 행복해지시길 바랍니다 꼭 그런날이 빨리 다가오길 고생하셨어요
어릴때 아부지가 하루가 멀다하고 술마시고와서 큰소리내고 엄마랑 싸우는 소리에 늘 무서웠다.. 그래서 내가 층간소음에 엄청 예민하고 소음에 늘 불안하다.. 그래도 좋은 남편 만났고 걷기도 빠짐없이 하니 조금 편해진걸 느낀다.. 백프로는 아니지만.. 몸을 움직이는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트라우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에 짐이 있는데 이 영상이 마음에 큰 위안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성적으로는 이 감정이 비상식적인 것을 알지만 제가 어쩔 수 없는 부분에서 정말 많은 좌절을 느끼고, 저 자신에 대한 회한을 많이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 강의를 보니 내 잘못이 아니었고, 내 의지의 잘못이 아니었구나 싶어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경험이 뇌를 빚는다'는 말이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과거의 어떤 경험을 몸이 기억하고,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변해버린 뇌구조에 따라 몸이 반응하며 그것은 뇌의 제어할 수 없는 부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말이, 정말 해방감마저 느끼게 됩니다. 강의 말미에서 나오는 치료방법들을 따라해보고, 라는 책을 한 번 봐야겠습니다. 과거의 경험임을 인지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수치심에서 도망치지 않고 인정하고 행동하는 것. 상상력을 발휘해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고, 나에게 어떤 또 다른 가능성이 있는지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새로운 현실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 생각해야겠습니다. 콜크 교수님의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강의의 기회를 마련해주신 ebs 제작진 분들 감사합니다.
어릴때 집에서는 친할머니와 그 사람의 친구들에게 학대당하고, 초등학교에서는 못생겼는데 공부는 잘한다는 말같지도 않은 이유로 심하게 왕따 당하며 보냈다 어릴때는 환경이 날 괴롭혔지만 커서는 그나마 마음을 열고 속에 있는 얘기를 꺼냈던 가족들에게 들은 ‘너는 왜 사람들을 싫어하냐, 넌 잘못된 거다, 언제까지고 과거에 목매여 살거냐’ 같은 말들이 오랜시간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인간이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의 의미를 나는 그런식으로 가족을 통해 배웠던것 같다, 아무리 피붙이라지만 내가 겪은 학대와 고립의 경험이 그들 자신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어떤 큰 용기를 내어 마음을 털어내놨을 지라도 그런것들은 하찮은 무언가에 지나지 않았나보다 20대가 되어서는 어짜피 나에게는 뻗어내릴 뿌리도, 나를 받아줄 토양도 없었다는걸 깨닫고는 참 아이러니하게도 공허한 평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느껴가는 중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이게 또 어떤 감정으로 뒤틀려갈지 너무 무섭게 느껴진다 제발 어린아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마라 쓰레기같은 말들을 내뱉는 당신이야 이미 완성된 쓰레기지만 그 말을 듣고 자라는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나지 않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존재들이 아닌가
세상에나... 이렇게 귀한 영상을 무료로 볼수 있다니 유튜브의 진장한 순기능 그리고 EBS에 너무 감사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의 권리와 인권이 존중 받는날이 오기를 진정 바랍니다 아동 및 청소년시기 방임, 학대, 성폭력, 가정 폭력 피해자로서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오길 바랍니다
헐 자식키우고 있으면 술 끊으세요 당신은 상처받은 아동일 뿐이었겠지만 배우자와 자녀를 가진 그 순간부터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속 상처표현이 가정폭력을 행하는 두려운 가해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정신차리고 무조건 술 끊고 운동하세요 아이를 키운다는건 그런겁니다 어떤 변명도 안 먹혀요
26:26 편도체가 위협을 감지했을 때 대처행동을 취하면 기분이 나아지고 무서워도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음을 알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행동을 취하지 못하면 위협이 편도체 중심부위로 전달돼 공포가 되고 앞으로도 이런 위협에 대처를 못 한다고 느끼고 나는 끝났고 나는 해를 받을 거라고 느끼게 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것으로 내 무의식의 뿌리가 만들어지는게 억울하네요 스트레스 받으면 운동해라 트라우마를 겪은 후에는 안전감 찾기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기 액션이 중요함 자신의 상황을 말로 표현하기 그 경험을 인정 스스로 감정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기
트라우마가 무서운점은 사랑하지 못하게 되는것뿐만아니라 쾌감을 느끼지 못한다는게 진짜 공감된다 진짜 그 순간 눈이 커지면서 세상 모든게 내것 같고 짜릿하고 상쾌하고 내가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스스로가 기특하고 뿌듯하고 막 옆에있는 아무에게나 자랑하고 싶고 내가 해냈다는 그 쾌감을 못니끼게 된다는게 너무 공감된다. 어릴때는 조그만한거에도 진짜 하루하루 내일 아침에 워터파크가는데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거나 그랬는데 요새는 뭐 인생이 즐겁지가 않다 그냥 죽지못해 산달까 일하고 집와서 씻고 밥먹고 잔업자고 일하고 집와서 씻고 밥먹고 남은거하고 자고 뭘 해도 우울하고 그냥 그런거 같다.
가장 위험한 케이스는 뭔 줄 암? 부모가 분명 본인에게 잘못된 행동을 한게 맞는데 이걸 좋은쪽, 아니면 모두 본인탓으로 합리화 해버리는 부류임. 차라리 부모탓하는 사람들은 대물림하지 않을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정말로 잘못된지 모르기 때문에 고대로~ 본인 자녀에게 똑같이 행동함.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들을 실천해 보겠습니다. 좋은 강의 올려주신 EBS 감사합니다. 1. 안정감을 되찾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보고 자신이 믿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것 2. 자신의 상황을 말해야 한다. 말로 표현해야 그 감정을 인정 할 수 있다. 3. 연극 연기를 하며 익숙하게 여기던 것과 다른 경험과 생각을 해본다. 4. 몸의 자세도 정신 상태에 영향을 준다. 트라우마는 인정, 무력감, 자백, 인지 순서로 나을 수 있다. 책 [몸은 기억한다]를 읽는다.
극복방법 1.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체적 활동으로 반응을 해야 무기력감에 빠지지 않는다. 2. 스트레스 받았던 일을 소리 내어 말로 표현하기. 3. 내가 좋아하는 배우로 연기하며 상상력과 다른 경험에 노출시키기 4. 트라우마를 얘기하다가 흥분되면 중간에 눈을 좌우로 움직여서 차분하게 하기.
나의 경우는, 는 기억이 신생아때 무의식에 이미 각인된 듯 하고, 이후 교내 왕따나 은따 경험, 부모의 부재, 부모의 충분치 않았던 애정표현과 케어 및 정서적 지지, 또 폭력적인 가정환경에서 높은 불안감과 애정결핍을 경험해온 상황에서, 성인 된 직후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한 일방적인 실연 경험으로 공황장애로 발전했음. 그 이후의 관계에서도 정서적 지지나 공감이 거의 없던 채로 오랜기간 우울증 및 불안장애에 시달리다가, 그렇게 이후 우연히 사랑하게 된 사람에게서 또다시 예고없이 일방적으로 버림받고 무시당하고 끝도없는 시비털기에 소통의 부재를 겪어가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자체를 부정하게 됨. 이에 대해 하소연을 몇년에 걸쳐 했으나 역시나 계속된 무시. 이렇게 나의 평생의 트라우마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강화돼 왔음. 아마 다시는 예전과 같은 사랑은 못할것이고, 저렇게 받아온 배신감과 상처와 그로 인한 분노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것. 오로지 자기입장과 자기트라우마만 중요한 상대와는 관계를 시작도 하지 마라. 자신을 더욱 불행하게 만들 뿐이니. 이젠 아무도 믿지 않는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잊고 지내다가도 꼭꼭 덮어놓은 비참한 감정들이 이런 게시물들의 계기로 다시 올라올때마다 뭔가 치밀어오르는데, 이마저도 매우 싫은 불쾌감이다. 다시는 내안에 들일 일 없다. 수도없이 많는 기회를 줬었고 상대는 계속해서 찼으니 내 잘못은 없다. 만약 있다면 저런 이기적인 버러지를 (혹은 날/우리를 위한거라고 단단히 착각하는 멍청이를) 선택한 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