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 대마도는 99.99999% 일본땅인디? 0.000001%가 세종때 잠시 몇달간 정벌한거? 그걸로 조선땅인데 지금 일본이 실효지배라고? ㅋㅋㅋㅋ 수준높게 조선왕조실록에 우리땅에 편입된 거 한줄도 없다는 어려운말은 안쓸테니 대마도가 우리땅에 편입됐다는 단 한줄의 기록도 없는 우리 국사책부터 읽어보시길.
복잡하게 생각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대마도를 차지할 하나의 이유도 없으니까. 왜? 농업중심사회의식에서 실량의 자급자족조차 이루지 못하는 땅덩어리를 가질 이유가 없었으니까. 한반도에서 이주시킬 이주민도 구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따로 수군을 배치할 여력도 이유도 없는 그냥 알아서 조용하기만 하면 더이상 바랄게 없는 땅덩어리를 왜 차지할까?
@@LEVI-mt5ve정확히 조선에 생각이엇음 우리관점으로 보는게 그당시 관점으로 봐야지 그당시 조선은 사대주의가 아니엇음 무조건 명나라다 그런시대가 아니엇음 사대주의가 덜햇던시기라 일본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들엇음 농지가 3에서 4프로인대 그냥 쌀만축내는수준임 그냥 영주 보내가지고 아라서관리하라고 하고 그냥 무역돌린거임 조선측에선 먹을 필요가없는거지
대마도를 조선이 점거하지 못한 것은 고대부터 대마도가 일본계 주민의 땅이었고 그들을 통제할 힘이 없었기 때문임. 대마도랑 무역을 안한것도 아님. 조선은 인삼, 중국산 백사를 대마도를 통해 수출하여 막대한 이득을 봤으며, 일본 은광석을 수입, 제련하여 다시 일본으로 은을 재수출하여 돈을 벌었음.
98년 독도 협증을 맺은게 답이다 ...그러고 지금 문제없다고 생각하니 왜 넘어가는지 모르는거지....100년후 왜 저렇게 맺어진줄모르게 되는거고 그때 우리힘이 빠지면 일본이 협증의 유리한 해석으로 지분을 주장할것이며 그때 댓가를 치르게 되는거지 ..즉 수백년에 걸쳐서 넘어가게ㅈ되는것이니 왜 빼앗겼는지를 모르는것...이미 잘못된 협증이라는걸 모르고 있는데 ..100년후 내것이라 주장할수 있겄는가 ..
대마도가 조일양국을 등쳐먹으며 살던 독자적 영향력을 가졌던 애들인건 맞지만 삼국사기의 원삼국시대때 기록에서 부터 왜인 본거지였다는 기록이 나오는걸로 보아 일본 영향력이 더 강한 지역이었다고 생각됨. 애초에 언어부터 일본어권이었고 사실 독자적인 정치적 지위를 생각하면 고려에 속했지만 조선초 까지 세습 성주를 유지하고 15세기에 전라도에 드디어 중앙정부에 편입된 제주가 더 독립성이 컸었지. 하지만 제주는 분명한 한국어권 지역이었고 결국 영토의 주인을 결정짓는건 선주민의 민족적인 위치라생각듬
일본은 히데요시 이전에는 통일된 국가가 아니었고, 지금 우리 국토와 비슷한 면적의 홋카이도가 일본 영토에 편입된 것도 근세인 메이지유신 무렵이니 신라, 고려 때는 일본의 국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고, 대마도는 일본 통제권 밖이었습니다. 대마도가 일본 영토에 편입된 것은 17세기 중반이고, 간접 지배를 직접 지배로 바꾼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로서 그 전에는 일본도 대마도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일본이 강성해지기 전, 대마도의 지위가 어중간한 신라, 고려 시대와 조선 초기에는 왜 대마도를 확실하게 우리 영토로 안 만들었을까요? 조선 초 태종의 말처럼 대마도는 너무나 척박하여 조선이 영토로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는 주민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부담이 더 커서 버린 것이 아닐까요? 당시로서는 가치가 거의 없는 곳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투자할 이유가 없었겠죠. 즉, 차지하지 못 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저도 님과 같이 사람이 살기에 환경이 너무 좋지 못해서 조선이 이땅을 등한시 했습니다. 당지 워낙 왜 놈들이 조선에 노략질을 하니 대마도 정벌을 해버린것입니다. 그리고 나서도 조선은 신경을 쓰지않았습니다.그러니까 실지로 말도 일본말을 사용하는거죠? 만약에 진짜 조선인이 많았다면 조선말을 계속 사용하고 있겠죠?
우리가 청과ㅠ왜를 폄하하는 목적으로 난이라 표현한 것입니다ㅜ난은 나라대 나라끼리 전쟁한게 아니라 도적때의 반란을 진압한 것입니다 사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지방의 도적때들이 들어온게 아니라 정규군이 쳐들어온게 맞으므로 조일전쟁 조청전쟁으로 표현하는게 맞습니다 우리겨우 왜나라 해적들이 난을일으킨것을 극복한게 아니라 정규군 30만명이 처들어온걸 극복했다는 의미에서 조일전쟁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진왜란은 일본 상인들이 난을 일으킨 삼포왜란과는 다른 전쟁이었습니다
어쨋건 버려서 일본땅이 돼서 일본이 실효지배 한지 100년이 넘는섬을 일부 망상 국뽕병자들이 조선시대에 대마도 정벌했으니 대마도 우리땅 이ㅈㄹ하고 일부 찌라시 가짜 뉴스로 언론이 대마도 국제소송 중인데 거의 우리땅으로 넘어올 확률이 90퍼라고 가짜 기사를 퍼트리는 ㅂㅅ짓을 하고 있다는게 참ㅋ
땅의 주인이라는게 원래 있는가? 옛날에 인구는 적고 땅은 넓던 시절에 그냥 무주지를 선점하여 자기 땅이라 했고, 씨족 부족 국가로 발전해 가면서 전쟁을 통해 영역을 확장 했다. 따라서 영역은 넓어지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했던 것이다. 대마도는 영유권을 얘기 하자면 임진왜란 전까지는 조선의 영역이었던 것이 맞는 것 같다. 조선의 각종 기록에는 대마도가 조선 땅이라고 나오지만 일본의 기록에 일본 땅이라는 것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임진왜란 시작 전에 대마도주가 조선에 일본의 침략 의도를 알렸고 조총을 몇 자루 바치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 대마도주 및 그 주민들은 그들이 일본에 속하는 것으로 완전히 정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동북아에서 영토는 상당히 유동성이 있었던 것 같다. 조선의 영역을 우리는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경계 삼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사실은 조선 후기에 압록강 너머 책문까지 조선 영역이었고 두만강 너머 간도까지 조선 영역이었다. 그 것은 조선 백성들이 그 곳까지 넘어가서 살았기 때문이다. 여진족이 중국을 지배하면서 만주를 비운 덕에 조선 백성들이 그 곳으로 넘어가 차지한 것이다. 그러자 청나라에서 칙사를 보내 조선과 경계를 정하기로 하면서 압록강 너머는 청나라로, 두만강 너머는 조선으로 귀속 시키는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것이다. 이 것을 보면 옛날에는 땅보다 백성이 더 중시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나라와 러시아가 맺은 네르친스크 조약을 봐도 청나라는 시베리아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시베리아는 땅도 쓸모 없고 그 주민들도 중국인이나 여진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이후 민족 의식이 강하여 타 민족을 우리 민족으로 포용하는 포용 의식이 매우 희박하고 매우 배타적 의식을 갖고 있었다. 만약 민족 정책에서 관대 하여 여진족들을 우리 백성으로 인정해 주고 또 대마도 주민들도 우리 백성으로 인정해 주었다면 우리 강역은 만주와 대마도까지 확대 되었을텐데 매우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민족 정책으로 인해 스스로 영역을 축소시킨 셈이다. 고구려가 거란족 몽고족 여진족을 모두 자기 백성으로 포용한 것 때문에 그 영역을 유지한 것 아닌가? 내 생각엔 대마도와 만주 지역을 잃은 것이 배타적 민족의식 탓이 매우 크다고 본다.
지금 떠오른 생각 인데 조선통신사가 일본옆에 있는 독도라면 군함도라네? 독도는 진시황이 뭍혀 있는 어라바뀌었데, 진주로. 대마도는 일본통신사가 있었던 곳이어야 하는데 홍길동의 율도국이라네'율도국이란 피아노를 조율한다라는 뜻으로 다양한 아기를 여기에서 만들고 조율도 하고 하는 곳 이었음.
간단하게 설명해서 세종은 지형적 방벽(큰 강)인 압록 두만 라인 국경을 원했음 그 이상 나가면 방어가 어려웠음(이 땅을 여진족을 포기 시키고 온전히 조선의 영토로 만드는데 100년이 넘게 걸렸음 영토 확장해서 자기 땅 만드는 건 가서 깃발 꼽는다고 되는 게 아님) 또 하나 이유는 더 나가면 명나라를 자극하게 됨(조선과 명나라는 여진족을 관리했음 뭉치지 못 하게 야들 뭉치면 둘 다 피곤하니 근데 서로의 생각이 동상이몽임 ㅎㅎㅎ) 조선이 여진을 칠 때 명 나라와 딜을 했음 어디인지도 모를 공험진 이남은 조선 고토요(고려 때 윤관이 쌓은 동북 9성 근거로)하고 여기 까지 진출하겠음 하고 말임 조선은 어디인지도 모를 공험진 위치를 두만강 이북으로 보았음(조선도 정확한 위치 모르는데 명나라가 알겠음 명나라야 일정 선 안 넘고 조선과 여진이 치고 박고 싸우면 좋은건데 ㅎㅎㅎ) 또 하나 이유는 농본주의 국가는 땅에 큰 미련이 없음 농사 잘 안 되는 땅은 무쓸모라 생각함 압록 두만강 넘어가 봐야 야인들 천지고 농사도 힘들고 관리하기도 힘들고 말임 이 무쓸모 압록 두만 이남 까지 진출한 이유는 경제적 측면보다 안보적 측면이 강했음
항상 토벌전과 점령전은 정책이 달라야 합니다. 그런데 조선은 단 한번도 해외식민지 경영이라는 정책을 수립한적이 없어요. 다시 말해 대마도를 못먹은 이유는 고려말 가졌던 강한 전력의 부대를 유교이념에 따라서 점차 명나라의 눈치를 보면서 해체합니다. 그런 강한 군대를 유지하려면 세금이 필요한데 조선은 도덕경에 입각한 추상적인 정치이념을 숭상한 나라에요. 도덕적인 의미로만 몰입하기 시작한 조선은 사병혁파를 통해 지역별로 갖던 군벌의 싹을 자르기 시작합니다. 사림을 중심으로 점차 현실을 외면한 명나라 중심의 사상에 몰입하기 시작합니다. 즉, 명나라에 사대하면서 해외식민지 건설을 꿈조차 꾸지 못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요인이에요. 그럴수밖에 없는 이유가 나라의 정통성이 부족하고 고려를 멸할때 보인 배신행위는 왕조내내 불안요소 였어요. 그래서 한양수도 이전후 혹시 모를 반란에 대비한 초기에는 군비유지는 필요했어요. 자신이 반란군의 수괴였기 때문에 백성을 믿지 못했고 백성 대다수의 지지를 받던 불교를 탄압하기 위해서 당시 고려시대 들여왔던 유교를 이용해서 불교를 억압하고 사상적기반을 새로정립했죠. 왜냐하면 조선이란 이름도 명나라의 것이고 즉, 백성의 지지를 받고 태어난 나라국호가 아니에요. 고려시대는 찬란한데 비해서 조선은 가짜국호에 백성에 지지는 전혀 받지 못하던 반란국가였기 때문이에요. 특히 군주와 부모는 같다는 억지주장을 주입하면서 복종을 강요했고 세종시기 노비를 늘리는 정책을 시행합니다. 그래서 군주를 부모로 위장시켜서 이것이 가장 선한 도덕으로 몰아갑니다. 조선이 1400년부터 약 100년간의 세뇌로 성공하죠. 그래서 15세기 이징옥 이시애 같은 무장의 반란은 있었으나 무력진압에 성공합니다. 이시기 조선의 군사력은 강했어요. 사실 조선이 수군보다 기마병을 중심으로 북방을 강화한건 왜구토벌이후 북방에서 터진 반란사건이 영향이 컸어요. 이런 불안정한 나라가 어떻게 대마도까지 신경을 쓸수 있었을까요. 왜구토벌의 필요 때문이지. 점령을 필요로 하진 않았어요. 태종 시기 대마도 원정은 왜구토벌의 의미로서 무력시위에 들어갑니다. 이 원정은 대마도 토벌전이었지 주둔을 목적으로 지배할 생각으로 떠난 원정이 아니에요. 만약 명나라의 허락없이 식민지경영을 한다면 이는 명나라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기 때문이에요. 군사를 기르고 해외식민지를 건설한다면 그 칼끝이 명나라로 조준될 가능성이 높아질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단 한번도 조선은 해외 식민지를 건설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사상이 미치는 영향이에요. 사상이 식민지배를 당한 조선의 운명이에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생각이 행동을 일으키는것이고 행동이 습관을 만듭니다. 습관이 인격을 만들고 인격이 운명을 만듭니다. 생각을 지배당한다는것은 미래 내 운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조선의 운명은 건국초기부터 이렇게 설계된거에요.
@@user-kn9rp6uz3y 고려보다 약한 군대가 조선이지. 고려가 상대한 나라가 요나라 금나라 몽골제국이지 너는 몽골군대를 30년동안 상대한 나라가 있다고 생각해? 생각이 짧은건 이해되는데 그걸 마치 팩트인냥 믿는군. 그만큼의 영토를 지켜낸것 자체가 신기해. 거기다 몽골의 살리타를 죽이기도 해. 승병출신 장수 김윤후 역사공부좀 더해라. 토목의 변이라고 알지? 명황제가 고작 오이라트 부족의 에센에게 사로잡히지. 그떄 명나라 정예군 50만이 오이라트에게 박살이 났어. 그전에 원나라 몽골의 정예병은 오이라트와는 차원이 다른 군대야. 고려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적이 없는 니 짧은 통찰력으로 댓글을 쓰려면 정성을 가져봐라. 정신승리같은 소리나 해대는 니수준. 알만하다. 참고로 원의 요청으로 최영장군의 고려군이 3천명정도 원정을 간적이 있어. 그때 한족 반란군 과 조우했는데 모조리 박살을 냈어. 그때 병력으로 27번싸워 모조리 이겼어. 그때 명나라의 전신인 홍건적이야. 그뿐인가 왜구토벌에 혁혁한 전공을 세우지 고려군이 약하다고? 너처럼 약하다고 여긴 병신이 바로 성계야. 위화도 회군 근데 토목의 변으로 그게 거짓인 것이 드러났지. 통찰력을 키워라. 넌 너무 수준이 낮다. 통찰력좀 키워라. 다시 말하지만.
@@PrettyT-rex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위해 가린 조선팔도총도에 대마도 울릉도 독도 모두 조선령으로 표기됨 또한 일본이 오키니와 반환을 위해 사용한 일본이 제작한 고지도에 대마도가 조선령르로 표기되어 있고 조선전기에는 경상도 관찰사의 관할을 받았음 어떤 근거로 행정력이 미치지 않았다고 애기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