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조조도 잔인했죠. 워낙 능력이 출중해서 가려진것이 많지만.. 전 삼국지 읽으면서 진짜 어이없었던것이 전위 죽었을때 조조 지가 추씨한테 홀려가지고 정신 팔려서 전위가 죽은거고 추씨는 애초에 조조 유혹한적도 없고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지가 좋다고해서 같이 놀아준건데 오히려 지가 분노해서 추씨 죽이고 전위 잃었다며 분노함 읽으면서도 너무 어이가 없었음. 지가 잘못한걸 왜 애꿏은 미인 추씨에게 화풀이인지!!
왕가의 잔혹함이지 임금이되지못한 왕자는 조용히 살아야하고 폐세자는 죽음의 위기 속에서 살아가는데 너무나 당연한 왕가니까 그리고 광해군은 선조가 조금만 더살앗어도 세자가 영창대군으로 바꼇을거고 죽임을 당햇을거임 그런 불안감속에서 하루하루살앗는데 미치지않는게 이상함 광해군이 잔인한 인물이라기보단 왕가의 잔혹함을 보여주는거지 영창대군과 광해군의 일화는 광해군은 성군의 기미를 보엿지만 그 왕가의 잔혹함이 광해군을 바꿔놓은거지 폭군으로 이렇게보면 정조는 진짜 대단한거지 또다른 방식으로 왕가의 잔혹함을 직접 겪엇음에도 미치지않고 성군이 되엇으니 말이지 내가 정조면 왕되자마자 우리아버지죽이는데 손보탠사람들 다 죽이고시작햇다
솔직히 더 많이 죽인 왕들 많음ㅋㅋ 그냥 인조하고 그 선비, 후손들이 악담깔게 없어서 저 걸로 걸고 넘어지는데, 영창대군이 즉위 5년 후나 되서야 죽었음. 당시 죽은 정확한 원인은 사실 불명이고, 광해군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큰 장례를 치뤄줬음. 인목왕후를 유폐했다고 알려졌지만,... 아니, 그 아비가 반란일으켰는데 죽이지도 않고 유배도 아니고 그냥 다른 수만평 짜리 궁궐에 가둔거 인데 이게 유폐? 님 집 몇평인지 한번 떠올리고 수만평짜리 럭셔리 호텔에 유폐된게 진짜 불효인지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대동법 실시한 3명 밖에 안되는 왕중 한명이고 누구보다 민생을 아낌. 임진왜란때 전국을 돌며 민생을 직접 본 극소수의 왕이거든요. 전후 복구를 시작하여 토지조사를 실행해 농민들에게 토지 나눠주고, 소실된 기록물, 문학 작품 다시 복원하고, 백성들 세금 부담은 덜어주면서 대신 토지를 가진 지주에게 그에 따른 세금 걷고, 대부분의 궁궐도 그가 복원한거임. 명나라 지원 안한것도 아님. 명나라를 지원해서 지면 후금한테 핍박 받으면 그렇게 애써 다시 세운 나라가 또 전란에 휩싸여서 망하는데 모든 신하들이 명나라 지원 해야 한다고 해서 뭘 했냐면, 장군에게 병사를 주면서 '명나라에 힘을 더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최선을 다해 싸우고, 힘을 더해도 가망이 없으면 항복하고 어쩔수 없이 참전했지 적대할 의향이 없다는걸 확실히 누르하치에게 전해라'라고 함. 얼마나 똑똑하고 훌륭한 줄타기임? 근데 광해군이 미쳤다고..?ㅋ 죽인 정치인들도 다 지들끼리 죽이려 모함 반란 일으켰다고 누명씌워 죽인거지 광해군이 죽이고 싶어서 죽인것도 아님. 동인 서인 뒤에 북인 남인으로 나눠 피터지게 지들끼리 싸우던 시기였음. 예로 북인인 이이첨이 남인인 허균을 반란으로 고발했을때도 광해군은 조사를 면밀히 하려 했지만 그럴 시간 없다고, 안그럼 반란 일어난다고 북인들이 우기면서 몰아붙인거. 참... 임진왜란때 가장 나라를 아꼈고, 큰 활약을 한 이순신, 유성룡, 광해군이 하나하나씩 전사하고 유배당해 쓸쓸히 돌아가신거 보면 참 마음이 씁쓸함.
@@이가람-s3w 어쩔수없는게 어차피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기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광해군은 개새끼가 되어야 했다는거임 역사적으로 자기 친족안죽인 왕이 없었나???? 뭐만하면 파리목숨이였던게 종친이랑 외척이였는데 저 광해군한테만 뭐라하는게 이상하지 조카 죽이고 왕에 오른 사람도 있고 킬방원도 사람 개같이 죽였는데 아무말없음 중종이야 연산군이 진짜 개같은 새끼니깐 폐위된거지만 광해군이???? 그렇게까지 잘못했나 보면 그것도 아님 인조는 진짜 그냥 지 왕해먹고 싶어서 뒤집어엎은거고 그대가로 추운날 머가리깨지게 꼴아박은거지
광해군이라는 복합적인 인물을 평가하는데 성군이나 암군이라는 단정이 필요한지 모르겠네요. 공적인 부분에선 공이 있지만, 사적인 부분에서 과가 있었고, 결국 정치 싸움에서 패배하여 폐위까지 되면서 결국 암군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태종 또한 배 다른 동생을 죽이고 계모의 묘를 갈아엎을 정도로 폐륜이라 할 짓을 저질렀지만 후대에 명군으로 남았으니. 결국 폐위되고 역사의 패자가 됨으로 인해 더욱 안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겠죠. 역사적으로도 명군으로 시작해서 암군이 된 사례는 널렸고 광해군 역시 그렇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가 끝까지 왕으로 남았다면 어떤 역사가 쓰여졌을지 궁금하긴 합니다. 어찌됐든 한국 역사의 큰 고비 중 하나인 임진왜란을 넘기고, 고난 끝에 왕위에 올랐지만, 끝내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한 광해군의 드라마 같은 삶이 흥미롭다는 사실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성군도 암군도 아님 다만 정치적 입지가 약했기에 서인 세력에 먹힌 거임 사실상 연산군처럼 쫒겨날 정도의 잘못이 없는데 유교적인 이유를 명분으로 쫒아낸 거임 만약 광해군이 왕이 되고 이이첨 같은 애들이 아니라 정인홍 같은 인물이 측근에 있었더라면 꽤나 힘있는 정치를 했을 거임
선조가 얼마나 심하게 광해군에게 극딜을 해댔으면 영창대군이 미울만도 하지 선조 본인도 사촌이 죽어서 대신 왕이 된거 면서 자기아들 한테 그렇게 극딜을 해대면 미칠만도 하지 영창대군을 빨리 죽인게 광해군에게는 당연히 해야할 일이었죠 살려두면 두고두고 화근이 되었을테니 자고로 일을 도모하려면 확실하게 했어야지 영창대군 뿐만 아니라 주변의 군들까지 그냥 싹 썰어 버려야지 너무 물렀음 인목대비도 빨리 끝장 냈어야 했는데 질질 끌었죠 차라리 독살 이라도 했어야 했음
당시 시대상황이나 정치적 배경에 대한 설명 없이 교과서에 나오는걸 답습하는 듯한 설명은 프로그램 자체의 정체성이 의문 스럽다. 팩트 : 인목대비의 폐출은 광해군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한것이 아니다. 인목대비를 폐출해야 한다는 대북파들의 끊임없는 상소와 성균관 유생 수십 명이 상소를 올려 인목대비가 무당을 시켜 의인왕후 능묘를 저주하는 등 열 가지 큰 죄를 지었다며 폐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로인해 인목대비 폐출을 놓고 허균과 이이첨이 주장이 엇갈리며 쟁론이 크게 대립하였고 북인들이 쟁론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광해는 그 의견에따라 폐출을 결정하였으며 덕수궁에 가택연금을 했다고 하는데 덕수궁 부지 크기가 아무리 적게잡아도 1만평이 넘는데 그게 가택연금해서 가뒀다고 하는게 맞는 것인가? 인목대비가 서인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한것으로 보는게 맞다. 정상적으로 역사교육을 받았다면 누구나 아는 내용만 열거하고 그 시대적 상황과 배경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고 인조가 왕권을 찬탈하여 그 후손들이 대대로 왕이 되어 광해를 폭군 취급하고 어처구니없는 잣대를 들이밀며 광해의 업적마저 폄하하는 역사왜곡을 이어왔는데 작금에 재해석을 해도 모자랄 판에 유치한 수준으로 역사왜곡을 반복하고 있으니 통탄 스럽다..
음.. 이야기 주제가 1이라면 2도 논해야 하겠는데요; 몇몇 멍청한 인간들 사고라는걸 안하는데?!; 사람에게 절대적 선도 악도 없는데 각 사안을 역사로서 따져보는건데 광해군 착한놈이래 나쁜놈이래 이러고 있는데; 사건의 의미가 중요하지 그렇게 악마 찾고 싶으면 근현대사부터 가야지.
집착이라고 하기엔 저당시 상황이 내가 죽던가 네가 죽던가 아니였나? 애를 유배 보내도 끊임없이 대군이 적통이니 어쩌니 계속 들이댔을테고 그걸로 왕권 휘어잡고 흔드는 인간들 있을테고. 광해군은 진짜 애비 못난거 만나 목숨 걸고 나라 위해 고군분투하다 겨우 자기자리 찾았는데, 조선시대 억울한 왕중 거의 으뜸에 들꺼라고본다. 인생이 도움을 안준 불쌍한 왕.
대동법 이전에 수미법이라하여 여러차례 건의되었으나 반려되었고 광해군집권1년때 비로소 경기지역에한해 실시되었으며 전국적으로 실시된 중종때까지 100년이걸렸다는건 이제도가 당시 국가입장에서는 얼마나 실현되기어려웠던가를 말하는거져~그걸 처음 실시를 행한게 광해군이기에 그의업적으로 치는건 맞는말이져.😊
선조실록, 선조수정실록, 광해군 일기(호란 끝나고 지필. 본래는 당일 날에 쓴 것을 실록으로 편찬?할 때 옮겨 적는다.). 반정명분 때문에도 사관이 서인쪽이면 실록에 손댈 수도 있음. 폭군이라고 알려지는 연산군도 매번 역사 기록에 집착하는 말도 있을 뿐더러 연산군이 엄마의 적삼가지고 미쳤다는 얘기는 소설에 등장한 얘기라고 알고 있음. 학자들 사이에서도 연산군 얘기는 좀 엇갈린다고 들었음. 폭군에 가깝다는 얘기는 반대하는 게 반정 당시 백성들에게 인조는 그들도 광해군에게 얻어먹고 산다며 폭군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암군이었을 수는 있음. 김개시 고거 때문에. 임해군은 선조가 처리했어야 할 일이고.. 그리고 내가 알기로 영창대군을 쪄 죽이라는 명령을 광해군이 내리지는 않았다는 걸로 앎. 근데 정세로 보면 인목대비와 영창대군의 존재는 광해군이나 인조나 둘다 좋은 관계는 아님. 영창대군이 어떻게보면 적통이라 언제든 치고 올라오라면 올 수 있고 자신의 목숨이 언제곤 위협될 수 있음. 인조가 왕이 되었어도 인조는 영창대군 죽였음.
광해가 폭군이면 인조는 싸이코패스 입니다. 광해가 영창대군을 죽였다고 하는 건 지배층 서인들이 광해가 중립외교를 고집하니 광해를 몰아내기 위한 방안일 수 있습니다. 북인들이 영창대군 상소 했을때 광해는 그 상소를 끝까지 막고 버텼습니다. 근데 어느순간 유배보내서 죽였다? 유배도 그렇게 버티다 보냈는데? 광해를 폭군이라 한다면 세종 포함 조선의 모든 왕은 다 폭군 입니다. 광해는 중립외교로 백성의 목숨을 지키고 신리를 지킨 왕이고 성군입니다. 조선시대가 정상적인 사고의 삶을 산 시대라 생각 합니까?
역사는 사서에 기록된 기록물이 아니고 사서의 저자가 누군지 그사람의 철학이 무엇이고 그 시대배경이 무엇인지, 같은 기록이어도 다른 기록에는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살펴보는 게 역사다 그런점에서 광해를 저리 까내리는 건 옳바른 역사 인식으로 보기 어렵다 그것도 역사를 가르친다는 자가 저런 역사인식을 가졌다는건.... 에효 공부좀 하고 강의하러 다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