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우리 역사 스토리텔링쇼 #벌거벗은한국사 00:00 불길이 치솟는 경복궁, 그 책임자는? 04:08 궁궐에 환관이 있는 이유 07:16 환관이 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고 09:10 환관이 되길 스스로 선택한 남자들?! 11:40 몰아치는 폭풍우에 찢어지는 비명 13:19 환관의 베네핏! 15:25 극한 훈련 같은 환관 선발 과정
임금의 비서이며 경호인이어야 하니 저런 것이겠죠 ~ 양반들은 내시들을 끝없이 멸시하고 비하했지만 당시에는 임금을 최측근에서 모시는 그 내시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꼬리를 흔든 것도 역시 양반들이었습니다. 참으로 우리 양반들이 못되 먹은 심보를 가진 것이고 임금들은 내시들을 더더욱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한 편인 것이고 양반들은 경계하고 경계 해야 할 대상들 이었고 그 믿던 양반들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지 내시들에게 배신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때는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이리저리 죽었기 때문에 거세하는 것으로 아사를 면할 수 있고 공부와 무술을 배울 수 있고 임금을 보위할 수 있다면 자원하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았을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으로 그때를 이해하려 하면 오류가 있는 것이죠 ~
세째: 신라 왕들의 묘는 대륙에 있다. 신라왕(新羅王)들의 묘(墓)가 대륙(大陸)에 있다. 1대 혁거세거서간 묘, 2대 남해차차웅 묘, 3대 유리이사금 묘, 5대 파사이사금 묘가 강소성(江蘇省) 사릉(원) (蛇陵園)에있고, 9대 벌휴이사금 묘가 강소성 연수현(連水縣)에있고 7대 선덕왕 묘, 31대 신문왕 묘가 강소성 낭산(狼山)에있고 34대 효성왕 묘가 강소성 법류사 (法流寺)에 35대 경덕왕 묘가 강소성 모지사(毛祗寺)에55대 경애왕 묘가 강소성 남산(南山)에있다. 25대 진지왕 묘는 사천성 영경사(永敬寺)에 29대 태종무열 왕 묘는 사천성 영경사 (永敬寺)에 38대 원성왕 묘는 사천성 봉덕사(奉德寺)에있다. 13대 미추이사금 묘가 하남성 임형현 대릉(大陵)에있고 41대 헌덕왕 묘는 산동성 천림(泉林)에 있으며 51대 진성여왕 묘는 안휘성 황산(黃山: 백제의 계백장군이 신라와 마지막 싸운곳) 에 있다. 49대 헌강왕 묘와 50대 정강왕 묘는 호북성 보제사(菩提寺)에 있다. 신라는 56명의 왕들중 18분의 묘(墓)가 지나대륙에 있는것으로 기록되어있다. 30대 문무왕 묘는 동해 큰바위 위이고 37대 선덕왕 묘는 동해에 화장했으니 모두 20분의 묘지가 밝혀진 셈이다. 상해(上海)가 있는 강소성(江蘇省)에 10분의 묘, 사천성(四川省)에 3분, 하남성(河南省)에 1분, 산동성(山東省)에 1분, 안휘성(安徽省)에 1분, 그리고 호북성(湖北省)에 2분의 묘가있다. 신라(新羅) 제 1대 혁거세거서간 (赫居世居西干)의 장지(葬地)에 관한 의 기록을보면, 在曇巖寺北 (재담암사북) “담암사 북쪽에있다.”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의 기록에는, 在曰雲岩寺南四里 (재왈운암사 남사리) “ 이르기를 운암사 남쪽 4리에있다.”로 의 기록과 의 기록이 서로 다르다. 에 기록된, “재왈운암사남사리 (在曰雲岩寺南四里)”에서 ‘가로왈(曰) 자를 ‘구름운(雲) 자 위에 붙여서 ‘구름낄 담(曇)’자로 조작했고, ‘남사리(南四里)’를 ‘북(北)’으로 날조 (捏造)해 놓았다. 일본X들이 우리 역사서인 를 조작, 날조한 또 하나의 실례인 것이다. 그들이 조작한 ‘담암사曇岩寺’는 어디에도 없고 강소성 상해근처에 있는 호구산(虎丘山)에 사릉(蛇陵)이 있고 그곳에 ‘운암사雲岩寺’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인들이 는 조작을 했는데 는 미처 변조하지 못한 탓인 것이다.
그런 역사다큐들 유튜브 찾아보면 널렸다. 근데 죄다 노잼에 교수들이 전문가이지만 지식 전달력이 부족해서 조회수 폭망이야. 근데 벌거벗은 한국사는 역사 교양 예능이라 설명자의 말빨도 좋아야 하고 역사 배경 지식이 적은 청중도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을 쉽고 재밌게 해야함. 그리고 최태성 선생님은 박사는 아니지만 설씨랑 다르게 순혈 역사 전공자라 전문성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