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분단에 일본이 기여했다는 정도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패전 이후 계획까지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는 점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일본이 우리와 미국이 가까워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견제해왔던 이유도 너무나 분명하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최근 라인 야후 사태도 그러했고, 반도체 부품 견제도 그러한 맥락에서 바라보면 이해가 쉬워진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역할과 포지션을 뺏기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늘 역사를 통해 시대를 넘는 통찰과 안목을 보여주셔서 늘 놀랍습니다.
축구만봐도 알 수 있는게, 저는 처음에 벤투가 유럽식 빌드업 축구한다고 했을 때 한국인이 내뱉던 절규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같은 약소국이 무슨 공격축구를 하며, 무슨 빌드업축구를 하냐. 정작 한국 선수들의 능력치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국민들의 인식은 아직도 약소국 시절 마인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던 거죠. 반면 일본은 우리보다 축구를 훨씬 못하던 80년대 시절부터 축구강국이나 하던 유럽식, 남미식 축구를 모델로 축구를 발전시켜왔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축구와 일본축구의 수준차이를 결정한 겁니다. 한국에 전략가가 없는 이유는 스스로를 약소국으로 정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은 전략은 필요없고 단지 처세술만 필요한 겁니다. 우리는 체급이 안되잖아. 미국이 도와줄거야, 일본이 도와줄거야, 중국이 도와줄거야, 한국은 줄타기만 잘하면되 ..... 이러한 임기응변식 처세술 마인드가 한국인들 정신에 깊게 박혀, 자신들이 국제외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부터 제거해버리는거죠. 정작 한국인들의 기술력과 한국기업들의 경쟁력, 국방력은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와 있는데도 말입니다. 대륙세력과 해양새력, 미국과 중국의 갈등. 이건 단 1-2년 안에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몇십년, 100년, 그 이상을 갈 수 있는 장기적인 양상입니다. 그 긴 세월 동안 한국은 언제까지 전략 없이 임기응변에만 매달릴 건가요. 100년 동안 그저 귀여운 약자로만 남아 줄타기만 하게요? 계속 그런 식이면 한국은 100년 안에 국제무대에서 사라져도 이상할 것이 없어요. 결국 한국이 지향해야 할 것은 패권입니다. 장기적으로 동아시아 최강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국가를 경영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체급이 안되더라도 향후 50년 100년 후의 미래를 그리면서 전략을 짜야 하는 거죠. 이제는 그놈에 지긋지긋한 약소국 DNA 좀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일본의 지정학을 바라보는 시점이 놀랍도록 소름 끼치네요. 배울만한 부분인 듯합니다. 우리나라가 할 일은 아마도 정말 중간의 필요 있는 국가라는 점을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에겐 일본이 하기 어려운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라는 양대 중심축을 타격할 수 있으며 중국 중심부로 내달릴 수 있는 교두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점을 인식시키고 중국엔 똑같이 중국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시키지만, 한국을 자기편 혹은 제압하지 못하면 서해와 동중국해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을 각인시켜야겠죠. 미국과 전략적 동맹으로써 미국을 이용해 중국의 야욕을 막되 중국에게도 미국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면 당근을 내놓으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미국에겐 만약 우리가 중국의 편이 된다면 서해와 동중국해를 통해 나오는 걸 일본 하나만으론 막을 수 없으니, 미국도 결코 한국을 무시하지 않길 바란다는 방식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의 쓸모는 한국이 덕분에 일본에 몰빵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아닐까요. 소련 중국을 막기는 해야하는데 그렇다고 일본 키워주자니 일본도 뭔 짓을 할지 모르는 놈들이니까요 역할 분담할 한국이 있어서 일본을 경제 군사적으로 어느정도 억제 하고 있는거죠 그런데 우리가 미중 사이에서 어설프게 간보거나 감정적인 반일로 협력을 거부하면 일본을 키워주는 행동.
여기채널은 정상적인 댓글들이 있어서 좋네 일본은 언제든 미국등에 칼꽂을 준비를 하고있는 국가고(미국이 일본에 목줄채움) 한국도 거시적으로보면 미국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자유민주주의 모델하우스임. 어찌댓건 우린 미국쪽 스탠스를 가지돼 일본처럼 목줄차는걸 경계해야함. 일본의 억제기가 한국이자 한국의 억제기가 일본임. 서로 파이싸움 하게끔 미국이 설계해논거
해석은 신박합니다. 특히나 18세기이후 한반도의 지정학구도가 달라진것이라본ㅍ해석은 동의할수밖에 없지만 일본이 미리 알구서 출구전략을 조직적으로 수행했다는 해석에는 너무 반대되는 정황이 많습니다. 우선 일본은 45년에 들어오면서 지속적으로 당장 일본에게는 아직 교전국이 아니었던 소련이 미국 영국과의 종전협상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해주길 바랬고 무엇보다 47년까지인 소련과의 불가침조약 갱신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의 일본이 소련이 개입하는 걸 도리어 반겼다? 그 정도는 절대 아닐거 같은데요? 무엇보다 공산주의 소련이 일본본토에 상륙하면 일본은 천황제를 유지할, 소위 국체호지가 절대 불가능했기에 그보다는 귀축인미국에게 굴복하는게 낫다고 본거죠. 그래서 일본은 원폭보다는 소련참전이 항복을 결심한 직접적인 계기가 되고 소련군이 다가오니까 공산화되기전에 황급히 손을 들었다고 봐야할거 같은데요? 일본이 다가올 냉전상황을 미리 다 알고 내심 쾌재를 부르며 손을 들었다고 하기엔 항복전날 궁성진입 쿠데타 미수같은 사건은 설명이 안되질 않습니까? 미리 알고 그랬다기보단 어쩌다보니 그렇게 흘러간게 아닐까요? 마치 에도막부의 참근교대가 첨엔 다이묘들의 충성경쟁과 지방영주들의 군비억제를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결국은 그것이 일본의 근대화 기반을 마련한 것이 된것처럼요. 일본의 최후전시내각인 스즈키내각이 두선생님의 해석처럼 다 알고서 그제서야 손을 들었다는 건 너무 예정된 틀에 맞춘 해석같습니다. 무엇보다 8월 14일 히로히토의 항복 결단과정에서 스즈키 내각안에서는 육군상 아나미를 비롯한 강경파가 최후항전을 부르짖었고 그들을 지지하는 청년장교그룹이 쿠데타를 시도했었습니다. 이런 정황들은 일본이 출구전략을 짜고서 조직적으로 대응했다고 보기엔 너무 반대되는 맥락들 아닌지요?
두선생님, 이번 설명은 학자들이 밝혀낸 역사적 사실과 많이 다른 것 같은대요. 일본이 의도적으로 소련을 만주와 한반도로 끌여들였고 그게 38선 분단의 원인 중 하나인 것 처럼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제가 알기에는 일본은 소련과 노몽한 전투이후 불가침 조약을 맺은 상태여서 애시당초 소련과 전쟁은 없을 걸로 알고 있어서 8월초 소련의 참전은 일본에게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일본은 1945년 초 패전에 임박해지자 소련을 중개자로 미국과 강화교섭을 추진하려 하지만 소련은 이미 얄타회담에서 태평양전쟁에 참전하기로 미국과 밀약이 되어 있어서 일본의 제의를 철저히 무시하죠. 소련의 참전은 원래 계획되어 있었는데, 원자폭탄 투하로 전쟁이 조기에 끝날 것 같으니까 서둘러 진행된 것이고 만주와 함경도에서 아무 피해 없었다는 것도 잘못된 설명 같습니다. 함경도로 진주한 것은 함경도 지역이 소련과 접해져 있기 때문에 일본군을 제압하려는 목적으로 진행이 된 거구요. 38선이 그어진 것은 한반도에 이미 들어와 있는 소련 입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를 고려한 미국의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이번 설명은 "일본이 소련을 끌여들였다"는 플롯으로 억지로 꿰어 맞춘 것 같은 느낌입니다.
맞습니다. 인정합니다. 해당 내용은 '지정학의 힘'이라는 책을 참고했습니다 책에서도 그리고 이번 영상에서도 '일본이 소련의 참전을 유도했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 군부에서는 소련의 극동 진출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고, 이를 전후 전략에 활용하고자 항복시점을 조율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댓글에서 말씀주신 것처럼 일본이 소련의 침공에 당황했다는 내용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일본 군부에서도 제가 영상에서 이야기한 보고서가 정부와 군부 전체에 공유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일본은 19세기 말부터, 특히 자신이 패망하는 순간까지도 '지정학적인 고민'을 했다는 이야기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If the Japanese government at that time were truly capable, they wouldn't have withdrawn from the League of Nations or started a war with the United States. If Japan were trying to maintain its influence in post-war Asia by sacrificing the Korean Peninsula, it would be hard to explain why post-war Japan was reluctant to rearm despite pressure from the U.S. In reality, the post-war Japanese government prioritized the reconstruction of a war-torn nation and economic growth over the expansion of military power or status 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회담에서 미국은 당시 일본 제국과 서로 상호불가침조약을 맺고 있던 소련에게 대일전 참전을 약속받았고 이로 인해 일제 패망 후 한반도가 38선을 경계로 미소 양국에 의해 분할점령되는 계기가 마련된 회담이기 때문이다. 당시 스탈린은 일본과의 전쟁 참여를 대가로 1905년에 러일전쟁에서 상실했던 영토인 남사할린 등을 요구했고 당시까지만 해도 원폭이 개발되기 전이라 소련의 협력이 절실했던 미국은 이를 받아들였다. 당시 조선을 둘러싼 각국 정상은 서로 다른 목적을 두고 독립 문제를 논의했다. 일단 루스벨트는 새로운 세계 대전을 피하고자 하는 목적이 강하였다. 그래서 한국을 독립시키는 과정에서 열강들의 이권 다툼을 방지하기 위해 신탁통치라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단계에서 이루어진 합의 내용은 구체적인 조항을 논의한 것이 아니라 한국 독립 시에 미영중소[9]가 다 같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협력하자 정도의 추상적인 이야기가 오고 갔기 때문에 더 논하는 것은 소설의 영역이긴 하다. 애초에 이 회담에서 한국 이슈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안도 아니었고.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고, 사흘 후인 8월 9일 소련은 만주와 한반도에서 일본을 상대로 전쟁을 개시했다. 8월 10일 밤부터 11일 사이 워싱턴DC에서는 국무부, 전쟁부, 해군부 차관보를 위원으로 하는 ‘3부조정위원회(SWNCC)’가 개최되었다. 소련군은 이미 한반도에 진주한 상태였지만, 미군은 1000km 이상 떨어진 오키나와에 머물러 있었다. 미국은 적절한 선에서 소련과 타협해 소련이 한반도를 전부 점령하는 일만은 막으려 했다. 실무를 맡은 본스틸 대령과 딘 러스크 대령은 내셔널지오그래픽 극동 지도를 펼쳐 들고 30분 만에 북위 38도선으로 미소 점령의 경계선을 그었다. 소련은 단독으로 한반도 전역을 점령할 수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미국이 제안한 한국 분할 점령안을 아무런 조건 없이 수락했다.
왕조교체는 후차문제이고 성리학중심의 정치사조 그 자체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후기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실학자들마저도 성리학적 체제 그자체를 부정비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치사조와 왕조교체는 엄밀히 별개문제입니다. 정치사조는 그대로인체 왕조교체가 이루어질수도 있고 왕조는 그대로인데 정치사조및 통치제제의 대대적 개혁이 일어날수도 있죠.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근데 일본의 소련참전 유도설은.... 말그대로 이런 설이 있더라..라고만 소개했으면 좋을듯 합니다. 결과론에 끼워맞춘 하나의 설로 보아야 겠지요. 그러한 증거도 없고 학계의 주류로 받아들인 사실도 아닌데 너무 그쪽으로 뉘앙스를 몰고가는듯 합니다. 반면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볼수 있었다는 점은 좋았습니다. 응원합니다.
아나톨리아 반도 이탈리아 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대륙과 대륙 사이의 반도이고 한반도는 대륙과 섬 사이의 반도라는 차이가 있다 생각합니다 이런 비슷한 지정학적 위치가 말레이 반도와 플로리다 반도인데 말레이 반도는 만주와 넓게 접하고 있는 한반도와 다르게 대륙부와 상당히 좁게 연결된 특징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대륙부와 해양부의 세력 균형이 이뤄졌고 게다가 큰 스케일인 인도차이나 반도에 속해있다보니 인도양과 태평양 양쪽을 연결하는 국제 해상 무역로 위치라 한반도랑 다르게 타문화에 대한 교류가 개방적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오히려 한반도와 지리적 조건이 비슷한 반도는 플로리다 반도 같네요. 북미대륙 동쪽 끝에 위치하고 바로 아래 쿠바섬이 존재하며 대륙부의 영향력이 해양부의 영향력을 압도한다는 점이 닮았습니다. 미국 플로리다본토 카리브해 국가들을 동아시아로 굳이 비교해서 보면 중국이 한반도를 자국 영토화한 상태에서 일본 열도가 소국으로 분열되어 있는 형태가 아닌가 싶네요 스페인 식민지였던 플로리다가 별도의 국가였다면 카리브해 국가들과 미국의 관계가 어떤 형태였을까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우리나라가 살 길은 딱 하나 뿐.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중재자. 통일은 당연히 해야하는거고 그때쯤이면 아마 중국이 분열해 만주에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쉬워질거임. 한반도와 만주의 힘을 잘 융합해 기초체력을 기르고 절대 국민감정에 실려서 한쪽편 들지 말고 저울질 하듯 양 세력을 균형잡아야함. 그 상태가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부흥기가 될것임. 하지만 해양세력이 승리하는 경향성이 있다. 그때는 아마 일본이랑 무지하게 싸워아 할것임.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해군력을 증강 할 필요가 있음. 일본까지 꺾고 나면 중국으로 진출해야함. 한민족은 유목민족과 달리 주체성도 높고 인구도 많아서 쉽게 한화(漢化)되진 않을거임. 그 레벨까지 가면 아마 아메리카 세력과 자웅을 겨루는 초강대국이 될것임. 우주 기술을 끌어올려 하늘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상륙이 원활해진다면 아메리카를 정복해 범지구적 국가가 될것임. 그리고 태양계의 유용한 위성과 행성 항성에 식민지를 건설해 희귀자원을 채취하고 그걸 토대로 초광속 우주선을 개발해 국부은하군을 정복함. 그때 즈음되면 4차원으로 진입 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겨 인류의 역사가 끝나지 않을까 싶다.
20:02 진짜 이 내용은 너무 무섭네요. 결국 2차대전이 끝나면 미국vs소련 3차전이 시작될테고, 그리되면 미국도 결국 2차대전때 자기네와 죽도록 싸운 일본의 중요성을 알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본이 전후에도 아시아에서 지배권을 가지게 될 것이다 😮. 무작정 반일만 할 것이 아니나, 저런 냉혹한 통찰력은 우리나라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국제외교에 자존심이 뭐 대수인가요. 일단 숨은 붙어 있어야 하고, 배부르고 등 따숩어야 그게 진정 자존감을 찾는 것이죠. 영상 감사합니다 ❤.
쎄앰~~~^-^ 예전부터 영상 잘 보고 있는데요ㅋ 몇몇 부분은 지리 역사 뭐 그런거 술자리 등 에서 아는체도 하고 뭣보다 앎의 즐거움??? 넘 감사히게 잘보고 있습니다. ㅋ 무엇보다 우파좌파 같은 정말 우리나라 쫌 벌레 같은 정치색 같은거 없는것도 좋구요.ㅋ 근데.... 보다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데..... 왜 우리나라 교육은 국사 세계사 근현대사 한국지리 세계지리 등등등 왜이리 나눠져서 교욱을 할까요?? 나이들어 보니 어릴때 받았던 학습내용이 이런거구나.... 는 알겠는데 이게 이런 느낌이에요. 즉 영어배울때 문법 단어외우기 회화.... 등등등 뭔가 분리해서 하다보니 걍 시험칠때 점수 맞기로 외우고 수업도 받았고 했는데... 졸업해보니 남는게 없는거???? 즉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다보니.... 뭔가 외우고 공부는 했는데 실생활에서는 취합도 안되고.... 이게 이런거였어???? 뭐 이런 느낌?? 이런거 어떤가요? 과목 이름은 음........... 년도별 주요 인류사???? 혹은 통합세계한국사...ㅋ 뭐 이름은 요즘 워낙 제목학원 다니는 분들이 많아서...ㅋ 저보다 창의적인 분들이 지어주실듯ㅋ 암튼 요는... 뭐 예를들면 1800 한국 정조 사망 지방세도정치 세력 강화 이후 1950년 이후까지 아무것도 못함. 이때 영국에선 아니 조금 더 이전 산업혁명 발생. 유럽 전혁에서 겁나 혁신적으로 캐발전. 일본도 이때 쯤 메이지 유신 혁신적으로 근간을 바꾸는 캐발전. 1880년 우리나라 일본에 강제 개항.... 하지만 이미 유럽은 이미 식민지 여러군데; 가지고 있고 제국주의 여러군데 둠. 일본은 이런거 몇십년 전부터 배우고 지켜보고 있어서 한반도 및 청나라 등등 식민지화 야욕. 청나라도 아편 먹고 정신못차리고 뭐 블라블라 1900년 우리나라 청나라 맛간 틈타 대한제국 선포. 일본은 차츰차츰 간보며 우리나라 먹기 일보직전. 유럽은 블라블라. 이때 미국은 남북전쟁 후 이러저러 블라블라. 1910년 우리나라 강제 합병, 유럽 곧 1차 세계대전 이때 일본은 뭐하고 있었고 중국은 어땠고 미국은 어땠고.... 1940년 우리나라 식민지 된지 몇십년 되니 어땠고... 2차 세계대전 일어나고 유럽은 어땠고 일본은 진주만 캐오바하다 어땠고 미국은 어땠고... 1950년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어떤게 있었고 한국전쟁 일어나고... 굳이 왜 수많은 UN참전국들이 감사하지만 왜 왔고... 일본은 어떤 시기였는데 어떤 흐름을 탔고 중국은 이때 어떤 흐름을 탔고.... 1960년 우리나라 박정희가 왜 나타났고 중국은 어땠고 일본은 이때 뭘했고 베트남은 어떤 상황이였고 유럽이랑 미국은 그리고 소련은 어땠고... 1970년.... 뭐 등등 한국사니 세계사니 뭐 나눌게 아니라 걍 연도별로 전세계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었는지.... 그래서 각각 어떤 영향을 끼쳤고 우리나라 그 합일합병도 왜 일어났는지.. 6.25는 왜 일어났는지... 도대체 주변에선 무슨 일들이 있었길래 우리는 도와 줬는지.. 혹은 우리나라 식민지 될때는 왜 들 방관했는지... 뭐 등등등등 (이것도 흥미롭더군요... 우리나라가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그리고 식민지 같은 제국주의 움직임이나 사우디 같이 자원 등 혜택 없이 세계경제 10워권의 유일한 나라... 그리고 박정희 정권과 우리나라 민주화의 결정적인 88서울올림픽의 스노우볼.... 이때 당시 세계는 왜??? 등등등) 저것보다 훨씬 이전부터 기원전 혹은 뭐 우리나라 삼국시대때 세계는 어땠는지.... 암튼 한국사니 세계사니 따로 나누지 말고 시대별로 마치 인류사처럼 지구상에서 시대별로 주요 일들이 어떤게 있었는지 그런 컨텐츠 있으면 좋을것 같습니다~~~~~~~~!!!!!! 나무를 보는건 전공을 하든 나중에 흥미있는 분들 찾아보시든 디테일한건 뭐 디테일한거 대로 두고 통합적으로 년도별 세걔 주요 인류사??? 혹은 지구에 년도별로 어디서 어떤일 벌어질때 어디선 어땠는지.... 아마도 1390년정도 조선건국할때만해도 조선이 전세계적으로 괜찮았던듯 한데.. 그리고 지금은 유럽 미국에 비해 다소 소외돼 있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페르시아 문명.... 중동의 문화도 유럽에는 진짜 근간이라 할정도로 어마어마 했고 현재 모든게 자기네 꺼라 하는 중국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듯 한데.... 암튼 이런게 따로 따로 말고 시대별로 통합적으로 교육받고 싶습니다....ㅜㅜ 주저리 주저리 길게 썼는데..... 두쌤~~~!!! 꼬옥 이글 보실거라 믿어요~~~!!! 제발~~~~!!!!! 그리고 건강하시고 대박나시길~~~~!!!! 감사합니다. 쌤 그리고 펌 한번 해보세요~~!!! 스타일리쉬한 머리 관리하기 훨씬 편하실거에요~~^^/
맞습니다..ㅠ.ㅠ 저 대학 갈 때는 국사, 한국근현대사, 세계사가 다른 과목이었고, 지금은 한국사가 필수과목이 되었지만 여전히 동아시아사와 세계사를 다른 과목으로 배우고 있죠.. 여기에 '교과목'과 '교사' 등의 역학관계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역사 전쟁이 치열한 동북아시아의 분위기상 한국사를 따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여론이 더 커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ㅠ.ㅠ (그리고 기회되면 펌도 한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해요 !!
@@두선생의역사공장 와~~ 문쌤^^ 답변 영광입니다. 보니깐 엄청나게 길게 써놨는데 요지는 연도별로 한국 이시기에 세계정세는 어땠고 무슨일이 일어났고 쭉 정리된 강의가 듣고 싶어서 말씀드렸어요~!!인류사라고 해야 할려나^^ 아마도 흥미있어하는사람들도 많을 듯해서 대박나시라고ㅋ 모자 많이 쓰시는데 꼭 머리 좀 길르셔서 펌도 꼭 해보시길ㅋ 암튼 답변 넘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전체적으로 이번 강의는 별로 설득력이 없네요. 1. 과거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대립이 아편전쟁 이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으로 변화했는데 이에 적응을 못했기 때문에 조선과 중국이 망했다는 말은 전체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1) 임진왜란을 농경-유목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나요? 2) 청나라의 여진이 중국문명에 동화되어 사라졌다는 주장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중국의 광대한 국토는 한족이었으면 꿈도 못꿨을 강역입니다. 여진의 청나라가 중국을 식민지로 삼았다고 고향을 폐쇄하고 중국으로 가서 대륙 전체를 지배한 겁니다. 여진족은 정말 대단하지요. 조선은 그런 여진한테 당하고, 그 여진이 중국의 황제,지배층이 되었는데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조선말까지 오랑케라 부르며 부국강병하지 않다가, 서양과 일본에 당한 것입니다. 중국이 망한 원인은 너무나 자부심이 강했기 대문에 자본주의체제를 도입하지 않았고 세상의 중심이 중국이라는 중화주의에 빠져 근대적 세계 국가질서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적응하지 못하고 전랑외교를 하고 있지요. 2. 한반도 분단에 대해서 요즘 일본에서 새로운 학설이 떴나요? 2차대전 종전에 대해 현대사 분야에 무수한 설들이 존재하는데, 지금 말씀하신 일본이 일부러 소련의 침공을 유도했다... 그 과정에서 남진하는 소련을 막기위해 미국이 38선을 그엇다는 주장은 너무나 황당합니다. 음모론 축에도 끼기 힘든. 기본적으로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요청한 것은 미국 루스벨트입니다. 진주만 공습을 당한 몇일 후 부터 소련에게 대일전 참전을 요청했고, 43년 11월 테헤란회담, 45년2월 얄타회담이 모두 소련의 대일전 참전 요구가 핵심주제였습니다. 포츠담 회담에서도 국무장관 번스가 소련참전 배제를 도모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만, 트루먼 대통령은 한결같이 자신의 목표는 소련의 대일전 참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전황이 불리해지기 시작하자 소련에게 침공해 내려오라고 전쟁을 유도한 것이 아니라, 미국과 평화협상을 위한 중재를 맡아달라고 한 것에 불과하며, 스탈린은 이를 들어주는 척하면서도 미국에게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참전한 것입니다. 따라서 영상에서 말한 일본의 소련참전 유도설은 말할 가치조차 없다고 봅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이에 대한 답변 드립니다. 1-1) 영상이 길어질까봐 임진왜란에 대한 내용을 넣진 않았습니다. 아마 임진왜란을 따로 다뤄야할 것 같아서요. 동북아시아 지정학의 큰 줄기에서, 임진왜란은 그와는 다른 성격의 전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영상에서 다루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임진왜란은 농경과 유목의 대결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임진왜란'은 일본 열도가 동북아시아에서 주요 플레이어로 등장할 수 있음을 알리는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동북아 문화권 끝에 있어서 그동안 인구 이동도, 문화도, 경제도 항상 늦었습니다. 그리고 열도 가운데 산 줄기가 있어서 중앙집권화에도 애로 사항이 컸습니다. 이 때문에 동북아 역사에서 주요 플레이어로 활동하지 못했죠. 하지만 일본 열도는 한반도의 1.7배로, 간사이~간토 평야의 인구 부양력도 한반도와 만주보다 더 뛰어납니다. 센고쿠시대라는 혼란기가 정리되고 중앙집권화 되어가는 일본이 인구와 경제(+군사) 면에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거죠. 그걸 알리는 전쟁이 임진왜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까지 넣으면 주제가 흔들릴 거 같아서 뺐습니다. 해당 내용도 나중에 다시 또 다뤄보고자 합니다. 1-2) 해당 내용에는 저도 공감하고 있습니다. 2. 제가 한반도 분단과 일본의 지정학을 다루는 내용은 주로 '지정학의 힘'이라는 책을 참고했습니다. 그 책에서도, 그리고 제 영상에서도 '일본이 소련의 침공을 유도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일본이 유도하지 않아도, 미국은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요구했고,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소련의 동북아 진출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미국'과 '미국이 2차대전 이후 동북아 권력을 독점하는 걸 용납하지 않을 소련'을 이용하면, 일본이 패전 이후에도 살 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제가 이 영상에서 말씀드리고자 한 것은 "일본이 항복을 하는 타이밍을 결정지은 요인 중 하나가 '소련의 한반도 진주'였다", "일본의 패전 이후의 전략과 지정학에 대한 고민이 한반도 분단에도 영향을 끼쳤다"입니다.
지정학적 위치가 어떻든간에 국가를 통치하는 통치자나 지도층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문물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적용시키냐의 문제가 더 큰 것 같아요. 도자기의 예만 봐도 조선의 도공을 임진왜란때 일본이 끌고가서 그 도자기 제작기술로 큰 돈을 벌었다고 하는데, 도자기 제작 기술을 가지고도 그렇게 못해먹은 조선은 뭐였나 싶습니다. 일본이 반도의 이점을 가져갔다고 하는데, 그냥 조선이라는 나라가 ~논쟁이랍시고 상복을 얼마의 기간을 입느냐 마느냐로 싸우면서 무인은 천시하고 상업도 발전시키지 않고...어차피 해양세력이 호의적으로 왔어도 조선은 그걸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요즘 문뜩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우리나라야 일제치하 30~40년 있다가 광복해서 대한민국이 되어 정체성이 일본과 분리되어 있지만, 일본이 수도를 서울로 옮기려는 계획이 실행되어 실제로 옮겨지고 광복도 못하고 지금까지 이어졌으면 어쨌을까...하는 생각이요. 그 대표적인 예가 중국 아닐까요? 명나라가 북방 오랑캐에게 전국토를 홀랑 먹히고 수도까지 청나라의 수도가 되고 통치되길 300여년......중국입장에서야 만주족이 한족에 동화되었다곤 하지만 변발이나 옷의 복식은 만주족 문화잖아요. 세계 4대문명이라는 것도 황하문명이 다른 문명보다 뒤떨어짐에도 중국이 굳이 황하문명을 넣어 세계 4대 문명을 퍼트렸다는데, 중국 주도의 저런 생각들을 우리나라가 이제는 굳이 따라갈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국사도 세계사와 함께 보며 생각하고, 해석도 다양하게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누가 ~을 우리한테 빼았아갔다는 논리가 아니라, 우린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서 놓쳤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 기회가 오면 대통령부터 나라의 지도자들과 국민들까지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역사교육을 시키는게 훨씬 더 발전된 역사관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영상이 길어질까봐 고려말 왜구나 임진왜란에 대한 내용을 넣진 않았습니다. 아마 임진왜란을 따로 다뤄야할 것 같아서요. 동북아시아 지정학의 큰 줄기에서, 임진왜란은 그와는 다른 성격의 전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영상에서 다루지 않았습니다. 저는 '임진왜란'은 일본 열도가 동북아시아에서 주요 플레이어로 등장할 수 있음을 알리는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동북아 문화권 끝에 있어서 그동안 인구 이동도, 문화도, 경제도 항상 늦었습니다. 그리고 열도 가운데 산 줄기가 있어서 중앙집권화에도 애로 사항이 컸습니다. 이 때문에 동북아 역사에서 주요 플레이어로 활동하지 못했죠. 하지만 일본 열도는 한반도의 1.7배로, 간사이~간토 평야의 인구 부양력도 한반도와 만주보다 더 뛰어납니다. 센고쿠시대라는 혼란기가 정리되고 중앙집권화 되어가는 일본이 인구와 경제(+군사) 면에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거죠. 그걸 알리는 전쟁이 임진왜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까지 넣으면 주제가 흔들릴 거 같아서 뺐습니다. 해당 내용도 나중에 다시 또 다뤄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