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어디에나 있으며 어디에나 없다는 말이 맞는거 같아요. 기분이 좋으면 사소한 일 하나로도 행복해지고 기분이 나쁘면 조그마한 일에도 불행해지는 것처럼 행복은 어쩔땐 보이지 않지만 생각의 방식을 조금만 긍정적으로 바꿔도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흔히 '행복'하면 떠오르는 것들에 대해 모두 행복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고 어느걸 해야 행복할것이다 라고 정할수가 없는거 같아요. 오히려 행복이란 그 어느걸 해도 행복할 때인거 같네요.
니체가 "행복한 인간은 고난과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 않고, 그런 것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평정과 충일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다.", "행복은 고난과 고통을 초극하여 힘의 고양과 충만을 경험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던걸 보면 니체는 그 어떤 상황에도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고난과 고통을 초극해내고 자신의 힘을 느끼는 사람, 즉 행복을 느끼는 사람의 행복은 어디에나 있고,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허약한 사람, 우울증과 염세주의인 사람, 즉 불행한 사람의 행복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했던 거 같군요.
이 강독을 보고서 박찬국교수님의 초인수업을 읽었습니다. 미디어와 텍스트가 아름답게 겹쳐지는 순간이였습니다. 텍스트가 추상적이고 어려우면 미디어로 뚫고 나가고 미디어가 너무 선명하여 나만의 재해서과 그림이 필요하면 다시 텍스트로 들어가는 게 요즘 저의 취미입니다. 이런 좋은 자료 올려주신 분들 모두 너무 감사합니다.
결국 세상에 기 빨리는 인간이 되지 말고, 도리어 기를 빨아먹고 활기차게 살아가자는 말씀이로군요. 기 빨아서 활기찬 인간 = 행복한 인간 기 빨리는 인간 = 불행한 인간 그러니까 일상생활을 규칙적으로 잘해야 한다는 것이 되겠죠. 1. 적당한 운동과 규칙적인 식사를 통해 몸과 정신을 튼튼히 한다. 2. 적당한 독서를 통해 마음의 양식을 섭취하여 마인드를 강화한다. 3. 적당한 대인관계를 통해 사회속의 자아를 성취한다. 뭐 적당히 이런 식으로 살면 적당한 행복이 찾아온다는 말씀이겠군요. 행복도 적당한게 좋더라고...흠...
어두운 앞날만이 떠오르고 아무것도 못 이룰 것 같은 패배감에 젖어 있는 이 때에 내가 니체를 검색하고 이 동영상을 보게 된 것은 과연 우연일까. 지금까지의 역경 속에서 나 혼자서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족, 친구 그리고 애인이 있었기에 내가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없다. 그렇기에 공허속에서 스스로, 나 혼자서 일어나야만 하며 니체는 그 방향을 한 손가락으로 짚어주었다. 다시 시작하자, 언제나 그랬듯이.
1) 타협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고....극복와 투쟁으로 만들어진 자신의 운명....그 운명이 진짜 자신의 운명이고...그 "자신의 진짜운명"이 무었이든 간에 사랑하라.. Amor fati...2) 극복과 투쟁으로 자신의 삶을 살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니체는 초월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이념과 신앙을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생의 의미’는 이 땅 위에 있다고 했죠. 그런데 ‘초인’(超人)이란 번역어는 그 본래의 뜻을 왜곡하고 말았죠. 니체는 초월적 존재를 반대했는데 말이죠. 독일어 ‘위버멘시’는 형이상학적 미몽에 쌓인 지금의 인간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간형이라는 뜻으로 쓰였는데도 미국에선 ‘수퍼맨’, ‘오버맨’으로, 우리말에선 초인으로 바뀌었어요
힘의 의지가 강한 인간, 힘의 의지가 약한 인간, 하나 더 추가해서 강함과 약함이 아무 없미가 없다고 깨달은 인간...요렇게 분류해야 맞는거 같은데요. 지금 살아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승리자 임을 깨닫고 나면, 약하고 강함은 좋고 나쁨이 아닌...강함의 장단점, 약함의 장단점을 통찰해서.... 남은 시간을 감사함으로 보낼수 있다고... 철학수업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고졸이 니체에게 이의를 제기 합니다.
고통이 있어야 행복이 있는거다. 배고픔이 있어야 배부른 행복을 느끼듯이. 모두들 감기에 걸렸다가 나아본 경험 있을거다. 몇일간 앓다가 몸이 치유되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은 상상초월이다. 왜 마약을 못하게 할까? 마약은 인간에게서 고통을 잊게 해준다. 하지만 고통을 못 느끼게 되는 대신 주위의 가족들에게 심한 민폐를 끼치며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또한 인간은 발전해야 한다. 발전할수록 고통의 질이 달라지지만 행복의 질도 달라진다. 배고픈 수준에서 갈등하는 사람과 인류의 평화의 수준에서 가슴아픔을 느끼고 갈등하는 사람의 행복감은 차원 자체가 다를거다. 평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평화를 위해 한 발자국 더 내딨었을 때의 그 행복을 알기 때문에 배고픔과 추위를 이겨내고 사람들을 이끌어갈 수 있다. 그들이 느끼는 행복은 낮은 수준에서 의식주를 걱정하는 사람이 느끼는 행복의 몇백배 이상이기에 그런 고통을 감수해낼 수 있을 것이다.
궁금한 점이 있는데 만약 비행기 조난사고로 바다 한 가운데서 언제 구조될지도. 모르는 한 사람이 구명보트 위에 있다고 했을때 , 이런 경우에도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나아가 이겨내는 긍정의 힘이 발휘될수있을까요? (이 사람은 4일째 물과 식량을 먹지 못한 상태입니다. ) 니체라도 이런 경우에 자신의 철학대로 긍정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어요. 제가 니체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Minjoo Kim 말을 너무 꼬아놓으셨네요. (니체는 인간을 강한 존재라 생각했지만) 본인은 인간은 약한 존재라고 생각하신다는 뜻이죠? 힘내세요. 당신은 강합니다. 그리고 말을 어렵게 하는 버릇은 스스로 경계하는게 좋은 것 같더라구요 저는 개인적으로. 까뮈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는데서 시작된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공감가더라구요.
인간의 자유의지... 칸트. 못지않은 니체가 말하는 힘=의지의 인간 초인이 되지 못해도 니체가 비난했던 딱 말세인이고 싶다.그저 너무 힘빼지않고 적당히 안락한 삶을 누리면 안되냐고?구시대적 발상으로 엄청난 노동력을 착취당하지 않고계급적인 서열화된 사회에서 남 지배하지도 남 앞에서 이끌지도 않고 ..?? 더 큰 책임소명의식에 앞장서서 희생하는 것보단 있지 않을 미래를 향한 희망을 외치는 일에는 많은 열정이 필요하니 그저 나에게 주어진 능력 안에서 내가 감당할 적절한 몫만 하고 그저그렇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더 행복한 게 아닐까?초인을 요구하는 사회란 ... 무섭기도 하다..
김은희 니체의 조언을 뒤틀어서 부정해버리는 용기ᆢ 대단합니다 니체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라는 조언속엔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라는 뜻일진데ᆢ이 엄청난 에너지를 감당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겁니다 그러지못할거라면 님의견 처럼 어떤 힘에 끌리지않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살겠다라는 취지겠죠ᆢ 님은 철학자 소펜하우어 같은 염세주의적 성향인것 같네요. 사람들은 염세주의가 좋지않다라는 인식이 있는데 전혀그렇지않습니다 니체는 불의 형상 소펜하우는 물의 형상이듯 둘은 장단점이 있죠
안녕하세요. 저는 어린이 청소년 군장병 등 꿈을 키우길 원하는 미래세대를 주대상으로 학교밖 평생교육 지식나눔활동을 하고 있는 김용궁 시인이라고 합니다. 평소 귀 채널을 자주 시청해 왔는데, 귀사의 저작권 등 제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채널의 홍보에도 도움을 드리면서 콘텐츠를 교육간 활용하고 싶어 연락드렸습니다.합당한 사용료를 지불하고 싶지만, 죄송하게도 형편상 그럴 수 없어 댓글로나마 문의라도 드리고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다행이도 유튜브 채널상 공지된 내용을 볼 때 교육 목적으로는 출처 공지하 사용하는것을 허용하고 계시는 것으로 판단되는데, 정확한 이용조건이 있다면 번거로우시더라도 알려주시면 회신된 결과에 따라 사용여부를 판단해 보고 싶습니다. 회신이 없으시다면 제가 이해한 내용이 맞고, 승인해 주신것으로 이해하고, 귀 유튜브 채널 콘텐츠에 대한 '구독'과 '좋아요' '알림설정' 등 가능한 모든 홍보와 협조의 노력을 병행하며 활용 하겠습니다. 만일 위의 조건으로 이용이 불가하다면 꼭 메일 답장 또는 전화(010-4239-7488)로 알려주시면 귀 채널의 저작권 등 제 권리가 보호될 수 있도록 알려주시는 내용에 따라 조치하겠습니다. 가급적 긍정적인 방향에서 검토하여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정훈님이 말하신 것처럼 인생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입니다, 부와 명예를 가진 잡스가 말년에는 췌장암 말기로 사망하는 것처럼 인생은 어쩌면 덧없는 허무일지도 모릅니다, 인생은 태어난 순간과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죠, 그러한 인간의 삶에 대하여 니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인생이 끝나지 않는한 계속해서 찾아오는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드리고, 긍정으로 가득찬 아기처럼 살아가 달라고 주문한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위버맨쉬)초월한 자, 초인입니다 납득하시기 어려우실 것입니다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지요, 하지만 니체는 언제나 나약한 자들의 편이였습니다 심지어 그 조차도 나약한 자였습니다 니체도 말년에는 정신병을 앓아 미친 나머지 식분증 증세까지 보이며 세상을 떠낫거든요 니체 본인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처절하게 싸우며 초인이 되려 노력했던 것이죠... 하지만 그가말한 운명애,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은, 허무주의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않는 삶보다 최후의 순간까지 인생을 받아드리고 분투하는 삶이 더욱 가치있어 보입니다... 그냥 제 생각을 끄적여봤습니다.. 애초에 이 8분짜리 동영상으로 니체의 사상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무리가 있습니다... 니체가 죽은지 100년이 넘었지만 철학자들 사이에서 는 아직도 니체에 대한 해석이 많이 다르거든요...
@@user-rb3xi1xd9l '난 이 고통이 행복해'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는건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 아닙니다. 삶이 완전히 변화되는, 인격 전체가 변화되는 체험을 통해 정신적인 생명력이 충만해져 고통조차 긍정하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입니다. 고통을 견딜 수 있으니까 긍정하는거지 고통을 견딜 수 없는데 자기최면을 걸라는 말은 아닙니다
@@user-oe9bj6hn9o 저는 초인이라던가, 정신적인 생명력, 경지, 이런 단어가 형이상학적으로 들립니다. 그냥 좀더 훌륭한 사람은잇겟죠. 그리고 우리는 좀더 훌륭한 사람이되려는거구, 그런데 경지? 경지는 공짜로 주는겁니까. 좋은건 힘든고통의 시간이 따르겠죠. 그 경지에 힘들게 굳이 갈필요가있나요? 좀더 낮은고통으로 좀더 낮은경지에 가두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