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연개소문이 혁명이유는 고건무의 죄가 큽니다 먼저 고건주는 선왕인 영양태왕이 수나라 군사 시체를묻고 세운 그 전승탑을 본인이 허물었으며 당태종에게 국가 기밀 문서인 봉역도 즉 지도를 바칩니다 이것만으로도 고건무가 죽을 이유는 차고 넘치죠 나라를 한나라의 왕이 팔아먹은거나 다름없는 행위조선으로 비유하면 조선 고종황제가 친일행위 하는 행각으로 비유 할수 있겠죠
근데 모든 이야기의 근본 사료가 삼국사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삼국사기는 신라쪽 출신 김부식이 쓴 기록이라 대부분 신라를 중심으로 쓰여지고 고구려 백제는 많이 비틀어서 악으로 묘사된 시점이 많으니 이부분도 고려해야함. 중국쪽 기록역시 이미 수백년간 고구려와 아웅다웅하며 피를 본 사이 이니 좋게 기록했을리가 만무하고...
고구려 수도를 여러번 옮겼다는건 권력의 이동을 의미함 즉 압록당 이북과 한반도쪽 고구려 세력들이 권력 다툼을 했다는걸 알수 잇고 안시성의 양만춘도 연개소문이 공격해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음 발해와 고려가 똑같이 고구려의 후손임을 자처 했지만 특별하게 사이가 좋지는 않았음
@@mool_tissue굳이 당을 멸망못시켜도 고구려는 멸망을 피할수 있었음 3차 여당전쟁만 고구려가 방어에 성공했어도 당은 다시는 고구려 공격을 엄두도 못낼만큼 온국토가 쑥대밭에 온백성은 민생이 파탄날 지경이었을테니까 그리고 그 3차 여당전쟁도 연남생 통수때문에 진거고 연남생 통수만 아니면 고구려와 동맹맺은 돌궐 토번 얘네가 당을 수시로 괴롭히면서 당이 요동에 집중못하도록 만들었을터
제가 좋아하는 최선생님 Tip 하나 드릴께요 이 program target 이 초등학생이 아니라면 그냥 혼자서 program 을 진행하시는 편이 훨씬 구독자 늘리는데 도움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전혀 도움이 안되고 의미 없는 반응으로 진행만 break up 시키는 들러리는 세우지 마세요 솔직히 들어왔다가도 그것 때문에 도로 나갑니다
니들이 역사를 아느냐로 시작되는 국사시간. 교과서에도 내용과 실제 거리가 안맞죠ㅋㅋㅋㅋㅋㅋ 유배지가 한반도 몇배나 차이나 이게 고등2학년 국사책에 나옴. 당시 쌤이 역사에 의문이 많은 분이라 거짓이라 말하면 교육부에 걸리기에 실제 한국 지역거리까지 설명해줌. 빡침!!!!!!말도안되는 역사ㅋㅋㅋ
저 사람도 저렇게 얘기하는 근거가 있겠죠. 역사라는 것을 너무 한쪽으로 생각하지는 맙시다. 역사는 기록 장난이고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각 개인에게 달린 것이잖아요. 한쪽으로 치우치다보면 당파 싸움을 하는 것 밖에는 안됩니다. 조심스러운 제 생각은 역사는 저렇게 태왕 혹은 왕 이렇게 얘기해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차이가 뭔지도 모를 정도로 관심조차 없는 영역입니다. 무작정 태왕으로 가르친다고 달라질 것 같진 않네요. 역사에 아얘 관심이 없고, 심지어 그걸 알아서 당장 먹고 살거나 공부하는 데에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연개소문은 영웅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그는 고구려 생명을 끊은 최악의 권력자로 평가해야 한다 권력자는 치세뿐만 아니라 후사가 가장 중요한 책무인데 그것을 전혀 않고 세상을 떠나 아들끼리 다투며 당군 앞잡이가 되어 고구려 성문을 연 역적의 아비가 연개소문이다 주군인 왕을 토막내 죽이는 참혹함은 주요 평가 요소 아니다 이방원도 정적 살해에 참혹하기론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데 후사 세종대왕을 냈기에 그의 참혹성은 덮이고 평가는 태종으로 남는것
사람 자체는 뛰어난 사람이 맞음. 특히 군사적 역량에서 영양왕대에 시가전에서 불세출의 기량을 보여준 영류왕을 시가전으로 제압해 쿠데타에 성공했고 총 지휘관으로서 대륙의 1인자인 이세민을 패퇴시키고, 야전에서 당나라의 1인자인 소방정을 압도했음. 또 그만의 특수한 외교력을 발휘해 생전에 동북아 균형을 잘 맞추고 있었던게 맞지만, 안타깝게도 백제가 너무 빨리 무너졌고 자식들의 역량이 그를 못 따라간거지. 후계 구도에 있어서도 세 자식들에게 수도권 지배력을 잘 분배해주고 동생에게는 지방의 권력을 부여해준 것에 있어서 어느정도 신경은 썼다고 보임. 연개소문이 없었어도 고구려는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멸망은 피할 수 없었을거임.
@@user-gq8gv8qn9e연개소문 능력에 대한 평가는 동의하지만 고구려 멸망은 피할수 없었다 그 의견엔 반대함 고구려는 연남생 통수만 아니면 당의 3차 침입도 충분히 막을수 있었음 일단 토번이 발호해서 당의 심장부를 겨냥하던터라 당군도 요동에 집중하는건 부담스러웠던 상황. 고구려는 연남생이 군대기밀을 당군에 홀라당 갖다바치는바람에 요동방어선의 핵심 신성을 내주는 최악의 위기를 맞이함. 연남생 통수만 아니었어도 난공불락 신성에서 사부구같은 내부배신자가 나올일도 없었을터. 천하의 태종도 쩔쩔매던 신성인데 황제 친위부대도 아닌 당군의 일개 선발대가 신성을 자력으로 넘는다? 불가능한 시나리오. 그럼 시간만 질질끌다가 또 동장군에 가로막히고 그러는 사이 토번군이 당의 본토를 유린할테고 어쩔수없이 당군은 1차 여당전쟁때처럼 또 눈물을 머금고 후퇴하다가 요택에서 괴멸당하는 엔딩이었을 공산이 아주큼
연개소문이 잔인한지 안한지는 삼국사기와 중국측 시작 아닌가요? 그걸 당태종이 연개소문한테 뭏어야 할 사항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 전에 당과 고구려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고구려와 당은 서로 자존심 싸움이 계속 됩니다 사실 당나라 가문과 수나라 가문은 북위출신입니다 북위는 선비입니다 선비는 부여 고구려에 울타리 안에서 큰 민족입니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양반가에 도움을 받고 큰 평민집안이 대한민국에서 성공 햇다고 엣날 그들 영향에서 살았던 양반을 무시할수 있냐? 이런 관계와 비슷합니다 또 다른문제는 바로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당시 거란 말갈은 물런 이거나 돌궐도 상당히 고구려 영향권에 있어서 한반도 북방 기타 해양까지 고구려가 경제권을 쥐고 있엇습니다 사마르칸트 고구려 무사 그림 아시죠? 이는 경제뿐만 아니라 북방 영향권을 확대하려는 당과 충돌은 당연 합니다 또 연개소문이 가문이 고구려를 망햇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당 고종군대도 사수에서 연개소문에 깨졋고 설인귀도 온사문에 깨졋습니다 그럼 결정적인 것은 바로 신라입니다 신라가 전략적인 군수품과 식량지원으로 고구려 전략이 틀어 진겁니다
@@noripian 본인 역사공부 제대로 해보고 오세요 당나라와 신라는 형제국입니다 물론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형제국이지만 신라 특히 통일신라를 이룩한 김춘추는 북방민족 중 가장 강력했던 훈족(흉노는 중국놈들이 하도 그들에게 당해서 붙인 이름임)의 왕손의 후손이란 사실이며 우리 역사 속에서 잊혀진 대왕국 가야도 훈족 왕손의 후예인 수로왕이 세운 나라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당나라가 세운 선비족과 통일신라를 세운 선비족은 형제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역사를 가지고 신라가 ㅂ신을 하고 당나라를 도왔다 이런 건 택도 없는 역사를 전혀 모르는 이들이 하는 말장난일뿐이란 사실입니다
근데 이 사람 머하는 사람임? 연개소문이 잔인한가? 원래 저정도의 복수는 하지 않음? 고수전쟁이후 고건무가 자신의 라이벌인 을지문덕과 연개소문의 집단인 동부호족들을 멸문지화시켰는데 연개소문이 당연히 복수하지~ 고구려 멸망의 이유는 고건무의 정치적 숙청으로 동부호족이 멸망하면서 시작된 것임. 그러니 연개소문 사후 자기들 아들들이 고구려를 배반할 정도니깐
@@reyjinwep6497 연개소문 생전 고구려는 매우매우 강했죠 1차 여당전쟁 2차 여당전쟁 모두 당대 최강국을 개박살냈으니까요 고구려가 망한건 연개소문 아들들이 아버지 능력의 반도 못따라간 종자들이었고 개중엔 통수때리는 종자가 있어서였지 사실 통수만 아니었어도 고구려는 충분히 더 오래갈수 있었죠 이정도로 운없는건 그냥 하늘이 고구려를 버린거라고 봐야
@@michibld7763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고구려가 바보라서 신라를 버린게 아님. 고구려가 신라를 고르면 당시 신라의 철천지 원수던 백제가 당의 보급부대를 자처했음. 상식적으로 백제vs신라 누가 더 보급부대로 부담스럽겠냐? 압도적으로 백제지 그러니까 고구려는 백제를 고른거고 결과론적으로 실패한거지 선택 자체는 결과를 알고봐도 잘한거임
당에서 불쾌하다고 경관을 없애라고 요구하고 이를 받아들인 영류왕의 행태에 대해 현대에선 그게 뭐?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고당전쟁에서 고구려가 입은 인명손실 재산피해도 결코 만만한게 아님 당군에게 목숨을 잃은 가족 친지 친구 연인 입장에서 그 원수의 뼈로 만든 경관은 복수심과 슬픔을 달래는 상징같은 구조물이었을것임 그런데 왕이 독단적으로 원수의 나라와 화친을 맺는 구실로 그 경관을 허물었을때 그에 분노하는 건 당군과 싸운 연개소문 및 고구려 군부만 아니라 고구려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임 그리고 영류왕은 당에서 전래해온 외래 종교 도교의 전파를 허락함과 당시에 포교 목적으로 도사들을 받아들였는데 당나라 사람인 이 도사들은 고구려 전국을 "합법적으로" 다니며 지도 작성 등 간첩 행위들을 했다고 알려져있음 그리고 훗날 다시 벌어진 당과 신라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고구려는 패배 망하게 됨 쿠데타로 인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고 영류왕을 동정하거나 비운의 왕이라고 생각할게 아니라 반매국노 짓을 하다 죽임을 당했다고 봐야한다고 봄 영류왕이 살해당했을때 더 펄쩍 뛰고 오버 발작한건 당나라였음 비운이 아니라 당시 고구려인의 시각에선 반매국노임
@@user-cc9gb3ck2r연개소문이 외교를 못했단말 자체가 님이 역사공부를 안했단 증거임. 연개소문은 충분히 외교 할만큼 했음. 백제vs신라 둘중 백제손을 잡은건 충분히 합당한 판단임. 더군다나 말갈 돌궐 토번과 수시로 동맹전선을 맺으며 당을 견제함. 불가피한 전투에선 당군을 그냥 아작내버림. 고구려는 연남생 때문에 망한거지 연개소문 때문이 아니라
연개소문 기록 자체가 거이 없는데 고려시대때 만든 삼국사기 기록 가지고 연개소문 평가 하면 ㅋㅋ참 한심하다 ㅋㅋ그당시 구당서 기록으로 봐야지 맞는거임 ㅋㅋ그리고 지금도 중국에서는 연개소문 아직도 알고있음 ㅋㅋ한반도 장수가 지금까지도 중국에 경극에 나오는 이유 생각하면 연개소문에 중원에 얼마나 무서운짓 했으면 아직도 알고있니 ㅋㅋ한국사에서 중국애들이 연개소문 빼고 알고 있는 인물 있냐 다모르지 ㅋㅋㅋㅋ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일식의 최적관측지를 나사일식프로그램을 돌려보면 삼국의 수도는 대륙에 있었죠. 그리고 지나의 사서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장마의 시작시기도 신라 백제 고구려순으로 다르죠. 중국대륙남부 양쯔강유역에 신라가 위치했고 신라방 신라소운운하는 내용은 1883년 일본역사학자가 날조했음이 드러났죠. 기원전 4000여경에 쓰인 산해경에는 발해의 모퉁이에 조선이 있었다고 기록되어있고 선비족모용은의 비문에도 발해인근 고죽국(조선)의 존재를 인정하고 송나라 국방서적 무경총요에는 조선하의 존재를 송나라지리서 태평환우기에는 조선성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죠. 고조선을 이은 부여, 졸본부여는 산동반도 북부에서, 유리의 동생 온조 비류는 30년~50년간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있다 산동성남부 백제건국, 신라도 소호금천씨의 후예로 진나라(동이족)를 거쳐 산동지방에서 사로국이 시작되었죠.
@@user-fb6we1cd4c 강해졌어도 저런 개소리하면 안됨.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면 중국 왕조가 가만히 냅뒀겠음? 분명히 대규모 회전이나 교전 기록이 있었을거고 삼국시대 때 같은 나라사람인 왕릉,관구검,제갈탄이 수춘성 한곳에서 반란 일으켜도 전국적으로 병력 끌어모아서 대대적으로 토벌하던 조정인데 백제 신라가 중원에 있었다? 말도 안되죠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왕족 끼리 왕권 싸움과 신화가 왕권을 제압하는 것은 그 당시 많은 차이다 지금시대로 평가 할것과 하지 말 것이 있지 민주주의에는 성공한 쿠데타 반란군은 존재 하지 않는다 무조건 재판 받아야 민주주의다 그 당시는 ? 왕족 과 귀족의 차이점은 엄청나다 왕족이 조선시대에 왕족을 내세워 엄청난 반란은 다 인정도가 엄청 크지만 왕족이 아닌 사람이 반란하면 역적인 것이다 이 차이점은 시대적인데 왜곡 말아라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지나친 국뽕,고구려뽕,환뽕에 취한 사람들이 연개소문은 당나라에 맞서 싸운 민족주의자다. 외세에 맞서 싸우면 곧 영웅이고 민족주의자들한테 환영받았죠, 내부적으론 북한과 다름없는 독재에 반대파 처형, 심지어 왕까지 잔인하게 죽인 자를 단지 중국에 맞서 싸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위인으로 대접받죠, 오늘날 전투함의 이름에 연개소문함이 없는 이유도 왕을 시해한 사람은 작명해서 쓸 수 없다는 방침이 있음
멋 모르고 어렸을 땐 연개소문이 멋있어보였으나 연륜이 생기고 나이가 먹고 정치외교사를 공부하다보니 북에 그 분과 다른 점이 없어보였고 오히려 수나라와의 언벌란스한 체급 차이에도 불구하고 승리했으나 나라는 피폐해진 고구려를 살려보겠다고 일부러 저자세 외교로 나온 영류왕이 현명해보임,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명성을 떨친 영류왕이 연개소문한테 매국노소리까지 들으니 기가 찰 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