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일본 통치시대 조선에서 발생한 독립운동이다. 종교 주도자가 선도해 폭동으로 발전했다. 북한에서는 독립은 구실이며 실패한 부르주아 봉기였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3월 1일부터 3월 14일까지 사이에 일본인 경찰관 등 사망자 10명, 부상자 15명이 발생했기 때문에 일본 경찰이 단속했다. 체포·송검된 피의자 12,668명,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3,967명. 3년 이상의 징역은 80명. 사형·무기 징역이 된 사람, 징역 15년 이상의 실형이 된 사람은 없다. 2013년 폭동 도중 옥사를 포함해 일본 헌병에 죽은 자가 630명이었다고 확인됐다. 한국인이 주장하는 수천명의 죽은 자라고 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거짓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만일 지금 서울에 수만명의 시위가 발생해 10명의 경찰관을 죽였다면, 한국군이 출동할 것이다. 그래도 시위가 폭도화를 멈추지 않는다면 발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일본의 대응은 오히려 상당히 가볍다고 할 수 있다.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일본 통치시대 조선에서 발생한 독립운동이다. 종교 주도자가 선도해 폭동으로 발전했다. 북한에서는 독립은 구실이며 실패한 부르주아 봉기였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3월 1일부터 3월 14일까지 사이에 일본인 경찰관 등 사망자 10명, 부상자 15명이 발생했기 때문에 일본 경찰이 단속했다. 체포·송검된 피의자 12,668명,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3,967명. 3년 이상의 징역은 80명. 사형·무기 징역이 된 사람, 징역 15년 이상의 실형이 된 사람은 없다. 2013년 폭동 도중 옥사를 포함해 일본 헌병에 죽은 자가 630명이었다고 확인됐다. 한국인이 주장하는 수천명의 죽은 자라고 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거짓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만일 지금 서울에 수만명의 시위가 발생해 10명의 경찰관을 죽였다면, 한국군이 출동할 것이다. 그래도 시위가 폭도화를 멈추지 않는다면 발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일본의 대응은 오히려 상당히 가볍다고 할 수 있다.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일본 통치시대 조선에서 발생한 독립운동이다. 종교 주도자가 선도해 폭동으로 발전했다. 북한에서는 독립은 구실이며 실패한 부르주아 봉기였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3월 1일부터 3월 14일까지 사이에 일본인 경찰관 등 사망자 10명, 부상자 15명이 발생했기 때문에 일본 경찰이 단속했다. 체포·송검된 피의자 12,668명,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3,967명. 3년 이상의 징역은 80명. 사형·무기 징역이 된 사람, 징역 15년 이상의 실형이 된 사람은 없다. 2013년 폭동 도중 옥사를 포함해 일본 헌병에 죽은 자가 630명이었다고 확인됐다. 한국인이 주장하는 수천명의 죽은 자라고 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거짓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만일 지금 서울에 수만명의 시위가 발생해 10명의 경찰관을 죽였다면, 한국군이 출동할 것이다. 그래도 시위가 폭도화를 멈추지 않는다면 발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일본의 대응은 오히려 상당히 가볍다고 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 때 독립선언서를 태화관이라는 데서 선포했는 내용을 공부했습니다. 당시 역사쌤들은 더 이상 얘길해주지 않았습니다만, 어린 나이에도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상황인가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33인의 동상을 내리고 이름 없이 사라져간 분들의 비석을 커다랗게 대신해서 세우는 게 맞다고 봅니다.
리더가 중요하다. 임진왜란도 싸움은 수병이 했지만 이순신이란 탁월한 리더가 있었기에 승리했다. 그러기에 우린 이순신 장군을 기린다. 민족대표도 삼일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한 리더다. 태화관에서 의거한 것은 자신들만 연행되고 학생들은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그리 한 것인데 지금 와서 마치 도망친 것 처럼 묘사하는 건 배은망덕이다. 스스로 전화해서 연행된후 오직 3명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모진 옥고를 치르다 죽고 자신의 가족까지 고초를 당한 사실은 왜 눈감나? 탑골공원에서 학생들을 자신들같이 죽게 만들지 않으려는 충심을 이 따위로 왜곡하는 게 옳나?
@@chungberakah3482 학생들을 보호하려고 태화관에 모여서 주도했다니.. 소설은 일기장에나 써야지.. 역사를 참 편하게 바라보네.. 겁에 질려서 고급 술집에서 하다가 그것도 두려워 경찰서에 자진해서 달려갔는데.. 진짜 학생들을 위한다면 앞장서서 행동하다가 본인들이 대신해서 잡혀갔어야지.. 역사를 좋은 쪽으로 해석하면 뿌뜻하겠지..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일본 통치시대 조선에서 발생한 독립운동이다. 종교 주도자가 선도해 폭동으로 발전했다. 북한에서는 독립은 구실이며 실패한 부르주아 봉기였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3월 1일부터 3월 14일까지 사이에 일본인 경찰관 등 사망자 10명, 부상자 15명이 발생했기 때문에 일본 경찰이 단속했다. 체포·송검된 피의자 12,668명,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3,967명. 3년 이상의 징역은 80명. 사형·무기 징역이 된 사람, 징역 15년 이상의 실형이 된 사람은 없다. 2013년 폭동 도중 옥사를 포함해 일본 헌병에 죽은 자가 630명이었다고 확인됐다. 한국인이 주장하는 수천명의 죽은 자라고 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거짓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만일 지금 서울에 수만명의 시위가 발생해 10명의 경찰관을 죽였다면, 한국군이 출동할 것이다. 그래도 시위가 폭도화를 멈추지 않는다면 발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일본의 대응은 오히려 상당히 가볍다고 할 수 있다.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일본 통치시대 조선에서 발생한 독립운동이다. 종교 주도자가 선도해 폭동으로 발전했다. 북한에서는 독립은 구실이며 실패한 부르주아 봉기였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3월 1일부터 3월 14일까지 사이에 일본인 경찰관 등 사망자 10명, 부상자 15명이 발생했기 때문에 일본 경찰이 단속했다. 체포·송검된 피의자 12,668명,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3,967명. 3년 이상의 징역은 80명. 사형·무기 징역이 된 사람, 징역 15년 이상의 실형이 된 사람은 없다. 2013년 폭동 도중 옥사를 포함해 일본 헌병에 죽은 자가 630명이었다고 확인됐다. 한국인이 주장하는 수천명의 죽은 자라고 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거짓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만일 지금 서울에 수만명의 시위가 발생해 10명의 경찰관을 죽였다면, 한국군이 출동할 것이다. 그래도 시위가 폭도화를 멈추지 않는다면 발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일본의 대응은 오히려 상당히 가볍다고 할 수 있다.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일본 통치시대 조선에서 발생한 독립운동이다. 종교 주도자가 선도해 폭동으로 발전했다. 북한에서는 독립은 구실이며 실패한 부르주아 봉기였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3월 1일부터 3월 14일까지 사이에 일본인 경찰관 등 사망자 10명, 부상자 15명이 발생했기 때문에 일본 경찰이 단속했다. 체포·송검된 피의자 12,668명,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3,967명. 3년 이상의 징역은 80명. 사형·무기 징역이 된 사람, 징역 15년 이상의 실형이 된 사람은 없다. 2013년 폭동 도중 옥사를 포함해 일본 헌병에 죽은 자가 630명이었다고 확인됐다. 한국인이 주장하는 수천명의 죽은 자라고 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거짓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만일 지금 서울에 수만명의 시위가 발생해 10명의 경찰관을 죽였다면, 한국군이 출동할 것이다. 그래도 시위가 폭도화를 멈추지 않는다면 발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일본의 대응은 오히려 상당히 가볍다고 할 수 있다.
강의 들을 때마다 화병 날것 같네요ㅠㅠ 우리 역사에 정도를 택한 분들은 항상 피해만 보고 그 후손들 역시 어려운 처지에 있으니.. 지금 선진국들은 우리와 달랐을까요? 선생님도 마음 수양 많이 하시고 강의를 계속 부탁 드림니다. 지금이라도 국회의원이 올바른 역사 인식과 입법을 해야 할텐데요,180이면 가능한데 아직도 머뭇거리기만 하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일본 통치시대 조선에서 발생한 독립운동이다. 종교 주도자가 선도해 폭동으로 발전했다. 북한에서는 독립은 구실이며 실패한 부르주아 봉기였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3월 1일부터 3월 14일까지 사이에 일본인 경찰관 등 사망자 10명, 부상자 15명이 발생했기 때문에 일본 경찰이 단속했다. 체포·송검된 피의자 12,668명,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3,967명. 3년 이상의 징역은 80명. 사형·무기 징역이 된 사람, 징역 15년 이상의 실형이 된 사람은 없다. 2013년 폭동 도중 옥사를 포함해 일본 헌병에 죽은 자가 630명이었다고 확인됐다. 한국인이 주장하는 수천명의 죽은 자라고 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거짓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만일 지금 서울에 수만명의 시위가 발생해 10명의 경찰관을 죽였다면, 한국군이 출동할 것이다. 그래도 시위가 폭도화를 멈추지 않는다면 발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일본의 대응은 오히려 상당히 가볍다고 할 수 있다.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일본 통치시대 조선에서 발생한 독립운동이다. 종교 주도자가 선도해 폭동으로 발전했다. 북한에서는 독립은 구실이며 실패한 부르주아 봉기였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3월 1일부터 3월 14일까지 사이에 일본인 경찰관 등 사망자 10명, 부상자 15명이 발생했기 때문에 일본 경찰이 단속했다. 체포·송검된 피의자 12,668명,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3,967명. 3년 이상의 징역은 80명. 사형·무기 징역이 된 사람, 징역 15년 이상의 실형이 된 사람은 없다. 2013년 폭동 도중 옥사를 포함해 일본 헌병에 죽은 자가 630명이었다고 확인됐다. 한국인이 주장하는 수천명의 죽은 자라고 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거짓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만일 지금 서울에 수만명의 시위가 발생해 10명의 경찰관을 죽였다면, 한국군이 출동할 것이다. 그래도 시위가 폭도화를 멈추지 않는다면 발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일본의 대응은 오히려 상당히 가볍다고 할 수 있다.
역사를 하나도 모르는 일반인입니다 역사가 얼마나중요한가를 알게해주신 좋은 선생님을 만난것같습니다 나이를 먹고 이런 저런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꼭 기억을 해야하는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아이둘을 키우는 아버지로써 역사를 바로 알고 아이들이 질문하면 정말 진실을 말할수 있을것 같아서 행복합니다 학교 다닐때. 역사가 싫어서 공부를 안했나 잘 기억이 안나지만 지금 현재는 역사를 누구보다 좋아합니다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많이많이 졸은 영상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저는 선생님의 모든 영상을 10번 이상 반복 또 반복 해서 듣고있는 아니 시간만 남으면 그냥 자동으로 그냥 봅니다 ㅋㅋ 오늘도 또 다른영상을 봐야 하겠네요 ㅋㅋ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일본 통치시대 조선에서 발생한 독립운동이다. 종교 주도자가 선도해 폭동으로 발전했다. 북한에서는 독립은 구실이며 실패한 부르주아 봉기였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3월 1일부터 3월 14일까지 사이에 일본인 경찰관 등 사망자 10명, 부상자 15명이 발생했기 때문에 일본 경찰이 단속했다. 체포·송검된 피의자 12,668명,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3,967명. 3년 이상의 징역은 80명. 사형·무기 징역이 된 사람, 징역 15년 이상의 실형이 된 사람은 없다. 2013년 폭동 도중 옥사를 포함해 일본 헌병에 죽은 자가 630명이었다고 확인됐다. 한국인이 주장하는 수천명의 죽은 자라고 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거짓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만일 지금 서울에 수만명의 시위가 발생해 10명의 경찰관을 죽였다면, 한국군이 출동할 것이다. 그래도 시위가 폭도화를 멈추지 않는다면 발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일본의 대응은 오히려 상당히 가볍다고 할 수 있다.
@@user-vf5xu5ry5j 한국인은 날조된 역사를 배우고 있다. 3.1 사건을 독립운동으로 파악하는 것은 실수이다. 시위 참가자들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속아 대우 개선을 요구했으며, 일부를 제외하고 조선의 독립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원래 병합 후에도 조선인은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빈곤을 일본 탓으로 시위를 일으키는 것이 실수이다. 어쨌든 수만 명이 폭동을 일으켜 경찰관을 10명이나 죽이면 군대가 단속되는 것은 현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서울에서 일어나면 한국군이 어떻게 하는지 잘 생각해라.
사실 역사공부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더라고요. 제가 76년생이고 한국나이로 48년을 살았는데요. 간혹 티비에서 제가 살아온 48년동안의 이야기를 소개하는데 간혹 제가 "뭐이그래?^^"라고 말하고싶은 것들이 꼭 있더라고요. 저 국민학교때만 해도 정육점앞에는 소머리,돼지머리를 내세우는 정육점들이 많았고 저 중1때까지만 해도 상여를 나가는 행렬이 있었던 것도 일종의 역사의 증언이잖아요.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일본 통치시대 조선에서 발생한 독립운동이다. 종교 주도자가 선도해 폭동으로 발전했다. 북한에서는 독립은 구실이며 실패한 부르주아 봉기였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3월 1일부터 3월 14일까지 사이에 일본인 경찰관 등 사망자 10명, 부상자 15명이 발생했기 때문에 일본 경찰이 단속했다. 체포·송검된 피의자 12,668명,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3,967명. 3년 이상의 징역은 80명. 사형·무기 징역이 된 사람, 징역 15년 이상의 실형이 된 사람은 없다. 2013년 폭동 도중 옥사를 포함해 일본 헌병에 죽은 자가 630명이었다고 확인됐다. 한국인이 주장하는 수천명의 죽은 자라고 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거짓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만일 지금 서울에 수만명의 시위가 발생해 10명의 경찰관을 죽였다면, 한국군이 출동할 것이다. 그래도 시위가 폭도화를 멈추지 않는다면 발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일본의 대응은 오히려 상당히 가볍다고 할 수 있다.
전 반대합니다. kbs 공영방송에 나오는 순간 자유로운 역사 강의가 정형화 되어, 이리저리 눈치만 보고 할 말을 제대로 못한채 앵무새가 되어 버립니다.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는 수많은 낙인으로 찍혀서 한순간에 낙마 해버립니다. 적어도 황선님의 강의를 들으려면 기본적인 역사적 소양과 기존 틀을 깨는 자세가 있어야 다가 옵니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강의하는 것이 더 좋다고 봅니다.
@@user-lz3jo5tz7h 님이 배웟을땐 옛날이고요...님은 남자 독립운동가 분들을 형 이라는 말을 하세요? 아무도 그렇지 않아요. 최근에는 여성 독립운동가로서의 유관순 열사의 업적을 조명하기 위한 작업이 이어지고 있지만 오랫동안 유관순 열사를 누나라고 부르게 했던 흔적은 님처럼 남아잇네요.
@@JJH5680 태화관 기생이 나와서 춤추는걸 관람하며 식사하는 사치스런 식당인건 맞습니다. 물론 말이 과한 부분도 있습니다만, 그걸 떠나서 황선생 얘기는 민족 대표 33인을 영웅으로 추앙하는 관점이 잘못됐다는 겁니다. 그들은 민초들보다 감옥에서 수감 생활도 덜 했고 애초에 3.1운동을 가벼운 플래시 몹 이벤트 정도로 생각했다는 거죠. 2달이나 이어진 만세운동을 그들이 진두지휘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요?
우리나라도 3/1절을 개국일로 선포해야 마땅합니다. 미국 독립선언서 낭독~미국 독립도 시간 차가 있었는데 대한민국 임정을 수립하게 된 계기인 삼일절이 그냥 만세운동 정도의 대우는 부당하죠. 민족대표 33인은 차치하고(변절자도 많았으니) 전국 민중이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도 들불처럼 일어나 독립을 선언했으니까요.
제 친할아버지도 3.1운동에 가담했다가 재판받고 대구교도소에 6개월 복역한 후 말라리아에 걸려 반 죽어 나왔습니다. 제 할아버지는 전북 군산에서 하셨는데 당시 연희전문학교 의대에 다니던 학생이 내려와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준비하여 3월 5일 시작했다 합니다. 전북 군산의 3.1운동은 한강이남에서 최초의 독립만세운동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