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뉴스보면서 울컥해서 눈시울 빨개지고 온 국민이 기뻐했었다 IMF로 직업 다 잘려나가고 전 국민 금모으기 운동하던 시절 박세리의 우승은 우리도 다시 일어날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었지 스포츠로 우리 국민이 하나가 되어 해낼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얻었던 건 박세리와 2002 월드컵이었음 당시 그 시절을 생생히 겪었던 20대로 박세리는 영웅맞음
초딩 저학년 때라 골프도 몰랐는데 어른들이 보니까 옆에서 같이 보다가 박세리 선수가 양말 벗었을 때의 충격... 아직도 기억이 난다. 공이 물에 빠지고 어른들이 "아이고 어떡하냐~~ 박세리 우승 못하겠다. 어머어머 들어가나봐. 신발 벗는다." 막 난리가 났는데 박세리가 양말을 벗는 순간 모두가 경악해서 말을 못 잇는 상황이었다. "엄마 박세리는 왜 발만 저렇게 하얘?" "원래 저게 저 선수 피부색인데 저렇게 까맣게 탈 때까지 연습한거야. 대단하지?" 그 때 '노력'이란 게 무엇인지를 좀 크게 느낄 수 있었고, 골프도 모르는 애가 눈물 그렁그렁해서 봤던 기억이 난다. US오픈 우승도 우승인데, 그 버선같이 하얀 박세리의 발 때문에 우리나라도 노력하면 IMF 위기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용기와 희망을 얻었지.. 골프 천재 맞는데 천재라고만 하면 세리언니 억울하실 듯 ㅠㅠ 천재가 노력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 사례임..
와.....비하인드를 처음듣네 미국가서 첫대회 그것도 4달됐는데 바로 우승 그리 고 나이가 21세;;;;;; 와.....이건 천재가 피나는 노력까지 하면 나이고 경험이고 씹어 먹는구나 ........ 저당시 진짜 기억나는게 한국에서 무슨 미국대회우승? 상상조차 할수 없었고 얘기도 못들어 봤다 그냥 보면서도 이게 머지??? 골프가 쉬운건가?? 이생각까지 했었다 ㅋㅋㅋ
데뷔하자마자 메이저 2승을 한 한국의 신인 골퍼. 영화나 만화에서도 저런 설정을 하면 욕먹는데 그것을 현실로 이뤄내신게 ㅎㄷㄷ 인터뷰 때 한국의 마이클조던 또는 타이거우즈란 평가 중에 어떤게 맘에 드냐는 질문에 "저는 둘 다 마음에 안들어요. 저는 저만의 길을..."와 저 나이 때 본인만의 길을 가겠단 말씀을 하신다는게 정말 보면 볼 수록 다른 세계에서 오신 분 같아요.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
1997년 슬픔이 골목 곳곳에 스며들던 시절 골목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학교에는 몇 없던 이혼가정이 수없이 늘어나고 학교 마치고 집에 갔는데 집안 여기저기 빨간 딱지가 붙어있던 시절 그 시절 빨간 딱지 너머로 보던 박세리 선수와 박찬호 선수의 경기가 아직도 선명하다
@@lovemesinzer 멋진 댓글이네요. 맞아요 @팔자라니살자님. 다들 저렇게 화려하거나 전설인 삶을 살지는 않아요. 그냥 주어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는거죠. 그 안에서 한 번씩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러니 팔자님은 지금 잘 살고 계신거죠!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이 때 나는 당구 배우느라 당구장에서 열심히 지냈음 당구치고 집에 가려는데 당구장TV에서 박세리 선수가 연장전을 하고 있었음 보다보다 계속 연장에 연장으로 가서 결국 우승하는것까지 봤음 걸어서 5분 거리에 집이 있었는데 새벽에 집에 가니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 때가 결혼 1년 좀 더 지난 신혼이었다. 까딱하단 이혼?할 뻔 했다. 박세리 님이 자기 응원하느라 내가 이혼할 뻔 한 걸 알기나 할까? 어쨌든 당시에는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18년전 위스콘신 blackwoolf run golf 코오스에 가서 박세리가 이긴 마지막홀 그자리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 유명한 마지막홀 보통때는 물이 없고 시합때만 물을 넣는다 하드군요. 그후 로체스타 뉴욕에 왔을때는 18홀을 따라 다녀 보고요. 그때는 세련되어 미국 선수들과 함께 퍼딩 연습하면서 영어도 썩 잘 하였든걸로 보았답니다.
98년 봉황동 자취방에서 나와 학교가는데 시즌 끝나고 귀국한 박세리가 오픈카타고 카퍼레이드하는걸 마주쳤다 뭐지?하고 보고있는데 그순간 박세리와 서로 눈이 마주쳐서 바라봤는데 2초가 20초처럼 느껴졌었음 겨울에 다져스 점퍼입고 학교에서 후배들하고 몸풀던 박찬호한테 사인받고 악수하는데 손이 엄청커서 놀랐던 기억도있고 인생에 잊지 못할 추억들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