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er-ot2qd1je2c 또 한 가지 깜놀할 사실 얘기해줄까? 대동여지도는 김정호가 만든 건데, 그 당시에 훨씬 더 좋은 일제 조선 지도가 이미 나와 있었음ㅋ 또 한 가지.... 서울에 있는 독립문... 그거 조선이 1945년 독립 기념으로 만든 게 아님... 청일 전쟁의 결과로, 조선이 일본 덕분에 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게 되었는데, 그 기념으로, 기존의 문(조선 왕이 청나라 사신을 맞이할 때 사용하던 문)을 철거하고 새로 세운 게 독립문임. 즉,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기념으로 세운 문이 아니라, 일본 덕분에 청나라로부터 독립한 기념으로 세운 문임. ㅋ
이준구 님은 어린아이나 미 국회의원이나 편견없이 똑같이 대해는 훌륭한 인격을 가지신 분입니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고,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기 위해 헌신하신 분 입니다. 가끔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한 무례한 행동들에 대해 가슴 아파했지만요. 항상 에너지가 넘치고 좋은 기운을 주신분이었고 노익장을 과시했는데... 작년즈음에 갑자기 돌아가셔서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이별의 인사도 못했는데.. 편히 영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전통무술 수련하는 사람들이 실전에 약한 이유는 맞아가며 배우질 않았기 때문임. 특히 안면부위. 그런 점에서 복싱은 스파링하면서 얼굴 맞는게 익숙해지기 때문에 유리할 수 밖에 없음. 어느 무술이든 몸에 멍을 달고 살고 눈에서 별이 번쩍번쩍 거리는 횟수가 많을 수록 잘하게 되어있음.
Jhoon Rhee is credited as the man to bring & introduce Taekwondo to the United States. He taught Bruce Lee taekwondo's powerful kicks, especially the side kick. Just found out that he passed away in April 2018. R.I.P seonsaengnim Jhoon Rhee. Another Asian legend alongside Bruce Lee
This interview is full of gems. Where can I see the original transcript. I also liked what Rhee said at 2:37 about Mas Oyama. From what I've read, Oyama is two-faced about his Korean heritage.
이준구가 이소룡을 가르쳤다는 말만 많이 나오는데 사실 서로 친구로써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교분을 갖는 사이였음.이준구 역시 한창시절 팔굽혀 펴기를 1분에 백회를 했던 것으로 유명함. (북미에서 발간된 관련 도서에 나옴)또 무하마드 알리를 전적으로 가르쳤다기 보다는 당시 알리가 동양의 무술인들에게 배우려는 자세가 아주 강했음. 이소룡의 배를 자신의 주먹으로 때리는 시범을 보인 후 '이소룡이야 말로 세상 최강의 인간' 이라고 추켜 세워주기도 했었음.이소룡과 이준구는 평소에도 아주 가깝게 지냈다고 하는데, 이준구의 집에 이소룡이 자주 찾아와서 오랬동안 훈련하고 토론하다가 배가 고파지면 이준구의 사모님이 간식을 자주 만들어 주곤 했었다는데, 특히 이소룡이 김밥을 좋아했다고 함.
물냉닌자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도 공감합니다. 거짓은 결국 들통나게 되죠. 공식적인 전적이 별로 없는 힉슨그레이시도 브라질리언 주짓수의 전설로 인정받고 있으며, 자칭 450전 무패라고 하는데, 실전에서 누군가에게 졌다거나, 실력이 형편없었다고 가정하면 지금의 힉슨그레이시로 존재할수도 없고 전설이란 명성도 가질 수 없는게 역사적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쉬쇼우동이 비판했듯이 중국의 과장된 소림사파이터 일롱처럼 짧은기간 동안 포장할 순 있어도 결국 들통 날 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죠.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
태권도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현대 무술입니다 저도 12년 동안 태권도를 하면서 중,고등 시절 시,도,전국체전 까지 시합을 하며 선수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독 태권도에 애착이 많이 가네요 요즘은 발펜싱이 난무하지만;; 쨌든 태권도가 자랑스러운 이유는 중국과 일본의 무술들을 골고루 변형시켜 만든 우리의 현대무술 이라는것입니다 태권도의 고향은 일본입니다 우리는 태권도가 고유의 전통무술인 태껸을 계승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태권도는 가라테를 변형, 발전시킨 것입니다 태권도라는 단어의 탄생도 삼국시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선 중기까지는 거슬러 올라갈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태권도라는 명칭은 1954년, 당시 29사단 사단장 최홍희와 그의 부하 남태희가 만들었습니다 그해 9월 강원도 속초에서 1군단 창설 4주년 기념식이 있었고 그때 29사단의 가라테 시범이 있었는데 행사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이 최홍희에게 "저게 바로 예로부터 전해오는 태껸이구먼 앞으로 전 군에 보급시켜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최홍희와 남태희는 일본의 가라테를 지칭하던 공수도, 당수도를 버리고 옥편을 찾아가며 ‘태껸’과 비슷하게 들리는 태권도라는 명칭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최홍희는 일제 때 도쿄 중앙대학에 다니면서 가라테부에 있었고, ‘가라테의 아버지’로 알려진 후나코시 기친(船越義珍)의 쇼토칸(松濤館)에서 정식으로 가라테를 배웠습니다 남태희는 해방 이후 ‘당수도 청도관(靑濤館)’에서 무술을 수련했구요. 당수도, 즉 가라테를 가르치는 도장이었습니다 청도관은 1944년 이원국이 개관했는데 그 역시 도쿄에서 중앙대학에 다니면서 1929년부터 10년 간 쇼토칸에서 후나코시에게서 가라테를 배웠습니다 5대관으로 불리며 현대 태권도의 근간이 된 청도관(靑濤館), 송무관(松武館), 무덕관(武德館), 조선연무관 권법부, YMCA 권법부에서 가르친 것은 기본적으로 가라테였고 YMCA 권법부 및 그 후신인 강덕원에서는 중국 권법 계열을 더 많이 가르쳤습니다 이들이 붙인 세 가지 명칭이 '공수도', '당수도' 그리고 '권법'이었던 것에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공수(空手)를 일본식으로 읽으면 가라테입니다 가라테도 일본의 고유한 무술은 아닙니다 류큐(오키나와)의 전통무술로서, 그 기원은 17세기에 전해진 중국의 남권(南拳)입니다 류큐에서는 중국에서 전래되었다고 알려진 무술, '토디(唐手, トゥーディー)'. 즉, 당수라고 불렸습니다 1929년, 후나코시가 사범을 맡고 있던 게이오 대학의 가라테 연구회가 '가라테'의 표기를 중국을 연상시키는 당수(唐手) 대신에 공수(空手)로 바꾸었고 수(唐手)도 일본식 발음은 가라테입니다 1950년대 후반 우리 무도계에는 당수도·공수도·권법·수박도·화수도·태권도라는 명칭들이 난립해 있었는데 모두 수박이나 태껸과는 무관했고, 가라테에서 비롯된 것들이었습니다 1959년, 현역 장성이었던 최홍희가 그 위세를 배경으로 자신이 만들어 낸 태권도라는 명칭을 밀어붙이며 대한태권도협회를 창립했습니다 이후 1961년에 대한태수도(跆手道)협회로 명칭이 변경되기도 했고 태수도는 태권도와 공수도·당수도를 절충하여 새로 만든 명칭이였는데 1965년 8월에 협회의 이름을 다시 대한태권도협회로 바꾸었습니다 태권도가 가라테를 원형으로 하여 발전했다는 것을 감추거나 부끄러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해방 이후 수많은 태권도인들이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면서 태권도를 세계적인 무술로 성장시켰고 오늘날의 태권도는 가라테와는 다른 무술입니다 문화는 교류의 산물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는 게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일제 때 일본은 아시아 최고의 선진국이었고 무술 수련과 교육 체계 역시 일본이 가장 선진적으로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선배 세대가 그걸 배워서, 그걸 바탕으로 태권도를 키운 것입니다 우리는 석굴암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만들기 시작해서 20여 년 후 완성되었고 그게 오롯이 김대성과 신라인들의 창의성의 산물일까요? 아닙니다 당시 신라와 당의 문물교류가 매우 활발했는데 신라의 장인들은 중국의 룽먼석굴, 윈깡석굴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며, 그로부터 영감을 얻고 배웠습니다 중국의 석굴들은 인도의 아잔타석굴의 영향을 받았죠 아잔타석굴은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 원정 때 따라온 그리스계 이주민들이 전파한 헬레니즘 미술 양식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석굴암의 가치가 희석되는가?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는 석굴암을 자랑스러워합니다 태권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남권, 류큐의 당수, 일본의 가라테를 거쳐 태권도가 탄생했습니다 자랑스럽게 족보를 밝히는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이런 태권도 선수였던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이런 사실을 이야기해주면 욕만 퍼부으면서 진실을 거부하는 태권도 고유 5000년 무술론 광신도들이 있는데, 정말 한심하더군요. 태권도는 고유 무술이라서 가치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발전시키고 전세계에 보급한 현대 무술 문화로서 가치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제는 일제시대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니도 책좀 읽고 일기쓰면 니일기장 책으로 출판가능...나도 한때 운동에 미쳐있을 시절에 이소룡과 절권도에 관심 많았었지...그러나 배울점 하나 없더라...오히려 깨우쳐 주긴 하더라...어떤 무술이던 운동이던 하나만 파고 들어 배웠던 모든스킬들은 자연스럽게 내몸에 일부가 된다. ㅇㅇ
이소룡하면 항상 나오는 이준구 미국태권도의 태권도의 아버지 이준구 알리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이소룡에게 발차기를 가르친 이준구 하지만 이준구에 대한 자료는 찾기가 힘든어요... 기존태권도와 상당히 많이 다르다고 들었는데....개인적인 생각으로 영춘권보다 절권도보다 이소룡스타일에 가까운 무술일꺼같은데 ...궁금하고...이소룡이야기속의 이준구말고 이준구만의 이준구이야기 그만의 태권도 이야기도 알고 싶습니다..
I fear not the man who has practiced 10,000 kicks once, But I fear the man who had practiced one kick 10,000 times. 나에게는 한번에 만가지에 발차기 수련을 하는 사람은 위협적이지 않다. 한가지의 발차기 수련을 만번씩 하는 사람이 위협적인것이다. Bruce Lee 이소룡
저말이 사실임 중국에서 무술감독 하던 한국인이 한말도 비슷함 월래 쿵푸에는 발차기가 없었다고함 고전 쿵푸 영화 보면 발차기가 그저 장난 수준임 그래서 한국 무술 감독이 태권도의 발차기를 쿵푸 영화에 선보였죠 그후 엄청난 발차기 기술들이 쿵푸 영화에 자주 등장했죠 중국에서 수많은 무술영화 감독 하시다가 지금은 한국에서 살고 있다던데 이름이 생각 안나네요 ㅎㅎ
여긴 미국. 이소룡 은 진짜 최고의 싸움꾼. 그는 씨애틀에서 하이스쿨 풋볼선수 십여명과 시비가 붙었는데 대 여섯명을 순식간에 떡실신 시킨 건 시애틀에 살던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 그리고 이소룡 은 샌프란시스코와 캘리포니아 일대를 돌면서 각종 격투기에 참가해 자신보다 덩치가 훨씬 큰 상대들을 다 때려 눕혔음 진짜 초인적인 싸움의 전설 . 이소룡 도 씨애틀에서 하이스쿨 을 다녔슴.
이분...고등학교 때인가??93년 정도 되는거 같은데...우리 학교에 오셔서 조회시간에 운동장에서 이런저런 말씀 해 주셨던 기억이 나내....그때는 그냥 유명한 태권도인으로만 들어서...근데 연설을 하다 말고 내기를 걸었음...내 주먹을 막을 수 있다면 100불을 당장 주겠다....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못햇지...ㅋㅋㅋ 하여간 농촌 학교에 먼길 오셔서 좋은 말씀을 아주 편하게 하시던 기억이 있음....
태권도 태극1장 첫동작인 아래막기 동작에서 그대로 양팔올리면 복싱동작됨.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들이 태권도는 복싱기술 없다고 하지. 태권도 교본 보면 팔꿈치, 무릎, 정권, 메주먹(종합격투기에서 사용 되는 해머링) 다 있음. 다만 수련자가 어떻게 풀어먹냐가 중요한거. 태권도 유단자라면서 얻어터졌다는건 본인이 싸움에 능하지 않아서 그런것 뿐. 옹박에서 나온 손기술을 태권도에서도 얼마든지 구현가능함. 다만 다른 무술과 차이점은 발기술도 다양한지라 종합이나 입식에서 나오는 킥뿐만 아니라 택견에서 나오는 곁차기, 촛대차기, 복장지르기등 얼마든지 사용이 가능함. 잘만 사용하고 잘만 단련하면 입식에서 짱먹을수 있는 무술이 태권도임.
무술의 종류를 구분할때 선자세를 주로 봅니다. 궁보 마보와 같이 무릎을 많이 구부려서 수련하는 낮은자세의 무술이 있고 대표적으로 류큐태(공수도)와 형의권등의 중국무술이 있습니다. 또 무릎을 살짝만 구부리거나 상체를 숙여서 중간자세를 만드는 택견이나 삼보 등이 있습니다. 그런고 폴짝폴짝 뛰면서 높은 자세로 하는 무술이 태권도와 복싱, 절권도입니다. 세가지 무술의 공통점이 현대창작무술이고 복합무술이라는 것입니다. 태권도는 기본이 되는 류큐태의 형을 받아들여 앞굽이 뒷굽이 등의 강도높은 낮은 자세의 수련을 하는 많이 하는 반면에 막상 겨루기에서는 높은자세의 겨루기를 많이 합니다. 이것은 ITF와 WTF 둘다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어서 스포츠화 되는 과정에서 변형되었다는 논리도 무색합니다. 그렇다고 태권도의 융합에 쓰였다는 택견의 원품과 품밟기는 무릎을 살짝 중간자세로 수련하기 때문에 택견의 영향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이것은 이준구사범님과 같은 분들이 실전 무술에 접목시키는 과정에서 수련(대련)방법을 만들어내신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실 이 얘기는 70~90년대 인터넷 없을 때 이소룡 책에서 대충 교류 얘기가 있어서 당시 이소룡 팬들은 다 아는 얘기... 한국의 황인식 선생과 척 노리스 등과도 교류를 가지며 영화를 같이 한것도 나왔었죠... 이준구 선생으로부터 태권도 발차기를 배웠고, 이소룡은 절권도를 창시하기 전에 기본을 이룬 영춘권의 반사 신경 등을 친구로서 친분을 쌓으며 교류한걸로 예전 책에서 보았었습니다... 최근 사망원인으로 모 다큐를 보닌 다친 허리를 치료하기 위해 당시엔 부작용을 모르던 스테로이드 남용 치료로 인하여 그 부작용으로 사망한 걸로 그 다큐에선 얘기하더군요...
네 이미 그 당시에 많은 책들에서도 나와 있어서 저도 읽어 봤었던 기억이 나네요. 펜싱에서 발차기 스텝을 응용했었고, 복싱이나 레스링도 연구 했었던 흔적을 많이 남겼었지요. 쌍절곤도 필리핀 무술가에게서 사사를 받아 영화에 응용을 했었고, 발차기는 펜싱스텝에 태권도 옆차기를 응용했었구요. 그 때는 상식이었는데 요새는 또 신비화가 되고 있네요 (세월 무상입니다). 이준구 선생님은 옛날 주병진쇼에선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60세 넘은 나이에 나오셔서 본인은 아침에 일어나면 팔굽혀펴기를 일천개를 하시는 것이 루틴의 시작이라고 하시면서, 한번에 백개를 하시더라구요. 그 때는 저도 한번에 70개 정도는 했었던 때라 저게 뭐가 대단하지? 라고 우습게 알고 지나갔는데, 50이 넘은 지금 열개도 힘듭니다 (물론 늘리기 위해서 노력해보면 85킬로 몸에 30개 까지가 한계더라구요 ㅋ) 저도 자극을 받기 위해서 그 때 이준구 선생님의 영상을 찾아 보려고 해도 유투브에는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