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6월 21일에 '69년 전에 이미 지불하셨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책이 출간되었어요! 작가님께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고픈 분들께 너무나 좋은 소식인 것 같습니다 :) 저 또한 그렇구요! 그리고 책 출간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작가님. 그 신념 이어가실 수 있도록 저희가 응원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현역 군인입니다. 지난 휴가 때 부산역에서 정장을 입으신 신사분이 계셨는데 국가유공자 뱃지가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저는 평소에 유공자분을 만나면 감사하다고 인사드리는 편이라서 그 날도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할아버지 초면에 갑작스레 죄송하지만 국가유공자 되십니까?" 하고 물으니 신사분이 악수를 청하시며 "어? 어 니도 월남 다녀왔나?" 하시는데 전혀 예상 못한 대답이라 푸흡하고 웃어버렸습니다ㅋㅋㅋㅋ 그냥 그랬던 적이 있엇습니다.ㅋㅋ 감사합니다 모든 것에
저희 할아버지께서도 학도병으로 참전하셨습니다. 하지만 전쟁중에 관련 기록 일체가 분실되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셨습니다.(의외로 이런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평생 국가로부터 어떠한 혜택도 받지 못하시다, 뺑소니로 돌아가셨습니다. 뺑소니범들에 의해 유기된 할아버지의 시신을 가장 먼저 발견했던 사람이 아버지였습니다.(경찰이 수색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쌓인 낙엽에서 삐죽 나온 발을 보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울며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제발 우리 아버지가 아니기를...'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국립묘지에 이장해주겠다고 연락이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거부하셨습니다. 할아버지도 너무나 안타깝고,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비록 매우 어렸지만, 할아버지 상여를 따라가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효도하고 잘 해드려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서 더 슬픕니다. 군대도 1급 현역으로 다녀왔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니 어느 순간 갑자기 몸에 이상이 오더라구요. 희귀질환으로 제대로 경제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부모님께 의존하며 살고 있습니다. 나름 착하게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럴까 싶네요. 국가에서 희귀질환에 대해 지원해 주는 정책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제가 겪는 증상은 대상이 아니라고 합니다. 허허허허허허허허허 우리 아버지가 너무 불쌍합니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제 할아버지 형제 분 중에 한 분이 한국 전쟁에 참전하셔서 전사하셨지만 현충원에 가시지 못하고 다른 곳에 묻히셨네요..근데 진짜 정말 아이러니한 거는….반공운동이랍시고 공신당 색출하던 시기에..할아버지 형제분 중 또 다른 형제분은 억울하게 반공으로 몰려서 모진 고문을 받다가 돌아갔습니다…이런 거 보면 정말..참..
엉엉 울었네요 진짜.....ㅜㅜㅜㅜㅜ의료원에서 일하면서 유공자 할아버지 한분을 자주 보는데 당뇨랑 합병증으로 휠체어 타고 찾아오세요 유공자 연금이 나와서 생활하는데 지장은 없으신데 그돈으로 가족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장학금으로 후원하신다고 들었어요 몇십년을 후원했고 후원받은 아이가 대학생이 되면 대학장학금으로 주고 그러는데 딱 한명, 남자분이 한명이 매년 명절에 내려와서 가족처럼 명절을 보내고 아빠라고 부른다고... 대부분 후원받은 아이들은 크면서 공부한다, 일한다 바쁘다고 연락을 안해서 멀어져가서 이제는 뭘하는지 모른다고 하지만 후원하는건 아깝지않다, 하시더라구요 제가 후원받은 아이들 너무 정없다, 그런데 돈쓰지말고 할아버지 먹고싶은거 드시고 쓰시라했는데... 생각해보면 젊은 청춘을 나라에, 이제는 나이드셔서 아이들을 위해 애쓰시는게 너무 멋있으셨습니다.
현이 작가가 우리들은 당신들에게 빚이 있다고 하자 단호하게 잘못된 말이라며 하신 웨버 대령의 말씀이 아직도 가슴 속에 와닿습니다 " 당신들은 빚이 없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자유를 찾아준 것 처럼 당신들도 자유가 없는 나라와 국민들에게 자유를 지키게 해 줄 의무가 있을 뿐이다 "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6:20 윌리엄 웨버 대령님께서 지난 2022년 4월 9일 매릴랜드 자택에서 별세하셨다고 합니다. 윌리엄 웨버 대령님이 생전에 아래의 말씀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한국사람들은 빚진 것은 하나도 없다. 미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은 자유를 지키고 전달하기 위함, 즉 자유인의 의무이지. 다만 우리가 너희에게 준 자유를 얻었으니 너희도 의무가 생긴거야. 북쪽에 있는 너희 동포들에게 자유를 전달하는 것, 그것이 너희들의 의무야. 그 의무를 다했으면 한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 for our country. REST IN PEACE
※꽤 시간이 흐른 이야기입니다.※ 하교하는 길이였습니다. 꽤 보았던 할아버지께서 오늘도 폐지를 주우시고 계시더라고요. 할아버지가 제쪽으로 오고 계셨는데 쓰고계시던 모자를 자세히 보니 국가유공자 모자시더라고요. 뒷모습만 보여 그저 남색의 모자인줄 알았는데 앞에서 보니 저희를 지켜주신 분이셨던거에요. 조금 시간이 흐르고 안보이시길래 물어보니 돌아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직 남아계시는 한국전쟁 참여자 분들을 위해서라도 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전용사이신분은 입원당시 노숙자이시고 다리도 망가져서 걷지도못하고 거기다 코로나걸려서 입원했다가 중환자실 가서 끝내.... 돌아가셨어요..... 전쟁물어보면 정말 눈이 또렸해지면서 평소에 말도 안하시는분이 정말 말많이해주셨는데.. 그분도 너무 힘들게 사는거 같지 않아요라고 물었을때, 대답하신 말씀이 난 오히려 고맙다고 후에 세대들이 나라의 평화유지해주고 잘사는 나라 만들어줘서... 진짜 보훈처는 이분들한테 매일 찾아가면서 어려운거 해결해주고 최고의 대우해주면서 마지막 가는길 웃으면서 가실수 있게 해드려라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는 남의 나라에 와서 목숨을 걸었었던 저 분들의 대부분이 그 당시 10대 후반, 20대 초반이었다고 합니다. 당신과 내가 그 나이 때 무엇을 했던가를 생각해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16개국의 전투 참전국 용사들, 6개국의 의료지원 참전국 군인들,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싸웠던 우리 아버지,할아버지들... 그들은 꼰대가 아니라, 영웅들입니다. 사진가 라미 작가님, 그대 역시....
외할머니 사시는 아파트에 유공자 할아버지가 계시는데 모두 유공자인지 모르시더라구요 모자랑 조끼를 입고 다니시는 모습에 자부심이 느껴지셔서 언제나 시선이 그 할아버지께 가는데 인사 한 번 못해드린게 한이네요ㅜㅜ 이번 연휴에 가서 마주치게 된다면 꼭 감사하다고 인사해 드리고 싶어요
방송출연을 많이 시켜주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있을까요 이런 일은 나라가 응당해야하는 일인데 불구하고 정말 라미 작가님 최고 멋지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보는 내내 얼마나 감동의 눈물이 나는지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는 정말 저분들에게 빚 진 자들입니다. 또한 저분들의 사랑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없는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라미작가님을 방송 출연료도 많이 드리고 방송출연을 많이시켜주세요 그것이라도 하셔야합니다 책이 있군요 저도 책을 구매하겠습니다. 가내수공업 도와 드릴 수 있습니다. 이런 좋은 영상을 학교아이들에게 가르치겠습니다. 널리 알리겠습니다. 묵묵히 진정성을 가지고 해주셔서 너무도 감사합니다. 라미 작가님 정말 멋지세요 화이팅!! 가내수공업하실때 꼭 문자 주세요 도와 드리고 싶어요 그것이라도 .
우리 할머니가 생전에 몇번 얘기하신 말씀중에 할아버지도 전쟁중에 집에 동기 한분이랑 찾아와서 온몸에 피투성이인 상태에서 대문앞에서 마주하고선 꼭 살아서 돌아올테니 여기 꼭 있으라고 하고 다행히 전쟁끝나고 잘 돌아오셨다고 할머니가 항상 이 말씀 하실때면 웃으시면서 자랑스러워 하시는 듯한 말투로 얘기하셨었는데 제가 지금 30인데 지금 살아계셨으면 할아버지께 진심으로 존경의 의미로 술한잔 따라드리고 싶네요.. 어릴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제 생각,마음으로는 이미 할머니 할아버지께 술한잔 따라드리면서 할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ㅎㅎ..
지나가다 우연히 영상을 보게 된 19살 수험생입니다 방금까진 10년여동안 해오던 공부가 왜 이렇게 싫었는지 저 사진작가님을 보고 저도 언젠가 저런 멋진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일이 무슨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전까지 그 일을 할 수있게 열심히 발판을 마련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부터 다시 공부 시작하겠습니다 전국에 계신 수험생 여러분들 다들 화이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