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구대성 #한화이글스 #양준혁 #박재홍 00:00 빵카페 00:31 빙그레 입단 거절 한양대 선택 03:21 한양대 좌대성 우민태 09:27 국제대회 완봉승 2화 완투 1회 11:12 구대성 피셜 당시 대표팀 최고의 선수 13:07 이글스 입단 어깨 부상 16:22 1996년 MVP 구대성
지나가는 롯데팬 입니다 96년의 형님은 정말 찬란했었던 기억이... 일간지 스포츠 3사 신문 500원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1면 장식 엄청했었던 형님. 그냥 만찢남^^"" 150키로 넘는 강속구 마무리 투수 거기다 제구력까지 구대성 송진우 정민철 3명 보는 재미가 쏠쏠했죠 사직구장 왔을때 싸인해주신거 아직도 가지고 있음❤❤❤사랑합니다
관리 잘 받고 했으면 가장 잘했을 선수가 구대성 선수임. 투수로서의 타고난 어깨나 투구폼, 담대한 성격 등등. 지금까지 40년이상 야구보면서 메이저리그에서 통할만한 투수로 구대성 선수 이상가는 투수가 없었음. 좌완의 이점도 있어서 혹사안받고 제 때 메이저리그 갔으면 가장 뛰어난 성적 거뒀지 않았을까 싶음.
한시즌 미친듯이 굴리고 그걸 또 잘버티고 잘던지고 다음시즌 역시나 후유증으로 아프고 근데 또 괜찮게 던지고 좀 덜 던져서 안아프니 담시즌 또 날라다니고... 빙그레때부터 지금 한화까지 쭉 팬인사람으로서 투수는 역시 구대성님이 제일 에이스 라고 봅니다.. 가장 그립고 가장 안타깝기도 하고 항상.보고싶은 선수.참 신기한게게 아파도 잘던짐... 연구대상임..
그당시 좌완투수가 156킬로를 던진다는 자체가 참 대단한게 140킬로 후반만 던져도 광속구 듣던 시절이었는데 아마 그때 좌완 최고구속으로 알고있어요 물론 대학때 너무 많이 던져서 프로에서는 그때의 구속을 잃어 버렸지만 투구폼 변화로 좌타자들에겐 거의 지옥이었죠 공이 어디서 날라오는지 보이질 않으니..ㅎ
구새성 진짜 진솔하네.. 당시 스포스 신문을 삼사를 다 사서 읽어보던 내 기억으로도.. 1. 95년도에도 신문 인터뷰에 내가 노리는건 탈삼진왕이다 했었음.. 결국 못했지만.. 2. 96년도 선발 2게임중 하나가 주형광과 다승왕 경쟁때문에 막판에 오비전에 나왔었음.. 14k 1실점 완투승.. 주형광이 더 등판하지 않자.. 진짜 셨던거로 기억.. 3. 96년 준플에 현대랑 한화랑 붙었는데 당시 박재홍에게 포볼 주면서 밀리면서 2차전 패전투수 되고 짐.. 다 사실.. 그대로 인정.. 멋진 남자
아버지가 한화에 다니셨는데 빙그래시절 엄마가 입고 가래서 빙그래 아이들 용품 검은잠바 입고 초등학교 다니는게 그렇게 창피했는데 그런내가 고딩때 친구들이랑 야자 재끼고 잠실에서 정규시즌 응원했던 99년도를 잊지못해. 형이랑 고등학교 동기인 과외선생님이 있었는데 형은 그냥 야구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더라. 그 때 형이랑 진우형 민철이형 친필 사인구 갖고 있는데.. 유튜브가 참 좋다. 형어린시절도 알게 되고 ㅠ 40대 중반이 되서도 그때 그시절, 생각해보면 가슴이 뜨거워지네! 나도 한화 다니다 지금은 머나먼 나라에 있지만 형 뭐하는지 지금도 찾아 본다요^^
유명 선수의 끼워팔기 식으로 대학에 들어간 선수는 자기 등록금을 다 내야 함은 물론, 본인의 실력 외적인 요인으로 대학에 입학하고 대학 졸업장 간판을 따게 된 대가로 등록금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됨. 유명 선수에 껴서 들어가는 선수가 그걸 못 맞춰줘서 유명 선수의 대학 입학이 어그러져 유명 선수가 그냥 프로에 입단하는 경우도 있고...
96년에 대활약을 하면서 이전 시즌 달라진 것이 발에 티눈이 있었는데 그거 제거해서 디딤발이 편해져서 잘 던지는 거라고 이야기 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 인터뷰 중에 그 이야기는 안나오네요. 95년에 패가 많았는데.... 96년에 그런 레전드 시즌을 보여줄지 몰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