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당나라가 망해가고 신라가 후삼국시대에 접어들었을 때도 해동성국으로 건재했었음. 멸망하기 2년 전에는 거란의 요주에 선빵 날린 적도 있었음. 그러니 발해가 망한 게 ㄹㅇ 허무하다고 할 수밖에. 고구려 망했을 때처럼 지배층의 내분이 아니고서는 부여성이 한방에 뚫리고 상경까지 하이패스가 만들어졌을 리 없다고 봐야 함.
하지만 알아야할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10대 선왕은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의 후손이었습니다. 갑자기 왕계가 방계로 바뀐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면? 어떤 왕위 다툼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 대동강변의 나라가 신라에 투항을 하는 일이 12대 왕 정도부터 나타나게 됩니다. 그 지배층의 내분은 생각했던것보다 더 이른 10대 선왕 정도 이후 부터 보는게 맞겠죠
@@박명수-t5e 맞는 타당한 의견과뜻을 존중합니다 아마 가장높은 타당성 이 있기에 물론 타임머신이 없기에 백문이 불여일견으로 직접 보지를 못해서 모르지만 아마 맞을것 같습니다 맞는말씀을 하시는데 거기다대고 ㄴㄴ 반박의견과 타당한 논리성을 뒷받침해서 제기하지 못하면 님이 명수님이 맞는거 같아요 당연히 뚜들겨 맞는거 아니고 의견이 맞는거 같아요 박식 하십니다 차근차근 타당한 확률높은 논리성을 뒷받침해서 의견을 제시하시니 꼼짝을 못하겠군요 역사에 참 깊이가 있으십니다 잘 배웠습니다
일단 거란이 전통적인 루트인 요동이 아닌 부여쪽으로 침공루트를 정한걸 보면 아마 발해 요동쪽에 발해의 대군이 집중되있었고 그래서 거란이 요동을 피해 상대적으로 병력 집중이 덜된 발해의 부여부로 정해서 갔을 가능성도 큼 거란침공 2년전까지 요동을 두고 치열하게 대립하고 싸웠기에 발해입장에서 요동을지키기위해 요동쪽에 병력을 집중했을 것이고 거란은 그 점을 노려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여부쪽으로 노리고 바로 상경쪽으로 갔을 가능성도 있음
제가 구독하고 있는 채널중에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채널 .. 제 아이들에게 역사인식과 한국에 대해 알려줄때 많이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발해가 위대하지만 기록이 많지 않은건 정말 아쉽네요.. 역사는 승자의기록이니, 요나라에 의해 멸망 된것도 다른 의미가 또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요..
게다가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수심이 깊은 강들도 많아서 이걸 이용해서 천연요세를 구축하기에도 좋았어요 수나라나 애를 먹었고 당나라도 애를 먹어서 이점 때문에 보급이나 고구려 여러차례 침공에 실패했던것도 이러한점 때문이죠 신라하고 협공이 가능해지면서 이러한 방어선을 무너트리는게 가능해지고 게다가 보급문제도 해결되서 고구려를 멸망시킨거죠
제 생각은 지금처럼 과학이 발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화산 폭팔 전조현상으로 인해. 이제 발해는 끝이난나는 세기말현상처럼, 지배층이 혼란과 타락으로 인해 당시 거란은 새로운 땅의 주인이라는 신앙이란게 생겨서. 자연스레 내,외부적으로 무너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공포는 조금씩 마음쏙에서 커지니깐요
발해가 3대 문왕 이후 6명의 왕이 교체가 되었다는 기록을 보면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지배권 싸움으로 죽었을 수도 있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통치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10대 선왕이 요동을 정벌한 것도 단합을 위해서 일수도 있고 대인선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거기다가 대인선 때는 백두산 대폭발 징후가 있었을 것이고 그 당시에는 이런 현상은 하늘이 노했다고 생각 것이니 이 때문에 요동 정벌로도 단합을 하려 했지만 단합이 아닌 배신의 용기를 줬거나 오랜 갈등 중에 단합이 깨졌을지도 모릅니다 3만군을 이 끌고 갔던 제상?이란 자가 후에 동란국을 세우는 걸 봐서는 권력 욕이 심했던 인물인 것 같습니다
벨렉계 농경유대민족이 동북아로 이주해서 초기에는 비옥한 농경지[심양~벧산~ 평양]에서 발상했죠. 3조선+예맥+일본+서국+부여 이렇게 초창기에는 농경생활 이 중심이다가 봉건영주제의 발전으로 시베리아까지 영토가 확장되면서 그 지역의 기후상 목축생활을 하면서도 문명인의 기치는 계속 이어져서 그 문명을 후세에 전하고 있습니다. 동북아에 1천여년 먼저선착했던 욕단계 흉노(몽골)족이 우리[중국 원주민은 *객가*라 칭함]가 동방에 후착했을 때에도 국가체제를 갖추지 못했고 목축생활도 재래 식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을 보더라도 문명의 우리민족은 시베 리아에 살아도 문명인이었죠. 감사합니다.
발해 멸망에 대해 여전히 많은 의문점이 풀리지 않고 있지만, 발해가 급작스럽게 망조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거 같습니다. 거란의 침입이 결정적인 사건(고려 태조가 '우리와 같은 민족의 국가를 멸망시킨 야만족' 이라 부르며 화친 맺기를 거부하고 거란이 선물로 보내온 낙타를 다리 밑에 묶어 놓고 굶겨 죽였다 하죠)이긴 하겠으나, 거란이 발해를 침입해 갔을때 '많은 수의 발해인들이 상복을 입고 저항없이 스스로 나와서 항복했다' 는 역사 기록이 남아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규모 자연재해로 인해 발해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을 단편적으로 말해주는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백두산의 화산폭발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어찌되었든 외부적인 요인이 아닌, 내부적 요인으로 발해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 아니었겠는가 생각됩니다. 어느 학자의 말에 의하면 10세기 지구에 소빙하기가 살짝 왔었다고 합니다. 발해 역시 이시기에 자연재해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결정적인 거란족의 침입으로 발해가 결국 멸망한게 되었던거 아닌가 합니다.
@@자이-e6c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말씀하신대로 사전징후의 지진이 27%밖에 안 되고, 실제로 화산이 폭발했던 고려도 그 폭발로 별다른 일이 없었던 것을 봐서는 가능성이 낮아 보이네요. 그래서 그 보다는 요사에 나오는 힘을 들이지 않고 발해를 멸망시켰다는 심상치 않은 기록과 노상이라고 기록된 발해의 이완용이 원인이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발해가 중간에 대조영 동생의 후손이 왕위를 차지하면서 계파가 완전히 둘로 나뉘어버리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서 발해 말기에 가서는 왕이 계속 바뀌었고 중앙 정권에서 밀려난 노상이 배신을 한 것 같아요. 내부 분열이 자연재해 보다도 무섭다는 교훈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치원이 발해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은 이유는 발해 3대왕인 대흠무가 일본에 보낸 서신을 보면 알 수 있을듯. 대흠무는 일본에 보낸 서신에 "고려국왕 대흠무가"라고 자신을 고려, 즉 고구려의 왕이라고 자창함. 신라 조정으로서는 고구려를 멸망 시켰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왕성만 고씨에서 대씨로 바뀌어 고구려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듯..
발해라는 나라는 고구려인부터 뿐만아니라 말갈이나 여진까지 시작부터가 다민족국가였던 나라였음 그런데 이런나라들의 제일문제점이 통합도 안될뿐더러 한번 통치 잘못하면 내부분열 시작되어서 돌이킬수 없는 상황까지와버림 아마 발해가 허무하게 무너진 이유도 이런이유때문이라 생각함 백두산 폭발은 그냥 발해멸망의 트러거중에 하나일꺼고
십년도 넘은거 같은데 KBS에서 방영했던 다큐멘터리에서도 다뤘던 내용이 생각나네요. 백두산 폭발이 멸망 원인 하나의 설로 제기했는데. 일본 훗카이도에서 백두산의 흙이 발견되었고 그만큼 백두산 대폭발이ㅡ있었다. 때문에 발해가 암청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라는 설이었죠. 미국도 참 대단하네요. 그걸 밝혀내다니
그렇다면 백제와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멸망원인은 배신이라고 봐야죠. 화상터져서 망했다면 요나라가 오히려 그 지역에 안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화산폭발 알려진거보다는 별로 위력 없는거 같은데, 세계 여러 곳에서 터진후 상황보면... 아직 제대로 임자 못만나서 그런걸수도 있지만.
그 거란장수 비석이 발견된거보니.. 이미 발해와 거란(요)는 요동에서 밀고밀리는 전투가 수십차례였다고 나왔음. 거란이 요동이 아니라 부여성쪽으로 직공해서 상경성이 함락.. 발해수도가 고구려처럼 평양같은 한반도 내부에 있었으면 한방에 안망했음. 솔직히 고구려가 연남생 이 배신자가 국내성등 40개성이 당에 항복해서 비교적 쉽게 망함.
별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하지 않았어도 . 몽골 , 여진에 의해 멸망했을겁니다. 사실상 발해는 극동지역의 척박한 땅이라 농경사회를 형성하기 매우 어려운 지형이였고 생각보다 산악지형이 많아 중국 , 한국 , 일본 역사처럼 왕과 지방이 연결되는 길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부족사회가 서로 고립되어 독자적인 노선이 많았을 겁니다. 물론 발해가 이런 여러 상황들을 극복하고 현대까지 발해라는 국가가 존속했다면 지금의 중국 동북공정과 같은 고구려 , 발해 역사를 두고 한국과 역사분쟁이 있었을것이고 발해 스스로 우리는 한반도와 다른민족 다른국가 다른체제다 라며 아마 한국와 외교적으로 일본보다 더 분쟁적인 관계가 지속되었을 겁니다.
황선생님 , 지도에 그려진 발해의 수도들을 보면 좁은 땅덩어리에 무슨 상경 중경 서경 동경 ~ 발해가 저리 작았다면 저게 무슨 수도를 저리 운용할까요 ? 발해는 주력이 말갈기병인데 말타고 가면 몇시간이면 가는 땅덩어리들에 서경 중경 ~ 발해땅을 저리 욱여 넣으니 저리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발해가 발해로 불리우려면 발해를 전부 차지하고 있어야 하는데 발해만 귀퉁이 조금만 차지하면 그게 발해인가요 ??? 발해의 시작은 산동반도에서 부터 발해만 끝까지 아닌가요 ???
지구과학적으로밝혀진 사실은 서기 900년대 백두산화산이 폭발했고. 이 화산폭발이 지난 2000년간 일어난 지구화산 폭발중 가장 컸다는것입니다,이폭발로인해 전지구적으로 극심한 기근이 들었다는것입니다. 최근 유럽에서 그당시 대기근의 원인을 규명하기위해 연구하다가 나온 결론입니다
그냥 발해 지배층만 쓸려나가서 멸망으로 보는거지만... 발해부흥운동이.....요나라 멸망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일어났다라는 기록과 금나라가 요나라 점령 후 발해인에 대해 민족복속 행위를 했던 점... 즉 조선시대 말기 조선왕가만 일본에 항복하고 민중은 일본에 대해 항복을 아니해서 독립운동이 미친듯이 일어난거 처럼...
그 먼 일본까지 화산재가 날릴정도로 대규모의 폭발이였다면 20,30년전인 발해존속시기에도 크고작은 움직임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고 그 근처에 있던 발해의 주요5경의 민심이 동요하고 그걸 타파해내려고 대인선이 요동을 공격하는 전쟁을 일으켜서 내부결속을 다지려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음 하지만 그걸론 부족해서 결국 결속되지 못했고 5경과 요동에 흩어져있던 군대를 모으기도전에 상경성이 포위되고 대인선이 가망이 없다고 판단해 항복하고 멸망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함
지금까지 대멸종이 5-6번 있었는데 앞으로 가장 높은 확률의 대멸종은 화산폭발임 앞에 대멸종중 가장 많은 생명체를 앗아간것도 화산폭발이고 99프로 이상 생명체가 사라졌다던데 아메리카 대륙에 화산지대가 있고 이제 화산 주기에 들어간다고함 주기가 얼마인 지 기억은 안나지만 천년인간 만년인가 그 안에는 무조건 터진다고 함....몇백년 몇십년 후에 터질 수도 있는거고
다른 얘긴인데, 발해의 중심 지역은 자체 생산과 소비가 되지 않는 지역이기 때문에 무역을 하든, 약탈을 하든 해야 하는 지역으로 만약 봉쇄가 되어버리면 경제가 무너지고, 백년도 안되어서 국력이 쇠약 해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 봅니다.그래서 중원을 차지해야 교역과 생산 허브를 차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성장을 유지해 갈 수 있다고 봅니다.역사는 성장을 멈추는 순간 망국의 길로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전부다 추측임
그런데 그 설이 나온 이후에 과학적 연구가 계속 진행되서 백두산 폭발은 발해가 멸망된 후에 발생했다더군요. 고려 역사서에도 946년에 개성 하늘에 어마어마한 천둥 소리가 들렸다는 일치하는 기록도 나오고요. 그냥 가장 유력한건 고조선, 고구려, 백제 등이 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내부분열과 그로 인해 발생한 배신이 컸던 것 같습니다. 요서에도 발해 내부의 배신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요.
손성태 교수님의 주장에 의하면 만주에 살던 발해인들이 동쪽으로 이주를 해서 아즈텍을 세웠다고 하고 아즈텍인의 언어와 문화 풍습이 우리의 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시 요동의 용한 무당이 동쪽으로 가면 비옥하고 농사하기 좋은 땅이 있다고 하여 춥지반도와 베링해를 거쳐 이주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거란족이 침공했을 때에도 싸울 사람이 없어서 수도까지 바로 진격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구당서와 신당서에 백제가 망하고 그 땅을 발해마한(말갈)과 신라가 나눠 가졌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지금 일본애들이 100년 전에 그려 놓은 가짜 국경선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불가하죠. 백제가 충청 전라도에 있었다고 한다면 경기도 일부와 충청도는 발해 땅이 되어야 하니까요. 어디 그 대단하신 강단사학이라는 사이비 종교를 맹신하는 사람들이 이 문장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국학연구원이라는 국가의 녹을 먹는 단체는 만주의 철령과 길림성의 공험진을 고려와 조선의 국경선이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쓰면 연구비를 몰수하겠다고 하는 이런 대단한 나라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