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평가받고 있는 조선왕세종의 재위 당시는 중국으로 보낸 성노예가 가장 많았던 시기였다. 공녀라고 부른다. 조선은 중국에 성노예를 주고 속국이 됨으로써 타국으로부터의 침략을 막고 있었다.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는 영은문이 한반도 성노예의 잔혹사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니까 닛신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기 때문에 조선은 영은문을 부수고 독립문을 세운 것이다. 세종은 한글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원래가 된 것은 몽골의 파스파 문자와 일본의 신대 문자이다. 특히 쓰시마에 전해지는 신대문자의 일종인 아비류 문자를 보면 한글과의 공통성은 분명하다.
으헝ㅠ 제 질문은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너무 재밌게 잘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오늘 영상 포인트는 "완전한 인간은 없다"인거 같아요! '세종은 위대한 군주이니 뭐든지 좋고, 잘했고, 완벽할거야!' 이거보다는 또 한명의 사람으로써 분명 시대적인 한계, 사람으로서의 한계가 있는 게 저는 더 인간미있다고 느끼는데 말이죵.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대에서 만큼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던건 분명하니 뭔가 개인적인 아쉬운 부분이나 맘에 안드는 부분이 있었다고 그거만 따져들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세종을 미워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오늘도 이렇게 재미난 내용들 강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가장 평가받고 있는 조선왕세종의 재위 당시는 중국으로 보낸 성노예가 가장 많았던 시기였다. 공녀라고 부른다. 조선은 중국에 성노예를 주고 속국이 됨으로써 타국으로부터의 침략을 막고 있었다.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는 영은문이 한반도 성노예의 잔혹사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니까 닛신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기 때문에 조선은 영은문을 부수고 독립문을 세운 것이다. 세종은 한글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원래가 된 것은 몽골의 파스파 문자와 일본의 신대 문자이다. 특히 쓰시마에 전해지는 신대문자의 일종인 아비류 문자를 보면 한글과의 공통성은 분명하다.
한국에서 가장 평가받고 있는 조선왕세종의 재위 당시는 중국으로 보낸 성노예가 가장 많았던 시기였다. 공녀라고 부른다. 조선은 중국에 성노예를 주고 속국이 됨으로써 타국으로부터의 침략을 막고 있었다.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는 영은문이 한반도 성노예의 잔혹사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니까 닛신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기 때문에 조선은 영은문을 부수고 독립문을 세운 것이다. 세종은 한글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원래가 된 것은 몽골의 파스파 문자와 일본의 신대 문자이다. 특히 쓰시마에 전해지는 신대문자의 일종인 아비류 문자를 보면 한글과의 공통성은 분명하다.
한국에서 가장 평가받고 있는 조선왕세종의 재위 당시는 중국으로 보낸 성노예가 가장 많았던 시기였다. 공녀라고 부른다. 조선은 중국에 성노예를 주고 속국이 됨으로써 타국으로부터의 침략을 막고 있었다.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는 영은문이 한반도 성노예의 잔혹사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니까 닛신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기 때문에 조선은 영은문을 부수고 독립문을 세운 것이다. 세종은 한글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원래가 된 것은 몽골의 파스파 문자와 일본의 신대 문자이다. 특히 쓰시마에 전해지는 신대문자의 일종인 아비류 문자를 보면 한글과의 공통성은 분명하다.
한국에서 가장 평가받고 있는 조선왕세종의 재위 당시는 중국으로 보낸 성노예가 가장 많았던 시기였다. 공녀라고 부른다. 조선은 중국에 성노예를 주고 속국이 됨으로써 타국으로부터의 침략을 막고 있었다.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는 영은문이 한반도 성노예의 잔혹사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니까 닛신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기 때문에 조선은 영은문을 부수고 독립문을 세운 것이다. 세종은 한글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원래가 된 것은 몽골의 파스파 문자와 일본의 신대 문자이다. 특히 쓰시마에 전해지는 신대문자의 일종인 아비류 문자를 보면 한글과의 공통성은 분명하다.
전 한글이 산유국 수준의 자산이라 생각을 합니다. 현재 위상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요? 땅도 적고 자원도 많지 않지만 인재가 많이 나오는 데에 언어는 참 중요하잖아요? 민족성을 오랫동안 가지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고요.(물론 혈통으론 아니라 생각하지만) 또 지금은 굉장히 다양해지고 디테일해졌고 그에 나오는 창의력도. 너무 국뽕인가? ㅋㅋ 우리나라 좋지 않은 면도 많겠지만 한글 하나만으로도 세종대왕은 성군 중에 성군이죠. 문종이 더 건강하셨으면 어땟을까? 너무 궁금함. 그리고 다른 역사 채널도 너무 좋지만 심쌤의 영상도 늘 만족하며 즐겁게 보고 갑니다. 오래오래 활동해주세요!!
누군가를 평가할 때 기준이 중요하죠. 기준이 없으니까 개인마다 평가가 다르고 말이 많아지죠. 흔히 표준화를 하는 것처럼 왕의 업적이나 인간등을 평가해서 말하려고 한다면 역사학자들이 표준과 기준을 만들어서 공유하면 됩니다. 그런 것을 하는 게 후대에게 더 바람직하죠. 마치 도량계 표준을 적립했듯이...
보통 "선하다(착하다)"할때 발음대로 적으면 "서나다" 이렇게 되는걸 말씀하신게 아닐까요? 한글자만 적을 땐 "선" 으로 발음되지만, "그 사람 참 선한 사람이야." 라고 쓰여진걸 읽으면 "그 사람 참 서난 사라미야." 이렇게 되니까요. 표의문자와는 다른, 표음문자긴 하지만 뜻을 그대로 나타내는 글이잖아요. 결국엔 수양대군이 주장한 발음대로 사용하다가, 일제강점기때 한글학자들이 한글을 재정립하고 맞춤법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세종께서 말씀하신대로 의미를 살렸다고 설명하시네요. 물론 심용환선생님의 의도와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냥 저는 이렇게 이해가 된거라^^;
표기법 같은 건 쓰임새의 영역이기에, 친히 창제인지 공동 창제인지를 논하는 만듦새와는 결이 다릅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인용하기도 하는데, Special thanks에 실을지언정 공저라고는 안 하잖아요? 쓰임새에 대해서는, 세종의 진짜 속내야 어쨌든간에, 훨씬 문자의 효용성 문제에 있어 고민이 깊었고 본질을 짚을 줄 알았다는 느낌입니다.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 때문에, 실제로는 중세국어에 대한 사전도 편찬되지 않았고, 해석 과정에서 너무 변화가 무쌍하다보니 의미 단위의 분절이 없었던 당시의 훈민정음 적용 문건으로 인해 불필요한 부분에서 유추해내야 하는 부분이 생겼다는 겁니다. 조선어학회의 말모이 사업이 원래는 창제에 이어서 이루어졌어야 했던 일이라는 거죠. 기껏해야 잠시 정리되었다가 사라진 《동국정운》이 그나마 언어 사전다운 사전인데, 그건 한자음을 나타내기 위한 표준 마련 수준이잖아요. 정작 우리말 전체에 대한 게 없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솔직히 조성 위치에 따른 표기는 '글자 획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라서 《동국정운》에 활용되었을 각종 성조 표기 쪽이 훗날 세조인 수양의 뜻을 실현시키기에 더 적합했다고 생각합니다. 노걸대나 역서 원본 강론 때나 적용시켜야 할 것을 전체 적용한 탓인 거죠.
두번째 아버지 태종은 이놈저놈 막 죽었는데 아들 세종은 그 누구도 죽이지않았다?맞는말 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였던 태종이 걸림돌이 될만한 인간들을 모조리 죽여버렸으니 세종은 죽일 사람이 없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더욱이 아버지가 이미 싹다 정리를 해놨으니까 세종은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덜쓰고 민본에만 집중 할수있었던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한글 창제에서 그걸 누가 만들었는가이지 오류수정 했다고 학자들이 한글을 같이 만들었다? 전 아니라고 생각함. 영화 감독이 시나리오 쓰고 촬영한 것을 가지고 편집자들이 편집 했다고 해도 그 영화는 감독이 만든거지 공동 제작이 아닌것처럼. 한글 모양을 만들고 체계를 잡은건 결국 세종대왕 혼자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