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er-cv4jf7xv8o(1) 신학은 잘만 공부하면, 성경의 이해와 설교에도 도움이 되죠. (2) 다만, 믿음의 기초가 견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신학적인 사상들을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배웠는지도 모르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죠. (3) 성도들을 나무라거나 일깨우기 이전에...대다수 목회자들이 먼저, 깨우치고, 변화되야함은 두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많은 신도들은 개인주의가 문제라고, 서로 권면하고 사랑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조건적인 권면과 사랑이 함께 갈 수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교회라는 곳이 참 힘듭니다. 겉으로는 서로를 정말 잘 이해하고 깊은 속마음까지 나눌 수 있는 곳인 척 합니다. 그런데 막상 설교에서는 순종을 안 하면 저주받는다는 내용을 합니다. 그런 설교를 듣고 살아가다보면, 순종해야 인생이 망하지 않는다는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에서 자꾸만 멀어집니다. 교제를 하러 가면 모든 교제에 다 참여해야 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교제에 적극적이지 않으면 믿음이 없고 연약한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그들은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고 바로 훅 들어와 제 생각을, 생활루틴을 좌지우지하려 합니다. 저는 개인주의적인 사람입니다. 남이 저에게 이래라저래라하는 걸 싫어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하나님을 믿고 싶고, 사랑하고 싶어서 교회를 나갑니다. 하지만 마음가짐에 대한 권면, 행위에 대한 권면을 듣다 보면 압박감에 점점 하나님과도, 교회와도 멀어지게 되는 걸 느낍니다. 타인의 성향, 상황을 존중하는 신도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결국 각자의 인생은 각자가 살아가는 거고, 그 안의 하나님의 역사를 타인이 설계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타인은 타인으로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했으면 좋겠어요. 조언과 권면의 탈을 쓴 과한 참견과 오지랖... 그게 가장 무례하다고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래서 혼자서 신앙생활 해요… 삶에서 하나님을 누리고 향기를 풍기면 되는 것이라 생각해서요. 같은 크리스찬들에겐 크리스찬이라 말하지 않아요. 괜히 교회 어디 다니냐 물어보고 안 다닌다하면 믿음 없는 사람 취급, 본인 교회로 강권…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어요. 이게 오히려 지혜로운 대처라 생각하고 삽니다.
21번 부활절은 왜 1월 17일(음력)인가 ? 오늘날 세계의 모든 목자들이 얼마나 무식하고 소경인가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왜냐하면 부활절 하나도 모르는 목자들에게 인도를 받으면 어떻게 도적같이 임하는 재림주를 맞이하여 구원을 받겠는가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레위기 23장5절 민수기 28장 16절을 보면 정월 14일은 여호와의 유월절이라 하였고 요한복음 19장14절을 보면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심판을 받을때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하였으니 유월절의 예비일은 유월절 전날인 13일을 말하는 것인데 이날 예수님이 제사장들에게 잡혀 심판을 받기 시작하여 14일 아침에 재판이 끝나고 14일 오후3시경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입니다.요한복음 18장27절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하였고 누가복음 23장44절을 보면 때가 제 육시쯤 되어 빛을 잃고 온 땅이 어두움이 임하여 제 9시까지 계속하며 이때 예수님이 운명 하시었다 하였으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날은 유월절인 정월 14일이고 이 날부터 3일에 다시 살아 나신다 하였으니 정월 14일에 3일을 더하면 정월 17일이 되므로 부활절은 정월 17일이 분명한 것입니다.그러므로 정월 17일을 부활절로 행사하지 아니하는 교파나 목자들은 전부 바알에게 분향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 돌리는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humblich (1)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 는 말과 (2) 부활절..등 행사로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뜻있는 일이죠. (3) "진리의 배타성" 이란, 기독교의 믿음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지요.....?! 분명히 "다른 주제" 를 혼동하거나, 섞어서 말하지않는것도...이해에 도움이되므로중요합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기 전, 교회 생활에 굉장히 열정적인 지인이 있었어요. 그분이 저에게 예수님을 전도하면서 했던 말이 '지금 힘든거 예수 안믿어서 그런거다, 결국 인생 망한다', '지금이 마지막 시대인데 예수님 안믿으면 지옥간다' 이런 말이었어요. 그 당시 저는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때라서 그런 말들이 무섭게 다가오더라요.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려고 애썼지만 당장에 믿음이 안생겨서 괴로운 시간을 보냈고, 이런 저를 악한 사람으로 취급해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다보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렇게 폭력적인 사람들 뿐이구나' 편견이 생겼고, 나중에는 '내가 이런 편견을 가지고 그런 말들에 괴로움을 느끼는 것은 내가 악하고 문제있는 사람이라서 그런거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면서 마음이 처참히 무너지더라구요. 그 당시의 상처가 너무 커서 지금도 남아있지만 차근차근 회복하고 있습니다.
이게 문화적 차이와 유교의 영향도 있는거 같아요. 나이나 직급이 낮은 사람에게 명령하는 그런 분위기가요.. 해외 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한인 교회랑 분위기가 다르더라구요. 옳은 말을 하더라도 상대에게 어떻게 들릴지를 배려하고 상대방의 결정에 간섭을 하지 않는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차갑기도 하고 절대 이상적이진 않지만 가끔은 배우게 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하는 맞는 말도 모지고 조급한 말투로 전달되어 큰 상처와 갈등을 일으키게 되는데 하물며 타인은 어떨까 생각하게 되네요
31:01 맞습니다 / 믿음은 선물입니다, 내가 원하고 졸라서 얻는게 아닌 상대가 선물로 주는 것입니다 / 그런데 교회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믿음이 생겼어? 은혜 받았어? 이 물음부터 예수님의 뜻과 반대로 갑니다 / 내 옆사람은 믿는다는데, 은혜받는다는데, 그때부터 단체주의에 물든 한국인은 가면을 씁니다 / 믿는 것처럼, 은혜 받은 것 처럼. / 가면을 밖에서는 벗습니다 여기서부터 이미 어긋났습니다
21번 부활절은 왜 1월 17일(음력)인가 ? 오늘날 세계의 모든 목자들이 얼마나 무식하고 소경인가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왜냐하면 부활절 하나도 모르는 목자들에게 인도를 받으면 어떻게 도적같이 임하는 재림주를 맞이하여 구원을 받겠는가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레위기 23장5절 민수기 28장 16절을 보면 정월 14일은 여호와의 유월절이라 하였고 요한복음 19장14절을 보면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심판을 받을때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하였으니 유월절의 예비일은 유월절 전날인 13일을 말하는 것인데 이날 예수님이 제사장들에게 잡혀 심판을 받기 시작하여 14일 아침에 재판이 끝나고 14일 오후3시경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입니다.요한복음 18장27절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하였고 누가복음 23장44절을 보면 때가 제 육시쯤 되어 빛을 잃고 온 땅이 어두움이 임하여 제 9시까지 계속하며 이때 예수님이 운명 하시었다 하였으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날은 유월절인 정월 14일이고 이 날부터 3일에 다시 살아 나신다 하였으니 정월 14일에 3일을 더하면 정월 17일이 되므로 부활절은 정월 17일이 분명한 것입니다.그러므로 정월 17일을 부활절로 행사하지 아니하는 교파나 목자들은 전부 바알에게 분향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 돌리는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이문제에 걱정이 많았는데 이렇게 잘 정리해주시고 지혜로운 관점을 내주시니, 너무 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일때, 자격없으나, 거저주신 은혜임을 기독교인들이 기억해야할 것 같아요. 그리고 예수님 만나기 전 우리도 믿지 않은 자 였음을 잊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소망하며 기도해야함을 느낍니다. 사실 같은 기독교인인데도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기독교인들 교회에서 많이 보고, 무례한 말들에 스트레스 진짜 많이 받았는데😅 그런사람은 기독교인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그런사람을 예수님이 만나주신 거더라고요. 의도가 어떻든 상처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던 사람도 예수님 만난 이야기와 말씀을 나누는 것을 들어보니, 예수님은 그사람에게 나와 동일하게 일하시고 계시더라고요. 그렇게 사랑하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ㅎ
자아 중심적인 유아적 신앙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단적인 예로, 구제를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가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대원칙인데 교회는 어쩌다 절기별로 이벤트성으로 벌이는 봉사에 나팔을 부는 것이 주업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인간과 사회를 같은 인간의 눈 내지는 예수님의 아가페적 사랑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천국 공로를 쌓기 위한 땔감 정도로 여깁니다.
유아적 신앙..... 꼭 비판적인 눈으로 보아야할까요?! 한 개인의 육의 성장이 신생아 - 유아기- 유년기- 청년기- 성인의 많은 단계를 거치듯이 영적인 성장도, 각 개인들의 영적인 상태나 의지와 노력에 이은 능력에 따라서 다르다고 보아야할터이죠. 단지, 교회들이 벌이고있는 "행사성 구제와 봉사"는 마땅히 비난의 대상으로 보여집니다. 구제는 "남는것이 아닌, 내가 쓸것을 나누는것임에도 말이죠....".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서 그 누구도 함부로 하나님의 뜻을 오도해 다른 사람을 인도하려 하지 마세요. 한두번 자신의 생각과 욕심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여 스스로 및 타인을 속이다보면 반드시 눈이 어두워져 영적 소경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엘리제사장, 말년의 다윗왕, 열왕기상 늙은 선지자) 자신이 듣지 않은 것을 들었는지 내 생각인지 그 배후는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은 성경 말씀 앞에, 때로는 지나가는 행인의 권면에 자신을 죽이고 재단하는 엄격한 양심이 필요합니다. 유교적 미신적인 집단주의 한국 교회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도자라면 그냥 “나는 모른다”로 일관하세요.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 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 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마 23:8-10)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 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좉 아 나느니라 (마 5:37) Let what you say be simply 'Yes' or No', anything more than this comes from evil.
와~ 드뎌 오늘 진심 cbs에 정기 후원 생각드네~ 대형교회 목사들 설교 틀어놓을때마다 후원해줄까 하다 말았는데… 이런 말씀을 대형교회목사들은 싫어하겠지… 전부 당신들의 기존 설교에 반하는 내용이니… 너무 감사한 말씀 전파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삶이 향기가 되어 내 신앙을 궁금해하게 만드는 이웃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교회 내에서도 온맘으로 사랑하도록 내가 좀 꺼림직 해 했던 분까지 주님의 형상으로 좀더 노력하겠습니다.
듣던 중 가장 속 시원한 강의였습니다. 저도 모태신앙이고, 형제 중에 목회자가 있고, 집안이 모이면 교단 하나는 됩니다. 그런데 저는 자꾸 가나안으로 나갑니다. 교수님 말씀처럼 많은 기독교인들은 무식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것을 믿음이라 생각합니다. 성경 외에 다른 책은 볼 필요가 없다니... 그 무지와 그 오만과 그 어리석음을 보며 나는 그들과 같은 무리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강해집니다
그 동안 머리 속에 맴돌던 질문들을 이해하기 쉽게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신교의 배타성에 대해서 힘들어 하며 어느 부분에서의 믿음이 성장하지 못했었는데 이제 기쁨으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질문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를 소개해주신 김학철 교수님 감사합니다.
너무나 적절해서 그간 있었던 의문들이 풀어졌어요. 감사합니다. 가까운 교인들과 주변의 기독교인들의 행동에서 느꼈던 불합리함에 대한 답답함이 해소되었어요. 저 역시 타인이 지옥 가지 않게 목숨을 구하기 위해라는 명목으로 무례함을 정당화하며 잘못 전달해서 관계마저 틀어진 일이 있었는데요.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씀에 회개합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하나님께서 맨날 죄를 잘 짓는 나에게 주시는사랑, 사랑 때문에 하시는 인내를 생각하면, 내가 남에게 뭐라 할 자격이 전혀 전혀 없는데 자꾸만 내가 스스로 의인인 마냥 남을 제단하게 될 때가 있네요. 사랑하기 위해 정말 애쓰고 힘쓰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겠습니다.
치즈를 알려주는 선교, 전도. 그런것이 아닙니다. 욕심이 적고 사랑이 많아 선한 삶을 사는 사람을 우리가 존경하고 배우려는 것 또한 한편으로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선교하는 것이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삶의 희망을 주고 돕고 그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며 그 사람에게 우리가 위로가 된다면 그것이 전도고 선교이고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복음은 슬퍼서 복음이 아니라 기뻐서 복음입니다. 상대를 돕고 삶의 희망을 주고 위로하며 상대와 친구가 됐을 때 기쁨이 오고 그 기쁨을 함께 느끼는 것이 복음을 전한 것이고 전도를 한것이고 선교를 한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전도요 선교요 복음전파 입니다. 그래야 기쁨이 느껴지는 것이고 기쁨이 느껴지지 않는 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사랑이 아니고 집착이지요. 불신지옥 예수천국이라고 떠드는것은 복음전파가 아니고 시끄럽게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고 무례한 것이고 예수 이름을 쓰레기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진리를 알려주신 분입니다. 진리인 사랑을 알려주시고 실천하신 예수님이 전지전능한 신이셔야지 사랑이 없는 그 어떤 무엇인가가 신이라면 우리는 신과 가까이 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 정말 맞습니다, 교수님! 이 시대에 가장 큰 전도는 우리 크리스챤들의 예수님 닮은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더욱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고 예수님 닮아가려고 노력하는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그런 모습을 통해 예수님이 전파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개신교인에대한 이분법적 구분은, 세상에 속하나, 세상적이 아니어야하는 신분적인 고민과 무관하지 않으며 (1) 한국의 문화 종교, 교육적 갈등은.......교회의 가치관과도 연결되며 (2) '내가 아니면'...이란 이기적인 목적 의식으로 동네마다, 빌딩마다 개척하는 목회자들이 '양적 성장 위주' 의 병폐에대한 원인 제공을 해왔고 (3) 개인의 영적 성숙과 교회의 정립......을 이루기도 전에, 전도와 선교를 강요하는 한국 교회들의 잘못된 신앙관에도 있습니다. 그 교인들....... 가르쳤나요?! "기독교적 가치관" 에대한 새로운 정립이 어느때 보다 필요합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그의 인격을 존중하여 정중히 존귀히 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신 우리 주님께서 나를 그렇게 대하셔서 구원해주셨고 그렇게 지금 그리고 늘 우리와 동행하시머 인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김학철 교수님 그리고 모든 형제자매 여러분❤^^
정말 꼭 추천해주고 싶은 주제이고 좋은 내용입니다 교수님 말미에 교수님 표현과 똑같아요. 마치 화학반응의 촉매와 같은 역할이죠. 촉매가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이 없다면 화학반응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근데 주변에 보면 촉매가 마치 화학반응의 당사자인 것 마냥 주제파악도 못하고 날뛰니 무례할 수 밖에요
모태신앙인으로서 입에 쑤셔넣는 것과 소개하는 것은 다르다는 말씀이 피부에 와닿아요. 저는 30년 가까이 교회를 출석했지만 제가 진리안에 사는 것 같지 않아요. 아직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이 먼나라 이웃나라 얘기 같거든요. 어릴때야 친구들 만나러 놀러 다녔지만 클수록 교회 출석, 교회 내 봉사 등을 부모님으로부터 강요당하고 불응하려고 하면 경제권을 쥐고 흔드는 부모님의 모습 때문에 학을 다 뗐습니다. 어릴때야 소개해 줄 수 있죠. 하지만 자녀가 다 커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자녀의 뜻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이 하신 이런 비슷한 말씀을 성도들에게 투박하나마 얘기하면 저를 이상하게 보고 신앙이 없고 변질된 사람으로 보는 교인이 너무 많아서 교인들과 소통할수가 없어서 슬프네요ㅠ 지금도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 달리고 있는 댓글을 보면 참 답답합니다. 무례한 교인들 너무 많습니다.저도 예전에 무식하고 잘못된 양육으로 인해 그런 잘못된 신앙생활 했었구요
예수님도 죄인과 세리들의 친구라고 (아마 바리새인들에게) 일컬어졌다고 성경에 나오는데 우리가 뭐라고 세상에 배타적이고 도덕적 우월감을 갖는지 부끄럽네요.. 교회라는 집단은 사실 예수님을 따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바리새파를 따르는가봐요. 저도 그런 교회를 숨막혀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들이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스스로가 혐오스러우면서도 잘 바뀌지 않네요. 올해는 한국 교회에 정말 예수님의 사랑이 충만하게 넘치는 한해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과학을 성경으로 뛰어 넘으려 한다는건 굉장히 깊은 대화가 필요해 보이는 주제이네요.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조사하고 탐구하다가, 과학적 사실과 매칭되는 사실도 있고, 지리적 사실도 기록되어 있으니까요. 그리고, 무례하다고 정의되는 기독교인들의 행동을 핍박으로 생각한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지금의 기독교의 핍박은 그럼 어떤 행태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전도하시는 분들 스타벅스 커피 일회용 잔에 한가득 사서 마시며, 노방전도가 매주 지나친 이웃 교회가 있는데 행인들 편히 가게 못하고 방해하는 노방전도가 불편합니다 이웃들이 불편하다고 맘카페에도 글이 많이 올라오는데 자기들만의기쁨인지, 정말 예수님 전하는건지. 교회다닌다고 하면 축복합니다 하는데 그말도 그냥 싫으네요 같은 크리스찬이지만 오히려 반감이 듭니다.
제가 아내랑 결혼하기전 큰처형부부와 식사를 갑자기 제사를 지내냐고 묻더군요 큰동서가 교회 장로였거든요 모신다고 했더니 "그 쓸데없는걸 왜 하냐"고 하더군요. 몇년후 부모님들께서 너무 연로하셔서 명절 차례를 없앴어요. 우리 형제들이 모두 먼 도시에 살고 있는데다 전 장애가 심해 현실적으로 힘드었습니다. 그 얘기를 들ㅇㅆ는지 또 큰 처형이 "잘 하셨네요 그런 쓸데없는건 없애는게 맞아요 잘 하셨어요" 어떻게 그런 무례하고 배타적일까요? 타 종교나 다른 집안의 문화와 종교의 가치는 인정할수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인간 영혼의 업그레이드라고 저는 종교의 목적과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목회를 하시다가 6.25발발로 교회를 지키겠다고 어린 자식들도 거느린 상태에서 피난길을 외면하고 있다가 우여곡절끝에 부산 피난길에 올랐으며 9.28서울 수복이되자~ 난 교회를 지키지못했어.. 하는 자책감에 많은 유학파 동기생들이 있는 서울로 돌아오는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사모와함께 야학을 가르치며 목회와 함께 사회계몽활동에 목숨걸었던)목사의 딸로 75,6년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김학철목사님의 강의적 말씀을 듣다보면 시절이 지나 2024년을 사는 사람으로써 많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배타적이지 안토록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회개하고 나 한사람이라도 고치겠습니다. *내가 젊다면 김학철목사님의 강의를 꼭 꼭 한 강좌라도 듣겠~ *^^ ! 맞습니다. 진리가 우리를 찾아와주었습니다. 육체는 비록 쇠하여졌을지라도 평화를 누리며 ~! 진리가 주는 자유를 진정으로 누리며~! 노방전도~* 아~그립습니다 ~* 우리의자녀들과 다음세대들이 시대적 흐름을 잘 읽어 꼭 필요한 주님의 참사람들로서 삶을 개척하며 미래를 열어가길 진심으로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어렵다 어렵다.. 말들을 하지만 진심은 속깊은곳에서 풍겨져 나오는 눈빛으로 나타나더라구요^^)
목사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도 구원받을 수 있고, 모든 종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진리를 찾아가는 형제자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진리가 찾아와주었다'는 표현도 독선이지 않을까요. 햇볕은 누구를 가려서 빛을 내려주지 않는데... 기독교가 가지는 배타성, 폭력성, 무례함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교회가 이런 변화를 할 수 있을까요? 어려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