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idle 좀만 관심 있고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국가의 압력과 예술의 부흥은 반비례한다구요. 중국이나 북한 같은 공산국가들은 압력 덕에 문화강국이겠네요? 그렇죠? ^^ 우리도 군부 독재 정권 때 가수들 이름 영어면 한글로 고치고 방송국은 통폐합 당하고 사전검열로 잘리고 칼질 당하고 좀만 의심스러우면 잡혀가는데다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어떤 투자도 못 받고 공연에도 못 서고 그랬는데 잘도, 존나게 예술이 꽃피우겠습니다. 술 마셨으면 쳐 들어가 자세요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인터뷰어가 재미있지는 않은데, 인터뷰 질문의 수준은 매우 깊고 날카롭네요. 저정도는 준비해야하는게 기본아닐까 싶습니다.샤론최는 정말 통역을 잘하는데, 더 마음에 드는건 결코 드러내지 않고 튀지않게 인터뷰를 뒷받침해준다는 거예요. 겸손하고 예의바르고, 통역자가 어느 지점에 있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통역자입니다. 심지어 의상까지도 올블랙으로~!!
90년대 20대들이 시네필 세대였죠 그때 예술영화 보는게 유행이았고 키노와 씨네21이 이때 생겼고 우린 영화비평이나 문화비평같은게 교양이라고 생각했을정도였음 부산에서도 씨네마테크가 생겼고 거기서 독립영화와 각국의 예술영화와 고전을 챙겨봤음 그러다 90년대종반쯤 부산에서 처음으로 국제영화제piff가 생겼다. 이때쯤 라쇼몽을 보고 일본을 뛰어넘어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음 내가 비로소 한국영화가 일본을 넘는 수준이 되었구나라고 생각한건 2000년대 초 이 두 영화때문인데,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과 허진호의 '8월의 크리스마스' 였음.
90년대 초중반에 동숭아트홀에서 유럽, 동구권영화, 제 3세계영화를 믾이 봤던 기억이 나네요. 이때 봉준호 감독의 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을 본기억도 있고요. 군부독재정권과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투쟁했던 세대들의 억눌렸던 자유에 대한 갈증과 새로운 문화에 대한 갈증이 90년대 민주화가 되면서 표출된게 영화가 아니었나 싶네요. 그때도 분위기가 영화는 종합예술이라면서 굉장히 중요시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전두환 정권의 우민화 3S(SEX, SCREEN, SPORTS)정책에 대한 반발과 재미는 있지만 스토리가 뻔했던 할리우드 영화, 홍콩영화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고 보여지고요. 그나저나 기생충을 보는 미국영화인의 시각을 어느정도는 알것 같은데 뭐 그들입장에서는 자기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단 한국이 이런영화도 만드네 하고 좀 신기한가 보네요. 20-30여년전 장이예모, 첸카이거로 대표되던 중국의 제5세대 영화를 보던 시각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당시 88학번은 전부 시네필이었다. 홍상수 영화 정도 봐야 교양인이고. 사당역에 시네마 클럽엔 20대들이 고다르에 열광했음. 심지어 불란서 문화원에 가서 희한한 영화봤음 당시 20대는 누구나 평론가 였음. 정성일 평론가빠도 있었으니. 문과생들은 다 영화광이자 동시레 데모꾼이었는데
돌이켜 보면, 지금의 문화적 뿌리는 90년대 한국 문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나의 커다란 용광로였죠. 미군을 통해 들어온 미국대중문화(AFKN, 이태원 문라이트 등)가 흥하면서 서울 시내 개봉관에선 공산권의 해금된 영화들이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가 최초 개봉되었고 씨네마테크들이 전국에 세워졌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열풍에... 예술영화 독립영화 눈 돌아가요. 동숭아트센터(나다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어찌되었나?) 그런 흐름이 2000년대 초반까지는 간 거 같았는데... 여튼 그건 한국스럽게 "압축적"이었어요. 진짜 개걸스러웠어요. 그동안 못 먹은 거 한번에 다 폭식했죠.
PPongPong 그때 제가 초딩이였는데 홍콩영화 열풍이 끝나고 이어서 타르코프스키 기억나요 연예가중계에 “희생” 이 나올 정도였으니 ㅋ 물론 대학로 중심이였고 오래가진 못 했지만... 이후에 키아로스타미도 기억나고...물론 그것도 주류는 아니였겠지만 확실히 요즘 분위기랑은 달랐던건 기억해요
봉준호감독 데뷔작'플란다즈의 개'에서, "교수될려면 1500만원.."라는 대사가 좀 웃기던데.. (그 영화에서 그 대사를 읊은 임상수감독은 나중에'돈의 맛'이라는 영화에"교수나부랭이.."어쩌구하는 대사를 집어넣은것보면.. 봉준호감독이나 임상수감독이나, 대학교수들한테 실망이 컷던듯(그 당시는,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책 좀 읽은 사람들한테 기대도 요즘보다 컷었겠지만
다들 국뽕에 취해 있는데 다양성영화가 아예 걸리지도 않고 단 몇주만에 대한민국인구의 1/4이 한영화만 보면서 천만영화고집하는 영화시장이 지속되는 한 한국영화는 쇠락한다.옆나라는 극장수요가 한국보다 적지만 그래도 극장에서 상영중인 작품이 350개나 된다.어벤져스 엔드게임조차도 390관이상은 극장확보가 안되는 나라다.서점으로 치면 여러분야의 다양한 소설이 팔리는게 일본이라면 한국엔 자잘한것은 아예 들이지도 않고 해리포터같은 인기소설만 판매하는 셈이다..봉준호가 천재라 그렇지 다양성영화의 기회도 수요도 무시하는 한국영화계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결국 영화는 감독이 만들기 때문이다.당장 눈앞의 이익만 쫒지말고 무엇이 장기적으로 한국영화계에 도움이 되는지..아님 관객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생각해야만 한다. 할리우드 20년전 히트작 몇개 베끼기 + 신파 + 독과점 = 천만영화.이 저주받은 방정식에서 좀 벗어나자.
상식적인 뇌와 정의감 있는 사람이면 다들 느꼈던 사회 부조리 중 하나죠. 그걸 어떻게 표현해 내느냐일 뿐. 즉, 사회학과가 아니라도 사회에 팽배한 온갖 불평등과 불합리와 모순에 대해선 자각하고 타파해보려 했고, 그게 다듬어지고 가장 뜨거울 시기가 대학시절인데 요즘 대학생들은 돈벌이에나 뜨거운 게 큰 차이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