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멘트
어른이 되는 게 설레기보다 두려운 아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보육원에 사는 아이들인데요.
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보육원을 나와 오롯이 혼자서 살아가야 합니다.
밥을 차리고 공과금을 내는 소소한 일들을 나 홀로 배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무엇보다 당장 지낼 집과 생활비를 마련하는 일이 가장 막막하다는데요.
해마다 2천 명이 넘는 아이들이 보호시설을 떠나지만 사회의 관심과 지원은 부족하기만 합니다.
보육원 퇴소자들의 힘겨운 홀로서기를 한 번 따라가 봤습니다.
리포트
그제 아침, 서울의 한 보육원입니다.
60명의 원생이 사는 보육원에서는 추석맞이가 한창인데요.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인 강우혁 군에게 이번 추석은 예년과 다릅니다.
인터뷰 강우혁(보육원 퇴소 예정자) : "아쉽지만 여기서 보내는 마지막 추석이라서요. 아쉬운 마음도 있고 더 있고 싶은데 더 있을 수 없으니까……."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이곳 보육원에서 자란 우혁이는 5개월 뒤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나면 보육원을 나가 홀로서기를 해야만 합니다.
의식주는 물론, 모든 것을 혼자 꾸려나가야만 하는 삶.
퇴소 날짜가 다가올수록 우혁이는 성인이 된다는 설렘보다 걱정이 앞섭니다.
인터뷰 강우혁(보육원 퇴소 예정자) : "챙겨주는 사람도 없고 스스로 다 해야 하니까……. 나가면 진짜 어려울 텐데 난 잘해낼 수 있을까, 잘 견딜 수 있을까……."
가장 걱정되는 건 역시 당장 살 수 있는 집입니다.
서울의 경우 자립정착금으로 5백만 원이 지원되긴 하지만 그 돈으론 혼자 지낼 방 한 칸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녹취 강우혁(보육원 퇴소 예정자) : "500만 원으로는 요즘 어림없어서요. 돈 없이 나가면 힘들 테니까 그래서 최대한 빨리 취업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어렵사리 지낼 곳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아이들의 걱정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앞으로 보호자 없이 모든 걸 혼자 해결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 역시 아이들을 힘들게 합니다.
대구에 있는 보육원에 사는 현정 양은 퇴소를 앞두고 자립 체험을 통해 그 부담감을 조금이나마 이겨내 보려고 노력 중인데요.
녹취 배현정(보육원 퇴소 예정자) : "혼자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또 장도 보고. 일상생활 그런 기술도 익히면서 경제 관련해서도 돈을 일주일 단위로 6만 원을 주고 이렇게 돈을 한번 써보라고 주시면 그 돈 안에서도 경제적으로 그런 기술을 익히고……."
단체생활에 길든 보육원생들에게는 스스로 밥 한 끼 차려 먹고, 공과금을 내고 하는 것들이 모두 연습이 필요한 일인 겁니다.
하지만 혼자 사는 데 필요한 기술은 배워도 외로움을 이겨낼 방법은 스스로 터득해야만 합니다.
녹취 배현정(보육원 퇴소 예정자) : "안 아픈 게 제일 최고라고 아프면 괜히 마음 약해져서 내가 왜 이렇게 있나 싶을 정도로 되게 우울해진다고 하더라고요. 또 이제 주변에 사람이 없으니까 서운하거나 그런 게 되게 많을 거라고."
보호시설에서 사는 아이들은 전국적으로 3만 2천여 명.
그중 만 18세가 돼 보육시설을 나와 자립해야 하는 아이들은 해마다 2천 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가 퇴소 전까지 일자리를 찾기 힘든 데다 정부가 주는 자립정착금으로는 방 구하기는커녕, 기본 생활비로도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녹취 이00 (보육원 퇴소자/음성변조) : "집을 구한다 해도 보증금을 넣고 월세를 한 몇 달 있으면 끝나는 문제고요. 그전에 나는 직업을 구해서 다시 돈을 벌어야 하고 이런 것들이 되게 꼬여있으니까 엄청 스트레스를 받긴 받았어요."
올해 초, 홀로서기를 시작한 희지 씨 역시 자립을 위해 고군분투 중입니다.
녹취 전희지(보육원 퇴소자) : "제가 직접 겪으니까 살 곳이 없다는 거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심하더라고요. 막막하고요. 살 곳이 없다는 건 ‘살 수 없다’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퇴소 후 처음 며칠은 모텔에서, 그 뒤로는 아는 선배가 사는 기숙사에서 얹혀 지내기도 했던 희지
28 июл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