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보 포수를 떠올릴때 반드시 세 손가락 안에 꼽힐 레전드 장채근 감독을 모셨습니다. 홍익대를 맡아 대학야구의 부흥을 이끌고 있는 장 감독의 추억과 현재의 고민, 미래의 비전을 들어봤습니다. 내 인생의 길잡이 선동열 선수 생명 건(?) 코끼리 감독과의 담판 송진우의 퍼펙트 행진을 깨던 순간 장채근의 '포수론
광주 양림동이 낳은 최고의 스타ㅋㅋ 중학교때 저녁에 집에 가는데 장채근형님이 한잔하고 내앞에 가는데 술냄새 뒤짐ㅋㅋ 근데 담날 경기 잘만하드라 한국시리즈에서 빙그레 박살내고 얼마안되서 자기집 앞에서 한희민선수랑 세차하면서 동네꼬마들한테 싸인도 해주고ㅋㅋ 재밌었는데 가까운데 유명한 사람산다고 좋아하기도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노지심... ㅋㅋ 투수를 가장 편하게 해주던 포수는 단연 장채근. ㅋㅋㅋ 체구가 커서 투수들이 좋아했고 상대 투수는 타석에 선 거구거포에 움찔... 역대 포수 톱 10 중 한 분이자 해태 타이거스를 철벽 마운드로 만든 1등 공신... 해태 우승의 대부분이 장채근의 미트질과 무관치 않다는 거... 선동렬 조계현 문희수 김정수 신동수 이강철 차동철 송유석 등등
선뚱이 장채근을 좋아했던 이유가 표적판이 넓어서 공이 와일드피치나 패스트볼 일어날 걱정이 도저히 안 들었다카더라고...그리고 장채근 2루견제때 덩치크고 발 느린 선수들은 일부러 살살 견제했다카더라고...이유인 즉슨 같이 뚱뚱하고 발느린 사람들끼리 돕고 살아야지 않냐카더라고...
빙그레 팬이었지만 진짜.. ㅋㅋ 무시무시한 검빨유니폼에 하일성위원이 항상 노지심 노지심하던 장채근 포수.. 지금은 감독님. ㅎㅎ 참 만화속의 백두산 이미지랄까..외인구단의 풍채좋은 포수 거기에 심심하면 홈런도 종종 날리고 참 선동열선수도 감당안되는데 거기에 장채근 포수.. 휴 그때 정말 미웟습니다. ㅎㅎ그리고 정말 솔직히 말씀해주시는군요 맞습니다 멤버로는 다들 해태만 기억하지만 전력이 빙그레가 정말 좋았어요 딱하나 고기도 먹어본사람이먹는다고 뭐랄까 프로 도박사의 포커페이스처럼 숨죽이고 승부사처럼 기다리고 대담하게 기회를 잡고 뒤집는게 딱 해태선수들이 강했죠..빙그레는 노력파에 순둥이 느낌. 아쉽지만 추억입니다 ㅎㅎ 그리고 개인적으로 만일 쌍방울선수들까지 해태고 갔음 어떨까 가끔 상상했습니다 김기태까지 해태라인업에 들어갔으면? 끔찍 거기에 메이저 광주일고 3인방까지 해태였다면? 호남야구가 더 호령했겠죠.. 타팀팬이지만 정말 야구 잘하는 지역임. 참 강정호도 있군요.. 대단함.
예전에는 다른 지역 프로야구단이 대구 원정 오면 다 수성관광호텔에서 묵었죠. 호텔 앞에 수성못 있고 못 밑은 논이고 둑에는 포장마차 쭉 늘어서 불야성을 이뤘죠. 예전에는 국민학교 6학년도 수요일은 4교시 수업만해서 수성관광호텔 가서 야구선수들 싸인 많이 받았죠. 전두환 대통령 앞산 대덕식당 선지국밥 먹고 수성관광호텔 갈 때와 84년 LA올림픽 메달 리스트들 카퍼레이드로 수성관광호텔 갈 때 통장님이 할당 정해 환영깃발 흔들라고해서 흔든 기억나네요. 84~85년까지는 수성못에 얼음이 얼어 스케이트 타러 갔는데 이제는 아예 얼지 않으니 온난화가 심하네요. 빙그레 한희민 투수와 대학동기 배터리로 엄청 절친이죠. 91년 한일 슈퍼게임에서 이만수 선수 제치고 주전포수로 뛰었죠. 후루타 선수도 안경 쓴다고 프로가 안 받아줘서 88년 토요타자동차야구부에서 뛰면서 올림픽 은메달 따고 89년 야쿠르트에 입단했으나 당시 명포수 출신 노무라 감독이 뽑지말라 했으나 팀에서 뽑았죠. 하지만 끝내 91년 타격왕과 2006~07년까지 감독 겸 선수하다 원클럽 멤버로 은퇴했죠. 노무라 감독도 난카이에서 포수 타격왕에 선수 겸 감독했죠.
장채근 1,2년차 포수 수비는 " 프로 선수 맞나?" 라고 할 정도로 미흡. 특히 주전 포수가 타이거즈 역사상 최고 포수로 꼽히던 재일동포 김무종이 여서 더욱 더 비교 돼. 김무종이 점차 손 부상으로 고생하자 대체자로 국대 포수 장호익을 생각. 그러나 조계현과 함께 88올림픽 유보 선수로 묶이며 입단이 좌절. 어쩔 수 없이 장채근을 대체자로. 장채근은 마지막 기회로 보며 비장의 각오로 임하며 활약. 주전으로 도약. 89,90년 볼배합, 주자 견제 동작에서 지적 받아. 90년 강력한 경쟁자인 정회열의 등장 (장호익은 엘지로 트레이드) 두 번째 위기 맞아 투혼을 발휘하며 91,92년 공수에서 최고의 활약. 94년 잔부상으로 고전하던중 쌍방울로 트레이드(최해식+ 2차지명 1지명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