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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서울 구의동에서 동생이랑 함께 자전거 타며 동네 모든 공터들을 뒹굴던 친구였습니다. 아직도 로버트 어머니 얼굴이 기억이나고요. 서로 집을 왕래할정도로 가까웠던 사이였습니다. 그 당시에도 한국말을 어찌나 잘하였는지.. 어느날 갑자기 이사간다는 말에 어린 마음에 서로 많이 서운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캐나다에 잠시 돌아갔다가 부산인가로 다시 돌아올거라며.. 현재 저도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하고있습니다. 예전 얼굴 그대로 장난기 많은 모습들이 아직도 보여줘 쉽게 알아볼수있었습니다. "로한아 반갑다. 나 진세야. 기억하니?"(Nice to meet you Rohan. I am Jinse. Do you remember?")ㅎㅎ
1982년에는 두발자율화, 1983년에는 교복자율화가 실시되었습니다. 전두환 재임기간 : 1980년 8월 27일-1988년 2월 24일 일부 자유를 제한한 건 북한 추종하는 것들 때문이었죠. 문재인이 똑같은 짓거리 하고 있고요. 80년대 학생들의 스타일 엿보기 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Z2S_ccyOOn0.html
서울 사투리라는 건 없고 그냥 그 시대에 유행하던 말투 억양이에요;; 전원일기 옛날꺼 보시면 그런 말투 안 쓰는걸 볼 수 있어요; 게스트들은 가끔 쓰는 사람 나옴. 지금 mz말투니 하는 것처럼 잠시 유행하던 말투고 모두가 쓰지 않았어요. 부모님한테 물어봐도 알 수 있는걸 왜 다들 서울사투리 타령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Chloe25506 서울 사투리라고 하는 말이 없는건 동감. 왜냐면 서울말은 사투리가 아니라 언제나 표준어라고 하는 것이 옳음. 그리고 저 말투가 그 시대 유행하던 말투와 억양이란 건 틀린 말임. 그 세대가 쓰던 특정한 유행어가 아니라 저 말투는 당시 전형적인 서울말임. 70년대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와서 서울말과 사투리들이 섞여버린거고 그게 변형이 되어서 오늘날 서울말이 된 것임. 당시 맞춤법만 봐도 오늘날과 다른 것을 알 수 있음.
제 국민학교 동창같은데..저도 70년대 한양국민학교 다녔구요 그 때 캐나다에서 온 서양인 남매들이 다녔지요...되게 반갑네요.. 저 친구인지 동생인지 확실치는 않은데 우리들이 짓굿진 않게 재밌게 많이 놀렸었는데...그 친구 사과를 엄청 좋아했던거 같던데 거의 매일 학교에 사과를 가져와 먹었던거 같아요. 보고 싶네요...
내년에 한국에 와서 1년 살겠다고 하니 동창들 모여서 만나면 재밌겠네요.. 근데 한국말을 요즘 서울사람들보다 더 원래의 서울 억양을 쓰는 거 같아 듣기 좋습니다. 원래 서울말은 저렇게 예의바르게 끝에 꼭 "~요"를 붙이고 그랬죠. 요즘은 전라도것들때문에 전부 전라도 억양으로 바뀌었죠.
저분 부모님도 대단하시네요 외국인 학교에 보낼 수도 있었을텐데 일반 학교에서 한국인과 같이 다니게 하셨다니 대단하신 분이시네요 4살때부터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니셨다면 유년시절 추억이 많이 있으시겠네요ㅎ 그시절은 친구들과 놀던 기억이 젤 많이 남죠ㅎ 70년대에 사시고 거의 40년이 지났는데도 한국어가 저리 유창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어릴 때 친구였다는 분 댓글 보고 깜짝 놀랐네요. 초딩 6학년 때 구의동으로 이사갔는데, 동네에 외국인 가족이 살더군요. 아이가 많은 집안인 것 같았죠. 서울에서도 외국인 구경하기가 어렵던 시절이어서 신기했더랬죠. 중학교 때 친구가 걔네들이랑 놀기도 했다고 말하기에 어느 나라 애들이냐 물어보니 캐나다라고 하더군요. 우연히 이 게시물을 봤는데 나온 분이 그때 그 캐나다 꼬마일 줄이야... 그땐 로한 씨나 저나 어린아이들이었는데 이젠 환갑을 앞둔 나이가 됐으니 참... 어쩌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지 당최 모르겠네요.
이거 완전 40년전에 캐나다 이민와서 한국떠날 당시의 억양을 그대로 유지한 교포할아버지들 말투에요. 한국말 (심지어 사투리도) 잘하는 외국인들 많이봤지만 옛날 어르신들 억양을 가진 외국인은 처음이라 너무 놀랍네요. 로버트씨가 한국을 떠난지도 오래되었을텐데 어떻게 이만큼 한국어를 기억할수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suhseennai5442 제가 서울 중구 토박이예요.. 90년 후반까지도 중구나 종로구같이.. 서울 사대문 안 사는 서울 토박이들은 저런 말투 썼습니다. 아마 지금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저런 말투 쓸거고요.. 도리어 지금 서울말이 강남(과거 경기도 광주) 위주로 경기 남부 방언에 지방인들 유입해서 지방 사투리가 섞여 형성된 거고,. 기본적으로 서울 토박이 말투는 말자체가 빠르지 않습니다. 말끝을 흐리고요..
오도바이, 꺼먼, 댕겼어요 ... 완전 서울말이네요. 억양도 완전 서울사투리 ㅠㅠㅠ 너무 반가워서 눈물 날거 같아요. 한국 방송국은 당장 이 분을 섭외하세요 !!!!!!!! 캐나다 코로나 정책을 피해서 발리에 오신걸 보니 저랑 생각도 비슷하신거 같고 완전 좋아요. 자유를 찾아서 발리 가신거요. 저도 한국 코로나 정책때 진짜 돈만 있으면 동남아시아 가서 살다 오고 싶다 생각했어요. 실행에 못옮겼지만 ㅠㅠ 너무 너무 반가운 서울말과 70년대 정서를 느끼고 감격하고 갑니다.
진짜 언어는 어릴때 배워야하는듯 4살에 가서 초등학교 3학년이면 10살중간에 간것같은데 5-6년 산것으로 지금 영상 으로 보이는 나이가 50-60정도 되보이는데 한국말을 기역을 듬으면 원어민처럼 나온다는게 진짜 저분도 어지간히 똑똑하고 공부하신듯 ㅋㅋㅋㅋ진짜 한국말하면서 쓰는 영어단어는 한국발음으로 말하네 ㅋㅋㅋ
@@이이-f3l4p 독일어를 발음만 깔짝 배워본 사람으로써 추측한건데 ㅏ를 ㅐ ㅗ를 ㅚ ㅜ를 ㅟ 이런식으로 'ㅣ'를 붙여서 발음하는게 움라우트 현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독일어에서 Ä(아 움라우트), ö(오 움라우트), ü(우 움라우트) 같이 A, O, U위에다 점을 2개 붙인 걸 움라우트라고 하는데 움라우트가 붙을 경우 A[아] →Ä [애] O[오] →ö[외] U[우]→ü[위] 이런 식으로 발음됩니다. 원래 '당기다'가 원형인데 댕기다라고 발음했으니까 움라우트 현상이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살다 살다 이런 분은 첨 봤다. 그냥 이런 분은 한국 국적줘야 하는 거 아니냐. 국민학교를 다녔다 . 한양대병원 원장 이름을 붙이면서 한국인으로 사셨던 분이다. 눈 감고 들으면 그냥 한국인 발음 100% 그대로이다. 당연하지.. 한국인으로 살았으니. 한국에서 이런 분들에게 더 많은 배려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개인적으로 타국인이 한국말 잘하면 좀 멋있어 보이더라구여~ 로보트씨는 자유로운 영혼같습니다~삶의 여유도 있어보이고~ㅎㅎ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만 간직하신다니 한국인으로써 뿌듯합니다~~ 오늘은 빠당빠당 해변보다는 로보트씨를 만나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신 듯~~ 우리 리사도 한국말 빨리 배워야 할텐데요~~~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와 외국인 아저씨 한국말 발음 진짜 개박살이네 정말 잘한다. 음색 발음이 너무 완벽한데요. 단어의 스무스함이 조금 어색하지만 발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네. 어린시절을 한국에 도움주러 오신 외국인분들 에게 감사를 표하며 모든세계인들의 도움으로 발전한 대한민국에 꼭 놀러오셔서 어릴적 좋은 추억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용호씨 한국어 실력이 엄청나네요. 태권도 품새 이름이 1987년 에 새로 바뀌었는데.. 그전에는 용호가 마지막 품새엿나 봅니다. 그리고 한국어 하시는거보니 대단하네요! 지금 수준이라도 한국어 실력이 거의 최상위 단계라 생각됩니다. 1972도에 한국에 오셨으면.. 그때가 4살때라면.. 1968년생일거라 생각됩니다. 대한민국에선 정말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었는데... 그시절 놀이 문화가.. 오징어 게임에나오는 그런 놀이 문화가 참 많았는데... 자치기,구슬치기,깡통돌리기,진돌,삼팔선,오징어게임,다망구.....등...... 그 시절 해뜨면 밖에 나가서 놀고.. 해지면 집에 들어왔죠. ㅋㅋ 초동학교 4~5학년때는 친구들이랑 범어사에서...남포동까지 걸어서 간적도 기억이 나네요..ㅋㅋ 지금 생각해도 미친짓이었네요. 온동네가 애들로 가득했고... 서울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새로 넓힌 도로를 신작로라고 했고... 지방은 거의 비포장 도로가 대다수였죠. 용호씨가 저보단 형님이시지만... 부산에선.. 제가 초등학교 입학전후 나이 때까지.. 비포장 도로가 많았죠. 지금 부산 지하철 1호선 노선의 도로네요. 명절에 제사상에 올릴 생선사려고 자갈치 시장에 갈려면... 금정구에서 에서 남포동까지 엄마랑 버스 타고 간 기억이 새록 새록 납니다. 다라이에 제사상에 올릴 재료를 넣어서..버스타던 기억이 나는군요. 버스에 앉아서.. 그때 간판을 소리내서 읽으면서 한글을 배운 기억도 납니다.ㅋㅋ 빠르게 지나가는 간판을 너무 잘읽어서 칭찬도 제법 받았는데 .ㅋ 요즘은 외국인이 정말 많지만... 그시절 한국에 계셨던 외국인분이리니 정말 놀랍습니다. 거의 나와 동시대의 외국인분이 그시절 한국에 계셨다는게 놀랍고도 반갑습니다. 용호형님께 더 행복한 날들이 깃드시길~~~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