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비시 처음 봤는데 좋네요. 동생인 조식만이야 못하지만 문학적 재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비가 사이코짓 많이 한것도, 성정이 예민해서 그럴수도 있겠군요. 원래 예술가들이 괴팍스러운 경우가 많잖아요. 근데 아버지 조조는 더 뛰어난 문재가 있었는데도, 냉정할때는 냉정했는데
조비의 '업적'은 할 말이 없음 ㅋㅋㅋㅋㅋㅋㅋ 이제 다 들 아시는거니까 ㅋㅋㅋㅋ 8:25 역시 조씨들 중에 ㅈㄴ 눈치 밥 킹받게 먹은 조진 ㅋㅋㅋㅋㅋ 양자로 들어와서 킹메이커까지 한걸 보면 조진도 나름 입지전적인 인물임 ㅋㅋㅋㅋ 거기에 자기 돈 풀어가면서 병사들 먹였다고도 하는걸 보면 덕장이기도 함 ㅋㅋㅋ 개인적으로 드라마 주인공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조비는 물론이고 조휴에 비해서 인성도 좋음 ㅋㅋㅋㅋ 개인적으로 신삼국도 그렇고 사마의-미완의 책사 드라마도 그렇고 왜 조비를 미화하고 사마의는 억까 당한것 마냥 묘사되는지 궁금하네요. 사마의는 조조가 검증후에 조비에게 붙여준 인사고 조조 말년부터 어느정도의 발언권이 있었으며 조비 즉위 이후부터는 조비의 최측근으로서 권력의 중심에서 내려온 적이 단 한번도 없고 조예대에는 조예가 사마의를 쓰레기 같은 아버지 대신하는 존재로도 여겼다는 기록도 있던데 ㅋ 유비가 이릉에서 말아먹기 전의 제갈량보다 더 강력한 권세를 쥐고 있었음. 이릉에서 유비가 ㅈ망해서 제갈량에게 'ㅅㅂ 니가 알아서 해라' 하고 죽어버린거지 ㅋㅋㅋㅋ 그리고 어느시점부터인가 대호족들을 대변하는 자리에 있기도 했고 그 동생 사마부도 조예대 부터 요직에 있었지. 그리고 조상집권기에도 군사활동 했던거 보면 배척당했다고 보기도 어려움. 당장 조상정권 자체가 조상, 하후현, 하안이 주도하고 참여하는 정권에 사마사, 사마소도 포섭하려고도 했음. 중국은 드라마나 영화 모두 당의 영향을 받는것으로 유명한데 혹시 진핑돼지는 사마의에 감정이입하는건지 ㅋㅋㅋㅋ 참고 참다가 뒤집었다 뭐 그런거?? ㅋ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 영웅때부터 하나의 중국 떠든것도 그렇고 쟤들 방송매체는 방방봐로 끝나질 않음ㅋㅋㅋㅋ 다 떠나서 문혁 시즌2 찍고 있는 시진핑이 자신이 사마의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ㄹㅇ 고인모독 아닌가 ㅋㅋㅋㅋㅋ 와룡선생과는 다르게 중달아재는 성격도 급했던거 같은데 이거 알면 개빡돌아서 무덤에서 일어나는거 아님? ㅋㅋㅋㅋㅋ
싸이코패스 조비 편 잘 보았습니다. 만약 조조의 맏아들 조앙이 살아있었다면 위나라의 행방이 바뀌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말 나온 김에 인덕이 훌륭했다는 조앙 편도 다루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일전에 정사에는 없는 가상인물 주창도 신청했었는데 조앙, 주창 편이 나온다면 좋겠습니다.
혹시 제갈탄을 따로 싫어하시는 이유가있으실까요? 제갈량 제갈근 제갈각까지 다 나왔는데 제갈탄만 안보이는게 궁금하네요.. 제갈탄은 제갈량 제갈근과 같이 '촉은 용을 얻었고 오는 범을 얻었고 위는 개를 얻었다'는 말처럼 자신보다 윗세대인 제갈량 제갈근과 나열된거자체만 봐도 평범한 인물은 아님을 알수있는데 굳이 안다뤄지는 이유가 궁금하네요..
사실 조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완성에서 형 조앙은 아비를 지키다 죽었는데 아비란 작자는 형이랑 같이 죽은 부하 전위만 추모하고, 거기에 부인 견씨에 대한 추파도 적지않았으며(조비가 조예의 출생에 대해 가장 의심한 사람은 원희도 조식도 아닌 아비 조조라고 한 야사가 있음), 온갖 공을 세웠건만 동생들하고 후계자 싸움이나 시키고... 그냥 아비 조조에 대한 온갖 불만으로 차츰 미쳐나간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궁금한 게 있어서 질문 글 올려봅니다. 촉나라 유비가 조조로부터 군사를 빼온 이후로부터 갈라선 걸로 알고 있는 데, 이후로 서로 좋은 의미로 교류나 사신을 보내거나 한 적이 있나요? 이 때동안 봐왔던 삼국지들은 서로 욕하고 비방하고 하는 거 밖에 못 봐서 궁금해서 글 올려봅니다.
이릉대전에서 유비의 진영을 보고 받고 조비가 촉의 대패를 에측했으니 조비가 조조를 닮아 군재가 뛰어났다는 말을 봤는데 연의에만 나오는 말일까요? 초대황제 올려치기가 들어간걸까요. 유비는 조조와 한중을 두고 싸워 이겼던 인물이고 조비 남정만 봐도 군재가 형편없던 인물로 보이는데
오냐오냐 키웠으면 후계경쟁 자체를 안 시켰을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요? 되려 조조입장에서 보면 조앙 사후에도 조앙이 계속 장자고 변씨슬하 아들의 순서는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조비입장에서는 남은 아들들 중 본인이 적장자니 마땅히 자신이 후계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겠죠.
군재는 없었다는 것은 영상에 나온 근거에 동의함. 다만 그저 무능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음. 일단 조비 재위중에 촉,오의 외침은 없었음. 물론 관우 양번공격실패 - 이릉대전으로 국력이 다 갈려서 여력이 없었을지도 모름. 둘째로 짧은 재위 기간 중에 구품중정법을 실행시킨 것; 추천제의 경우 창업군주였던 조조에게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함. 그러나 수성군주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추천제를 수용할 경우 몇몇 공신들, 외척들을 중심으로 고인물 파벌 정치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음. 결과론적으로 사대부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 후에 사마의가 정변을 일으키는데 일조했다지만 대개는 사대부 중심으로 균형있게 관료가 구성될 때 나라가 강성해질 가능성이 큼. 그 조조마저도 능력본위 인재 등용을 제창하며 관료제 개혁을 시도했음. 왜 이후 왕조들이 안정되면 과거제도 개혁부터 했는지와 일맥상통함. 기록으로 남은 조비의 사패기질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구품중정법을 추진했을 때 기존의 기득권층의 반발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봄 - 특히 조, 하후씨 족벌들 (아마도 조비를 황제로 추대할 때 공신으로서 더 지위가 높아졌을 가능성 다분) 그가 자신의 친족들에게 벌인 괴상망측한 행위들의 일부는 ... 어쩌면 개혁에 반대하는 외척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도 생각해봄. 큰 정책의 과도기를 반란없이 넘긴 것은 개인적으로 공적이라고 생각. 마지막으로 죽을 때 후계문제는 확실히 했고 보좌할 집정대신도 임명하고 떠남. 일찍이 조식 그리고 조,하후씨 족벌들을 손보지 않았다면 조식이 세조짓 했을지 알 수 없는 것임. 후에 사마의한테 통수맞고 나라뺏긴건 조예가 대책없이 요절한게 가장 크다고 생각함. 조예 사후 권력을 잡은 조상 일파가 한 짓거리가 조비가 생전 미리 손써서 방지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삼국지 완전 후반부에 관심을 덜 가지지만, 환관 황호한테 휘둘려서 나라망친 유선 그리고 손권의 말년 그리고 손권 사후 내분으로 얼마나 허망하게 오나라가 무너졌는지를 비추어볼때 조비는 일정부분 저평가 된 군주가 아닐까하는게 개인적인 생각임. 조비에 대한 평가가 유난히 박한 이유는 명목상으로나마 존재하던 한나라의 막을 완전히 내리게 한 것이 크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