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은 도성 100리 안에 조성한다는 규칙이 있어서 태종이 태조가 함흥에 묻어 달라는 유언까지 무시하고 건원릉에 장사 지내서 그후 여러 왕릉들이 생겨서 동구릉이 되었는데 상지관이 멀리 떨어진 여주까지 간것이 말도 안되는 거짓말 영릉이 명당이면 증손자인 폭군 연산군이 태어 났겠는가???
광주이씨 이인손 님의 묘자리입니다. 워낙의 대명당터라 앞에 개울에 다리를 절대 놓지마라는 유언을 하였지만 묘자리덕분인지 광주이씨는 날로 권세가 높아지다보니 묘에 제사하러갈때마다 그냥 건너는게 불편하여 다리를 놓게 되었고 지나가던 조정의 지관이 이를 보고 건너가 이릉터를 발견합니다. 후에 결국 묘자리를 파네어 옮길수밖에 없었고 관밑에 연을 날려 닿는곳에 뭍어라 라는 글자를 보고 놀라 후손들은 그곳에 다시 이장한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