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습니다. 전 원년 타이거즈 팬입니다만 최동원이 최고냐 선동열이 최고냐를 떠나서 최동원 선수는 프로야구 자체를 위해 자신이 총대를 맸던 위대한 스포츠맨이었습니다. 선수협 파동으로 자신이 은퇴를 할 거라고 생각했던 롯데에서 쫓겨났던!!(이게 스포츠냐!!!!) 선수들이 자신의 기량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구단이 시키는 대로 선수들은 끌려다녔던 프로야구 초창기 시절, 이래서는 안된다는 집념으로 영원한 롯데맨이 될 수 있었음에도 방출마저 각오하고 선수들이 제 대접을 받아야 제대로 된 플레이가 나오고, 그래야 프로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이 프로다운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는 선구자적인 혜안을 가지셨던 분입니다. 그냥 야구선수, 투수가 아니라 한 사람의 스포츠맨으로서 야구선수들이 정당한 인권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훌륭한 '인권 운동가'였습니다. ^^ 대한민국 스포츠계가 최동원을 제대로 기리고자 한다면 선수들의 인권과 훈련조건, 복지 향상을 위해 애쓴 운동선수들을 위한 상을 제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운동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엄청난 힘이 될 거라 봅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도 좋지만 후배들을 위해 자신이 디딤돌이 되겠다는 그 숭고한 마음이 계속 이어져야 후배들이 커나갑니다. ^^@@user-qd1hc4mm7m
EBS 정관용의 초대석에서 사회자께서 “어릴 때부터 야구에 그렇게 매진했던 동기가 무엇입니까?”란 질문에 가난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언급하신 대목이 있었는데. 야구 일과를 마칠 때면 행상을 하시던 어머니의 소재를 파악 리어카를 집에까지 끌어다 놓고 어머니께서 밥을 짓는 동안 야구방망이로 타이어를 치곤 했다는 이야기가 인간 이종범에 대해서 많은 걸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현역 시절 타석에 들어서 투수쪽을 바라보던 이종범 선수의 번쩍 번쩍 살아빛나는 눈빛을 잊지 못합니다. 2006년 WBC 일본전 때도 그랬지요. 야구 좋아하지 않는 집사람과 함께 온 긴장을다하며 TV를 보고 있었는데 마침 이종범 선수 타순이었지요. 놓쳐서는 안되는 절대절명의 찬스여서 바라보는 관중이나 시청자나 모두가 긴장하며 지켜봤죠. 타석에 들어서 일본 투수쪽을 특유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노려보며 방망이를 두어번 돌린 후 셋업에 들어간 루틴의 순간 집사람이 저 살아있는 눈빛 좀 보라며 잘 되겠다는 말이 끝나자 천금같은 안타 !!! 늘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이종범 님은 자기관리가 뛰어난 진정한 프로입니다~^^
이종범 코치님 이렇게 인사이트가 넓고 깊으신줄 이제 알았네요 전체적 상황판단과 이해 해결하고자하는 의지 본인을 돌아보는 객관적 시선이 정말 차분하게 이성적이시고 거기에 담대함까지.... 이정후선수가 잘하는건 선대로 부터 내려받은 두뇌와 인성 이모든게 가정교육 거기에 운동신경은 살짝 ...... 아들키우는 부모로써 크게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공부하는 맘으로 종종 다시보기해야겠네요
형님 3학년때 청룡기 타격상 받으실때 제가 일고 1학년이였습닏다. ^^.. 결승전 응원한다고 버스타고 올라갔다가 우천으로 하루 연기되는 바람에 63빌딩만 보고 내려오면서 정말 열받았었는데. 다음날 우승했다고 해서 얼마나 좋았던지 말입니다... 그때 ... 아 내가 진짜 광주일고에 다니는구나... 했었는데... 30년도 더 넘은 이야기네요... 형님 항상 건강하시고 이정후선수도 건강하게 선수생활 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진짜 앉은 자리에서 미동도 없이 2시간 뚝딱이네요. 분명 30분만 보고 내일 보려고 했는데 넘 입담이 좋으셔서 멈출 수가 없었어요ㅋㅋㅋㅋㅋ 한화팬이지만 타구단 선수중에 유일하게 좋아하는 선수가 이정후 선수였는데 이종범님이 나오셔서 썰 풀어주시니까 너무 재밌었네요. 앞으로 더 승승장구 하는 부자가 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이정후 선수도 나중에 스톡킹 꼭 나왔으면 좋겠네요ㅋㅋㅋㅋ
이종범 선수 정말 제가 존경하는 선수입니다. 저는 일본에서 돌아오신 후 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전성기가 지난 후인데도 해도 플레이, 용기, 멘탈 ... 다른 선수들과는 경기를 대하는 자세 자체가 차이가 많이 보였고 정말 배울 점이 많았었어요. 당시 전 학생이었는데... 그런 마음가짐이나 멘탈적인 부분들은 롤모델 삼고싶은 선수였죠. 그 때 기아에서 이종범 선수 강제은퇴 시킬때 팬으로서 상처를 참 많이 받았었어요. 선동열 감독과 이종범 선수 같은 팀으로 뛰는거 딱 1년만 보고 은퇴시켰으면 하고 팬으로서 바램이 있었는데... 그걸 스프링 캠프까지만 해도 1년 같이 갈 거 처럼 하다가 갑자기 리그 시작 전에 통수치고 그런식으로 은퇴를 시키다니... 그 때 이후로 실망감을 견디지 못해 기아 응원을 그만두게 됐었죠. 당시 이정후 선수가 싸이에 "아빠를 버린 기아 절대 용서 못한다." 는 맥락의 내용을 적은 것도 봤었어요. 그 어린 친구가 얼마나 아빠의 은퇴에 충격을 받았을지 이야기를 들으니 새삼 새롭네요. 팬인 저도 아직 그때 일로 원망이 남아서 기아 경기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리는데 아들은 마음이 좀 풀렸을까요? 부디 팬이 많은 레전드 선수들에 대해서는 구단이 충분히 대화하고 원만히 잘 풀었으면 좋겠어요.
이종범은 천재적인 재능 + 후천적인 노력 + 두뇌 이루어진 한국야구 기록에 남을 선수이고 근데 더 놀라운건 그의 아들은 고등학교 졸업후 프로야구 타자들 기록을 다시 써가는 선수라는 것. 근데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그대로 물려받고도 출중한 외모까지 갖추었다는것. 그리고 부모의 바른 교육인지 그 출중한 재능에 훌륭한 마인드와 인성까지 갖추었다는 것. 아들 월급은 7,000만원 아버지 월급은 1,000만원 ㅎ 1년 뒤면 아들 월급이 5억원 이상이 된다는 것. 부럽지요!
어릴때 92년까지 군산 살았는데 그래서 해태 팬이었습니다. 군산 시절에는 선동렬 선수가 나오면, 스트라잌/스트라잌/아웃! 밖에 안들려서 전 볼이라는 것도 몰랐었음 그리고 이종범 선수 오고는, 안타! 1루든 2루든 나가면 조금있다 도루 성, 도루성공, 홈스틸 or 안타로 홈... 홈인... 이 사람은 나가면 무조건 점수구나....
2009년 시즌 초에... 이현곤은 유리몸이고, 김선빈은 내야 뜬 볼에 호러쇼 보여주고, 안치홍은 너무 신인인데, 김종국은 갑자기 노화가 급격히 와서 수비에서 문제가 보였는데, 그때 종범신이 갑자기 3루수도 보고 1루수도 보고... 이러다 다시 유격수도 보시겠다 생각했었는데, 이용규 선수가 장기 부상을 끊었고 우익수에 고정되었었죠. 그때도 정말 나이 마흔에 팀을 위해 헌신하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제가 야구에 빠지기 시작한 게 96시즌의 이종범 선수를 진짜 경기장에서 보면서 부터였죠. 정말 저한테는 항상 감동적인 선수였습니다.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2시간이 넘는 영상이였지만, 단 1초도 지루하지 않았어요. 너무 재밌게 그리고 너무 솔직하게 말씀도 잘 하시고, 제가 야구 선수는 아니지만, 이종범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울림이였고, 인생에 참 도움이 되는 말씀이였습니다. 대단한 선수 그리고 대단한 아버지. 대한민국의 야구의 신 이종범님 그리고 스톡킹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승엽이지. 아무리 출루 많이하고 도루 해도 홈런 차이 장타 차이 상쇄 못한다는게 현대야구 평가 기준에 반영되어 있음. 타격 최다 기록들도 이승엽이 거의 갖고 있지않나. 근데 어릴적 해태랑 경기 생각해보면 이종범 타석이 개무섭긴 했음. 뭐 물론 이승엽 상대하는 타팀 팬들도 그러했겠지만.
와~ 진짜 2시간 3분 23초를 One Take로 본 건 진짜 재밌는 영화 이후로 처음이네요~ 이종범 선수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 아들이 힘들것 같았는데 이정후 선수도 정말 대단한 대한민국을 리드하는 선수로 우뚝 서 가고 있네요~ 노력이라는 단어를 많이 말씀하셨는데 왜 최고의 부자 선수가 되었고 돼 가고 있는지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야구 발전을 위해 노력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1994~96년 현역으로 광주 31사단 통신대에서 근무하면서 본부대에서 근무했던 이종범 선수를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세 가지 정도가 기억나는데 방위 복무 특성상 광주 홈 경기에만 출전 가능했던 당시 해태 홈 승률이 어마어마하게 높았다는 것, 슈퍼스타 치고는 상당히 털털하고 겸손하셨다는 것, 그리고 사단 체육대회에서 야구화를 신고 나와서 계주 첫번째 주자로 나와 다른 부대 주자들을 딱 반바퀴 차이로 벌여놓았다는 것 등입니다. 물론 우승은 본부대의 차지였고 이종범 선수는 최우수 병사로 뽑혀서 포상휴가 받았던 것이 생각나네요.
@@user-bc1hr1eo8c 그건 좀 심했음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몰지각한 짓이었죠 간혹 변명과 편드는 얘기들이 있는데 악의가 아니었다면 그런 위험한 짓거리하고 바로 사과나 최소 놀란 모습이라도 보였어야 됬는데 그짓거리하고 본체만체 해버림 야구실력은 선동렬 최동원에 버금가는 야수중엔 최고였지만 그날의 행태는 양아치였음
제가 2006년 wbc 로 야구팬이 되었는데 결정적 선수가 이종범 선수였어요. 그리고 히어로즈 창단팬으로 지내다 이정후 선수가 히어로즈에 입단하게 되면서 진짜 너무 소름끼치더라구요. 혼자 전율을 느끼면서, 거기다 이제 정후선수가 팀내 주축일 뿐만 아니라 리그탑타자로 팀을 이끌고 있는 지금…내 야구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 이종범 님께 감사함을 표하고 싶습니다. ㅠㅠ
이종범 선수 서림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들으니 그때 그 시절이 기억나네요. 전 광주에 있는 서석초등학교에서 야구를 했었습니다. 5학년때부터 야구를 했는데 제 1년 선배로 같이 야구를 하고 시합을 뛰었던 선수가 염경엽 감독, 이호성 선수였었죠. 전 포수를 봤고 3번을 쳤었는데 포수로서 상대방으로서 이종범 선수는 참 얄미운 선수였었죠. 그때 이종범 선수가 1번을 쳤던걸로 기억하는데 키가 좀 많이 작았어요. 타석을 들어서면 스트라이크 존이 참 작아져서 힘들었고, 정말 영리한 야구를 하는 선수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타격도 좋았고 수비도 잘하면서 영리한 야구를 했었죠. 야구 후배였지만 참 잘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서림초등학교 때 감독한테 많이 맞았다고 하던데 그것도 기억나네요. 제가 6학년때는 우리 서석초와 서림초가 항상 결승에서 붙었는데 그해 전반기는 우리가 항상 우승했었습니다. 기억나는 것은 광주시체전으로 준결승부터는 무등경기장(현 챔피언스필드)에서 했는데 그때 우리가 이긴 후에 보니까 감독이 선수들 집합시켜 덕아웃 뒤에서 엄청 때려서 이종범 선수가 울어서 얼굴이 빨개져서 나오는 것이 기억납니다. 연습경기 할때도 지는 날은 꼭 체벌이 있었던 거 같고요. 그때 시절이 생각나서 적어보았습니다. 광주에서 기아 감독으로 다시 보면 좋겠습니다. 이종범 선수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