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존재했던, 그리고 앞으로 나올 모든 오컬트무비들을 오징어로 만들어 버리는 영화, 한국영화 사바하, 일본영화 온다, 태국영화 랑종을 보면 곡성이 얼마나 잘 만든 영화인지 알게 되고, 라이너님처럼 한번 더 보게 만드는 영화. 대부분의 나라 영화계에서 사라진 서슬퍼런,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것이 살아있는 영화....제 인생 최고의 영화입니다. ("미드소마"가 그나마 비슷한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라이너님의 곡성 리뷰를 기다렸습니다 곡성을 두고 굳이 디워를 해야하나 의문이 들었지만 꿀잼이네요 또한 필요하네요 곡성의 마지막, 외지인을 카메라로 본 장면의 충격과 다 빈치의 성 히에로니무스 작품을 봤을 때의 충격이 소름끼치게 닮은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었는데 이너님의 철저한 비평으로 짐작하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감독의 의도에서 보면 조금은 쉽게 이해가 되고, 감독이 만든 영화로 보면 아주 어려울 수 밖에 없던 영화,,, 라이너님,,,리뷰, 기대하고 기다린 만큼 흥분하며 봤습니다. 유독 길었던 리뷰이지만 꼭 다시한번 꺼내어서 볼 리뷰입니다. 마지막 평점에서 "역시"하면서 웃었습니다. 좀 더 주시지,,,ㅎ 라이너님의 팬입니다. 긴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독이 스스로를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말한 인터뷰가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성경의 욥기서 42장 2절의 말씀이 떠오르고요 "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극한 고난 끝에 하나님을 결국에 마주한 욥의 고백입니다. 내가 아는 것 만을 믿음으로 삼는 우리를 미끼로 물어버린 영화네요 ㅎㅎ
이 영화가 굉장히 수준높은 영화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지금 이 리뷰도 관심갖고 다 보긴 했지만.. 여전히 나에게 힘들고 불쾌하고 지나치다 싶은 영화이고 저에게는 좋은 영화가 아니네요 나홍진감독의 영화들이 저에게는 항상 그렇습니다. 굳이 저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매번 들구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취향인데요.. 다만, 저같이 이 영화를 힘들어하고 몹시 불쾌해하는 사람들을 마치 영화 볼 줄도 모르는 문외한 취급하는 분들은 없었으면 합니다 ㅠ
곡성 1. 왜 우리는 믿고 싶어하는가, 왜 의심하게 되는가.. 사람은 약하기에, 잘 모르기에 불안해 한다. 일단 두려운 것을 맞닥뜨렸을 때 부정, 의심하거나 혹은 없애려 든다. 믿기 어려운 것을 맞닥뜨렸을 때 우선 부정한다. '인지부조화'를 통해 "이건 사실이 아냐. 사실이 아냐" 주문도 외워 보지만, 한계가 있다. 그 다음 단계로 두렵게 만든 공포의 대상을 없애려 든다. 도망가 외면하거나, 아니면 공격해서 제거해 버리는 거다. 잘못된 신념에 경도되어 파멸해 가기도 한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 그것이 나와 내 자식을 죽음에 이르게 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상식과 이성을 가로막는다. "외지인이 문제야!" 라는 섣부르고 빠른 판단을 하고, 비논리적, 비상식적 믿음을 공고히 한다. 그릇된 믿음이 외지인에 대한 린치로 이어진다. 2. 마을의 수호신이자 귀신 무명 vs 훈도시를 입고 닭의 피를 뿌리는 외지인(홀리는 일광) -무명은 마을의 수호신, 곡성 그 자체인가? -외지인과 일광은 서로 맞서는 적의 관계인가, 동지적 관계인가? -일광은 외지인을 향해 살을 날린 것인가, 효진을 향해 날린 것인가? 원시 신앙에서 신들은 선악과 무관하다. 믿고 섬기는 이들에게는 혜택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고통을 주고, 때로는 믿는 자들에게까지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무명은 외지인을 고립시키려고 한다. 외지인이 누군가에게 접근할 때마다 그들이 희생되기 때문이다. 무명이 나타나고 금어초로 만든 결계가 보인다. 무명은 종구에게 닭이 세번 울기 전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를 한다. 일광은 "무명이 귀신이다. 얼른 집으로 가라" 하고, 무명은 "집으로 가면 다 죽는다" 말한다. 여기에서 관객은 완벽하게 종구의 상태가 된다. 지금 무슨 상황인지, 어떤 일이 벌어지는 알 수 없는 상태.. 말로 말리는 무명과, 존재로 홀리는 일광.. 3. 믿음과 불신의 문제, 인식의 문제 '안다'는 건 착각.. 그 착각은 위험한 믿음, 잘못된 믿음으로 이끈다. 믿음은 위태로운 것이다. 안다고 믿는 것은 위태로운 것이다. 상대를 악이라 낙인찍고 스스로를 선이며 정의롭다고 여기기에 더없이 잔인해질 수 있고, 눈앞에 나오려는 진실의 증거들에는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다. 그냥 휘두르는 폭력이 좋아서, 내뱉는 말이 좋아서, 누군가를 혐오하고 증오하고 맘껏 미워하고, 악플을 쓰고, 그 상대가 몰락하고 나락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냥 내지르는 혐오.. 상대를 맘껏 욕해도 되는 존재로 규정하고 그걸 믿어버린 사람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말해도 안 믿을 거니까..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떠들고 다니는 게 우리의 모습.. 4. 헛것을 쫓는 사람들의 헛된 믿음이 드러나는 영화.. 정답이 없는 세계에서 정답에 가까운 답을 찾으려 애쓰고, 자기가 생각하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것을 주워 섬기며 "이게 답이다" 라고 믿으며 떠드는 게 우리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도 알고보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작고 보잘것 없는 것을 바탕으로 펼쳐진다. 일광은 허주를 모시는 사람이다. 허주는 허깨비다. 우리가 믿는 것엔 실체가 없다. 중요한 건 실체가 아니라, 그 실체에 대응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모습을 본 우리의 반응이다.
36:09 이부분에서 왜 무명이 일광을 공격할수 있었냐면 일종의 역살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아마 저 장면은 중구 집에서의 굿장면 이후의 장면으로 알고 있는데, 저 굿은 무명에게 살을 날리는 굿입니다. 하지만 중구가 굿을 끊어서 살을 완벽히 날리지 못했고, 그리서 일광이 역살을 맞게 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할거 같습니다. 중구가 일광의 집을 찾아가서 설명을 듣는 장면에 힌트가 있지요.
여러 해석도 보고 몇회차를 다시 보며 내린 결론은 곡성은 코스믹호러의 성격을 띠고 있는것 같다. 처음에는 도와주려는 착한 향토신vs이질적인 존재이자 외부(외국)에서 침입한 존재의 곡성이란 마을을 두고 벌어지는 힘의 게임이란 생각을 했지만 지키는 존재는 지킬 의지가 처음부터 없었던 건지 가진 힘과 능력에 비해 너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침략한 존재 역시 가진 것에 비해 작은 소동만 일으키는 모습을 보며 마치 충왕전을 보는 인간같은 모습이 곂쳐졌다. 정말 보잘것 없고 신경도 안쓰이는 벌레를 우린 충왕전을 통해 보면서(물론 관심이 있다는 전제하에) 그 순간에 완전히 몰입도 하고 가끔은 이입도 하지만 그때뿐 결국 벌레는 벌레라 여기며 패배한 벌레의 처분엔 관심도 없는 그런 모습처럼 느껴졌다. 많은 모호한 부분들이 인간의 시선과 벌레의 시선에서 오는 시차라 생각하면 많은 부분이 이해가 된다. 양쪽이 보고 느끼는 세계와 담을 수 있는 그릇 자체가 차이가 나기에, 시간마저 다르게 흐르는 느낌이 들고 말이 안통한다는 느낌이 드는것 같았다. 나의 짧은 식견으로 편하게 이해하려 택한 해석이지만 이렇게 영화를 보고난 후에도 계속 시점이 바뀌는 경험이 너무 즐거웠어서 난 앞으로도 곡성은 어떠한 면에서는 최고의 영화라고 기억할것 같다.
유튜브를 본 이후로 이런 긴 영상을 1초의 넘김도 없이 본 건 처음입니다! ㅎㅎ 정말 길고 또 깊은 고민에 저도 같이 빠져서 55분이라는 시간을 보낸 것 같네요 ㅎㅎ 다만 저는 조금더 종교학적 아니 종교적 해석이 감독이 원하는, 또 이 영화의 실제적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보이는 것에 대한 믿음,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의심과 의혹,, 그게 나홍진 감독이 원하는 그리고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너무너무 재밌고 인상깊게 봤습니다.
초반 7분을 보고 먼저 다는 리플 입니다. 이 영화가 고의적으로 사람을 기만하는 영화라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뛰어난 연기와 촬영 연출등의 외적인 면과는 별개로 이 영화의 알맹이는 치밀하게 짜여진 구성과 내용으로 사람을 속이는게 아니라 처음부터 답을 찾는게 불가능한 미로에 사람을 던져놓고 어느 순간 말도 안되는 출구가 튀어나오면서 니가 왜 여기 있는지 이해가 가냐? 이러는 영화같았죠. 처음 곡성을 보고 극장에서 나오면서 분명 잘만든 영화 같기는 한데 뭔가 묘하게 기분이 드럽다는 생각이 들었던게 이런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관람하고 극장에서 나오면서 확신했죠. 비슷한 미스테리 호러인 사바하는 처음부터 감독이 답을 확실하게 정해놓고 미로속에서 차근차근 길을 인도하면서 마지막에 결론을 보는 순간 이게 어떤 이야기인지 미로의 전체구조가 명확하게 보이고 어디가 나가는 길인지 확실하게 보이는 그런 영화라면 곡성은 애당초에 출구란게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만의 상상으로 해석하고 결론 내리길 즐기는 사람이 보면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냥 기만당했다는 생각이 드는거죠. 그 방식이 곡성에서는 통했고 그걸 똑같이 랑종에서 다시 써먹었지만 랑종에서는 실패한 거죠
@@wariojoel2273 못만든영화 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이 영화의 매력에 빤 사람이 너무 많죠.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해석조차 할필요 없이 그저 느끼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그 이해할수 없음에 불쾌함을 느끼는 사람도 많겠지만 오히려 호기심을 느끼고 재미있어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이 모호함이 우연의 일치고 감독이 어떻게 할지 몰라 어버버 하다가 나온 결과물이라 소뒷발에 쥐잡은격의 영화라면 못만든 영화가 맞을겁니다. 하지만 의도된 모호함이고 그의 낚시다 훌륭하게 작동했다면 못만들었다는 평가는 잘못된 평가죠. 오히려 못된 영화라거나 악질적인 영화라는 평가가 어울려보입니다.
믿고 싶어하는 걸 믿고 보고 싶어 하는걸 보고 듣고 싶어 하는 걸 들어야만 하는 인간 존재.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타인에 감정과 생각에 반응 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인간. 믿음과 불신 의심에 경계선에서 매일 줄타기를 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환상과 욕망 그걸 억누르고 배척하려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성과의 싸움. 공허하지만 그게 인간 삶의 중심이고 진실일 수 밖에 없는 부조리한 삶. 이 리뷰를 보고 느낀점. 나 또한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쉽게 판단하고 내가 믿고자 하는걸 믿으려고 사실과 현실을 왜곡하고 또 그러면서 그게 가짜일 수 있다는 의심에 경계선에서 삶의 공허함을 애써 감추려고 발버둥치는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걸 새삼 느낍니다. 좋은 비평과 해석이었습니다. 이채널에서 한 비평중에서 가장 알맹이 있는 비평 하지만 이 비평 또한 하나의 그럴듯한 놀이일뿐.
평론가들은 수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을 대부분 7점 이상으로, 명작이면 8점~9점 이상으로 줍니다. 보통 평론가들은 7점 이상으로 잘 주지도 않고, 10점은 거의 주는 일이 없습니다. (다 9~10점을 주게 된다면 그 작품들보다 더 좋은 작품이 있을 경우에 난감해질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ㅎ) 그래서 어쨌든 이 작품이 잘 만들었다 해도 점수가 7점이라고 해서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