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 입니다. 인상 깊게 본 기억이 있어 영상을 만들게 됐습니다. 내용을 압축하다 보니 영화 내의 깔끔한 연출을 담아내지 못한 거 같아 아쉽네요. cc자막 있습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자막 버튼 활성화 시킨 후 감상해주세요~ (5/31일 자 자막 수정) #사도리뷰 #사도세자
@@user-onetym 사도세자( 思悼世子 )는 이름이 아니라 왕이나 세자가 승하(사망)하면 붙혀지는 사후시호(事後諡號)라고 하는 명칭입니다. 참고로 사도세자의 이름은 이훤(李愃) 또는 이선(李愃)이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같은 한자에 두 가지의 뜻과 발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의 한자에 뜻과 발음이 다른 두 가지가 존재를 한다는 것이죠!
영조의 최대약점 무수리의 아들이라는 천출 컴플렉스를 오직 공부로 이겨내야했으니 그 자식에게도 과한 공부를 시킨게 화근이었죠. 게다가 경종 독살 음모에 대한 용의도 있었으니 얼마나 스스로도 위축되어 있었겠습니까. 조선 임금의 살벌한 하루 일과를 견뎌내면서도 소식하고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니 참 영조도 독종이었죠. 덕분에 겁나게 장수하고 재위기간도 길었죠. 우리가 사도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잘못된 기대와 욕심이 어떤 화근을 초래하는지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대용이 아니며 소유가 아니죠.
그건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뿐 아니라 목사와 성도의 관계도 해당돼죠. 자신의 한을 자식이나 성도에게 열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일방적으로 가하는 학대죠. 절대 사랑도 아니며,교육도 양육도 아니며 그건 살인이고 학대고.자기욕심과 한에 끼워다맞춘 사육이죠! 한사람 인생전체를 영혼까지도 파멸시켜버리는 살이이죠. 것두 토막살인! 감히 시체를 거둘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의 토막살인앴다는걸 가해자들은 절대 모르죠! 지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또 그걸 자신들은 양육이었다고 착각합니다!자기들은 제대로 잘 가르쳤는데 그들이 이상해서! 말을 안들어서 그렀다고하죠. 피해자에게는 영원히 씻을수없는 수술도 불가한 걸레가슴을 만들어놓구선 그걸 양육이래!
부모가 살면서 자식이 아무리 속썩여도 해서는 안되는 말 넌 태어난게 역모다 왜태어나서 속썩이냐ㅜㅠ 이런말듣고 어떤 희망을 가질까요 당연히 자괴감들고 자신감도없고 우울증오고 방황하겠죠 자식은 오직 부모의 사랑과 관심으로 사는건데 부모가 폭언하고 미워하면 엇나갈수밖에요. 너무 마음아파서 울컥하네요ㅠㅠ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너무 .. 기대가 컸던건지 몰라도 실제로 매우 박대했다고 실록에도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세자는 명군이 될 자질을 타고났음에도 탕평을 약화시키고 강력한 왕권강화를 꿈꿨다는이유로 반대파들에게 모함당하고 영조에게 미움받아 결국 비극적인최후를 맞이한 참 가엾은 세자였죠.. 영조는 이후 죽을때까지 이 일을 후회했습니다.
@@rableado6314 흠...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을 표현하는것도 중요하지만 다른사람의 생각도 보고 듣는것도 중요한것아닐까요? 연쇄살인이라는 단어는 본인이 먼저 꺼낸말이고 그걸 옹호하는 사람은 아무도없는데 혼자 발작하는건.... 사도세자의 정신병의 원인을 먼저 생각해보고 알고 듣고 글을 쓰시는게... 지금으로 따지면 중고딩 나이에 대리청점하는 아부지가 상말병초 군대 선임처럼 숨만쉬어도 개 갈궈재끼고 사도세자 성정이 존나 무인인데 바바리안 한테 지능스텟 죽어라 찍고 상점에서 가렌 한테 루덴 존야 산거임
이 영화가 나름 역사 고증에 맞게 잘 제작했죠 아쉬운점이 있다면 임오화변 장면에서 채제공이 사도세자를 보호했는데 실제 임호화변 당시 채제공은 모친상으로 3년상을 하고 있어서 부재중이였습니다. 영화에서는 인원왕후가 먼저 사망했는데 실제로는 정선왕후가 먼저 사망하고 비슷한 시기에 인원왕후도 사망했습니다. 사도세자는 자살시도만 3번 이상 했으며 당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노론 소론 사람들도 영조에게 세자 그만 갈구고 따뜻한 말좀 해라고 했습니다.
사도 영화 볼떄 끊임없이 아들을 시험하는 영조가 미웠고, 아부지랑 끊임없이 갈등하던 옛날의 내가 떠올라서 괴로웠고 나도 아부지를 미워했었던 때 증오하다 못해 매일매일 서러웠던 적이 떠올라 슬펐었음. 지금은 서로 양보와 타협을 통해 원만하게 풀려서 우리 부자 사이가 좋아졌지만 그 당시에 영화보고난후 감정이 사라지지않더라 오죽하면 우리 어무니가 보면서 내 생각했다면서 우셨을까 지금 리뷰보는데도 가슴한켠이 시리고 아프네요 보다가 도중에 나갑니다...도저히 견딜수가없어요
@@user-ob1ul2hf4k 너무 말이 안되는게 세종은 태종이 ㅈㄴ게 잘해줬음 이런 학대 자체가 없었고 세종이 눈이 안좋아지자 책도 못보게 할정도로 애지중지 했고 태종이 자식들한테 잘했음 심지어 세종의 처가를 박살낸것도 세종의 정치를 위해서였음 그렇다면 영조의 저 학대는 누굴위한거임? 영조 본인의 왕권을 위해서 저런거 아님? 왕위파동도 자신의 정치를 위함이고 사도세자 대리청정도 본인을 위해서고 갓태어난 아이를 경종의 나인들에게 맡긴것도 본인의 컴플렉스를 위해서고 비교가 된다 생각함?ㅋㅋ 세종도 어릴때부터 저따구로 기르면 역사 바꼈지 ㅋㅋ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대부분 영화나 사극에서 정조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고 하니 노론대신들이 벌벌 떨었다더라~ 이런식으로 표현하는데 사실 이 뒤에 사족이 더 붙습니다.. 자기는 할아버지 영조의 뜻에 따라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했으니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를 적당히 대우만 해주고 왕으로 추숭한다든지 건의하면 할아버지에 대한 불효니 헛소리하면 가만 안둠ㅋ 정도로 한겁니다. 앞뒤 다 자르고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한때 정말 푹 빠졌던 영화네요. 제가 들었던 한 얘기로는, 실제로 사도는 매우 총명했으며 영조는 되려 그 총명함에 자신의 힘이 사라질까 두려워 사도를 계속해서 꾸짖고 몰아세웠다고 하더군요. 영조는 사실 왕위에 대한 집착이 매우 심했고 안그래도 세력싸움에 매일을 불안함으로 살았는데 그 와중에 왕위를 계승할 자식이 총명하니 자신의 왕위가 흔들리고 자신의 권력이 약해진다 생각하여 사도에게 질투심을 느껴 계속해서 엇나간 행동을 했다죠. 속설이긴 하나, 정조도 아주 총명한 것을 보면 분명 사도 또한 범상치 않았을 것으로 예상되고 실제로도 사도는 총명했다는 기록이 많은데, 굳이 영조가 총명했던 자식을 그렇게 대할 이유는 없었다고 보네요. 단순히 과도한 기대로 인한 파국이라고 보기에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기에 저는 질투심이 되려 이해가 되더군요.
영조는 자기가 무수리 아들이라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 너무 심했지. 사도 세자 갖고 있을때는 자기가 적통이 아니라는것에 신하들 눈치 ㅈㄴ봣지만 그 과정에서 사도가 엄청 희생당한거지 뭐. 영조가 왕노릇 너무 오래하다 보니 어쩔수 없이 왕권이 확고해져서 말년엔 지 하고 싶었던 정치도 하고 그냥 아무이유없이 백성들한테 가서 제도나 법등 백성들 살아가는거 의견도 묻기도허고 아들 죽인거 빼고는 큰 흠이 없던 왕이긴 햇음. 자기 왕권 ㅈ밥인 시절에 신하들 눈치보느라 아들 병신 만들긴 햇지만 당시가 영조거 왕인 형을 독살햇다는 음모론까지 잇엇으니 불안햇겟지 ㅋㅋㅋ 백성의들의 아버지인 임금은 맞음 근데 자기의 친아들인 아이의 아버지가 아닐뿐ㅋㅋ 그라고 역사적으로 결과를 봤을때 사도세자가 왕 안돼고 정조가 임금이된게 오히려 영조를 고평가 해줄 항목중 하나임 정조는 진짜 천재엿음
@@mamama...영조는 본인의 권력욕이 매우강한사람이고 누가 영조의 자식이여도 절대 왕을 못했음 반역으로 영조를 죽이는게 아니라면 영조는 자기 아들한테 애초에 권력을 넘길생각이 없었지 권력에 미친정신병자 자기자식을 왕권강화와 자신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도구로 썻음 3살때부터
의사가 되려해도 선생님이 되려해도 판사가 되려해도 무엇을 하든간에 자격을 검증하는 과정이 있다. 하지만 부모가 되는데에는 그 어떠한 자격 검증과정도 없고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작게는 한 사람의 인생을 크게는 한 사회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인데도 생식능력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모가 되는 인간들이 정말 많다
사도가 미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영조가 사도에게 저지른 짓 중에 옹호가 되는 게 하니라도 있는 건지 부터 알아야 됨. 내가 그 내용을 봤는데 한숨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그 와중에 자살시도도 했음에도 되려 못난 놈이란 조롱을 들어야 했을 정도에다 오죽했으면 신하들이 그만 좀 내버려 두라 했을 정도니..후우..
영화에선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이고 후회하며 어느정도의 아비의 사랑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실록에선 사도세자가 죽고 오히려 정조를 사도세자가 아닌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 사도세자는 흉지에다 아무렇게나 매장한거 보면 그냥 사도세자에 대한 그어떤 사랑도 없었고 오히려 혐오만 했다고 볼 수 있음.
고증도 부족했지만 나름 잘했고, 당쟁이 아닌 각 인물들의 입장에서의 해석도 좋았고 각색도 좋았고, 연기도 개미쳤고.. 가 아닌 고증은 부족했지만 나름 연출과 연기도 잘 했고 당쟁이 아닌 각 인물들간의 입장에 대한 해석도 좋았고 각색도 좋았고 연기도 엄청 잘 했고 이렇게 문장을 작성을 하면 더 보기 좋을 것이로다. 내가 언제까지 이런 것을 가르쳐 주어야만 하는가...,? 마 이상 ~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ㅋ
조선 임금들 평균 수명이 47.1세인데, 영조는 언제죽어도 모를 42세, 오늘날로 따지면 손자가 있을 60~70에 겨우 사도세자를 얻었기에 자신이 떠나가기 전 최대한 후계자를 완벽하게 만들고 떠나고 싶었던 듯 하죠. 근데 영조는 83세까지 장수하게 되고, 세자의 총명함은 비극이 되어버렸죠ㅠ
옛날에 영화관에서 볼때는 진짜 재미없다 이러면서 봤는데 다시 커서 보니깐 명작이었음을 깨닫게 된 영화입니다. 특히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와 영조의 대화는 정말 인상깊었습니다. 왕과 세자로서의 대화가 아닌 아버지 대 아들로 나눈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대화ㅠㅠ 가슴아파서 눈물 엄청 흘렸어요.
사도세자를 너무 잘 표현해 내서 차마 두번은 못보겠던 영화였고 아직까지도 나에게 사도세자를 연기한 배우는 유아인으로 각인되어 남아 있는 영화라 이 영화 이후 유아인의 연기를 다시 봤었다..베테랑보다 사도에서가 오히려 월등했고, 소리도없이 라는 영화를 보고 또 다시 봤던 배우. 아직까지도 사도=유아인 이라 너무 안타깝다.. 약에 취해서 했든 진짜로 한거였든 뭐든 이 영화 속 사도세자의 모습이 역사 속 사도세자 모습이였을 것 같아서 마음이 메어졌다..그걸 표현해 낼 수 있었다는것이 그 울림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것이 대단하다 느꼈고 다시 보니 또 느끼고 너무 슬프네 사도. 그리고 유아인도. 안타깝다. 두 사람 모두.
핏줄이 문제일까요 ... 영조 이전 왕권은 선조때부터 내내 붕당하느라 왕 헐뜯기 바빴고 그 수단 중 하나가 '핏줄'과 '출신' 이었는데 거기서 내내 시달린 영조의 콤플렉스가 정치적 상황까지 겹치며 자기 아들 죽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말이 영조에게 일평생 자격지심이 되서 자식죽인 애비라는 낙인까지 찍혔는데 출신성분이 잘못했다는 건 너무 15세기 마인드신 것 같네요 아쉽습니다~
근데 진짜 똑똑하고 정치력 있는 사람을 선거로 뽑는게 아닌 왕으로써 아들한테 물려준다는 거 자체로써 왕은 엄청난 부담이었을듯. 심지어 조선건국은 반란이었고, 반정도 있었었고, 연산군같은 폐주가 나왔던 나라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 부담은 장난이 아닐듯. 그저 눈에 귀여운 아들이 이 부담을 가지고 정치를 할 거라 생각하고 말 한마디에 백성이 무더기로 죽어나갈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자리에 앉히려면 아들로 보기 보단 왕재로써 보고 혹독하게 교육하고 싶었을 그 마음도 이해가 간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라는게 참 그렇다... 손자는 그냥 방귀만 껴도 예쁜데... 아들은 그렇지 않거든... 너무 칭찬하면, 교만해 질까봐 칭찬을 아끼게 되고... 너무 칭찬을 듣고 싶어서, 잘하려 노력하지.... 근데, 그게 결국은 서로가 상처가 된채, 어른이 되어 버리지... 그리고,... 분노로 바뀌지... 그게 비극의 시작이야... 근데, 누군가 하나가 죽으면, 상대의 진심을 알게 되지... 그리고... 감당할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지... 이건 아들과 아버지의 숙명...ㅠㅠ
[사도세자] {생각할 思(사) 슬퍼할 悼(도)} 나이제 가려합니다 아픔은 남겨두고서 당신과의 못다한 말들 구름에 뛰워 놓고 가겠소 하늘을 날아날아 바람에 나를 실어 외로웠던 새벽녘 별들 벗 삼아 이제 나도 떠나렵니다 나 이제 가려합니다 아픔은 남겨두고서 당신과의 못다한 말들 구름에 뛰워 놓고 가겠소 (꽃이 피고 지듯이의 가사 영화 사도 곡)
이게 사도 세자가 안미칠수가 없는게 이걸 해보거라 해서 사도세자가 자기 뜻대로 하면 니가 뭔데 내가 정해놓은걸 바꾼것이냐? 이러는거임 하라고 하면 자기가 정해놓은걸 바꿨다고 뭐라 그래 그러면 대신 뜻대로 하라고 하면 대리청정 시켰는데 왜 아무것도 못하냐고 압박을 주니 안미칠수가... 없지
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런건지 가슴 아픈 그들의 속 사정이 내 가슴까지 두들겨서 그런건지 사도를 처음 봤을때 30년 인생에서 가장 애도하고 통곡하며 울었었네요... 다시 봐도 눈물나고... 가족간에 아픔, 속사정, 아들의 마음, 왕자의 마음, 국왕의 마음... 이토록 가슴 아픈게 또 없었던 것 같아요... 사극을 별로 안좋아하는데 사도를 보고나서, 사극을 좋아하는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ㅎ 아니 그래도 사극보다 어벤져스 같은 비현실적인 판타지물이 더 좋긴 합니다만...여튼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명작이자 엄청 기억에 남는 영화네요.
영조는 첫째인 효정세자를 일찍 잃고 42세의 나이로 얻은 사도세자를 처음엔 예뻐했다고 합니다.하지만 너무 예뻐했던 탓 인지 그에따른 기대감은 컸고 어린나이였던(약 15살쯤에 행정정치를 했다.)사도세자는 많은 기대감에 훈육만 했던 영조때문에 애정결핍과 극심한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합니다.이런 정신병으로 사도세자는 영조의 밤 나인을 임신시키고 궁녀를 죽이는 못된 짓을 많이 했습니다.영조가 이런 사도를 보고 질타할 때 정조가 태어났습니다.정조는 영조를 닮아 글 쓰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영조는 정조를 세자로 만들기위해 사도를 뒤주(곡식을 보관했던 곳)에 가뒀습니다.그 당시 법에 따르면 아들이 역적이 된다면 그의 아버지도 역적이 되고 정조 역시 세자책봉을 받지못하게 됩니다.그렇기에 사약을 내리지 않고 뒤주에 가뒀다고 하네요. 시기와 지위가 이들을 이렇게까지 몰아세운걸 수도 있겠네요. +정조는 커서 글 쓰기도 좋아했지만 술,담배도 좋아했다고 합니다.(여자대신 술과 담배로 스트레스를 풀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