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희생제의에 대한 르네 지라르의 이론을 바탕으로 현대사회에서 왜 갈수록 온라인 갈등이 심각해지는지, 지독한 악플을 많이 다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런 건지에 대한 제 분석을 다뤄봤습니다. * 제 철학책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구매 링크 :www.yes24.com/P... 인스타그램: chungco_phil 이메일: cndajd01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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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갈것도 없이 만만한 인터넷이 감정 쓰레기통인거죠. 옛날 제물의식 굿판 등도 다 인간들이 무의식에 꽉꽉 쌓아둔 두려움과 공포를 대리 해소하는 의식이었던거구요. 문명이 이토록 발전하고 우리나라 학생들은 하루 10시간씩 공부한다는데 정작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한번도 배운적도 공부한적도 고민한적도 없습니다. 이거야말로 사회발전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인데 말이죠. 이제는 원시수준의 감정처리에서 벗어날때가 되었는데, 사회와 정치는 여전히 원인을 아직 경제발전 등 외부요인에서 찾고있는게 현실입니다. 사람들의 병증이 너무 깊어져서 인터넷 보고 있으면 정신도 오염되는 느낌이에요. 안타깝습니다
세상은 카오스이고 의미도 없음 그냥 번식본능에 의해 세상에 피투되었을뿐. 이미 태어난 사람은 삶의 유익을 찾고 즐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 또한 그런 태도를 지향합니다. 다만 자식이란 타인의 생명을 이 세상에 내놓는 결정은 보수적이여야 한다고 봐요. 미래 세대는 철저히 현재 세대의 욕구 때문에 태어납니다. 아이들 또한 나처럼 행복할 것이기에 그 행복을 뺏을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미래 세대를 위해 낳는다는 것은 가증스러운 위선입니다. 저는 업무 특성 상 50구의 시체와 죽어감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생로병사라는 수순 자체가 고통이고 시일의 문제일 뿐 힘든 상황은 외면하고 싶어도 찾아온다는 것을 언젠가 막대한 고통을 지불해야하는 도박을 당장 내가 행복하다는 이유 하나로 시작하시겠습니까? 심지어 도박의 리스크는 순전히 자식이 감당하는 부조리한 구조입니다. 비가역적인 인생의 특성상 확실한 안락이 보장된 미래는 없고, 그 책임지지 못 할 타인의 생명(자식)을 두고서 행해지는 도박의 특성이 있는게 출산이라면 그것은 덮어두고 잘했다고 말할수 있는 문제는 아닐겁니다. 오히려 혹독하게 '출생이 태어나는 그 자녀를 위한 행위'가 아님을 상기시키며 강한 책임감을 요구하는게 이성을 가진 도덕적 존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요?
안녕하세요 구독해놓고 즐겨보다가 고찰하던 주제에 공감이 많이 가는 문제제기를 해주셔서 댓글 답니다 말씀주신 대로 과거에는 '하나의 무고한 대상'을 찾고 그 대상에게 사회 전체의 폭력성을 집중시켜 전체의 폭력성을 없앴다고 하면, 지금 현대 사회는 다수 vs 다수가 악플로 폭력성을 증식한다기 보다, 오히려 같은 생각을 가진 다수들이 더욱 더 똘똘 뭉쳐 폭력성을 휘발시키는 시기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몇 년 사이에 온라인에서 사람들끼리 그룹화 될 수 있는 수단이 너무 많아졌고 (SNS, 개인방송, 커뮤니티) 이렇게 각자의 성향에 따라 그룹화 되는 종류가 많아지다 보니 초기에는 서로의 집단을 비난하여 폭력성을 증식시키는 사례도 많았지만, 사람의 개성처럼 집단의 종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안에서 '쟤네 알바야? 우리 할거나 잘하자' 라는 마인드로 폭력성을 휘발시켜 폭력의 '정전 상태'에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삼국지로 따지면 '군웅할거' 시나리오 같은 느낌이네요 세월이 지나 지금 대두되는 인구문제라든지 새로운 형태의 사회구조가 나타나게 되면, 지금의 다양하게 그룹화 된 시스템을 깨부수고, 서로의 이익에 따라 위촉오 같이 크게 뭉치는 시기가 찾아와 폭력성을 증식시키는 시기가 오겠지만, 이렇게 유튜브를 통해서나 우리가 가진 통신기술의 문명을 잘 이용해 과거보다 더 평화로운 방법으로 인류의 역사가 흘러가길 바랍니다 매번 올려주시는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결과주의, 성과주의가 팽배해서 그럽니다. 예를 들어서 파이브 가이즈, 쉑쉑버거 안 땡겨서 안 갔다거나 줄이 너무 길어서 안 갔다. 라고 하면 바로 돈이 없어서 못 갔겠지. 또는 니가 그지니까 못갔지. 이딴 수준 낮은 댓글은 거의 자동으로 달립니다. 또한 상속세, 증여세는 꼭 내야하는 이유와 세계적으로 다른 나라들도 전부 내고 있다고 하면 뜬금없이 니가 그지니까 상속세 낼 일이 없나보지 이런 소리나 하죠. 참 놀라운 나라 같습니다. 또한 집이 가난해서, 부모님이 아프셔서 간병을 해야돼서 등등 명백한 과정상의 불리함이 있으면 당연히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성적이 낮은 게 지극히 당연한 인과관계인데 성적이 높으면 =머리가 좋다. 혹은 노력을 많이 했다. 라고 귀결되죠. 집이 가난하거나 부모님 간병해야 하는 사정은 1도 감안하지 않고 그냥 결과만 보고 너는 공부 못하는 사람이다. 지잡대 나왔다. 이런 식으로 과정상의 혜택을 누리고 그 결과를 얻었는지, 과정상의 불공정으로 인해 그러한 결과가 주어졌는지는 절대 관심도 없죠. 그래서 카푸어, 해외여행, 비싼옷, 풀빌라, 인스타 허세질이 만연하다고 봅니다.
의미심장한 내용이네요. 잘 봤습니다. 관련하여 떠오른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사람들의 폭력적 에너지를 분출할 곳이 필요하고, 희생양을 만들어서 희생시키고, 여기에 내러티브(ex. 신성함)를 붙여서 복수의 반복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고, 이런 것에는 심리적으로 한 가지를 더 짚어야 할 듯합니다. 희생제의를 통해서 일어나는 심리는 폭력적 에너지의 분출과 소모만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희생자의 입장에서도 자신을 위치시키게 될 수 있는 거라 봅니다. 일종의 공감 같은 걸로 말이죠. 일단 그러한 희생을 보게 되면, 자기 자신도 삶에서 여러 고통이나 상처가 생길 때, 그걸 감수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 거라 봅니다. 그 효과가 크기 위해서는, 희생제의에 숭고함이 느껴져야겠지요. 이 부분에서 신성함이 유용성이 있는 것이겠고요. 이는 원시적인 부족에서 잔인한 성인식을 하는 것과도 연결지어볼 수 있다고 봅니다. 특정 누군가를 희생시키는게 아니라, 다수에게 통과의례로 고통을 주는 것이죠. 이 역시 어떤 신성함, 집단 다수의 관습, 이런 것들이 들어간 것이겠고요. 즉 요점은 분노에는 원인이 있는데, 그 원인인 고통, 상처, 상실 따위에 대한 심리를 타겟으로 희생제의가 일어나는 부분도 있을 거란 것입니다. 오히려 그 부분의 심리가 감화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분노는 다시 치밀어 오르고, 그에따라 희생위기에 놓이기 쉬울 거라 봅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덧붙이면, 고대 그리스의 비극도 희생제의와 유사한 측면이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가상의 이야기이지만요. 실제 인간 대신에, 가상의 인물이 대신 희생 당하는 것이며, 주목할 점은 그 가상의 인물이 영웅이라는 것입니다. 오딧세우스나 아킬레우스처럼요. 신과 영웅의 내러티브로 비극을 일으키는 것, 그것이 아마도 그리스인들이 폭력을 통제하고 정신을 고양시킨 방법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왜 영웅이 희생되어야 하는지가 중요한 포인트인데, 희생자에게 감정이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자신의 비극을 감내하게 만드는 것이죠. 비루한 인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영웅을 심리적으로 자신에게 덧씌우면서요. 그리고 오늘날의 악플을 보면, 영웅을 통한 세련된 감화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원시적 부족의 관습에서 보여지는 그러한 숭고함도 없는 거라 봅니다. 그러므로 이 댓글에서 이야기한 제 관점에서 보면, 이는 희생제의와 중대한 차이가 있는 거라 봅니다. 분노의 표출이고, 분노의 에너지를 쓸 곳을 찾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끝이죠. 습관만 들어서 악플에 중독되어, 악플이 계속될 뿐이고요. 악플쓰는 본인의 인생은 비루하게 느껴지고요. 그럴수록 더욱 악플이 고파지고요.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신기하게 느끼는게 한국은 길거리에서 장애인이 안보여서 한국에는 장애인이 없는거 같답니다. 실제로는 장애인이 없는게 아니라 이동이 불편해서 못나오는 거죠! 지금 소득 양극화가 프랑스 혁명 때보다 더 높다고 합니다. 티비에는 유명인과 그 자식들 나와서 자랑질 하는게 거의다 입니다. 애들이 부모 소득에 따라 "2백충 , 3백충 , 임대충 " 이라고 놀리는 나라 입니다. 어느 사회 학자가 한국은 오만과 모멸의 체계 라고 했습니다. 19년간 자살율 세계 1위 인데도 남이 죽든말든 , 남이 고통 있든말든 매일 국뽕 먹고 "오~ 필승 코리아" 만 외치는 나라!!!!!!! 말 못하는 아기들을 수십년간 해외입양 세계 1위. !!! 초저출산 세계 1위 . 은둔형 외톨이가 61 만명. 한국에 대한 문제점을 말하면 "그렇게 불만이면 너가 이민 가라"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 "너가 게을러서 그렇다 . 더 노력 해라" "너나 잘 해라".... 전부다 개인탓만 하는 사이코패스적인 사회!!!!!!!! 매년 국적 포기자가 한국은 2만명 정도 , 인구 2.5배 많은 일본은 3천명 정도 . 일본 보다 16배 국적 포기자 많은 한국. 한국에서 유학한 몽골인이 한국인들로 부터 "성형해라" "쌍커플 수술해라" "다이어트해라" ... 간섭이 엄청 심하고 자존감 떨어지게 했는데 미국에서 유학할때 미국인들은 칭찬 일색 이더랍니다. 한국인 청년 유튜버가 자전거로 미국 횡단 하는데 미국인들은 수시로 차들이 서서 한국인에게 "뭐 필요 한거 없냐?" 고 물어봐주고, 먹을거 주고 , 자전거 고장나면 자기 시간 들여서 같이 고쳐 주더군요. 또는 캠핑장 , 숙박시설 , 수리점 까지 공짜로 태워 주는 사람 널렸구요. 어떤 미국인은 자기 집에 재워 주고 식사 대접 하기도 하고 , 어떤 미국인은 편의점에게 계산 하려니까 자기가 대신 계산해 주면서 자전거 여행을 응원 해주더군요.!! 이 유튜버가 한국에서 자전거 여행 할때는 누구하나 도와주는 사람 없고 외로웠다고 합니다!
진짜 유투브 댓글 별로 안봐요 정신에문제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받아요......자기랑 다른의견 말하면 댓글로 논리도없는 무지성비난하거나 엉터리논리로 물어뜯기 바쁘고 수준이하 사람들많아서 너무 피곤해요 유투브는 고소못한다 생각하고 더 나대는거같아요 지인중에 경찰있어서 물어보면 유투브도 댓글고소 다 성립된다하는데 말이에요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서 얼굴 까고 이름 까면 앞에서는 차마 대놓고 할 수 없는 말이 악플이므로 잘못된 것이 맞다고 봅니다. 게다가 본인의 악플이 듣는 사람에게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지(자살, 정신병) 전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더 편하게 악플을 다는 거 같습니다. 해결책은 아주 단순합니다. 악플을 달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그 혐오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가 악플을 안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AI로 걸러낸다던지, 악플의 대상이 그 악플에 노출되지 않는 방법을 강구하여 악플을 다는 인간들이 본인의 악플이 대상에게 전달이 안된다는 것을 알면 더이상 악플을 달지 않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오! 꽤 납득가면서 이해가 되는 이론입니다!! 평소에 인터넷에 과격하게 댓글을 달때 사람들이 일상에서 받은 분노를 표출한다고 생각하고있었거든요. 논리적이다~ 팩트다~ 뭐 이런 방식으로 말이죠. 다수 vs 다수 양상은 차라리 괜찮은데, 일반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일반인 대상으로 그런 분노를표출하는 경우가 많은것 같아요.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연애프로그램 같은 경우 말이죠...자신이 그 자리에있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도 못하면서 판단하고 평가하는 태도가 너무 우스워요...
이론이라고 이름 붙여서 뭔가 있어 보이지, 좀 역겨운(?) 사회현상이 아닐까요. 희생제의도 보면, 꼭 어린아이나 약한 동물들을 데려다 하는데, 전형적인 강약약강에다가 감정 쓰레기통 취급한 주제에 신성함 같은 가치를 넣고서 사회를 굴린다? 괜히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불만을 한 명 희생(죽이는 거죠 그냥)시켜서 잠재운다? 참 편리한 방식입니다..
인류의 본성이 폭력성과 그의 시현욕구를 갖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작금의 악플 문화를 사회적 현상(희생제의)이라고만 보기 어려운 점은 많은 경우 최초의 악플이 생성되었을 때 크게 2부류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첫째, 최초 악플러와 같은 편에 서서 가해의 정도를 높이는 경우로 악플 반복, 피해자에 대한 확증편향, 멸시 등으로 나타나곤 하죠. 두번째는 악플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피해자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고 싶어하는 경우로서 이들은 이 상황을 지켜보는걸 즐거워하는 부류입니다. 이러한 2가지 현상을 놓고 볼 때 엄격한 틀이 요구되는 '희생제의' 보다는 로마식 결투의 상황에 더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 믿어지는 사람(희생자)을 맹수와 함께 그라운드에 밀어 넣어 말도 안되는 싸움을 보며 즐거워하는 로마시민이 떠오릅니다. 혹시라도 사람이 이기면 그 사람의 문제점은 잊고 그를 영웅으로 대접한다거나 결국 맹수에게 희생되면 마찬가지로 '그가 그런 벌을 받아야 했나?' 보다 맹수에게 물어 뜯기는 그 상황에 열광하는 거죠. 즉 대중은 종교나 신비주의에 의한 사회시스템 때문에 희생을 받아들인다기 보다 자의로 누군가 희생되는 걸 보고 즐기려 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이 때 '익명성'은 바로 그라운드와 객석이 분리되어 있어 자신은 맹수로 부터 안전하다는 믿음인것 같습니다. 또한 희생자의 입장을 궁금해 하기 보다 어떤 권위 주체가 판단해서 저리됐을 거라는 확증편향으로 그 폭력성을 표출하는 거죠. 시간이 지나면 악플러가 저 판단의 권위를 갖기도 합니다. 전 철학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것 흥미롭네요.
선과 악의 관점에서 보면 결코 옳은 일은 아니죠.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는 비상식적이고 집단정신이상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기괴하고 냉혈적으로 보이는 저런 의식이 어쩌면 군중을 이끌고 사회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종교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은 드는군요. 참고로 전 개인적으로 신을 믿지 않습니다만 안전한 공동체 유지를 위해 종교는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
악플이 희생제의의 모습과 비슷하다니 너무 재밌게 들었고 잘맞는거 같아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유독 악플이 심한 이유는 뭘까요? 해외에서도 knetz are bullies 라며 피하고, 해외에서 주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유튜브를 하는 한국인 유튜버도 유독 한국어 댓글이 십중팔구 욕이거나 비난이다라며 힘듦을 토로하는걸 봤어요😢 나와 다르면 모든 존재를 희생물로 만들어버리는거 같아요. 우리와 비슷한 교육체계를 가지고있고 집단주의도 우리나라보다 심한 일본도 이정도는 아닌거 같은데ㅠㅠ
생존의 환경이 각박해질 수록 분노와 고통의 수치는 필연적으로 높아질 수 밖에 없고... 그로인해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에서 분노와 고통같은 누적된 감정을 해소하는 경향이 커졌다 보여집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사적복수가 더 어려워진 사법체제 + 생존환경이 각박해진 것 + 온라인 익명성이 악플의 원인과 기폭제로 작용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온라인상의 (무고한) 댓글러들이 희생제의의 대상이 되었을테고요.
천재지변 가뭄등 힘든일이 생기면 불만이 쌓여 희생제의를 하였듯 한국인들의 삶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겠지요 다만 한국은 모두가 존경하고 동의할 만한 제사장도 없고 누굴 희생해야 하는지, 애초에 이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의견이 분분하니 분노만 표출 하고 있는 것이지요 어째 말하면 할수록 희생제의와는 차이점만 보이는 군요 통합된 원시사회와 세대,성별,개인 간 뇌구조부투 다른 현대랑은 너무나 다릅니다
악의 만연함이 세상의 본질이 맞다면 애 낳으면 죄짓는 거죠. 낳지 않는 것만 해도 부작위로 선한 일을 하는 겁니다. 어차피 시간 지나면 모든 생명은 늙어 죽는데 굳이 서로 잡아 먹고 먹히는 살육의 현장으로 만들어진 이 세상이 잔혹하지 않나요? 낳아지는 아이는 피로 점철된 경쟁의 땅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던져지게 됩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부모의 결정으로 생로병사를 양도받게 되는 꼴입니다. 이 때문에 죽을 사람을 낳는 선택을 행한 부모는 살인자나 마찬가지라는 철학적 비유도 존재하죠. 생로병사의 굴레 속 권태와 욕구가 끊임없이 찾아오는 삶, 그 자체가 원래 고통입니다. 태어났기 때문에 불행하고 고통스런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면 괴롭고, 가지게 되더라도 그것을 잃게 될까 두려워집니다. 생활 수준이 올라가면 그것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자그마한 고통도 익숙해 지기는 쉽지 않지요. 인간으로 태어 났기에 겪어야 할 숙명입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다음 세대를 태어나게 하여 고통을 물려줄 것인가, 내 세대에서 고통을 끊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입니다
희생제의의 사회통합적 기능의 핵심은 '연민'인 듯, 신성한 이유에 의해 부조리하게 희생하는 존재에 대해 사회다수에게 연민의 감정을 일으키면서 분노나 폭력적 성향을 누그러뜨리는 심리적 기능을 했다고 보이네요 제 생각에는 딱히 현대 악플과의 공통점은 없는 것 같은데 공통점이라면 악플 피해자가 자살(희생)하면 연민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고, 차이점은 악플행위는 신성하지도 않고, 사회구성원들이 보기에 그냥 추하기 때문에 영상말미에 지적하신 것처럼 그냥 복수에 복수를 낳는 혐오 전쟁으로 번진다는 점입니다 p.s 고대사회에서는 천재지변 같은 원인에 의하여, 희생제물을 선택함에 있어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하는게 쉬웠다면 현대사회는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세계관이 각자 판이함으로 인하여 누군가 누구보고 희생 해야한다는 말 자체가 안 먹히는듯 이게 개인적인 원한과는 다른 집단혐오의 갈등으로 드러난 걸까요?
진짜 재미있습니다. 저는 악플 문제 보다는 어떤 커뮤니티에서 집단적으로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 부분이 제일 문제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정치, 연예, 혹은 특정 유명인(백종원, 오은영, 손흥민) 커뮤니티에서 대세와 반대 되는 말하면 너무나 당연하게 질타당하는 모습이 광신도 같기도 하고 무섭다고 느껴집니다. 오히려 악플은 키보드 워리어구나 라고 넘어가는데, `다수의 의견이니까 무조건 맞아`라고 확신에 찬 댓글을 보면 그게 제일 무섭더라고요. 뭔가 사고하는 힘을 잃어 버린 동물농장 오리떼 같아서요 이런 부분도 해석해 주시면 안될까 여쭙습니다.
20분도 안 되는 영상에서 참으로 거대한 문제제기를 하셨군요. 영상 초반부를 시청하면서 르네 지라르의 이론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했지만, 영상 후반부를 시청하면서 악플 그 자체에 대해 먼저 논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3년쯤 전에 임용한 박사님이 윤지연 아나운서가 운영하는 채널에 출연해서 홍길동전에 대해 해설하신 적이 있습니다. 임 박사님 주장으로는 '서'는 '적자 아버지를 둔 첩의 자식'이고, '얼'은 서자의 후손 전체를 지칭한다고 하시더군요. 서자가 혼인해서 정실부인과 사이에서 자식을 낳아도 모두 '얼'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조선시대 초기에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현대 한국인의 상식으로는 '서자'는 양인 첩의 자식, '얼자'는 천인 첩의 자식이잖아요?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나와 있고, 굳이 사전을 찾지 않아도 일반적 교양을 갖춘 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상식인데(2021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서자, 얼자 논란이 있었죠. 아름다운 일은 아니지만요.)제가 임 박사님의 주장이 틀렸다고 시비를 건 것도 아니고, "임 박사님께서 깊이 연구하신 끝에 내신 결론이겠지만, 일반적인 상식과는 괴리가 있는데, 조금만 더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한 마디 하니까 악플 테러가 쏟아지더군요. 제가 표준국어대사전도 인용하고 조자룡 헌 창 쓰듯이 박살을 내놨는데, 저처럼 대응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 임 박사님 강의는 통찰력도 있고 주의깊게 경청할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분한테 달라붙어서 호가호위하는 우매한 군중의 광기를 보면서, 왜 개인의 수양이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맞아요. 댓글자체가 갖는 바리에이션? 스펙트럼?이 생각보다 넓은것 같고, 그 대표적인 예시를 말씀하셨네요. 1차원적인 감정의 표출만 악플이 아니라 어떤 집단적인 크루? 같은것이 형성됬을때 흔히 볼수 있는 현상 같습니다. 인터넷 방송에서도 주시청자들이 bj나 스트리머를 비호하는 일이 생기는데, 이게 겉보기엔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되어있지만, 사실 논리를 넘어서는 맹목적인 방어술을 펼치거든요. 이 과정에서 욕설이 없더라도 사실상 '상대방'입장에서는 무고하게 당하는 형태라고 할수 있죠.
일제감정기때 자금력이 출중한 사람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도 지원하면서, 동시에 일본제국에도 지원을 했죠. 현재 국가가 일본제국인데 들고일어섰다가는 모가지가 날라가기 떄문이죠. 그렇다고 일본제국에만 충성했다가는 광복후 어떤처벌을 받을지 모르기 떄문에 양다리 걸친거죠. 바른말을 하더라도 상대와 버금가는 혹은 넘어서는 힘을 가졌을때 바른말을 해야 말이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떠오른 속담이 쫌 그렇기는한데..;; "누울자리 보고 다리를 뻗으라"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저도 제 생각으로 정의감과 바른지식으로 똘똘뭉쳐 제 할말 했다가 된통 털린적이 엄청많아서 제가 힘을 기르기 전까지는 자세낮추고 눈치보며 삽니다 ㅋㅋㅋ 20대시절 내내 구르고 터지면서 배웠습니다. 그래도 습성은 못버리는지, 바르고 솔직하고 정직하고 당당한 성격이라.. 갈등이 종종 일어납니다만. 어린시절보다는 상황봐가면서 할말을 하는 저자세로 많이 낮아졌씁니다 ㅠㅠ 그런데 또 상대도 솔직하고 당당하고 그런 성격인사람끼리 한바탕하면 서로 기분1도 나빠하지않고 건강한 토론이 가능하더라구요. 근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 솔직 당당한 성격은 아니니까요. 성격들이 다양하니 모두를 헤아릴수 있는 사람이 되는게 진짜 큰 어른이라 생각합니다만.. 모두를 헤아리며 촉망받는 사람은.. 살면서 정말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1~2명도 안됬던거 같습니다;;
악플을 쓰면, 현실세계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근데, 하루종일 휴대폰으로 악플달다보면, 더 이상 자유로운 사람이 아닌거 같습니다. 저도, 댓글어그로 많이 해봤는데, 혹시 저같은 인간을 보신다면, 최선의 해결책은, 그냥 눈에 보이는 시각정보를 무시하시면 됩니다. 논리도없고, 이래라저래라, 주절주절 막 떠드는것일뿐. 허공에다가 소리치는거랑 다를바가없습니다. 반응만 안한다면.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글자모양일뿐. 그건 그냥 소리음파일뿐입니다.
간단한 이유는 본인이 못나고 행복하지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열등감의 표출같고 좀 더 깊게보면 한국은 나와 다름에 대한 존중결핍, 편가르기, 남 눈치주기 등등 요소들이 만들어낸 각박한 사회에 있다고 생각해요. 게임,커뮤니티,유튜브보면 한국은 진짜 욕설,혐오표출이 진짜 도를 넘었다 싶은때가 많아요. 전 이게 치열한 삶속에서 너무 억누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느껴요. 내가 잘살고 삶이 행복하고 사랑받는 존재일수록 남한테 그러진 않겠죠.(당연하게도) 사랑이던 공감이던 받아본 사람만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꼰대문화, 힘들어도 참고견디라는 말만들어온 사회에서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쌓이고 악감정, 나와 다른 사람, 잘사는사람들에 대한 반감같은게 인터넷에서 나타나는거같아요.
1. 지라르 vs 니체를 비교하는 영상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2. 초기작인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을 통해 미시적인 일상사에서 일어나는 모방과 폭력에 대해서도 다뤄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인간은 욕망하지 못한다. 인간은 모방할 뿐이다.'라는 지라르의 전제가 많은 현대철학자의 욕망론과 궤가 다른데, 이런 부분에 대한 생각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늘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언제나 원인을 분석하는 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필요는, 가치는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원인을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람의 문제는 원인을 아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경우도 많다고 보고, 학자들의 입장에서야 여러 이론을 펼쳐 낼 수는 있겠지만, 결국 모든 것에 대한 해결책을 주기는 어렵고, 흥미로운 관점이네, 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때떄로 학자들이 말쟁이들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생각할만한 꺼리를 던져준다는데 대해서는 나름 의미가 있는 것도 같고. 결국 사람이 자기 성찰을 못하는, 그리고 타인에 대한 존중이 없어서 오는 문제들을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나는 어떻지? 궁극적으로 서로가 원하는 것은 뭘까?" 이건 제가 평소 생각하는 방식인데, 이건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한 번만 더 생각을 해 봐"라고 말씀하신데서 기인한 방식이었다고 보거든요. 어떤 말고 행동을 하기전에 한 번만 더 생각을 해 보는 것. 그게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무분별한 언어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막기 위해 반드시 실명으로만 가입하도록 하는 PC 통신 실명제 실행" (1998년 조선일보 기사 ) PC통신 태동기인 1995년부터 사용해 온 사람으로서, PC통신은 자기 여친에 대한 험담, 일본인 험담, 중국인 험담 그리고 군대 이야기(이 당시 피시통신은 2,30대 남성이 대부분이었음)로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곳이었음. 온라인 공간은 1995년부터 2023년 까지 변한게 거의 없어요. 아 그건 있겟네요. 온라인 공간에 여자들이 많아져서 남자에 대한 험담과 남녀가 싸우는 이슈가 새로 추가되긴 했네요.
근데 그걸 왜 꼭 인터넷상에서의 갈등이라고만 하는지 모르겠음 오프라인에서도 인터넷만큼 강하게 표현을 못하는 것뿐이고 대놓고 말 못할 뿐이지 생각하는 건 인터넷이나 오프라인이나 똑같은데요 오히려 요즘은 오프라인에서도 그런 갈등 관련한 사람들의 생각들이 점점 더 밖으로 표출되고 실제 행동으로도 나오고 있지 않나요? 익명으로도 갈등해소가 안돼서 그런거 아닐까요? 그만큼 세대, 성별 등의 갈등이 점점 더 심해져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상말미에 지적하신대로, 지금의 악플은 '희생제의' 와는 좀 결이 다른것 같네요. 희생제의는 복수의 연쇄작용이 안 일어나는 시스템이라고 하셨는데, 악플 받은 사람이 가스라이팅을 당하는게 아닌 이상 '복수'를 안하지 않을뿐더러 악플러가 상대방의 '댓글복수'정도는 충분히 염두에 두고 쓰거든요. 중요한건 '분노표출창구'인데, 악플이 전체창구중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는 말씀하신대로, 익명성과 동시다발성 때문이죠. 최대한 자기의 책임이 가려지기 때문에 소희말하는 '똥싸지르기'가 가능한겁니다. 물론, 똥싸지른사람은 다음날 무슨 똥을 쌌었는지 다 잊어버리지만, 상대방이 스스로 폭력성에 희생당했다는걸 모르길 기대하진 않습니다. 그저 악플러는 익명성과 동시다발성 뒤에 숨어서 '분노표출'했으면 그만이거든요. 오히려 쌓여있는 분노, 폭력성 표출에 굳이 희생물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80년대 야구, 복싱이 대표적이었고 지금은 맛있는 음식이나 게임, 야동같은것들이 있을것 같네요. 유럽은 제가 보기엔 오랫동안 '축구'가 그걸 맡아왔던것 같습니다. 몇세기전까지만 해도 정복경쟁때문에 전쟁이 빈번히 일어났는데, 이제는 전쟁을 못하니까 사람들이 그 폭력성과 에너지를 쏟아낼 곳이 필요한데 도시간 대결구도로 축구를 하는게 나름 괜찮은 대체제가 된것이겠죠.
저도 요즘 악플을 많이 달게 되어 정신이 피폐해짐을 느끼게 되었는데 영상 잘 보았습니다. 꼬리에 고리를 물어 생각에 빠지다보니 선과 악이란 무엇인가?속칭 악이 너무나 쉽고 강력해서 노력이 많이 필요하는 선과의 대립에서 애초에 시작부터가 공평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이 되네요..생각이 다른 이들&이익이 먼저인 이들과의 대립 속에서 혐오와 증오만 커져가는 요즘이네요..
철학 욕하는 넘들은 철학이 우리 생활에 알게 모르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모름. 법의 근간에서 부터 경제 음악 미술 과학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미침. 당장 자본주의를 포함 무슨 주의 무슨 주의 모두 철학적 사상인데. 모든걸 돈을 많이 벌수 있는 학문이냐 아니냐에 따라 차별하는 전형적인 천민자본주의 사고.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납득되지만 그 해결방식으로써 악플은 동의하기 어렵네요 과거에도 그 폭력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콜로세움이나 마녀사냥 민족간의 갈등 과 같은 방식들이 계속해 왔다지만 부정적인 영향이 많았기때문에 긍정적인 방향성으로 스포츠를 발전시켜왔고 현대에는 게임.드라마.영화.다양한 문화적인 배출구를 계속해서 만들어져왔고 만들고있는것 아닐까요. 악플은 그 폭력성의 배출구로써 역활을 하기엔 부족해보이기도 하구요
저는 악플이 서열문화와도 연관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 위에 서려는 욕망이 있는데 타인의 사소한 잘못을 비난하면서 내가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 내가 저 루저보다 우월하다 주장하는 거죠 특히 스스로 사회적으로 낮은 서열이라고 느낄수록 넷상에서 더 쉽게 남을 비난하는것 같네요
비교우위에 있다는 우월감을 느끼는거 같아요 ㅡ 난 너보다 더 도덕적이야 더 옳은 생각을 해..를 넘어 맞춤법 더 잘알아 문해력?이좋아까지..맥락이나 본질을 떠나 뭐라도 내가 낫다는걸 확인하고 싶어하는 심리도 있는거 같아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스스로가 아닌다른사람을 비하하면서 가지게 되는..
요즘 충코님의 사유여행이 완전 물 올랐네요~ㅎ 그럼 또 한마디 붙여보자면요 폭력성은 결국 다음과 반비례합니다 봐주길 바라는 마음과 손봐줄 수 있는 사정능력이 조화롭게 상생할수록 폭력성은 떨어지고 예의바름이 올라갑니다 즉, 폭력성이 높다는건 너무나 자신을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앞서다보니 남의 시선과 인정을 무시하게 되고, 또한 스스로 과대포장하여 손봐줄 수 있는 사정능력이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을 때 입니다 고로, 폭력성이나 예의바름은 지금껏 한 인간으로서 사람답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의 결과입니다 과거의 희생제물의 역할도 따지고보면 희생제물을 보며 ' 난 저렇게 되지 않아야지, 그렇다면 어찌 살아야할까? 그렇지 일단 남들이 잘 봐줄 수 있게 잘 보여야하니 공손하게 살고 또 언젠간 나도 저렇게 희생제물을 처단할 수 있는 위치를 점유할 수 있는 능력자(예지력 킹왕짱)가 되기 위해 배우고 익혀야겠다' 고 사유체계가 돌아가게 될 겁니다
처벌받기 어려우니까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급발진 하는 사람들이 많은거 같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악플을 쓴다기 보다는, 악플을 자주 다는 소수의 부류들이 있음. 자존감 낮고 열등감이 높은 사람들은 운동이나 독서, 취미, 친구와의 대화, 가족과 여행, 산책 등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어나가지 못하고, 술, 담배, 악플, 범죄, 불법행위 등을 저지르며 스트레스를 잘못된 방식으로 풀어나감. 그러면서 스스로 더 안좋은 환경에 빠뜨리고, 점점더 힘들게 살아감. 공격적 표출행위가 내부로 향할경우 자해나, 우울증, 히키코모리, 자살 등 자신 스스로를 파괴시킴. 공격적 표출행위를 치료하기 좋은 방법으로는, 위에 말한 여러가지 방법들로써,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어나아가며 좋은경험으로 자신을 환기시켜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가거나, 스스로 통제가 어려울경우 상담심리사나 정신과상담치료를 받으면서 스스로를 치료해 나아가야 함. 공격적 표출행위를 치료하지 못할경우, 성격장애가 더 심해져 범죄자가 되거나, 더 심한경우 정신병자가 되어버림. 크고작은 성격장애까지 포함하여 전인구의 하위 10%는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다고함. 희생제의에 대하여 오늘 처음 들어봤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집단을 가든, 절반이상은 왕따나 외톨이가 존재하였음. (고등학교 때부터 35~40여개의 집단에 속하며 여러형태를 경험함.) 초중고는 전반적으로 친구들끼리 잘 지냈는데, 스무살이 된 시점부터 알바나 모임, 교육과정, 봉사, 자영업, 직장생활 등 다양한 집단을 겪으며 느낀점은. 집단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개체를 타게팅하여 괴롭히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음. 이것은 남녀노소 불문이였으며, 어린시절 이런 경험이 적었던 나에게는 적지않은 충격 이였음. 나에게는 누군가를 공격하는것도 공격을 당하는것도 굉장히 불쾌한 일이였는데, 다양한 집단을 겪으면서 느낀점은. 집단의 전체적 평균이 경제적소득이 높을수록, 고학력자이거나 지식과 지능이 높을수록, 이러한 공격적 특성이 낮은 경우가 많았고, 존재 하더라도 약한 경우가 대부분 이였음. 보통 일터에서는 일을 잘 못하거나 적응이 느린 사람을 타겟으로 집단이 정서적 공격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잘 가르쳐주고 도와주면서 천천히 기다려주면 된다는 나의 어릴적 생각과는 너무 다른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음.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기 보다는..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사람들이 많을 수록 이런상황이 많이 일어났음. 특정 타겟에 대한 집단 공격성은 집단으로 뭉치기 위한 매개체로써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며, 집단을 이끄는 리더의 성향이 어떠하냐에 따라 집단의 특성이 여러 방향으로 달라지는 것으로 보임. 개개인끼리의 악플에 대한 것은 자라온 환경에서 형성된 성격과 악플을 쓰는 시점의 개인 심리상태에 달라지는것으로 보이며, 타겟에 대한 집단 악플공격은 선동자들의 역할이 크다고 봄. 즉 결론은 악플은 스스로를 파괴시키는 행위라고 생각함. 안좋은 경험은 스스로를 더 안좋은 사람으로 만들어가니까. 멸종과 자멸을 향한 한 걸음인셈. (악플,술,담배,욕,싸움,경범죄 등 모두 포함)
정확한 수치 부분은 의문이 들기는 하나 말씀하신 의견의 많은 부분에 공감합니다. 생존이 각박한 환경이 다수의 사람들의 삶도 각박하게 만들고 그로인해 누적된 분노와 고통이 익명성을 빌어 악플이라는 모습으로 표출된다고 생각합니다. 심각한 수준의 악플을 쓰는 자들은 소수일 수 있으나 다수의 사람들은 그때 그때 처한 환경이나 심리상태에 따라 가변성이 있다고 보여지고 그것은 사회의 여러문제이 보여주는 양상과도 맞닿아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야 고소득 부유하고 여유있는 사람들은 나와 갈등을 일으킬 만한 소지가 있는 사람들을 더 부드럽게 배제할 수단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고여, 가난한 사람들은 강제로 내 성향과 맞지않는 사람과 부대껴야 하기 때문에 분노가 많은 것처럼 관찰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볼까요? 가난하고 빽없는 사람들이 가는 군대, 공립학교는 온갖 군상들이 몰려오져, 그거랑 부대껴 생활해야 하는 사람은 분노가 많을 수밖에요 사립학교, 군대도 빠지고 사교 활동도 취사선택 가능한 부유층은 분노에 차있지 않은게 당연한거고요 물론 물질적 여유랑 별개로 마음의 여유(인격)가 사람들 마다 다르니 가난한 사람이라고 죄다 분노에 찬건 아니고 부자라고 모두 여유있지는 않겠죠 큰 집단으로 보면 님이 관찰하신 빈자와 부자의 성향차이란건 제가 볼 땐 당연하다는 의미입니다
@@peaceful_world5 수치라기말하기 부끄러운게 그냥 제 경험에서 느낀점을 쓴거라 많이 부족합니다..;; 저는 사회시스템과 환경이 사람의 마음가짐을 바꿀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너무 급작스러운 발전아래 부작용으로 생겨난 환경상태나 사회시스템이 많아 사람들이 스트레스나 갈등이 많은거 같아요. 대표적으로 주거시스템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면 거의 80년대말 90년대초 인구가 도심으로 몰려와 급격히 확장되던 시기에 만들어진 주거형태로 살아가는데 다세대 다가구 같은 빌라건물들은 너무 안좋은상태로 다닥다닥 붙어있고 사각지대도 많고 심지어 관리주체도 없어서 엉망인데 잔뜩 몰려살고.. 그나마 관리주체가 있는 아파트 같은경우는 원래 가난한 사람을 타겟으로 만들어낸 주택종류인데 한국에서는 고급화되면서 투자수단으로 전락해버리고.. 높은 건물에 다닥다닥 붙어서 살아가는거 자체가.. 사람들에게 적지않은 무의식적 스트레스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관리가 잘되는 단독주택단지에서 사는 환경이 조성되면 사람들이 마음의여유가 조금더 생길것이라 생각해요. 그치만 돈이도는 세상에서 아파트가 주류가 되어가는거 같아서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한 마음이 들어요. 주거 외에도 회사문화나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큰 단점들이 존재하지만.. (일본제국 신민지 시절+군사독재 시절의 사회 영향을 상당히 많은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아주 깊고 넓게 자리잡아서 바꾸기는 절대 불가능할것 같아요. 세대가 여러번 바뀌면서 서서히 나아지는 느낌은 들어요.) 적극적으로 바꾸려고 하지않더라구요. 그냥 물흐르듯이 살던대로 익숙하니까 살아가는거 같아요.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믿습니다..
@@flyingpan2639 맞아요. 물질적 풍요가 기반이 되기는 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정말 중요한것 같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데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사고를 치면 정말 대형사고를 치는걸 뉴스에서 종종 나오는걸 보면, 경제적 능력이 커질수록, 그에 비례해서 마인드공부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러한 교육이 많이 부족하고, 보통 마음이 흔들리는 경우, 종교를 믿더라구요. 종교도 좋지만 좀더 현실적으로 심리학을 공부함으로써 상대와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볼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제 개인적인 바램이 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떠오른 생각인데 희생제이라는게 무리동물에서 삐뚫어진 리더십을 가진 생물들이 자주 일으키는 방법이라 생각하는데 타게팅후 선동하여 집단공격하여 집단을 더 견고하게 만들고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이 단체로 생활하는 비둘기뗴나 세마리 이상의 개 무리를 관찰하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리동물체계에서 집단을 이끄는 방법들 중 하나로써, 본능적으로 발달한 기능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람은 역사적으로 봤을때 사회문제가 생기면 리더가 이것을 결집시키면서 화살을 꼭 전쟁으로 돌리더라구요. 마음 건강한 리더는 다르게 해결할텐데 말입니다..
충코님 영상 잘보고있습니다. 최근 철학에 관심이 생겨서 여러 책을 읽어보다 현재는 카뮈 시지프 신화를 읽고있는데 내용이 참어렵습니다 이럴경우는 계속읽으려 노력해야하는걸까요? 아니면 쉬운책을 읽다 다시 도전해야할까요? 정답이 있는건 아니겠지만 답답한마음에 댓글남겨봅니다..!!
제가 예전 고등학교 때 그 책을 읽었는데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음에도 시지프스처럼 힘겹게 읽어나간 적이 있어요. 나중에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를 배운 뒤 읽었더니 80%는 번역 탓이더군요. 애당초 한국어에는 잘 맞지 않는 말을 직역해 버리니 이해가 안 갈 수 밖에요... Pascal의 Pensees 같은 저작도 첫 장의 "기하학의 정신과 섬세의 정신"에서 바로 번역이 엇나가는 바람에 정말 무슨 소리일까 이해를 못하다, 나중에 프랑스어를 배우고서야 Esprit de finesse에서 특히 finesse는 가느다랗다는 의미의 섬세가 아니라는 걸 알면 화가 나죠. finesse는 그렇게 형태를 묘사한 단어가 아니고, 오히려 직관의 정묘함, 예민함 (예민하게 본질을 바로 파악하는 능력)을 표현한 건데 시작부터 잘못된 길로 들어간 거죠. 그런데 한국의 철학계에서는 그렇게 그냥 섬세의 정신이라고 하는 듯 해요.... 대체 어떻게 이해가 가능한 건지.....
인터넷이 도입되던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틀 보면 정상적인 흐름 안에서 에티켓을 지키며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며 상대방의 틀린부분을 지적하는 지적 논쟁이 많았습니다. 이것은 한쪽이 인정하면서 끝나거나 팽팽하게 결론이 나지않고 마무리되는 부분이 많았죠. 감정대립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대립하는 부분을 많이 볼수있습니다. 이데올로기적 주제가 집단싸움이 되기 쉬운것같습니다. 일반인은 철학적 인문학적 전문 지식도 관심도 없어 충돌될 일이 별로없죠. 그런데 이 이념전쟁이 법과 제도를 통해 생활로 밀접하게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일반인도 모른척 가만있을수 없어진거죠.. 한국은 역사와 사상이 상당히 왜곡되있고 먹고사는데 급급하니까 철학이 빈곤하여 모호하고 첨예한 부분이 많아 대립이 극한으로 가고 있으며 이런 부분을 건드리며 조장하는 세력이 내부에도 있고 외부에서 개입을 하기도 한다고 봅니다. 이런 부분을 간과할수 없음.
인종과 국가 마다 특징 (유전자 특징일수 있고 이 유전자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나누며 습관화된 행동들도 있구요) 을 알고 역사와 교육 왜곡된 상태에서 받게 하고 이미지와 음악 그리고 글을 통해서 선동한다고 봅니다. 악플 문화는 일부러 놔두는거고 자연스럽고 손쉽게 암환자수와 자살율 그리고 정신병자들 늘어나게 한거죠. 열등감, 피해의식에서 오는 분노가 담긴 글들을 보면 한 공간 (인터넷도 공간이고 영토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에서 보게 되면 약한 일반인들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영향 받으며 망가집니다. 집안에 병자 한명만 생기면 같은 공간을 나누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생활이 무너지고 그 사람들 마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병들어가는것과 같은 이치죠. 결국 멘탈이 강하고 자기 세계관 확고했던 사람들과 악플 문화에 선동되어서 미친 사람들과는 수준과 급이 너무 차이 나게 되면서 계층이 새로 견고하게 세워지는 중인거 같습니다. 악플, 이미지, 음악등으로 선동되는 결과물중 가장 무서운게 거짓을 말하고 비겁한 방식으로 자기 분노와 열등감 표출하게 되는건데 이렇게 되면 상황 이해력과 정보 분석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되고 단체 사기 잘 당하기에 가장 적합한 상태가 될걸요. 나약한 인간의 본질과 인종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최고층들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현상에 대해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려는 순간 이미 패착일지도 모르지요. 그 근원에 대해서는 모른 채 이건 잘못됐다 그렇게만 하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요? 혐오는 별다른 이유가 없는 경우도 있지요. 공격 대상이 된 자의 처신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억압된 욕망을 해소할 수단으로 생각해서 그런 것일지도.
희생제물이 더이상 없는 이유는 무고한 생명의 희생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인류의 의식 수준이 발전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특히 서구문화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공식적 희생양으로 만듬으로서 기원후에는 그러한 의식이 필요치 않았던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희생의식이 존재하던 시절과 현대의 악플 사이에 시대적 / 문화적 갭이 커서 이 부분을 연결짓는 것이 살짝 붕 뜬 것처럼 느껴져요. 또 복수는 누구에게 당해서 일어나는 거지만 저는 사람은 아무 이유 없이 '기질적으로' 공격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ㅋㅋㅋㅋ 사회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니, 그냥 양쪽 다 억압된 공격성을 분출하는 창구 같아요.
제 개인적인 악플기전에 대해 말하자면은 화의 풍선이 폭발해서 하게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평시에 이걸을 해소하는 방법을 몰랐다가 한번에 엉뚱한데에 쏟아붓는... 하지만 절대 무작정 비난하는걸 꺼려하고, 발전적인 토의와 공감을 얻어내고, 다른사람의 공감을 얻어낸적이 많았습니다. 실시간 인기 게시글이나 30개의 추천이나...뭐... 이러면은 당한사람은 어린 양일까요? 하고 생각해보면은... 현 사법부도 완벽하지 않는데 어찌보면은 과한 공격성이 문제라는 생각이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지만 더하게 들게 된다는게... 어렵네요 으음... 화의 풍선을 해소하는 방법이..
요즘 sns에서 익명계정도 있지만 본인 사진과 가족 사진을 달고도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심지어 인신공격까지도 못난 동물 사진들을 들고와 놀리고 과하다 싶을만큼 다수가 한 명을 저격해서 악플을 달길래 사람들 참 성격 나쁘다 더럽다. 라고 말했더니 저를 도덕적 우월감을 경계해야한다네요... 그 댓글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계정은 제 얼굴을 걸고 위선적으로 보여야하는 계정도 아닌데 즐거울거면 차라리 악플다는게 즐겁지 않나?싶고 어디가서 굳이 나쁜 댓글 쓰려고 한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악플 다는 사람들을 타박하곤 했죠... 제가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악플이 얼마나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지 알기에 인신공격적 악플 달아본적 없고 범죄행위(성범죄, 살인) 기사에나 질타하는 댓글을 써본게 다였던것 같습니다. 참 많은 생각이 드네요.. 악플 다는거 그냥 냅두는게 정상인건가. 과연 무엇이 정상의 기준인가. 11:10 딱 이 논리를 대면서 사람들이 다 보는 sns에다가 영상을 올렸으면 악플은 감안해야하는거아니냐? 라고 하더라구요.. 뭔 인플루엔서조차 아닌 사람인데.. 그럴줄 아는게 맞나? 만약 그렇다한들 악플을 달게 받는게 맞나? 싶어서 악플 역겹다는식으로 말하면 이렇게 댓글쓰면 정의감이 막 느껴지냐며 질타받더라구요. 세상 사람들 생각보다 나쁘게 댓글 쓰는 사람이 많단걸 느끼며 혐오감도 느꼈고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며 상대하는 것도 스트레스라 결국 아이디를 삭제해버렸습니다.. 참 많은 생각이 들어요. 나는 악플 다는 사람들을 질타함으로써 우월감을 느끼는건가??... 전 그렇게 생각 안했는데 왠지 그런 말 들으니 자기혐오도 좀 생기고..... 맘이 안좋네요.... 왜 악플 다는게 당연히 인간은 악이니까 당연한 현상이다 라는듯 구는건지.. 하아 😢
소설, 혹은 드라마인 를 보고 느낀 점 : 만일 문화대혁명을 일종의 제의로 볼 수 있다면, 무고한 희생자를 발생시키는 것이 폭력의 증폭을 억제한다는 지라르의 견해는 틀렸음. 왜냐하면 그 결과로 지구인 전체가 삼체인에게 쫄망할 운명ㅡ거대한 폭력에 노출되어 버렸으므로. '그림자'가 낳은 투사 매카니즘은 거시적으로 보면 인류의 쫄망을 초래한다.
단 지금 기독교가 예수의 정신을 이어가느냐 라고 말하면, 기독교인인 나도 할말이 없음... 기독교에서 성경을 기반으로 동성애를 죄로 규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동성애자들을 향한 분노가 과연 정상적인 수준인가에 대한 의문이 듬. 동성애가 죄여서 그렇게 분노한다면 왜 다른 죄를 저지르는 자들에 대해서는 그리도 관대할까?
@@D.hotdog 엊그제 하도 지인이 희안한 소릴 해대서 도대체 어디서 그런걸 봤냐했더니 모대형교회에서 후원하는 모선교단체의 유투브 다큐였네요. 질병관리센터 자료까지 왜곡하고 사실을 교묘하게 짜맞춰 엄청난 공포를 주며 동성애자들과 진보 교육계를 범죄자로 만드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말 소름끼치더군요. 누구보다도 선한 얼굴로 신념 가득한 목표를 이루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 두려움을 갖지말라는 예수와 무관하게 오히려 두려움을 이용해 장사하는 모습이 가증스럽기 그지없더군요. 이 끔찍한 신념에 젖어 타인을 악인으로 만들고 자신들은 대단한 선인양 포장하는 모습에 기가 다 질리더군요. 그런데 저도 기독교인입니다. 오늘날 이런 작태를 비판하는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은 되려 그런 제정신아닌 자들에 의해 빨갱이 누명을 쓰고 있음도 심심치 않게 보고도 있죠. 천불이 납니다. 서북청년단 조직해서 선량한 민중을 끔찍하게 학살해온 세력들이 제 죄는 회개하지 않고 이러고 여지껏 삽니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신기하게 느끼는게 한국은 길거리에서 장애인이 안보여서 한국에는 장애인이 없는거 같답니다. 실제로는 장애인이 없는게 아니라 이동이 불편해서 못나오는 거죠! 지금 소득 양극화가 프랑스 혁명 때보다 더 높다고 합니다. 티비에는 유명인과 그 자식들 나와서 자랑질 하는게 거의다 입니다. 애들이 부모 소득에 따라 "2백충 , 3백충 , 임대충 " 이라고 놀리는 나라 입니다. 어느 사회 학자가 한국은 오만과 모멸의 체계 라고 했습니다. 19년간 자살율 세계 1위 인데도 남이 죽든말든 , 남이 고통 있든말든 매일 국뽕 먹고 "오~ 필승 코리아" 만 외치는 나라!!!!!!! 말 못하는 아기들을 수십년간 해외입양 세계 1위. !!! 초저출산 세계 1위 . 은둔형 외톨이가 61 만명. 한국에 대한 문제점을 말하면 "그렇게 불만이면 너가 이민 가라"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 "너가 게을러서 그렇다 . 더 노력 해라" "너나 잘 해라".... 전부다 개인탓만 하는 사이코패스적인 사회!!!!!!!! 매년 국적 포기자가 한국은 2만명 정도 , 인구 2.5배 많은 일본은 3천명 정도 . 일본 보다 16배 국적 포기자 많은 한국. 한국에서 유학한 몽골인이 한국인들로 부터 "성형해라" "쌍커플 수술해라" "다이어트해라" ... 간섭이 엄청 심하고 자존감 떨어지게 했는데 미국에서 유학할때 미국인들은 칭찬 일색 이더랍니다. 한국인 청년 유튜버가 자전거로 미국 횡단 하는데 미국인들은 수시로 차들이 서서 한국인에게 "뭐 필요 한거 없냐?" 고 물어봐주고, 먹을거 주고 , 자전거 고장나면 자기 시간 들여서 같이 고쳐 주더군요. 또는 캠핑장 , 숙박시설 , 수리점 까지 공짜로 태워 주는 사람 널렸구요. 어떤 미국인은 자기 집에 재워 주고 식사 대접 하기도 하고 , 어떤 미국인은 편의점에게 계산 하려니까 자기가 대신 계산해 주면서 자전거 여행을 응원 해주더군요.!! 이 유튜버가 한국에서 자전거 여행 할때는 누구하나 도와주는 사람 없고 외로웠다고 합니다!
ㅎㅎㅎㅎ 어떤 분야든 자기가 보고 싶은 단면을 보고 비판, 비난하는 태도는 무척 위험하다고 보는데, 그 또한 그 나름대로 살펴볼 수는 있겠죠. 본질을 빗겨나서 어떤 단면을 보고, 보고 싶은대로 보고, 해석하고 싶은대로 해석하는 것에서는 어떠한 종교도 자유롭지 않을 것 같은데, 정일권교수라는 분이 기독교 이신것 같은데, 이 분이 기독교쪽 사람이라는 전제를 붙이고 그분의 말을 전하는게 맞지 않나 싶네요. 말씀하신 내용에서는 어느 종교도 벗어나기 힘들어 보이고, 어느 종교나 가지고 있는 문제로 보이는데;;; 종교는 없지만, 종교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써 드는 생각을 좀 남겨봤습니다. 요즘 다시 성경을 읽고 있는데 불편한 내용들도 참 많거든요. 불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보고 있는데 저는 아직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지만, 정일권 교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한 번 찾아볼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종교가 그렇지 않나요? 그분의 의견은 잘 모르지만 그러면 예수님은 뭐죠? ㅎㅎ 부처님은 편하게 누워서 돌아가셨는데.. 틱광둑같은 스님이 맘에 안드신건가 불교가 소신공양으로 현대사에 아주 큰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 사례를 비판하는(자신들은 그런 영향력이 없어서 부러워하는?)의견들이 있어왔거든요
악플의 심각성은 공감합니다만 , 르네 지라르의 주장은 시대성에서 조금 다르지 않을까라 생각해요. 현대의 폭력성의 원인은 단순 인간 본성으로 설명하긴 어려운 부분이있다고 봅니다. 보기싫어도 보게 되는 sns라던지 비교되기 싫어도 비교되는 너무 가까워진 개인간의 거리같은..개인간이 너무 가까워 졌을때 느낄수 있는 상대적 박탈감과 불안함이 폭력성의 본질질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아가 그 불안함은 이른바 초식 동물 같은 삶을 살게하죠. 누군가의 희생으로 나의 안위를 보장받는.. 초식동물의 삶이나 지라르의 희생제의는 비슷한듯하지만 현대의 폭력성은 지라르가 말한 전통적 사회체계속 인간 본성과는 다른, 개인간 거리에서 오는 불안함이 본질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