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원 씨는 야구만 잘했던 게 아니라 다른 선수들을 이끄는 보스 기질까지 있어서 더 멋졌던 분이죠. 선수협을 이끈 것도 그런 기질 때문이었던 것이고. 자신은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였지만, 무명 프로선수들의 복지를 위해 스스로 나섰다는 게 대단하죠. 선수협 시작한 것도 아무 인연도 없는 김대현이라는 해태 선수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일 때문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이 사람 정말 멋진 사람이구나 싶었죠.
난 선동렬 고교 2년 선배이자 선동렬 팬이지만... 만화에서 튀어 나온듯한 강렬한 이미지는 최동원님이 전무후무합니다 이미 고교때 전국대회에서 한게임 삼진 20개를 잡는걸 보고 만화에서나 본 마구를 던지는줄 알았으니까요 지금까지도 안나왔지만 앞으로도 그런 혼을 던지는 투수가 나올까요...
@@user-kp3qt7ps7l 저당시 그러니까 80년도에서 90년도는 선발투수가 기본적으로 한 경기에서 공을 못해도 150구 이상은 무조건 던지던 시대 지금처럼 선발 관리를 잘해줬던 시절도 아니라서 오늘 150구 던졌으면 최소 5일은 쉬게 해줘야 하는데 다음날 또 150구 그다음날 또 150구 이상 이렇게 던지니 팔이 많이 아작나던 시절 그래서 더이상은 안돼는 기록이란거에요
그시절 최동원의 경기들을 볼 수있어 행복했다 그 아우라뿜뿜한 투구폼을 흉내내고 그 금테안경이 멋져보여서 부모님 쫄라대 안경맞추고..ㅋ 결국 집안에 한명도 안경안쓰는 집에서 난 지금도 안경을 쓰고 있다는..최선수 하늘에서도 멋진 경기 하고 계시나요? 이제 최선수가신 나이때보다 훌쩍 넘어 저도 머지안아 최선수 만나러 갈것같네요 거기서도 열심히 응원할께요~~
대학졸업후 동기 김용남이 한국화장품과 4천만원 계약하자 최동원은 실업 롯데와 5000천만원에 계약 5천만원중 2천9백만원을 어음으로 지급하고 81년 말 프로야구 창단을 이유로 실업 롯데를 해체시키면서 최동원에 어음을 지급 안 하는 사기 짓을 벌여. 이때문에 83년 프로 입단때 계약금 5천만원 연봉 3천만원에 미지급 2천 9백만원에 도장을 찍었지만. 롯데는 끝내 미지급금을 지급 안 했다는
최동원선수도 군대에 걸려서 못 갔어요 당시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영입할려고 적극적으로 구애를 했지만 롯데의 방해와 군문제로가지 못 했습니다 선동렬선수도 군문제로 못 갔지요 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서 해결을 했는데 외국을 진출하려면 국내서 5년을 선수생활을 해야하는 독소조항이 있어서 좌절됐지요 5년 국내에서 선수생활을 해야하는 조항이 없어진 것은 98년 방콕아시안게임때 부터 없어젔어요 이유는 메이져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던 박찬호선수가있어서 야구인들의 로비로인해서 규정이 바뀌었습니다 그 당시 병역혜택을 본 사람중에 한 사람이 김병헌선수지요
지금의 롯데팬은 최동원이 남긴 마지막 유산이다. 최동원이 심어놓은 롯데시절의 기억이 대대손손 내려오면서 지금껏 롯데팬으로써 유산이 내려오고 있는거다. 그리고 최동원이 3차전 끝나고 "동렬아.끝장승부 함 안 봐야겠나?"라니까 선동렬도 일단 지기 싫어서."그렇게 해요."했는데 3차전 이후로 며칠 끙끙거리면서 하기싫다고 학을 떼고 있었는데 최동원은 이틀뒤인가 또 등판하고 있더라고...
나 어렸을때 집이 전라도라서 해태광팬이었는데 삼성보다는 같은제과업계인 롯데랑 대결구도가 굉장했지... 그래도 최동원선수는 주위에서 욕하는건못보고 대단한투수라고 인정했었음... 나도 전라도라 무조건 1위투수가 선동렬이라고 생각한거고 2위는 최동원이었음... 그리고 우리들끼리 선vs최 누가 더 세냐고 싸울정도였으니 대단한 불세출의선수였던건 사실임
누가 더 위대하냐면 스포츠에서는 기록이 아니라 주는 감동의 수위를 기준으로 따져야한다. 펠레 마라도나 메시 중 나는 마라도나다. 골 기록은 3명 중 떨어지지만 감동이란 숫치로 안보이는 그 무언가가 있다. 82년 전쟁에서 진 국가의 국대가 전력이 비슷한 상대를 혼자서 손으로 넣고 혼자서 드리볼해서 넣고.. 최동원이 그랬다. 전력이 비슷한게 아니고 한참 떨어지는 팀을 데리고 혼자서 다했다. 류현진이 지금 올해 한화 데리고 올해 엔씨랑 붙어서 혼자 5게임 나와서 4승 1패 했다고 상상해봐라. 가능하겠니?
나 중딩때 선동열이 일본 가네마네 하기전인데.. 최동원은 공던지는거 보지도 못했고 잘했었다는 소리만 들었던거같음.. 그때 OB가 참 잘하던 팀중 하나.. 이제와 보니 개인 커리어는 선동열이 잘했고..전체 야구인들의 질과 존경은 최동원이 받을만 하다고 봄.. 최동원이 삼성을 갔었더라면...좀 더 오래 선동열처럼 커리어를 쌓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결국 최동원은 롯데에 이용만 당하고 몸만 혹사를..
역사 근본 따지는거 좋아하는 롯데의 역사에서 영광이라고 할만한 것의 절반은 최동원이 다 한거나 마찬가지 45년 동안 우승이 두 번밖에 없는데 그 중 한번은 온전히 최동원이라는 한 사람의 능력으로 이뤄냈으니 말 다했지 그런 선수를 버리고.. 최선수는 살아생전에 영결은 커녕 은퇴식도 못해보고 돌아가셨는데 (심지어 장례비도 한화측이 지불) 롯데는 최동원을 표팔이 유니폼 팔이에나 잘 써먹고 있으니 이건 고인 능욕이나 마찬가지 롯데는 진짜 한국 스포츠사에 길이남을 쓰레기같은 팀
예! 최동원이 몇수 위죠! 지금에서야 선동렬 VS 최동원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여러가지로 최동원이 한참 선배죠! 그리고 영화속 맞대결은 최동원이 전성기, 그것도 프로 전성기도 지난 시점의 일인데... 기록상으로는 성동렬이 한수 위 맞습니다! 그 시대에 해태는 완전 초호화멤버들이니, 김응룡의 허락하에 방어율 신경써도 되는분위기! 한데, 롯데는? 아니였죠! 그리고, 팀을 위해 희생힐줄아는, 타인을 위해 희생할줄아는 최동원은 야구선수 그 이상의 분!
선동열도 양키스한테 오퍼왔는데 안받아서 후회한적있음.. 그리고 최동원 vs 선동열.. 솔직하게 최동원보다는 관리받으면서 투구해서 전성기가 오래간 선동열보단 최동원 평가가 더 높은게 사실이지 최동원은 웃긴게 그동안 무리해서 어깨 인대 1개는 끊어졌을터인데 87년까지 리그 정상급 성적 유지함 전성기가 지났는데도 전성기 선동열이랑 라이벌로 불릴정도면 말 다한거지 이게 진짜 대단한게 한시즌 30승 400이닝 던져서 어깨 작살난 장명부는 그 시즌 이후로 끝났는데 최동원은 고교시절때 더 했을터인데 프로와서 살아남았다는거임 그리고 선동열이 선발 등판해서 최소 3~5일 쉴 동안 최동원은 2~3일 쉬고 완투, 구원등판 그래했는데도 대단한거지 최동원이 선수들 살뜰히 챙기고 선수들 위해서 선수협 만드는 등 멋진모습 보였는데 선동열은 나이 든 레전드 그냥 내치질 않나 최동원 최전성기때 미국갔으면 적어도 싱글A에서 허덕이던 박철순보단 성공함 꼴데 우승 공식은 안경 쓴 슈퍼 에이스와 그 에이스의 어깨임
최동원선수가 고인이 되고 난 뒤에 토론토 스카우터님께서 인터뷰한게 기억 납니다 100년이 넘는 메이저에서 당시 유일한 마이너없는 메이저 직계약으로 토론토와 계약했다고 그 내용에 대해서 토론토 연수갔던 허구연씨가 확인했다고 인터뷰와 야구방송 도중에도 여러차례 이야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