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취직 어렵습니다😢 우리 내 옛날은 사돈의 팔 촌 모두 연출이 있어서 든든 했던 적도 많죠😢 대학 물 먹은 사람들 허파 의 바람 들어서 게을러서 취직 안했죠 아니, 못 했죠 배보다 배꼽이 더 컸으니😢 그래도 그리운 옛날 입니다 정겨워요 밥도 맛있게 먹잖아요😂 밥심이 힘이라고 생각을 했으니
85년은 아니고 3저호황은 86~89년이고요 그때 취업도 많이 뽑고 월급도 급등하면서 소득이 엄청 높아졌죠 집값도 폭등하면서 빈부격차도 커졌지만요 그렇게 90년대 중반까지는 취업이 원활했으나 97년 후반기부터는 180도 달라졌죠 86~96년까지 대졸 취업한 세대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재수 좋은 세대같아요
85년이면 학력고사 시절이네요. 전국 광역시에서 인문계에서 중간 정도 해야 후기4년제 대학 겨우 들어가는 시절로 기억나네요. 그것도 재수하고 운이 좋아야 후기 턱걸이 했어요. 전문대 입학생은 후기 편입할수도 있었서 딱히 루저가 되는건 아니였음. 그만큼 학생이 미어터지던 시절이였어요. 당연히 취직도 미어터지던 시절이였습니다. 저때가 일본이 플라자 합의 하던 해인데 일본이 잃어버린 30년 시작 년도입니다. 그리고 한국이 반사이익으로 단군이래 최대 호황시절 도래합니다. 지나가던 개도 만원짜리 물고다니던 시절이 93년정도까지 지속되다가 금융실명제 한다고 어쩌구 하고 나중에 IMF 시발점이됨. 10년전에 유럽에서 조사한 자료입니다만 중국다음으로 한국2등 조세회피지역 큰손이였음.
81년 대학입학정원을 대폭늘려 80년대중반 일시적으로 취업난일때가 있었음. 특히 문과계통은.. 물론 지금보다는 덜했지만 항상 일정기간 취업못하는 부류는 있어왔음.. 그거 자체는 있을수 있는데 대학졸업하고 1년남짓 취업안된다고 낙심해서 귀향해서 농사짓는다는 설정은 무리가 있음. 보통은 부모들이 내려오라해도 도망다니면서까지 안내려오는게 일반적..
@@user-ws6cu3sp1u 박정희 말기에 태어나 그 전두환이 시절에 시골농촌의 가난한 집에서 자랐던 나입니다. 공부를 못 한다고 아버지에게 맞고 촌지를 안 준다고 선생님들에게 뒤지도록 맞으면서도 어디 한 군데 하소연도 못 하고 편도 2.6Km, 왕복 5.2Km나 되는 구불구불한 시골 비포장길과 산을 두개나 넘어서 걸어서 학교에 다녔던 나입니다.
@@STARGATE_SGC 이거 보세요 편도2.6킬로 같으면 불과30분이면 걸어갈수 있는데 무슨 엄살을 떨어쌌소 시골에서 그 정도면 아주 가까운 거리 아니요 요즘은 건강을 위해서 하루 6킬로씩 일부러 운동 삼아 걷는 사람들도 많은데 오히려 돈안들이고 운동하면 좋은것 아닌가요 박정희 같은 분들은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가 12킬로(30리)나 떨어져 있어서 하루 24킬로씩 왕복으로 걸어다니고 통학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는 4년제 소학교) 그리고 당신이 머리나쁘고 게을러서 공부 못한 것을 누구탓을 해쌌소 그런식으로 본인의 무능과 모자람을 사회탓을 하면 되겠습니까 오히려 당신의 한심함을 스스로 널리 퍼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절만 해도 선생이라 하면 사회의 모범이 되는 분들인데 요즘은 교사라 해도 평범한 직업인에 불과하지만 당시만 해도 심지어 여교사가 화장만 요란하게 해도 크게 비난받을 때입니다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시절에 선생이 촌지 안준다고 학생을 때렸다면 아주 악질적인 인간인데 그게 사실이라면 경찰이나 교육청에 제보를 하지 그랬습니까 그 시절에는 그런 제보 한통이면 당사자는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바로 매장됩니다 그만큼 엄한 도덕성이 요구되던 시절입니다 전두환 시절 경북 모벽촌의 시골에서 고교 교감 선생이 학부형과 간통을 한 사실이 폭로된 적이 있습니다 이게 소문이 나자 간통죄는 친고죄임에도 제3자가 검찰청에 제보를 해서 당사자는 즉각 구속된 후 겨우 합의를 하고 풀려났는데도 학교에서 파면되고 퇴직금 연금을 한푼도 받지 못하고 그 사람은 그후 먹고 살길이 막연한 관계로 멀리 떨어진 대구에서 아파트 경비원이 되어 20여년간 근무했다고 합니다 지금 같으면 공직자가 파면되어도 퇴직금 연금을 절반을 받게 됩니다 요즘은 간통죄는 폐지되었지만 폐지되기 전에는 간통현장에서 붙잡혀도 끝까지 잡아떼고 심지어 두남녀가 벌거벗은 상태에서 정액까지 채취한 상태에서 끝까지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고 잡아떼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에는 대부분 불구속상태로 기소돼 재판을 시작한것입니다 그런데 전두환 시절만 해도 간통죄는 증거고 나발이고 간에 제보만으로도 바로 구속되던 시절입니다 1983년에 최고인기 여배우 정윤희 씨가 (당시 27세) 중소기업 사장이던 43세의 유부남과 자기집(아파트)에서 바람을 피우다가 현장을 덮친 유부남의 부인과 경찰관들에게 적발된 사실이 있습니다 당시 그 부인은 일부러 방송사에 제보를 해서 언론사 카메라까지 동원했는데 현장에서 두사람은 옷을 입은채 소파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출동한 경찰에 연행됐는데 처음부터 정윤희가 엉엉 울면서 용서를 비는 장면이 생중계 하듯이 뉴스에 그대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두사람은 함께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된 상태로 있다가 그사장이 부인과 합의를 하고 3일인가 있다가 함께 풀려났는데도 정윤희는 그대로 연예계를 떠나고 그 사장과 정식으로 결혼을 하고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도덕성이 높은 시절이었습니다
김대중 김영삼 시절에도 선거때는 공짜로 술사고 밥사고 현금 박치기로 표를 사는 일이 비일비재 입니다 저때만 해도 선거때마다 전국 식당 술집 인쇄소(불법 홍보물이 난무함)가 호황을 누리고 했습니다 얼어붙은 경기가 선거만 되면 풀리고 심지어 노태우와 3김이 맞붙은 1987년 대선후에는 물가폭등으로 전국에서 집값이 크게 폭등했습니다 1987년 6월에 대구시 수성구에서 2천만원 하던 집이 1988년 6월에 1억에 거래됐습니다
@@sanglee7877 1980년대에는 대구공고만 나와도 어지간하면 현대중공업 대우중공업 현대자동차 대우조선 같은 곳에 정규 생산직 사원으로 다 들어갔습니다 2003년에 보니까 울산 현대자동차의 5년차 생산직 사원 연봉이 1억원 입니다 창원 대우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의 전설적인 기능의 명장 김규환(20대 국회의원 1956년생) 씨는 초등중퇴의 학력으로 사환으로 입사했다가 사장급으로 승진한후 퇴사했지요
@@sanglee7877 1980년대에는 공고만 나와도 현대중공업 대우중공업 현대자동차 같은 곳에 다 들어갔습니다 2003년에 보니까 울산 현대자동차의 생산직 사원 연봉이 1억원 입니다 창원 대우중공업의 전설적인 기능직 사원 김규환씨(20대 국회의원 1956년생)는 초등중퇴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사환으로 입사후 사장급을 역임한 후 퇴사를 했습니다
83년도 초등학교 졸업할 때 장학금으로 5만원을 받은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래서 85년도에 30만원이면 시골에서도 생각보다 큰돈은 아닌데, 가끔보면 전원일기 작가분들이 당시 현실 보다 어렵게 묘사하는 것 같군요. 전원일기에 배경이 되는 곳과 멀지않은 곳에서 중학교 시절까지는 보냈는데, 어쨌든 그래도 옛날 생각나고 좋습니다.
시골에서 안 살아서 헛소리를 하시는가 봅니다 1980년대 초반에 30만원이면 짜장면이 5백원 정도 하던 시절이니까 그걸로만 비교하면 현재 가치로 3백만원 정도 하겠지요 그런데 저 시절에 농촌과 도시의 수준차이가 너무 커서 농촌에서는 현금이 귀하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시골 사람들은 현금1만원도 귀하게 여길 때입니다 그래서 현금품귀 현상으로 어지간한 거래는 현물로 이루어지고 심지어 애들 학원비 교회 십일조도 현물로 내고 병의원 한의원 진료비도 연말에 몰아서 후불 현물로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때만 해도 시골 한의사들은 초등학교 정도 나온 도제식 한의사들이 많았는데 대한민국에서 한의과대학이 정식으로 설립인가 받고 개교한 것이 1970년인가 그렇습니다 1970년대만 해도 시골에는 의대 치대를 나오지 않고 조수출신 도제식 의사 치과의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주로 그 지역에 한해 (주로 읍면지역) 진료허가를 받은 한지의(限地醫)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안과의사 공병우 선생님도 의대를 다닌적이 없습니다 (회고록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
옛날엔 국민연금이고 뭐고 노후 복지 자체가 없다보니 자식한테 노후를 기댔죠 여자는 취업도 못하던 시대라 무조건 아들 아들 했고요 지금 50대~60대들이 저 시대에 부모한테 시달린 자식세대들이라 자기 자식(2030대)한테 만큼은 뭐든지 다 해주고 노후는 알아서 하려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