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원 #최동원10주기 #철완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투수 최동원 10주기를 맞아 경기장 안의 무쇠팔 최동원을 넘어 폭력의 시대와 맞선 인간 최동원으로 재해석한다 #한국시리즈 #1984 #김용철 #한문연 #선수협 #선수노조 #지방선거 #김영삼 #다큐멘터리 #KBS다큐 #KBS특집 #롯데야구 #롯데자이언츠
프로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최동원... 프로 야구중에 훌륭한 선수는 많다...그러나 최동원 선수 처럼 실력과 인격을 두루 갖춘 선수는 최동원 선수가 유일하다... 언제나 자신보다 다른 선수를 챙겼던 선수.. 나는 단연히 우리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는 최동원이라 말하겠다..
선수로서 한 인간으로서, 레전드 오브 레전드입니다. 이제 곧 다큐가 영화로 나온다는 소식인데, 좀 더 그의 투구폼과 연투기록들을 제대로 자세히 분석해 주고, 모 여자 탤런트뽑기 위해 기존에는 없던 미스롯데라는 미인대회도 만들고 그녀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썼다는 건 이미 알려신 사실이죠. 그것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 돈을 그렇게 쓰면서도, 자기팀 선수들은 고기도 마음대로 못먹을 정도의 연봉을 강요하고, 연봉협상에서도 그가 문제있는 것 처럼 언론플레이 하고 , 선수협을 구성했다는 이유로 이 위대한 선수와 스포츠정신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연봉협상 언론플레이, 삼성선수들과의 트레이드, 은퇴이후에 까지도 고향팀에 돌아오지 못한 이유 등등를 제대로 조명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화면 7:06의 기록이 어떤 의미인지 좀 더 자세히 조명했으면 합니다.
자기 개인 욕심대로 메이저리그 갔으면 이런 얘기도 안나왔겠죠. 선동렬,최동원 등 미국프로야구 진출을 정부가 막았다고 완전 악덕 취급하는데 자국의 프로스포츠산업을 우선하는게 맞죠. 지금도 바로 해외진출하면 복귀시 불이익을 주는데 하물며 막 프로야구가 탄생했는데 선수들 해외유출 막는건 어찌보면 당연. 물론 그 선수들이 미국프로야구가도 바로 메이저 가는것도 아니고 마이너에서 전전하다가 그냥 올수도 있고. 그리고 중간에 전두환이 전라도민 30만명을 죽일예정이라는 등 저런 공포감조장하는 가짜뉴스들이 선동꾼들에의해 퍼지니 시민들이 동요하는 수밖에
최동원이 야구계에서 버림받아서 연예인으로 전향(?) 당했지만 그런 최동원을 야구인으로 복귀시킨건 롯데도 삼성도 아닌 한화였고 그의 가르침을 물려받은 투수가 지금 메이저리그 주전을 차지해 스승의 못다이룬 꿈을 이뤘다는건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공교롭게도 최동원이 생전에 스카웃제의 받은 팀과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가 뛰는 팀은 동일하더군요.
솔직히 KBO리그 성적으로만 평가하면 선동열이 최고지만 KBO 역사를 돌아보면 최동원은 리그 탑 플레이어인 자신의 영향력으로 모든 선수들의 복지를 위해서 깃발을 들고 앞장선 대의를 아는 진정한 사나이였고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남자였다. 1988년 1차 선수협 발족에 앞장섰지만 결국 이 사건으로 선수경력이 내리막을 걸었고 명성에 걸맞지 않은 초라한 말년을 보냈다. 반면 선동열은 2000년 2차 선수협 결성 때 후배선수들의 협조 부탁에 일본리그 소속이라는 이유로 협조에 소극적이어서 선수협 지도부는 섭섭한 감정을 갖게 된다. 물론 KBO 소속도 아니고 일본에서 은퇴할 선수에게 앞장서라는게 아니라 후배선수들을 위해 뒤에서 언론플레이 정도는 해줄수도 있었고 어떻게보면 운신이 더 자유로울 수도 있었는데도 말이다. 기껏 일본프로야구 선수노조 규약집 번역본을 보내준게 전부라고~ 이때 선수협사태에 앞장섰던 각팀 선수 거의 전부가 트레이드 당하거나 강제로 조기은퇴 당하는 운명을 맞았고 단 한명 빙그레 송진우만 살아남았다. 아마도 화끈한 재벌 회장님의 배려가 있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선동열이 감독으로 있으면서 양준혁과 이종범을 거의 강제 은퇴 시킨것도 선수협과 관련해서 두 선수에 대한 보복이 아닌가하는 의혹도 있다.
고 최동원투수가 롯데자이언츠를 우승시켰던 건 84뿐만 아니라 KBO창단 바로 전해인 81년도 포함. 당시 성무, 경리단등에 밀려 만년 실업 중하원권였던 롯데자이언츠 입단, 실업시즌 팀 전체 37게임중 무려 15승 2패 올리고 5전 3승제 한국시리즈에서도 6경기(3차전 무승부 포함) 모두 등판 2승 2패 올리면서 일당백 대역전 우승을 가능하게끔 만들었던 고 최동원투수. 그때의 무서움을 알았던 박영길감독은 84년 삼성 코치로서 최동원의 롯데를 피하고 OB와 맞붙자고 김영덕 감독에게 제안했으나 묵살. 결국 막판 2게임 져주기 파문으로 롯데를 택한 삼성은 다시 일당백 최동원의 롯데를 만나 그에게 4승을 헌납하게 됨. 물론 혹사는 안되겠으나 롯데뿐 아니라 한국야구 전체에서 두번 다시 저런 투수가 나올 수 있을까?
제 개인적으론 우리 나라 국가대표 에이스는 누가 뭐래도 최동원 선수였습니다. 특히 당시 넘사벽이던 쿠바나 미국을 상대로 당당히 맞서며 오히려 그들을 이겨내던 모습은 일회성이 아니었기에 더욱 국대 에이스로서의 인식은 선동렬 선수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네요. 더군다나 당시엔 국내에 140km 이상을 던지는 투수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는데 최동원 선수는 심심찮게 150 이상을 찍었고 커브도 128-130을 평균으로 찍으며 폭포수처럼 떨어졌기에 어린 제 눈엔 그저 서커스를 보는 것 같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네요. 간혹 이런 얘길하면 당시에 무슨 스피드건이 있었냐며 뻥친다고 의심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스피드건이 지금처럼 흔치는 않았어도 80년대 초반에도 중계방송에서 스피드가 찍혀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리고 티비 다큐 야구특집에서 투수들 스피드를 제시하며 제일 위에 최동원과 선동렬을 올리고 최고구속 152, 그 다음에 박철순, 하기룡, 황규봉 등을 올리고 최고 구속 148 이렇게 등급처럼 나누어서 보여주던 프로그램도 방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릴 땐 무조건 스피드가 최고인줄 알아서 누가 얼마를 던지는지를 두고 친구들끼리 설전을 벌이기도 했었죠.^^ 암튼 그런 설전에서도 항상 최동원은 논외였고 그래서 더욱 제겐 항상 '투수' 하면 최동원이 대명사처럼 떠오릅니다. 참고로 저희 세대엔 대부분 투수하면 최동원, 야수하면 김재박, 포수하면 심재원으로 떠올리며 친구들끼리 모여서 야구할 때 다들 각자 포지션에 따라 그 선수들 흉내를 내며 놀았었습니다. 요즘엔 잘 안 쓰는 말이지만 과거엔 대투수들에 붙이는 별호였던 그 철완이란 명칭이 가장 잘 어울렸던 선수가 바로 최동원 선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제게 최동원 선수는 여전히 현역 국대 에이스이고 크보의 제1선발 투수이십니다.
아 보고싶습니다 동원이형 초딩때 형폼으로 던진다고 동네친구들이랑 놀던 ......진정한 영웅입니다 동원이형 그리고 투병 후 형님 너무 마른 모습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보고싶습니다. 진정한 남자 동원이형... 형님이 헌신해서 만드시 선수협 형님 동네 후배 돼지가 다 말아먹고 있습니다
오늘 웬지 꼭봐야 할 영상인듯....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통치전략이라는 멘트..... 다만 저 잠실구장은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한대화선수의 쓰리런홈런과 한국시리즈 최동원선수의 역투를 평생 잊지못하게하는 구장입니다! 87년 최동원과 선동렬 두선수의 경기는 앞으로도 없을 최고의 명수부입니다. 그 밑바탕이 지역감정인게 안타깝지만 지금도 그 두 대선수의 역투는 최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