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에서 개발한 세계 최초의 16비트 게임기인 메가드라이브의 역사에 대한 기획영상입니다. 영상의 소스는 세가의 전, 현직 사원들(스즈키 유, 사토 히데키, 오쿠나리 요스케)의 인터뷰와 당시 게임잡지의 자료 및 서적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어느정도 부풀려진 부분도 있다고 생각되니 적절히 필터링을 해서 들으시면 더 좋습니다.
메가드라이브의 행보는 세가가 어떤 회사인지 여실하게 보여줍니다. 세가의 NERD스러움은 닌텐도와는 비교불허한 수준이었죠. 닌텐도는 참신함정도에서 멈춘다면 세가는 팬들도 놀랄정도의 괴악함마저 서슴없이 시도하는 회사였습니다. 세가의 콘솔사업실패에 대해서 당시 세가의 주축 개발자들이나 세가의 비지니스맨들은 하나같이 "세가는 너무 과하게 게임에 몰두했다"라고 회상하며 그게 세가의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말하죠. 라이트게이머들의 시각과는 달리 닌텐도는 재무적인 측면도 굉장히 세심하게 관리하는 반면 세가는 핵심 경영진들마저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경향이 강했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그런 사풍이 있었기에 세가 특유의 도전적인 게임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닌텐도와 세가의 경영친의 성격 차이가 여기서 드러난다고도 볼 수 있겠죠. 닌텐도는 절대 성공 못할거라고 생각하면 제작 자체를 불허하는데 비해서 세가에서는 성공 못할 것 같으면 "이 기회에 한번 만들어보고, 대신 실패하면 각오해라"라는 스탠스를 취한 것도 대표적인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죠. 그 결과물이 바로 버추얼 온이었고요.
세가게임은 아니지만 닌텐도에선 사회적 문제가 될것 같은 잔인하거나 너무 폭력적인 게임을 낼수 없었는데 세가는 그런거도 할수 있었죠 대표적인 예가 그 시절 미국에서 대박난 모탈컴뱃 ㅎㅎ 친구 집에 메가드라이브로 그 게임 할때 와 이런게 해도 되는거야? 그리고 기성세대들에 대한 반항심으로 더 즐겼던 ㅋㅋ
세가의 마케팅 디렉터 알 닐슨이 snes에 비해 동시 발색이 떨어진다는 점을 비꼬던 기자에게 마리오와 소닉의 화면을 동시에 보여줬던 일화가 인상적이었네요. 스펙이 떨어져도 어떻게 찍느냐가 중요하다 얼마든지 더 뛰어나게 뽑을 수 있단 이야기였는데 현역 땐 자사 게임이나 몇몇 타이틀 말곤 그 부분을 잘 살린 게임이 적어서 좀 아쉬웠죠. 최근에 나오는 유저 컬러 핵롬을 보면 물론 그 말이 거짓이 아니긴 한 것 같습니다만 ㅎㅎ 고속 cpu 처리에 화려한 컬러의 조화를 가진 게임이 더 많이 나올 수 있었던 잠재력이 존재했는데, 다 보여주지 못하고 수명이 끝나버려서 아쉬웠습니다.😂
서드파티에서 닌텐도에 현저히 밀렸었지만 나름대로 따라가려고 애쓰던 그 시절 2인자 세가의 도전을 전 높게 삽니다. 특히 메가드라이브의 방향키 컨트롤러는 굳이 스틱이 없이도 격투 게임이나 액션 게임에서 순간적인 빠른 대응하기에 최적의 컨트롤러인데 저 시절엔 경쟁사다 보니까 다른 경쟁 회사들에 방향키 저작권을 풀어주지 않아서 다른 회사들 컨트롤러는 조이스틱을 따로 구매하지 않으면 격투및 액션 게임을 하기 힘들다는 점도 그렇고(특히 소니 플스의 기본 컨트롤러는 조작감 최악인데..아직까지도 마찬가지인..) 게임계에 인상적인 족적을 남긴 회사임에 분명하지요.
@@rattel 그게 세가빠가 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서드파티 숫자에서 밀리면 세가에서 자체적으로 양질의 게임을 제작해서 대항하자는 작전이었던 것 같은데 말도 안되는 방식인데 그 바람에 세상에 나온 좋은 게임들이 많았었죠. 일본에도 그래서 여전히 세가 팬층도 많은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으로 나왔던 이세계 삼촌이란 작품에서 주인공인 삼촌이 세가빠라는 설정인데 세가새턴을 한참 굴리다가 이세계를 다녀온 삼촌의 얘기라 참 재밌게 본 것 같네요. 1등을 따라가는 2등만의 도전 정신이랄지 은혼같은 작품에서도 간간히 소개된 것 같고 아직 기억하는 팬층이나 관련 미디어도 많은 것 같고 이젠 여러가지로 뭉클해지는 추억이네요.
전세계 게임사들이 닌텐도의 발앞에 엎드려서 써드파티 노릇이나 하고 있을때 홀로 뛰쳐나와 닌텐도와 가정용 콘솔로 맞다이 뜨던 세가의 도전정신은 높이 살만합니다. 8~90년대중반까지의 가정용 콘솔 시장은 그야말로 닌텐도의 독무대였죠. 하지만 96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등장하면서 닌텐도 역시 콘솔시장의 왕좌에서 쫓겨나게 되죠. 세가는 여기에서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에 맞서 자사의 콘솔 세가새턴으로 영혼의 맞다이를 뜨게 되죠. 닌텐도 때도 소니 때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콘솔로 맞서는거보면 세가의 반골기질은 참 대단했었죠.
7살부터 이 모든 게임기의 역사를 겪은 사람으로서 어릴때 이해하지 못했던 무수한 궁금증 등을 모두 해결하여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마치 재 유년시절의 역사와 각 기업들의 역사가 다시 싱크되는 느낌이라서 아련한 향수 뒤에는 이런 치열한 기업의 집단지성과 의사결정이 있었던거라고 이해하니 제 유년시절의 추억들이 한층 업그레이드 되는 느낌이에요! 다시한번 고맙습니다
내 유년기 최악의 선택 - 슈퍼패미콤 대신 메가드라이브를 산 것 확대 축소 회전 되고 안되고는 그때의 시선으로도, 지금의 시선으로도 하늘과 땅 차이.... 사실 기술이랄게 몇 없던 시절이라 더더욱 저 3가지가 가능하냐 아니냐 만으로도 연출의 깊이와 다양성 면에서 차원이 달라짐 물론 그 덕에 소닉이라는 속도 몰빵 명작이 탄생하기도 했겠지만... 한참 시간이 지나고나서 특수칩과 여러 트릭들로 확대 축소 회전을 가능하게 혹은 유사하게 구현한 게임들이 메가드라이브에도 출시되었으나 늦어도 너무 늦은 시점... 세가는 80년대 중반 체험형 게임들부터 시작해서 전통적으로 항상 신선하고 앞서나가는 이미지였지만 막상 후발주자들에게 항상 쳐발리고 수확의 기쁨을 누리기는 커녕 과실을 다 빼앗겼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저런 게임들,머신들 그리고 콘솔에 이르기까지 다 겉모양만 번지르르하지 깊이라는게 없었음... 결국 이런 핵심적인 부분이 닌텐도와 세가의 지금 위상 차이를 만든게 아닌가 싶습니다
@@rattel 그래도 소닉과 베어너클 샤이닝포스 판타지스타 랑그릿사 시리즈를 즐기며 정신승리를 당시에는 했었습니다만ㅋㅋ 90년대 후반쯤 버벅이는 에뮬레이터로 슈패의 게임들을 뒤늦게 즐겨보고서는 어찌나 배신감이 들던지 ㅋㅋㅋ 겨우겨우 돌아가는 그 조악한 당시 에뮬레이터로도 슈패황혼기의 작품들은 정말 입이 쩍 벌어지는 수준이었죠
[이세계 아저씨]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면 세가 관련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거 보면 내 이야기인 줄....; 메가드라이브, 메가 CD로 정말 다양한 게임을 많이 했더랬죠. 샤이닝 포스 시리즈부터해서 라그나세티, 스토리 오브 도어, 루나 더 실버스타, 루나 이터널 블루 파픈메일, 3x3 eyes, 등 슈퍼패미컴 가진 사람들이 부러울때도 있었지만 묵묵하게 메가드라이브와 PC-Eengine CD-ROM2로 다양한 게임 많이 했더랬습니다. 생각해보면 슈퍼패미컴이 부러워서 그 외 게임기를 그렇게 사랑했나봐요. 얼마전에 무료 나눔으로 뿌리기 전까지 원더메가와 PC-Engine Duo 가지고 있었는데 간혹 생각이 나네요. 지금은 넬모레 50을 바라보는 중년이 되고 피지컬이 딸려서 게임을 오래 못하지만 언제든 다시 그 날로 돌아간다면 또 똑같이 메가드라이브와 PC-Engine을 가지고 놀 것 같습니다. 특히 루나 이터널 블루(MCD)와 천사의 시1,2(PCE)의 음악은 정말 평생 들을 거 같아요. 이왕 특집 하시는 김에 MSX도 한 번... 콘솔 게임기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시리즈가 이어지는 명작 게임들이 정말 많잖아요 ㅎㅎ
세가는 어찌보면 막장이고 어찌보면 풍운아요.어찌보면 개발에 참신한 회사였죠. 발매기기가 아무리 스펙이 떨어져도 다운그레이드라도 이식을 해주어 게임 공장은 세가란 말이 있을정도 였죠. 비록 지금 소프트 회사로 변경되었지만 세가의 하드웨어 덕분에 루나 시리즈나 소닉이나 그란디아. 쉔무가 나올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아 그래도 메가드라이브 미니2가 정발 안해줘서 아쉅네요.😢
일부 국가에서는 지금도 생산하고 있다죠. 라이센스 게임으로는 브라질에서 2002년까지 신작이 나왔고, 비 라이센스 게임으로는 2022년에도 작품이 나온 대단한 게임기입니다. 2022년도에 나온 신작은 카트리지 용량이 무려 120메가비트. 게임기 생산을 거듭하면서 그 정도 용량도 인식할 정도로 개량에 개량이 더해진 슈퍼머신입니다. 인생 겜 중 하나이며 시간제로 오락실에서 동전 넣어가며 했던 건스타 히어로즈를 마음껏 할 수 있었을 때 그 감동이란....
메가드라이브는 엄청나게 매력적인 기기였죠. 제가 게임기 구매를 고민하던 시기에는 이미 괜찮은 게임들이 상당히 많이 나온 시기였기에 친구와 협의해서 각자 메가드라이브와 슈퍼패미컴을 사서 같이 공유하자는 말까지 할 정도로요. ...물론 제가 슈퍼패미컴쪽이었지만, 선택을 먼저 한건 친구였습니다!
처음으로 산 게임기였습니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것 같네요. 액션이나 RPG보다 전략 시뮬레이션의 재미를 더 느끼게 해준 게임기였습니다. 시스템소프트...ㅎㅎㅎ 아직까지 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BGM. 아! 랑그릿사도 있었군요!... 후에 파판4 때문에 슈패로 넘어가게 되는데...
어렸을 때 미국 영사관에 근무하던 셋째 고모가 처음엔 NES 다음으로 선물해 준 게임기가 제네시스 였는데 당시 메가드라이브 팩을 꽂을 수가 없어서 선물로 받은 소닉 2, 돌핀만 주구장창 하다 질렸던 기억이 나네요ㅎ.. 팩 삽입구의 걸리는 부분만 제거하면 메가드라이브 팩 쓸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어린 나이에 고장 날까 고민만 하다 결국 외사촌에게 물려줬던 기억이..ㅎ
세가 콘솔의 핵심방향은 항상 “세가의 아케이드 성공작을 집에서 즐기게 한다”였던 것 같습니다. 메가드라이브 시절에도 애프터 버너 같은 아케이드 이식작에 많이 의존했고 새턴 시절에도 버추어 파이터에 많이 의존했죠. 드캐 처음 나올 때도 버파3가 제일 킬러 타이틀이었고요. 저희 학교의 경우엔 “오락실 게임 좋아하는 애들”이 세가 새턴을 많이 구매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다 보니 매니악한 콘솔의 이미지가 강했죠 😊 반면 닌텐도는 온가족이 즐길 수 있다는 이미지가 강했고요. 소니는 강력한 멀티미디어 기기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1980~90년대 게임시장의 중심은 아케이드였고, 세가의 전략이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케이드 기판의 발전보다 가정용 콘솔의 스펙이 낮았기에 그걸 완벽이식하는게 어려웠다는게 아쉬운 점이죠. 그 해결책을 보여준건 오히려 SNK의 네오지오였지만 이쪽은 가격이 더럽게 비쌌기에... 결국 세가는 그때그때 시대의 발전에 뒤쳐지거나, 지나치게 앞서거나 해서 패배하게 되었네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재믹스로 버티던 초딩 시절 드디어 16비트 게임기를 살수있는 기회가 생겼고 용산 전자상가에서 슈퍼패미콤과 메가드라이브를 놓고 저울질하다가 게임팩이나 본체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메가드라이브를 선택했던 그 날... 소닉, 베어너클, 통키, 샤이닝포스, 게인그라운드 등등 수많은 명작들을 즐겼지만 항상 마음 한켠에 아 그때 슈퍼패미콤을 살 껄...하는 미련이 가득했던....
잘봤어요. 저도 아케이드 오락실 파라 남들 슈패미 플스 살때 메가 드라이브, 새턴, 드캐를 보유했었죠 전 세가의 하드웨어 벤더로써의 한계는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메가드라이브 까지는 그래도 어느정도 성과가 있었습니다만 새턴에서 카운터를 맞고 이후 드캐에서 화룡점정을 찍어버리며 철수하게 되죠 새턴 출시의 경우 3D 게임의 태동기였고 세가는 AM2 개발부를 위시해서 분명히 3D 게임의 선구자에 있었습니다. 문제는 새턴은 2D 친화적이라는 것이죠. 소니가 혜성처럼 등장해서 새턴보다 나은 3D 성능으로 하드웨어 시장을 장악해 버립니다. 뭐 닌텐도에 등을 돌린 스퀘어의 파판을 어캐든 끌고 왔으면 어떨지 몰라도 새턴의 한계는 명확했습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개발부 간의 소통이 안되었던것인지...버파 1 조차도 나중에 리믹스라고 개선판 팔아먹고 그랬으니까요 결국 드캐를 소니보다 조금 먼저 발매합니다만 이번엔 서드파티가 부족했죠. 뒤이어 나온 플스2와 닌텐도, 자본을 앞세운 엑박까지 세가는 걍 압살당해 버립니다. 드캐는 뭐...저도 보유하고 있지만 밀리언 셀러가 손에 꼽아도 남아도는 정도니 말 다했죠 어릴땐 세가가 하드웨어 시장 철수한다고 했을때 욕만 나왔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세가는 지금쯤 없었을테니까요 ㅎㅎ
당시에는 세가가 이 콘솔로 얼마나 많은 적자를 보는지 전혀 알 수 없던 시절이기도 했죠.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해서 매년 실적표를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오히려 드림캐스트가 단종되는 그날까지 세가가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이 아케이드 시장에서 벌어들였던 수입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려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겠죠.
아는 애 집에서 제가 처음으로 접한 16비트 게임기인 점만으로도 이 게임기는 저한데 있어서 커다란 의미를 가졌지요. 실물을 처음 봤을때 특이하게 생긴 커다란 컨트롤러, 볼륨 조절기가 붙어있고 16이라는 숫자가 쓰여져있는 본체 디자인, 큼직한 캐릭들이 움직이는 수왕기, 다이나마이트 듀크 게임 등등, 1993년은 패미컴 게임을 하면서도 게임상점에서 메가드라이브와 슈퍼패미컴의 게임들을 접하면서 새로운 세계에 들어간, 그야말로 추억의 시절 중 하나였습니다^^
세가팬으로서 좋은 영상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궁금한점은 제가 알기론 메가드라이브는 확대,축소 기능이 없는갈로 아는데 소닉에 표현되었다고하는데 하드웨어적인 방식이 아닌 표현수단이었까요? 그당시에 슈퍼패미컴의 확대,축소,회전 기능과 풍부한색감에 메가드라이브 유저로써 부러움을 느끼던 때가 생각나네요 ㅎㅎ
사실 메가드라이브는 말씀하신대로 하드웨어에 확대 및 축소 기능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일히 노가다로(...) 소프트웨어적으로 구현해야했죠. 말하자면 그림을 이리저리 돌리거나 해상도를 빠르게 조절하는 식으로 비슷하게... 마치 새턴이 유사 폴리곤을 구사하는 느낌으로 표현했었습니다. 마침 유튜브로 1990년 당시 메가드라이브의 확대축소기능을 보여준 영상이 남아있었기에 공유해봅니다. 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IqK5ewDzrDk.htmlsi=ocYwR83WX8JtZxH6
@@rattel 그랬군요,,기기의 성능한계를 소프트웨어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이 참 눈물겹네요. 그래도 역시 하드웨어적으로 표현되는 슈패의 효과에는 미치지못하는듯한 모습을 보면서 메가드라이브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왠만한 서드파티가 아닌 이상 확대,축소 표현하기가 참 쉽지않았을거같습니다 ㅎㅎ 당시 용호의권을 좋아해서 메가드라이브판을 구매했었는데 확대축소 삭제에 맘이 아팠었습니다.ㅎㅎ 후일 슈패로 용호의 권2를 구매했지만 역시 네오지오와의 성능한계를 또 한번 느끼게되었었죠 ㅎㅎ 답글 감사합니다 ^^
@@Secret_sunshineV 항상 새로운 시대를 여는건 세가인데 언제나 2인자에 머무르게 되는게 참 애잔하지만 보통 그 원인이 세가에 있다보니 뭐라 할 말이 없어지곤 하죠. 세가를 좋아하시는 분들 중에 세가를 애증의 존재로 보는 분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합니다.
게임기를 선택하게 하는건 성능에 앞서 어떤 게임이 있는지이기에 지금 가지고 있는 에뮬도 8비트 패미컴과 16비트 메가드라이브라는 묘한 조합입니다.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 시리즈도 3편이 워낙 전설을 찍다보니 오히려 그 이후의 시리즈는 관심이 푹 식어버렸고 메가드라이브가 2D 검술 게임은 정말 본좌급의 게임성을 보였기에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는 추억의 게임은 메가드라이브 쪽이 월등히 많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게임기 하나 사는데 새걸로 사면 20만원씩(...) 들어가던 시절인데 현재와는 재화의 가치가 다르다보니 이걸 두 개나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드물었죠. 저도 현실적으로 친구와 논의해서 서로 다른 하드웨어를 사서 공유했는데, 제 친구는 이 때 메가드라이브를 선택한 걸 10년 넘게 후회했었습니다.
초딩 1학년때인 89년 부모님이 사주신 대우전자 아이큐 슈퍼 컴퓨터로 처음 했던 게임이 세가의 시노비 (PC이식판이라 허접했지만)였고, 초딩 4학년때인 92년도엔 학교 끝나고 친구 집에서 삼성 슈퍼겜보이(메가드라이브를 삼성이 국내 정발한 게임기)로 베어너클 1과 소닉을 했던 기억도 있네요 시간이 흘러 2011년 일본에 살던 형이 준 플스 2를 가져와서 처음 한 게임은 또 PS2용 시노비였죠 (드럽게 어렵기로 유명한) 비록 게임기 시장에서는 콩라인이었지만, 저에게는 여러모로 추억이 있는 세가입니다. 세가 흥하길!!!
이런 현상이 발생한 이유도 자사의 서드파티들이 왠만하면 메가CD로 게임을 발매하려고 안했기때문에(...) PC엔진으로 동시에 낼 수 있는 게임들 위주로 발매되었다고도 할 수 있죠. 게임의 매체를 CD로 만드는 생각은 닌텐도도 했는데, 91년 당시에는 아직 시기가 이르다고 판단해서 이 계획을 백지로 돌려버렸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결과물이 발전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플레이스테이션이 되었죠.
와!!역시 메가 하면 소닉인데 영상 보니…잘 보고 좋아요 누르고 갑니다..조이스틱 너무 눌러서 패드 찢어진 기억이 나네여 as센타 가서 몇 천원(?) 내고 교체 받은적이 생각나네요…메가 시디등 전 잘모르지만 배우고 갑니다^^ 조석으로 날씨 틀리니 건강 유의하시고 목소리 톤도 좋아요^^
국딩때 전혀 기대도 안했던.. 아버지의 슈퍼겜보이 뜬금 선물 황금도끼 선더포스 그라나다 등등 열심히 불태워 엔딩보고 다 깬건 동네 샵가서 오천원 내고 교환 그땐 롬팩 노란게 정품 하얀건 삐품 개념도 없었서 가끔 악덕 겜샵 사장님들에게 덤탱이도 종종 당했었음.. 그저 못해본 겜은 군침흘리며 게임월드 게임잡지만 보고 대리만족... 그러다 12메가 대작 샤이닝포스 엄청난 광고에 와 12메가 ㄷㄷㄷ 이러며 명절용돈 잔뜩모아 주안역 지하상가에서 산 샤이닝포스... 대사집 하나하나 찾아가며 몰입해서 엔딩보고 막판 섬 가라앉을때 눈물찔끔하기도... 이 모든 추억은 진짜 기대1도 안한 아버지의 뜬금선물 슈퍼겜보이덕분 아버지는 이제 일흔을 넘기셨지만 못난 아들은 선물은 커녕 주택구입에 대출해도 모자른 금액을 좀 더 빌렸을뿐 아버지 감사합니다....
샤이닝포스는 제가 SRPG를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세가 게임 중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시리즈입니다. 같은 시리즈를 좋아해주시는 분이 계셔서 반갑네요. 당시에 어린애들의 용돈이라는게 뻔한 수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아끼고 아껴서 교환한 게임이 재밌으면 엄청나게 기뻤고, 별로면 다시 교환비를 모을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실망감이 가득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가 지금보다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세상의 풍파를 막아주던 부모님의 존재 때문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봅니다. 항상 즐거운 하루하루가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건스타 히어로즈? 스토리 오브 도어? 소닉? 로켓나이트? 베어너클? 메가 드라이브도 내노라하는 명작은 많습니다만 그래도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땐 슈퍼패미콤을 살겁니다. 이 좁은 댓글창에 모든 이유를 다 적을 순 없지만 딱 하나만 적자면 악마 부랄 같이 생긴 32x를 사면서 같이 샀던 코스믹 카니지 그 게임 하나만으로도 어린시절 주식하다 물린 개미 투자자가 어떤 기분인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메가CD 에 대한 설명 부분에서 사실 메가CD 의 패착 원인 중 하나가 그래픽 성능이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는 것이죠. 메가드라이브의 최대 약점이었던 동시 색상수 표현 꼴랑 64 색 전체 팔레트 수 512 개 가 메가CD 에서도 그대로라서 그냥 메가드라이브 에서 전혀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메가CD 의 그래픽은 슈퍼패미컴 을 상회한 게 아니라 발전이 1도 없어서 모처럼 CD 매체를 활용하고서도 그래픽이 구리다는 인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물론 메가드라이브에 없던 확대 축소 회전 기능은 추가되었지만) 이렇게 눈에 보이는 면에서 성능적으로 전혀 벌전이 없어 보였던 것에 더해서 메가CD 의 실패 원인 중 또 한가지는 소프트 를 전혀 준비하지 않은 채 발매를 했던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죠. 상식적으로 하드를 개발하면서 각 게임 개발사들에게는 미리 스펙 및 개발툴 등을 배포하고 게임을 만들고 발매일에 먼저 만든 게임들과 함께 내놓아야 하는데 세가는 어리석게도 메가CD 를 소비자들에게 소개하고 발표한 시점에서야 개발사들에게 이제부터 메가CD 게임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삽질을 저지릅니다. 당연히 게임기가 발매되었을 때 동시에 발매된 전용 소프트 도 거의 없었고 나온 게임들도 형편없었쬬. 비싼 데 할 게임도 같이 안나와서 발매 초기부터 반응은 처참했고 거기에 CD 를 넣는 트레이 의 설계 결함으로 손쉽게 부러진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이미지는 더욱 안좋아져서 그대로 몰락의 길로.. 세가새턴 의 북미 발매 때도 비슷한 류의 삽질을 했던 거 보면 세가답다고 해야 할지...
저는 이걸 안해봐서 뭐라고 말씀을 드리진 못하겠지만, 메가드라이브의 액션게임을 할 때마다 슈퍼패미컴보다는 확실히 액션게임들이 재밌고 화려하고 좋다는 생각을 했었죠. 당시에는 CPU가 어떻고 그래서 한 화면에 몇개까지 캐릭터가 나올 수 있고... 이런걸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내 어렸을적 기억으로 더듬어 보자면... 난 메가드라이브와 패미컴, 슈퍼패미컴 다 가지고 있었는데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색감이었음. 세가쪽은 항상 화면이 푸르딩딩 차갑게 느껴졌고, 닌텐도 쪽은 항상 좀 노랗거나 불그스름한 따뜻한 색감이었음. 여기에 좀더 편안함을 느꼈던거 같은 기억.
메가드라이브가 슈퍼패미컴보다 소프트웨어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부족했었지만... 그중에서도 재미있는게임도 참 많았는데 그 절대 판매량마저 매우 절망적이었단건 참 안타깝네요. 당시의 게임구매층의 연령대 문제 였을까요? 지금이야 사고 싶은 게임이 있으면 기종불문하고 살수 있는 유저층이 콘솔 구매자이지만 지금의 3~40대 유저층이 저 당시 그대로 돌아가면 초등학생이었으니 말이죠. 한정된 지갑사정에 골라야 한다면 SFC이란 상황이었을까요? 이런게 아니라면 썬더포스4의 일본판매량이 올타임 5만장가량이라는건 설명이 되질 않네요ㅠㅠ. 저같은 경우도 메가드라이브'만' 사는 선택지는 없었고.. SFC을 힘겹게 굴리며 그 가난한 학생 신분으로도 단골 게임매장 아저씨에게 헐값에 넘겨받은 중고 슈퍼 알라딘 보이로 '서브 콘솔'로서 마침내 세가 게임들을 해봤던 기억이 납니다. 슈퍼패미컴의 본체값과 소프트값이 아직은 너무 심해서 메가드라이브로 눈을 돌릴수 밖에 없는 시기가 92년도인가 잠깐 있었는데.. 94년부터는 갑자기 SFC의 가격대도 우리나라에서 나쁘지 않게 형성되고 게임의 질적, 양적 수준도 압도하며 점차 더 이상 선택지가 없어졌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그 즈음엔 결국 슈퍼겜보이를 굴리던 친구들도 모두 SFC로 넘어갔더랬죠. 재밌는 게임에 장사없지요. 저렇게 소프트가 안팔려서 수가 모자라서일까요? 저도 2000년대 초반까지 모은 몇가지 메가드라이브 팩 외엔 이후 가격이 너무 올라버려서 이젠 구할래야 구할수도 없다는게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안타깝지만 매우 현실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겠죠. 일본 내에서 발매 1년만에 400만대를 달성한 슈퍼패미컴과 이제 갓 150만대를 넘긴 메가드라이브... 서드파티 입장에서도 더 많이 팔린 하드웨어로 게임을 제작하는게 유리하다고 생각했을겁니다. 게임을 제작하는 회사들이 대부분 일본에 존재했던 만큼, 그 무엇보다 일본시장이 중요했던 것이겠죠. 좋은 게임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 현실은, 그들이 슈퍼패미컴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걸 안하고 끝까지 버티던 아이렘은 끝내 도산하고, 개발진을 모조리 타사에 빼앗기며 껍데기만 남은 채 매각되고 말았죠.
어렸을 적에 접한 작은 게임들. 흑백 특유의 분위기 정도를 내던 게임&와치 비슷한 거나 작은 컬러플한 슈팅 게임 정도를 집에서 접해봤지만, 결국 머리털 나고 처음 접한 게임기는 삼성 슈퍼 겜보이였죠. 메가드라이브로 플레이를 하게 되었던 첫 게임은... 타수진. 타츠진이었어야 했을 그 게임은 아이에게 좌절과 억까를 안겨다줬었죠...(공략집도 없는데 결국 나중에1주차 클리어를 기어이 해냈던 기억이 있군요...씁쓸한 엔딩. 그저 기체의 일러스트 한장 정도였지만,...) 말고도 슈퍼 시노비나 배트맨. 소닉 시리즈. 참 여러가지 게임들을 즐겨왔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게이머가 있구나 하지요.🌃 하필 건스타 히어로즈같은 게임은 못한 채 그대로 세턴으로 이어졌던 순간...🧨 여러 게임들이 떠오릅니다.
사실 메가드라이브는 닌텐도에 밀려서 그렇지, 1993년 정도까지는 여전히 잘 나가는 게임기였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콘솔시장 점유율도 35% 이상이었고요. 다만 국내에서는 일본에서의 패망한 모습 덕분에 게임잡지가 그런 부분들을 많이 전했고, 과거에 해외소식을 접하기 힘들었던 우리나라의 게임계 특성상 그런 인상으로 메가드라이브를 보게 되었죠. 메가드라이브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게임기였지만, 닌텐도에게는 많이 밀렸다...가 정확한 사실이겠네요!
일본 외에서는 상당히 성공한 게임기인데 유독 망했다는 인상이 있는건, 바로 일본에서의 실패 때문인데 당시의 국내 게임잡지들이 일본의 정보를 구하기 가장 쉬웠기때문에 그런 인식이 생기기도 쉬웠죠. 물론 메가드라이브가 세가에게 큰 손실을 준건 팩트이고 그런 의미에서는 실패한 게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의 첫 게임기가 95년에 산 메가드라이브고 타이틀은 소닉2였어요 삼성전자 발매 슈퍼 알라딘보이 ㅋㅋㅋ 나중에 드래곤볼 무용열전도 있었고 재밌는 게임도 많이 즐겼죠. 갖다 버리셨지만... 그래서 지금 메가드라이브는 미니 1과 2 그리고 메가드라이브 게임 컬렉션이 있는 ps4에 만족합니다 ㅋㅋㅋㅋ
제 인생 첫 게임기가 삼성 겜보이였습니다. 알렉스 키드와 가위바위보는 그 어린시절 했던 기억 속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네요...어릴때니까 아무래도 닌텐도가 낫네 세가가 낫네 하는 지식도 없었습니다만...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전 마리오보다는 소닉을 더 좋아한거 같습니다. 귀여운 아조씨보단 멋진 동물을 좋아해서 그랬던 걸까요...아니면 파랑색을 빨강색보다 더 좋아해서 그랬던 걸까요ㅎㅎ 여튼 세가는 너무나 통큰 도전정신 덕분에 위기에 순간 구사일생으로 북미를 공략하며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또한 그로 인해 발목을 잡힌 꼴이 되었군요. 북미시장 성공 후 조금만 스탠스를 바꿨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그리고 당시 아케이드가 주름잡고 있었다는걸 감안해도 RPG 위주의 소프트웨어가 타 플랫폼에 비해 현저히 적었던 점도 아쉬움으로 남네요. 당장 생각해도 샤포, 도어, 신창세기 라그나센티만 기억나는 수준...ㅠㅠ 시대를 읽지 못해 도태된 점이 너무 아쉽습니다. 그때 닌텐도만큼 성공했다면 현재 플스 닌텐도 양대 콘솔 판도에서 정말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마리오도 훌륭한 캐릭터이지만 사실 저는 소닉 쪽이 좋습니다. 그리고 어느쪽이 취향이냐 하면 건담쪽이 더 좋습니다. 결국 캐릭터라는건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른거죠. 그리고 야마우치 사장의 말처럼 게임업계란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를 일이죠. 누가 닌텐도가 소니에게 패배할 줄 알았으며, 플레이스테이션3가 그렇게 실패할 줄 알았겠습니까. 다만 세가는 수 차례 성공의 기회가 올 때 마다 반대쪽을 선택했다는 점을 보면, 언젠가는 이렇게 될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rattel 지금도 여전히 게임은 잘 만들고 퍼블리싱도 잘하는거 보면 (그중 풋볼매니저 산게 대단하다고 봅니다) 그 당시 세가는 오락실이 잘되니 게임기 사업 대한 판단이 온전치 못했던거 같아요 계산적이랄까 게임기 사업을 밀어주자니 오락실에 영향을 받을거 같고 닌텐도 소니 모두 다른 사업을 해봤지만 자기 사업 시장을 침해하는 사업은 아니었으니 ㅎㅎ 네오지오가 오락실겜을 집에서 라는 컨셉으로 내고 망한거 보면 중복된 사업은 영향이 있고 확실히 가정용은 서드파티의 힘이 중요한거 같아요 닌텐도가 닌64 이후에 서드파티의 부재를 wii나 스위치에서 해소햐 나가는걸 보면 자사 소프트의 영향력과 하드의 방향성을 달리 설정하지 않는 이상 지금이어도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ㅎㅎ
말씀하신대로 회전 및 확대 축소 기능은 원래 메가드라이브에 탑재되지 않은 기능인데 나카 유지가 이걸 소프트웨어로 보완해서 실장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애초에 없는 기능을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만들었을 뿐이라 슈퍼패미컴에 비해서 많이 부족한 편이죠. 아래 링크들을 참고하시면 조금 더 상세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나카 유지의 인터뷰 news.denfaminicogamer.jp/megadrivecx/kibe2 관련 영상 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IqK5ewDzrDk.htmlsi=Ml4Fh0Jnkc7kc5c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