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고구려가 흔들리기 시작한 이유 05:07 평원왕의 걱정 거리 07:08 바보 온달은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08:40 평강공주에게 혼인을 제안한 집안의 정체 10:20 온달을 찾아 궁을 나간 평강공주 15:17 평강공주를 향한 온달의 첫인상 16:55 노숙을 하고도 온달을 포기하지 않은 평강공주
이미 혼처가 정해져있던 공주가 파혼을 하고 온달과 결혼했다는건 절대 왕의 뜻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임. 고구려는 5부족이 연합해서 만든 나라이고 왕비를 배출하는 부족 왕을 배출하는 부족이 정해져서 내려오고 있었음. 왕은 사위로 맞을 집안과 갈등상황에 이르러 결혼을 깨고 공주핑계를 대면서 자신의 힘이 되어줄 신흥세력과 손을 잡은거임.
그 사람들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하는데 잘 안뽑아줌 겁나서ㅋ 일단 덩치부터 한국남자를 압도하니깐ㅋ 외국인노동자들 뽑을때 그런거 고려함 덩치나 키 작은 지역쪽 사람들 선호함 노동일이면 힘쎈 인종 뽑아야하는데 겁나서 못뽑음 돈은 똑같이 줘도 되는데ㅋ 그래서 키작고 얼굴작고 뼈대얇고 그런 사람들이 많음 어디 나라인진 잘 모르겠음 동남아인가? 중동만 되도 그 남자들 한국여자랑 결혼해버림 지나가다 보면 중동아빠 혼혈애들 있는데 진짜 압살임 강동원임 걍
고구려는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처럼 중앙집권형 완벽한 왕권에 단일민족국가가 아니었고 다민족국가였음. 그래서 벌판에 흩어져 살던 부족들도 일자리를 찾아 고구려로 오거나 정착해서 살던, 지금으로 치면 미국같은 다민족국가였는데 온달도 중앙아시아나 몽골쪽에서 온 이민족 출신이었다는 설이 있어요. 이름도 온다르 안다르 같은 부족 고유의 발음을 한자로 음차표기하여 온달로 된 것이고, 기골이 장대했는데 고구려 말이 서투르니 바보같아 보여서 바보온달이라고 불렀을듯. 이민족 출신이 그러했듯 가난하게 살았는데 도대체 평강공주는 왜 가난하게 살던 온달을 꼭 집어 픽을 했을지 그것은 미스테리네요. 그 어떤 설이든 아무튼 아무리 평원왕이 외척에게 질려서 그랬다한듯 지금으로 치면 대기업 재벌가 오너의 외동딸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출신의, 고시원에 살면서 일용직을 전전하는 외국인 남자를 골라서 결혼했다는 셈인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거 참 ..성격 있네 !! .. 평강왕도 자신의 거울 같은 딸을 보며 .. 아이고 저것을 나았지 !! 하면서 . 골아퍼 했겠군요 ..!! 자신을 꼭 닮은 딸을 보았으니 오죽했을까 !! 그 아비는 자신의 거울 같은 딸을 보며 속병 났겠군요 !! .. 평강에게 사로집힌 .. 온달.. 정말 고생 만었겠어요 !! 애도 !! 고생 만었겠어요 ..!!
일단 고구려 영토는 저 지도랑 다름. 다를 수 밖에 없음. 현대식 국경선은 말 그대로 선임. 38선 처럼 일정 선을 긋고 그 안쪽은 내 땅이 되는 거임. 반면 저시대 영토관은 선이 아니라 면 단위임. 예를들어 어느 지방에 가면 마을이 있고 그 마을 사람들이 어디까지 영향력을 미치냐에 따라 그 마을을 접수 했을때 그 영향력 만큼 내 영토가 늘어나는 거임. 유목민족은 인구에 비해 활동하는 범위가 굉장히 넓음. 저 만주지역은 고구려가 직접통치 혹은 아주 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범위임. 그리고 지도 보다 더 위에서 생활하던 유목민족을 복속시켰기에 그들이 영향력을 미치는 범위까지를 영토로 보는 거임. 물론 그런 영토에 대해선 고구려가 아주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순 없음. 예를들어 광개토대왕 때 이미 백제와 신라가 고구려에 복속 됐음. 신라의 경우 수도 금성에 고구려군이 주둔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음. 고구려 입장에선 이게 자신들의 영토를 넓혔다고 보는 거임. 한반도 전체를 영향아래 두고 북방의 많은 유목민을 아우르는 대제국이 되었음. 물론 신라백제나 그 위에 유목민족들이 고구려를 따르긴 했지만 정체성까지 동일화 되진 못했음. 문제는 광개토 사후에 벌어짐. 광개토 사후에 복속되었던 유목민족의 반란이 있었을 거라 많은 역사학자들은 추정함. 장수왕이 즉위하기 까지 생긴 역사적 공백, 장수왕 이후 사용된 '고려'라는 국호, 또 평양성 천도까지. 고구려는 분명 정치적 혼란기를 겪었음. 이때 백제와 신라도 고구려의 손을 벗어나려 했고 고구려는 강력한 유목민족에 대항하기 위해 평양으로 천도한 것으로 보임. 남진정책 때문에 수도를 옮긴게 아니란거임. 다시 말하면 광개토 때는 가지고 있었던 유목민족에 대한 통제권과 신라, 백제를 속국으로 하는 남방 통제력을 고구려가 내분을 겪으며 장수왕 때는 잃어버렸단 거임. 물론 남진을 하며 한반도내의 영토는 늘렸지만 북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졌음. 고구려 입장에선 엄청난 타격임. 그래서 엉뚱한 지도만 보고 장수왕 시절을 고구려의 최전성기다 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음. 고구려 최전성기는 그냥 광개토대왕 때가 맞음. 애초에 모호한 영토개념을 가지고 그 쥐똥만한 영토 더 먹었다고 장수왕이 전성기다? 제후국이던 신라, 백제를 모두 잃고 북방 유목민족을 피해 평양으로 천도한 시대의 고구려가? 이상한 지도만 보고 그걸 판단하는게 좀 아쉬워서 댓글 달아봄.
저 당시 신라가 고구려와 몰래 교류가 있었다는 설도 있죠. 신라의 진흥왕이 마운령, 황초령비를 세운 곳이 고구려가 내외적으로 위기이니 신라에게 영토를 떼어주며 백제를 견제하라는 설. 백제 또한 고구려와 신라의 교류가 있음을 모르리없던 성왕도 일본, 대가야 등 동맹을 강화했지만 관산성에서 전사하고 신라는 한반도 패권국으로 성장.
설화가 이해가 안가는게 온달이 비천한 신분에 가난한 인물에 별볼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평강왕이 어떻게 그런 사람을 알고 있는거지? 자신과 연관도 없고 애초에 엮일수도 없는 인물인데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고 알고 있다라면 온달도 보통 인물이나 평범한 가문은 아닐거 같네요.
바보온달은 결코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온달은 , 어려운 가운데서 어머니를 잘 모셔온 효자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평강공주를 접하면서 공주가 가져온 폐물 등을 팔아서 온달에게 글과 무예를 가르쳐서 온달의 능력치는 단번에 상승합니다. 모든 사실을 알아챈 고구려 왕은 온달과 평강공주를 인정하고 온달에게 큰 벼슬을 내리고 온달은 침입한 당나라군을 물리칩니다. 그러나 , 온달은 신라를 정벌하기 위해 침입하지만 온달은 결국 활에 맞아 죽습니다. 여기서 두가지 교훈과 의문이 있습니다. 1. 순진해 보이는 평강공주는 선경지명이 대단했다. 2. 온달은 왜 바보 취급을 당했을까?
고구려 전성기 때부터 외국 무역으로 전쟁 시 문화를 달리했다면 한반도 역사 속 나라들도 그런 문화를 이어가 일제강점기 같은 것은 없었을 듯 싶지만 고구려 또한 국력이 약해져 한반도 내 영역을 잃기 시작한 나라였고 백제 신라 조차 국가의 운이 달리하여 대한민국 역사 속 국명 중 하나일 뿐이고 고려 조차 무신들에 의한 국가의 명을 다 하였고 조선 조차 대한제국으로 국명을 달리했지만 국가 고위공직자들 때문에 왕손들이 처참한 삶을 살다가 식민지화 되었던 일제강점기 겪는 상황을 면하지 못했다!!
소설을 써본다면 평강 공주는 쇠락해가는 고구려를 걱정하며 눈물로 지새웠다 그러다 몽골에서 이주해온 안다르 부족의 족장 아들 온달과 결혼하여 고구려 왕가는 안다르 부족의 힘으로 고구려를 부흥하고자 하였다 온달은 이주해온 몽골인이이서 고구려말을 못해 바보라 불리웠고 가난했다 하지만 안다르 부족은 강맹했다 평강왕은 안다르 부족와 연맹하는게 정치적으로 견제를 받고 있어 공주가 온달과 속도위반 했으니 어쩌니 하며 은근슬쩍 귀족의 반대에도 안다르 부족을 손에 넣어 왕권 강화 및 고구려 부흥을 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