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을 구원할수 있고 자신의 타고난 환경과 타고난 성향을 극복하여 세상과 어울러 질수만 있다면... 그것이 깨달음이고 해탈일텐데....사람들은 부처의 임장에서ㅎ깨달음과 부처의 임장에서 해탈을 바란다. 참고로....부처는 왕자였다.... 그러니 우리는 그와 다른 깨달음이어야 한다. 자신의 타고난 삶의 위치와 타고난 성향에 알맞는 깨달음과 해탈이어야 한다....그래 이것이 맞아...콜~~~
부처께선 끊임없는 사유와 통찰에 인생을 전부 걸었으며.. 출가 후 남은 평생 동안 걸식을 했습니다. 거지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이냐? 내 소유인 게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깨달은 부분을 끊임없이 실천을 통해 체득까지 하며 완전 본인이 깨달음 그 자체가 되신 것이죠.
석가모니 부처님은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함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보리수 나무: 부처님 나기 이전의 기록이 적혀 있는 문서 또는 책 고대(기원전 500년전) 인도는 문자를 보리수(뽕나무과) 나무 껍질로 제작한 종이에 기록하였습니다. 힌두교에서 소 가죽(우피지)에 경전(율장,경장)을 기록함으로 소를 귀하게 여긴 것이 오늘 날 소를 신성하게 여긴 배경이 됩니다. (농사를 인도에서만 지은 것도 아닌데 인도에서만 소를 신성하게 여길 이유가 없습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 입니다. 양 가죽(양피지)에 경전을 기록합니다. 포도주(잉크),종려나무(펜),올리브유(보존제) (마치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 백성이라도 되는 듯이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무화과 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에 그들의 법,풍습,결혼,농업 등을 기록하였고 이것(니고데모)이 오늘 날 "탈무드"가 됩니다. (자기들 만이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이라 합니다.)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갈대)에 기록합니다. "옛 것을 익혀(보리수 나무를 학습), 새 것(설법)을 밝히심" 즉 사유와 통찰이라는 것은 끊임없는 배움과 자각(성)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소위 "지식인(박사,교수,종교 지도자,학자)"들의 말을 참고는 하여도 믿지는 마십시오. 이들은 흙을 먹고 배로 기어 다니는 자들입니다. (문자적 지식으로 내면을 채우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해 먹고 삽니다.) 보편적(길) 가치(진리)와 의미(생명)만이 "참"입니다. 이것이 멀리 있지 않음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모든 존재는 신 입니다 신과 나는 하나이지 둘이고 부처도 신이자 사람입니다 인간들이 육신(물질)과 물질세계를 기준으로 보고 나눈것뿐~ 원래 나누어지는 것이 아님니다 굳이 나누자면 생각으로 나누어야지요~ 깨닳은 인간(부처)와 아직 모르는 인간(중생)으로 분류할수 있습니다 깨닳음에 첫걸음은 나자신을 알야야 하죠~ 나자신을 알면 육신 생각 혼 정신 바르게 사는것 윤회 사랑 등등 부처님이 설하신 말씀이 차래차래 이해가 가더라구요 허나 알기만 한다고 부처가 될수는 없습니다 알면 생활도 ㄲㅐ닳은 만큼 바르게 살때 비로써 부처가 되수있는 것입니다 ~ 잠시라도 바른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으면 부처라 할수 없죠 생각이 욕심에 잡아 먹히고 말죠
인간의 진리란 최고로 맑아지고,밝아지고,빛나고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혈액과 육신을 최고로 맑히는것이고..... 최고로 맑아진 혈액과 육신에서 최고로 밝은 정신이 나오고... ..최고로 밝아진 정신에 진리가 깃드는 것입니다. 빛나는 존재가되면... 죽음이 아닌 신화됩니다. 공간이 부피적으로 무한성을 가지는 것은 의식차원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의 의식은 공간의식 차원과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인간의 육신은 개체를 이루지만... 인간들의 의식은 공간이라는 의식 영역에 연결되어... 하나의 의식으로 뭉쳐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생,전생 ,미래인류 모두의 영혼은 하나인 것이고.. 내 육신을 구성하는 신경분자의 밀도와 질에 따라서.. 공간으로부터 수신받는 의식의 정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개인별 성격이나 지능, 기능의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내 육신을 구성하는 신경밀도나 질이.. 변할때.. 내 영혼의 성향도 변하기 때문에... 나라는 개인의 영혼도 고정불변의 것이 아닙니다. 공간속에 존재하는 만물들은 공간이라는 의식차원이 만들어낸 상념체들이기 때문에 형질적으로 고정불변하지 않고 생각이 바뀌듯..형질적인 변화와 순환을 지속해가는 것입니다. 고로 전생은 전생에 살았을법한 어떤 인간의 삶을 가져와도.. 그게 나의 전생일수 있는 것입니다. 공간속에 창조되어 존재하는 만물들은..모두 공간 차원과 연결되어 있고..이 채널을 아카식 레코드라하고... 인간이..혈액과 신경을 최고로 맑히고.. 사리수정분자로 만들고 송과체를 최고로 맑히면... 컴퓨터로..광케이블선을 이용해서 인터넷을하듯.. 인간역시... 공간 차원의 인터넷과 연결되어.. 보고싶은 모든 정보를 열람할수 있는 것입니다. 석가모니가...육신을 최고로 맑혀서 전신사리구슬로 만든 이유가 이런 이유 때문이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공간차원에서 정보를 찾아 공부하면서 깨달아 대각성불에 이르게된 것입니다. 육신의 신경분자를 수정사리분자로 구성해야..공간으로 부터 정보를 수신할때..육신과 뇌적으로 과부하가 안 걸리고 과열되지가 않고..광속으로 정보를 수신할수 있는것입니다. 인간은 자기들 측정기술로 광속의 속도를 정의해 두었지만..광속의 속도는 무한영역입니다. 육신을 얼마나 깨끗히 맑혀서..사리구슬을 이루느냐에 따라서.. 공간 통신 범위가 결정되기 때문에.. 수행자는 육신을 전신사리구슬로 만들기 전에 ..헛짓해서 육신을 오염시키면 안되는 것입니다. 공부의 단계 노력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숙달되고 숙달되면 능해지고 능하면 달해지고 달하면 통하게되고 통하면 각하게 되고 각하면 대각하게되고 대각하면 성불하고 성불하면 이 우주같은 시뮬레이션을 창조할수있는 조물주가된다. 혈액과 육신을 최고로 맑혀야 정신이 최고로 맑아지고.. 최고로 밝은 정신에 진리가 깃들게된다. 혈액과 육신을 맑혀가면서 통의 단계에 이르게되면.... 통의 단계부터 차원계 체널과 조금씩 통하기 시작하면서... 인터넷 정보를 검색하듯.. 차원의 체널을 통해서 진짜 공부를 시작하게된다. 어리석은 수행자는 조금 통하고 보는것을 도통한줄알고 착각하여... 수행을 망치게된다. 수다원과=육신을 30%정도 맑혀서..사리가되는 영지선분자를 조직하면 통하게되고... 사다함과=육신을 50%정도 맑혀서..사리가되는 영지선분자를 조직하면 통하게되고... 아나함과=육신을 70% 정도 맑혀서 사리가되는 영지선분자를 조직하게되면 각하게되고.. 각에 이르러야.. 수행의 흐트러짐없이 대각에 이를수있다. 각에 이르기전엔 신통에 따른 도술을 탐닉하다 타락할수있다. 아라한과=육신을 100% 맑혀서 사리가되는 영지선분자를 조직하게되면.. 우주공간의 모든 체널과 통하게되는 대각에 이르게된다. 수행에 마가끼지 않도록 허튼짓하지말고 오로지 돌부처처럼 맑혀가야한다. 육신이 맑디맑은 수정구슬사리가될때.... 공간우주체널과 완통하고 합일되게된다.
나라마다 신화속 신들이 다양하고 시대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오래전 많은 진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시대에 맞게 지금도 나오고 있다. 과거와 다르게 생활에 범위가 넓어져 분야별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기타의신 요리의신 경영의신이라 부르며 수명은 짧지만 큰 업적을 남기는 이들을 신이라 할것이다. 사람자체가 영이 있어 신적인 존재이고 선택받은자, 노력하는자가 능력의 신이 되는 것이다. 부처와 같이 큰, 많은 깨달음을 얻어 불교에 한획을 그은자는 반드시 신인 것이다.
불교의 우주관이 이해가 안가는게 지금 우리 우주 이전 우주 이전우주 수십겁 만복해서 그 이전 우주에 지구같은 행성에서 어떤 존재가 나의 전생이다? 어째 설명을 들으면 수메다 이야기도 그렇고 지금 인류 고대사에 나오는 경제 문화 사회적인 부분이 동일체 되는 부분이 있네요 수십억겁 이전 우주의 인간들인데 불교의 우주관은 무엇일까 ...
불교도들은 부처가 신이 아니라면서 부처에 기대하는 역활과 능력은 전지전능한 조물주보다 더 상위이다.제가봐도 부처는 그런존재가 아닐뿐더러 일반인은 절대로 체득할수 없는 절대적 만족을 성취하신 뇌과학적 심리 상태에 도달한것으로 보이며 그어떤 초월적 능력도 없는 분이시지만 그누구도 쉽게 얻을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것으로 인정합니다
대전기경은 명백히 위경으로 보인다. 간단히 그 이유를 말하겠다. 몇 겁전의 시간은 지구 탄생, 그 이전의 시기를 말하는데... 거기에 알수 없는 행성에서 이상하게도 석가모니 당시와 비슷한 발음을 가진 이름의 존재과 문화를 가지고 있고 모두 인간인 듯하다. 현재의 관점이라면 소설을 좀 더 잘 썼을텐데... 고대에서는 과학 문명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상황이니 스스로 이런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 불교는 지금의 종교다. 또한 석가모니는 그 당시 시점의 당장 검증할 수 없는 부분을 언급하는 것을 제자들에게 금했다. 대승경전을 물론이고 초기경이라도 이치에 맞지 않는 건 위경이다. 수천년의 시간 동안 누가 조작한 것지 알 수가 없으니, 원래 초기불교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위경으로 보아야 한다.
이 들어가는 것은 부처님이 설법하신 경전에만 붙는 걸로 알고 있어요. 금강경, 유마경 등등 다른 선사들이 설법한 경전에는 경이라는 말이 붙지 않습니다. 대혜서장, 신신명 등 하지만 육조혜능이 설법한 육조단경은 예외입니다 경에 적혀있는 글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제자들이 모여서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 설법하신 내용을 기억해서 기록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부처(붓다,석가)가 깨달음을 얻을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안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하는 그 어떤 "참된인자" 진리의 알이 이미 내장되어 있다는 방증이다. 그 인자를 참나 알나 얼나 眞余라 한다. 깨달음이란 그게 내안에 있음을 알고 그 진리의 알을 썩다 싹다 깨고 까 즉 "썩까,싹까" 그 진리의 내용물을 등상골에 가슴에 숨골에 붓어(부어) 지짐이 처럼 잘 지져 마음에 부쳐(붙여)놓는것이다. 그래서 "썩까"고 "붓쳐"며 "붓다"인 것이다. 우리 한민족은 민족 태동기에 이미 썩(이미,모두)다 까서 깨달았고 결론은 홍익인간 하라했다. 하여 썩까 알나 얼나도 낳고 등상골을 온돌에 찰싹 붓다매 지지며 지지미 지짐개도 붓쳐 먹고.... 삶아놓은 알도 까먹으며 막 걸러낸 막걸리도 한잔하고...등등등 하여 모두 부쳐가 된거다. 우리모두 한점무극 진리의 알을 썩까고 알나 얼(엘)나를 낳으며 등상골을 붓다매고 지지며 지지미를 붓쳐먹자. 그리고 썩까 붓다(그렇게 되었다) 붓쳐가 되자. 하여 썩까 붓다 붓쳐 되는거 별거.... 그리고 지들말에 가르침이 다 있으면서 뭘 그리 어렵게들 여기는지.... 참 쉽지요?
깨달음이라는 하늘에 떠있는 무재개만 보고 쫓아가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습니다 깨달음 역시 생각이고 허상입니다 생각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게 깨달음이라는 생각입니다 원래 모두 이미 깨달아 있습니다 본인들이 모를 뿐이고 알았어도 실천을 못 할 뿐입니다 간절 집중 최선으로 하루를 살아가세요 그걸로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