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타자의 담론에서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기에 죽음충동을 바탕으로 평생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라캉의 주체관이 프로이트의 자아이론과 다른 점이 인간에게 누가 더 희망을 가지고 있느냐군요 라캉이 죽기 전에 프로이트로 돌아가라고 말했던 게 끝을 앞에 두고 더 희망적인 가치를 볼 수 있길 바랐던 걸까 싶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ㅇ견문을 넓힙니다. 엄두도 나지 않았던 라캉이 지식의 짧음에도 쉽게 이해되는 건.. ㅡ알기쉽게 설명하는 대가의 솜씨때문일겝니다. 특히 욕망, 언어, 구조주의 등으로 라캉의 저변을 짚어내며, 프로이드에 대한 재해석과 그 차이를 드러내는 대목이 좋았어요. ㅇ라캉의 욕망 혹은 무의식 구조를 문학과 철학 등으로 나아가 제도와 사회까지 확산시켰다는 지적이 흥미롭군요. ㅡ관련해, 상징계의 욕구와 상상계의 욕망을 실제계와 연결시키는 대목에서 몇가지 생각이 나더군요. ㅡ하나는 욕구든 욕망이든 몸과 마음 사회차원에서 충족되고 억압되며, 어떤 비교와 차이를 통해 촉발되며 새로 만들어지기 까지 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프로이드나 라캉이 후자에도 주목하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개별자에 대한 정신분석이 집단과 사회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그 대목에 대한 고찰이 당연할 듯 하네요. 다음 강의들에서 나오는지 주목해 볼께요. ㅡ두번째는 상상계와 상징계에서 주체가 형성되어 실재계와 마주선다면, 실재계는 대상이 형성되는 장이겠군요. 라캉은 그 넘어설 수 없는 간극을 설정하던데, 그 대목은 이해하기 혹은 수긍하기 어렵군요. 주체와 간극이 있는 이 문제가 아니라, 그 관계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에 대한 착각(욕망)이 문제겠지요. 그 착각의 대상을 실재계에서 찾기보다는 그 관계속(간극, 욕망)에서 일어나는 측면에 초점을 두면 어떨까 생각되네요. 그 간극을 과정 혹은 (차이)작동으로 해석해 살펴보는 일이지요. ㅡ세번째는 라캉이 인도철학을 참고했다면, 고타마 혹은 고행주의와 연결될 듯 합니다. 범아합일은 아닌듯 보여서요. 그렇지만 상상계 너머, 혹은 인식의 너머에 어떤 실체를 상정하지 않는다 해도, 인식을 촉발하는 어떤 것(물자체 등)은 앞서의 인도철학 혹은 불교와는 맞닿아보이진 않아요. 인식론과 존재론으로 나누기 어렵거든요. 라캉이 무의식을 존재적 측면으로 확산시키고 있다면 그 대목을 좀더 봐야할 듯 해요. ㅇ그냥 앞으로 라캉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서 스스로 짚어볼 대목을 적어봅니다. 잘 듣고 있습니다.
5분뚝딱철학 채널에서 이곳을 안내해 주어서 오게 되었습니다. 오늘같은 주말에는 초저녁에 혼자 산책하면서 들으면 마치 같이 산책하는 것 같겠어요. 암튼 앞으로 제게 들릴 귀가 허락되길 바라며... ps. 철학적 깊이, 철학소 없이 이 방송을 들을 수 있을런지요.. 말씀 중에 지젝 얘기도 나오던데 오래전 지젝의 강연을 들었을 때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때 지젝이 '비염'이 심했었는지 넘 심하게 훌쩍거렸던 엉뚱한 기억만 있는 것도.. 갑자기 확 부끄러워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