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가 6.25때 15살로 학도병이 셨는데 총 맞고 죽어가던걸 미군이 병원으로 호송하여 살아나셨어요 후에 직업군인이 되셨고, 갈곳이 없어서 17살인가부터 군대가셔서 준위로 제대하셨어요 주로 근무지가 전방 양구, 철원쪽이라 엄마가 강원도가 고향이예요 베트남파병도 가셨고 KBS 이산가족찾기에서 헤어진 가족들도 찾았대요 제가 어릴적 할아버지가 저에게 웃으면서 자랑스러하시며 총 자국을 보여주신게 기억납니다 전쟁후유증으로 한쪽귀도 잘 안들리셨어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이런 영화를 보면 할아버지가 생각납니다
병력 딸려서 맞음 아주 슨본없이 막장 징집 했음 저때 근데 만 17세 였나 그이상 싹다 뽑아 짙집했다면 말 다한거 징집도 절차랑 나이 재한이 정해져있는데 태극기 휘날리먀에 보면 만 17세 였나 18세 이상 다 앞으로 나와라 이말 나옴 걍 막장이었음 그당시 인구 2천만이 좀 안돳으면 평균적 동원 병력 20만가량 근데 당시 국군이 10만 조금 넘었으니 그냥 보이는데로 끌고간거
저는 20살때 특수부대에 지원하여 수많은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매번 두려웠고 힘들었습니다 20살 성인도 되지않은 학도병들...훈련도 되지않은 상태였는데 얼마 힘들었을지 상상조차 안되네요..조국을 위해 희생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전쟁은 엄청난 비극입니다 전쟁을 피하기위해서는 군이 강력해져야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군에대한 존중,존경,관심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 특전부사관 화이팅!11여단 정찰대 화이팅! 단결!
군생활 내부 방탄복 입고 vip 지키고 옆 gp 지뢰 터져도 지뢰 탐지기 낚시대 들고 수색 하며 생활했죠 군생활에 후회없습니다 죽을 각오 하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지켜야 할게 많은 나이입니다 저희를 지켜주신 용사님들 대우를 보면 저는 가족을 지키며 도망치며 살고 싶습니다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실시된 장사상륙작전이란 기만작전이 있었습니다 둘다 똑같은 일시인 1950년 9월 15일에 실시되었고 이는 실로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당시 전선이 포항에 걸쳐있었고 지도상으로 포항의 북쪽에 영덕이 있는데 그 영덕과 포항 사이에 장사리가 있습니다 둘다 같은 일시에 작전을 개시함으로써 전방에 배치되어 있던 북괴군을 전방에 묶어둘수있었고 거의 모든 병력을 전선 앞쪽으로 몰아버린 북한은 인천상륙을 막을 수가 없게 됩니다 전선 앞쪽에서는 장사리 상륙도 막아야되고 최고 격전지인 낙동강일대에서 끝없는 전투가 이어지면서 인천상륙을 막으려고 전선에서 병력을 빼내버리면 중요한 기점인 낙동강일대를 내어주면서 전투에서 밀리기 때문이죠 심지어 전투가 너무 길어진 탓,그리고 북한 본토와 낙동강일대까지 거리가 너무 멀기에 탄,식량 보급이 지체되어 북괴군이 사기를 잃기 직전 인천상륙작전이 실시됩니다 결정타가 떨어진거죠 북한의 보급로를 완전히 잘라버린겁니다 안그래도 지체되서 힘든데 이제는 보급이 올수가 없게되면서 북괴군은 사기를 잃습니다 그렇게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을 하게되고 미군과 국군의 반격으로 낙동강일대를 다시 점령하게됩니다 그리고, 장사상륙작전은 대부분다 학도병이 참가했다는겁니다 그저 기만작전이였지만,누군가는 목숨 바쳐 해야했던 작전이였습니다 우리모두 6.25전쟁을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