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로 몇번 보고 풀버젼은 감상 안 했지만 멜 깁슨씨의 "브로큰 애로우"는 절대 잊을수가 없었습니다. 전투 중엔 각종 소음(총소리,포탄과 수류탄으로 인한 폭음,부상자와 전투 중인 군인들로 뒤섞이는 목소리) 때문에 어쩔수없이 제대로 목에 힘 빡 주고 소리치며 말해야 하는게 당연하지만 저 장면 만큼은 본인이 할 무어 중령으로써 그 당시 저 곳 한복판에 놓여있고 본인이 그 말을 외치지 않으면 본인뿐 아니라 늦기라도 한다면 자기 부하들까지 전부 죽을걸 알기에 갈등 속에서 터져나온 여러 감정이 뒤섞인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1987년 한미 야전군 사령부에 (의정부 켐프 래드 클라우드) 무어장군의 독립기념일 축하 방문이 있었다 난 당시 이분과 두번의 악수를 나누는 영광을 누렸는데 당시 나는 이분이 누군지 몰랐고 30년이 지난 어느날 "위 웨어 솔져" 라는 영화를 보고 그가 누군지 알았고 기절할뻔 지금의 영화를 봐도 아찔하다
해럴드 그레고리 무어 주니어 Harold Gregory Moore Jr.베트남 전쟁당시 미 제1기병사단 7기병연대 1대대장이였다. 북베트남군과의 첫 번째 정규전인 이아드랑 전투에 참가해 북베트남군의 초반 공세를 3일간의 격전과 포병대, 공군과 주변에 있던 5기병연대 2대대의 지원 끝에 사수하고 무어를 포함 직접 착검돌격까지 한 결과 북베트남군에게 승리를 거뒀다. 이 전투의 공로로 무어 중령은 미육군 수훈십자 훈장을 수훈하고 대령으로 진급한다. 1977년 퇴역했고 2017년 사망했다.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한지가 스무번도 넘는 영화지만 볼 때마다 내 피부의 불꽃을 일으키는 영화이다... 저 정도의 부하들을 이해하는 상관이 있다면 내 목숨 바칠 수도 있겠다 생각했던 그 영화... 우리 따이한들도 저보다 더 험한 전장도 있었지만 왜 영화화 되지 않을까... 충분히 저들보다 더 잘 싸운 전장인데....
@@user-mz3ho4cm8vㅋ 그놈의 반공이 바로 일제와 히틀러가 했던 짓입니다. 1936년 히틀러 무솔리니와 일제가 방공협정을 맺은 반공파시즘의 참상을 스페인 내전이 증거합니다. 일본은 당시 "아시아를 공산주의로부터 지킨다"며 중국대륙을 침략한 것인데 그 일본군 관동특설단 백선엽이가 윤봉길 의사가 죽인 관동군 시라카와 요시노리로 창씨개명한 매국노. 그래서 소위 우익이 바로 일본따까리 친일 맥국노
전쟁영화중 최고인 영화. 전쟁은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하지만 일어난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한다... 전쟁 일으키지말라고 퍼주는게 아니라 일으키면 반드시 죽게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전쟁을 도발하지 않는다. 퍼준 돈으로 우리 병사들을 죽일 무기를 만들게하는게 아니라.
전쟁은 인간에 잔혹성과 아품을 준다. 하지만 전쟁은 필연적인 연속성에 의해서 발생 된다. 의지에 싸움에서 누가 살아 남을 것인가. 보다 전쟁을 준비해야만 전쟁을 막을 수 있다가 핵심이다. 외면하고 싶고 전쟁 보다는 평화가 좋다라고 희망 고문하는 이자들은 악마다. 전쟁 역사를 조금만 공부해 봐라, 준비하지 못한 그들은 살아 남지 못했다.
훠훠훠~어떤 굴욕적인 평화도 전쟁보단 났슙니다 훠훠훠~근데 그런 나라들이 결국 어찌됐는지 역사를 돌아보면 답이 있음. 전쟁은 일어나선 안되지만 결국 그러기 위해선 전쟁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교훈을 문재인과 민주당은 언제쯤 알런지ㅉㅉ 아니 어쩜 그들의 마음속 진정한 조국은 대한민국이 아닌 북한이기에 그런 측면에서 보면 그들도 나름 애국하는 중이라고 봐야하나?ㅋㅋㅋ
23:38 실제 종군기자하셨던분 영화배우들 하고 인사나눌때 일본계 미국인 군인역을 맡았던 배우와는 인사를 제대로 나누지 못했데요. 그 이유가 실제 그 군인이 태어난 딸을 보지도 못하고 부상이 심각해 2일 뒤 사망하였고 함께 있었던 종군기자 분도 그 군인이 사망한 거 때문인지 후유증을 앓게 되었다 하네요.
broken arrow는요 부대가 포위당해 전멸직전이라는 뜻이긴합니다 하지만 부대장이 무전으로 broken arrow를 외쳤다면 전멸 위기이니 현 부대 위치에 무차별 포격을 해달라는 요청입니다 그렇게 하면 아군은 알아서 땅을파고 들어가던 엄폐물을 찾아 피해를 최소화 하고 오픈되어 있는 적군이 보다 많은 피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무전으로 broken arrow를 말하는건 포위되어 있으니 현좌표로 포격을 해달라는 무전입니다 찾아보니까 군사용어이라기 보다 베트남전에서 쓰던 미군의 은어라고 하네요
네 한국전쟁 당시에 국군은 같은 말을 " 진내포격 "으로 불렀다죠. 이미 방어선이 무너지거나 아슬아슬하니, 뚫려서 잃게될 부대원보다 진내포격으로 적을 제압하고 살아남을 부대원쪽이 더 많을 거란 판단으로 알고 있습니다. 의외에 진내포격을 했을때 아군의 생존률이 높았다고 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전멸을 각오했던 것 보다는요
공수부대 airborne troops가 아니라 공중강습부대 air assult troops 입니다. 헬리본 부대 heliborne troops이기도 합니다. 월남은 정글 지형이 많아서 통상적인 낙하산 공수작전은 거의 불가능했는데 전투 강하 후 집결 roll up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그때 산개된 공수병은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포기하고 대신 당시 새롭게 등장한 수송헬기를 이용한 헬리본 작전을 시행하면 빠르게 침투하고 보병을 쏟아 부은후 이탈 할 수 있어 정글전에서도 충분히 유효할 것이라고 기대했고 당시 실전 배치 되기 시작한 벨 UH1 이로쿼이즈 헬기를 주력으로 기병연대를 시험적으로 개편해서 공중강습부대를 편성해서 투입했었죠. 헬리본은 매우 유효한 작전술이였지만 피해도 막심해서 월남전때 미군은 약 1600대의 UH1을 상실했고 엄청난 조종사 인력도 잃었습니다.
공수부대라 호칭해도 될 시기입니다, 미 육군이 공식적으로 airborne 및 air assult를 별개로 구분한건 1974년이니까요. 아이드랑 전투는 1965년이고요. 또한 troops, trooper라는 명칭은 오직 airbone qualified unit+ cavalry 즉 공수 작전을 실제로 수행하는 여단, 사단혹은 기병부대에게만 붙습니다. 4-25th ID, 82th AB, 173d BCT 혹은 1st Cav, 3rd Cav같은 유닛들이요. Air assult를 정의한 뒤론 그들은 Air Assult soldiers라 부르지 airborne trooper라고 부르진 않으니까요.
@@leepv2781 /호칭적으론 그럴 수 있지만 전술적으로는 매우 큰 차이가 납니다. 전통적인 낙하산 parashute를 이용할 수 있는 "공수부대"는 시대를 막론하고, 국가를 막론하고 엄청난 시간과 인적자원을 소모하는 엘리트 병종입니다. 반면 헬기를 이용한 공중 강습은 시간과 돈을 엄청나게 퍼붓지 않아도 어느 정도 신체 조건만 충족하면 상대적으로 빠르고 쉽게 육성 가능한 공중 강습부대는 전통적인 낙하산 공수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입니다. 미 101 사단도 개편후 공중강습사단이 되고 이제 정식 공수 사단은 82 뿐이며 한국군도 개편된 2사단이 신속대응 사단으로 개편되는데 명칭은 달라도 성격상 공중강습 사단이 되는것이지 2사단이 공수사단이 되는건 아니니까요. 이 둘의 차이는 매우 명확합니다. 한편 전술적 용도가 제한된 기존의 공수부대는 특수 강하나 침투 수단의 개선을 통해 종심 작전이나 소규모 특수전 침투 부대 쪽으로 전술 용도를 차별화 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전통적인 대규모 공수 작전은 그냥 공중강습 작전으로 대치해도 될 정도의 작전 성숙도를 보여주었기에 가능해진 것입니다. 이 둘의 차이는 용어가 국가마다, 시대마다 다르다고 해도 근본적인 차이점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영상의 쟤들은 훈련잘 받은 북베트남 정규군대였음 한국군이 대부분 상대한건 남베트남의 비정규 군대인 빨치산들인 베트콩이고 영상에서도 쟤들을 베트콩이라고 했는데 사실 이아드랑계곡 전투에서 싸운 부대는 북베트남 정규군대임 베트콩이랑 완전 다른군대고 훈련강도나 부대 완성도나 작전수행능력이 차원이 다르지
🇺🇸 참전 기록에는 장군으로 특진 2단계이상 한 전례가 없어요 ;; 더군다나 (영관->장군) ■ 해럴드 그레고리 무어 주니어 Harold Gregory Moore Jr. 베트남 전쟁당시 미 제1기병사단 7기병연대 1대대장이였다. 북베트남군과의 첫 번째 정규전인 이아드랑 전투에 참가해 북베트남군의 초반 공세를 3일간의 격전과 포병대, 공군과 주변에 있던 5기병연대 2대대의 지원 끝에 사수하고 무어를 포함 직접 착검돌격까지 한 결과 북베트남군에게 승리를 거뒀다. 이 전투의 공로로 무어 중령은 미육군 수훈십자 훈장을 수훈하고 대령으로 진급한다. 1977년 퇴역했고 2017년 사망했다.
@@JW-wq7vq 베트남 전쟁당시 미 제1기병사단 7기병연대 1대대장이였다. 북베트남군과의 첫 번째 정규전인 이아드랑 전투에 참가해 북베트남군의 초반 공세를 3일간의 격전과 포병대, 공군과 주변에 있던 5기병연대 2대대의 지원 끝에 사수하고 무어를 포함 직접 착검돌격까지 한 결과 북베트남군에게 승리를 거뒀다. 이 전투의 공로로 무어 중령은 미육군 수훈십자 훈장을 수훈하고 "대령"으로 진급한다. 1977년 퇴역했고 2017년 사망했다. 제발 소설 좀 쓰지마. 뇌피셜도 적당히 해야지.
@@JW-wq7vq 베트남 전쟁당시 미 제1기병사단 7기병연대 1대대장이였다. 북베트남군과의 첫 번째 정규전인 이아드랑 전투에 참가해 북베트남군의 초반 공세를 3일간의 격전과 포병대, 공군과 주변에 있던 5기병연대 2대대의 지원 끝에 사수하고 무어를 포함 직접 착검돌격까지 한 결과 북베트남군에게 승리를 거뒀다. 이 전투의 공로로 무어 중령은 미육군 수훈십자 훈장을 수훈하고 대령으로 진급한다. 1977년 퇴역했고 2017년 사망했다.